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





우리는 흔히 "시행착오"라는 말은 하고,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며 실수를 합리화하거나 용인합니다.

의업은 다른 업종과는 달리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도록 훈련 받습니다.

의사가 실수하면, 그건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었습니다.

이런 자긍심을 가지고 살다가, 15여년 전 어느 외국인 설계사의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하기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의사가 실수하면 한 사람이 죽거나 나빠질 수 있다. 그러나 설계사가 설계를 한번 잘못하면, 수십명 수백명이 죽거나 다칠 수가 있다.
우리가 설계해 세운 건축물은 백년도 넘게 서 있기 때문에, 설계를 잘못하면, 우리는 그 건축물 앞으로 오가는 수천, 수만의 사람에게 백년도 넘게 욕을 먹는다."

주위를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있으며,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비행기 기장은 수백명의 생명을 자신의 손에 쥐고 있고, 버스 기사도 수십명의 목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수 백명이 이용하는 식당 주방장 역시 그렇습니다.

나라를 끌고가는 위정자들은 더욱 더 많은 사람을 책임져야 하고, 데스크에 앉은 앵커나, 비특정 다수의 수많은 사람들이 읽는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그렇습니다.

또, 월급 270만원의 계약직 선장도 500명 가까운 생명을 책임졌어야 했던 것입니다.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
이 말은 <이기고 지는 일은 전쟁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전쟁터에서나 쓸 말입니다.

실수를 합리화하기 위한 <시행착오>가 일상 언어가 되는 날, 우리는 전쟁터에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실수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
자신이 일반 다수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회적 책무를 인정할 때에,

비로소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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