요양기관 강제지정제 합헌 판결에 대한 소고




1. 강제지정제 합헌 판결이 부당한 역사적 이유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강제지정제)는 헌법 재판소의 판결이 설명하듯, 의료보험 도입 초기에는 계약지정제이었으나 제도의 미비, 이해 부족 등으로 의료기관이 계약지정을 회피하게 되자, 의료보험 제도 강행을 위해 일방적으로 강제지정을 입법화 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상, 계약지정제가 실패한 직접적인 이유는 의료보험 도입으로 의료 수요가 비약적으로 늘어난데 비해 이들 환자를 수용할 의료인, 의료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떄문에, 강제지정제 합헌판결을 반대한 헌법 재판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반대 의견으로 판결에 명시했다.

“다수의견은 충분한 숫자의 공공의료시설이 확보될 때까지는 강제지정제를 채택해야 하고 장차 공공의료시설이 충분히 확보되면 그때 가서 계약지정제를 채택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의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먼저 공공의료시설의 확충에 힘을 쏟아야 하고 그러면서 단계적으로 그 정도에 맞추어 의료보험의 범위를 점차 확대하였어야 할 것이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는 일의 순서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반대 의견이 이 사안을 제대로 보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 의료보험 법이 만들어진 것은 1963년이며, 실제 시행이 된 것은 1977년인데, 요양기관 강제지정이 법제화된 것은 1979년 의료보험이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으로 확대되면서부터이다.

77년 500인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할 때는 계약지정제를 하였다가 요양기관 지정 의료기관의 부족으로 민원과 불만이 쏟아져 나오자, 79년 의료보험 대상자를 확대하면서 일방적으로 요양기관 계약제를 당연지정제로 바꾸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에 수천개의 병원과 수만개의 의원이 포진하고 있어 해마다 3천명이 훌쩍 넘는 의사가 양상되어 의료 과잉 공급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그 때와 지금은 달라도 너무나 상황이 다르다.


2. 헌재가 주장하는 강제지정제의 필요성에 대한 반론

헌법재판소는 판결을 통해, 강제지정제의 필요성이 강제지정에 따른 의사의 기본권 침해 정도가 최소 침해의 원칙에 반하지 않으므로 합헌이라고 주장한다.

판결에 나오는 그 필요성을 그대로 옮기면, 

  1. 강제지정의 입법 목적이 의료보험(건강보험) 설립의 목적 수행을 위해 꼭 필요하고, 
  2.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의 수준이 빈약하여 민간의료기관에 의존하지 않고는 보험 제도 수행이 어려우며, 
  3. 역설적으로 일반 진료 (비보험 진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의 층이 상당히 존재하여, 강제지정을 폐지할 경우 상당수 의료기관이 보험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많으며, 
  4. 또, 강제지정을 철폐할 경우, 경쟁력 있는 의사, 의료기관은 보험에서 이탈하여 비보험 진료를 할 것이고, 결국 보험진료는 2류 진료로 전락하고, 그 결과 다수의 국민이 고액의 진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일반진료를 선호하게 되고, 이는 중산층 이상의 건강보험의 탈퇴요구와 맞물려 자칫 의료보험체계 전반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이 판결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건보 제도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비보험 제도를 요구하는 국민이 다수 있고, 심지어는 건보 탈퇴 요구로 이어질 수 있음으로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건보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부 국민의 기본권을 강제로 침해해서라도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보 제도는 절대선이 아니며, 절대 반지처럼 꼭 지속해야 하는 제도가 아니다.

수 많은 국가에서 국민의 요구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존의 사회보장제도, 의료보험제도를 개편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도 불편부당한 제도임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굳이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헌법재판소나 국민 뿐 아니라 의사들마저 강제지정제 폐지는 곧 비보험 수가 즉, 일반 수가로 진료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도 있다.

즉, 강제지정제를 폐지할 경우, 일반 수가로 진료비를 내야 하고, 받으며 이 때문에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져야 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연지정제 폐지는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의미한다. 민간보험은 상업적 보험사의 보험뿐 아니라 직장, 단체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의료보험조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당연지정제 폐지는 건보제도의 폐지 즉, 건보 공단의 폐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 보험사와 의료보험조합과 함께 건보 공단이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당연지정제 폐지와 건강보험 의무 가입 제도를 철폐할 경우, 경우에 따라서는 건보의 보장성보다 월등히 나은 보장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 미국 캐나다 유럽 국가를 비롯해 상당수 국가에서는 좋은 직장의 중요한 조건이 바로 어떤 의료혜택을 제공하느냐이다.

당연지정제 폐지를 반대하는 상당 수 의사들 역시 착각하는 것이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당연지정제가 폐지될 경우, 건보 공단과 개별 계약을 해야 하고, 자신의 청구 내역, 심사 결과에 따라 요양기관으로 지정 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다.

또, 비보험 진료를 할 경우 높은 수가(사실은 높은 본인부담금)로 인해 환자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연지정제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이제껏 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자신의 기반 즉, 지역 기반과 단골 환자들을 잃을 것이 두려운 것이다.

지금의 경영 상태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큰 변화가 없으면 그런대로 현 상태를 꾸려갈 수 있기 때문에, 변화를 원치 않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79년 시작한 당연지정제도 이후 개업한 자들이며, 이들은 비보험 하에서의 진료 경험이 없는 이들이다.

그것은 마치 일제강점기하에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이들이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 이름으로 불리며, 일본인 상사 밑에서 일을 하고, 일본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가 독립을 원했던 것은 지금 살기 나빠서가 아니라 후손에게 이름을 찾아주고, 정체성과 조국을 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지금 터전을 마련하고 자리를 잡은 기성 의사들은 변화 없이 이대로 유지되는 것이 유리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건보제도, 당연지정제는 종국에는 한국 의료를 말살하고, 새내기 의사들의 미래를 비참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의 기대와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체 외면 받게 될 것이다.

헌재의 2002년 판결은 99년에 청구된 12년 전의 판결이다.

합헌 판결에 반대한 2명의 재판관 중 한 명은 반대 의견으로 이런 판결을 내렸다.

“강제지정제는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헌법 정신을 위배하며, 획일적 통제제도의 비효율성에 비추어 볼 때, 그 제도의 장기적 성과가 상대적으로 의심되는 수단이다.”

그가 예견했듯이, 당연지정제, 건보 의무 가입을 핵으로 하는 건보제도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지금 박대통령이 추진하는 3대 비급여 급여화 과제 역시 이런 문제를 보완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 문제 해결에 국론이 분열되고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보다 직설적으로 핵심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건강보험제도는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하며, 처음부터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그것에는 강제지정제와 건보 국민 의무 가입 폐지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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