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휴지의 나비효과



지금은 어디를 가도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곳이 별로 없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에 휴지는, 특급 호텔이나 고급 백화점 정도에나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병원 화장실에 휴지가 없었던 건 당연하였는데, 최초로(?) 병원 화장실에 휴지를 넣기 시작한 곳이 바로 삼성의료원이었다.

그러자 다른 병원들이 불만을 터트렸다.
안 그래도 경영 상태가 나쁜데, 화장실에 휴지 넣을 돈이 어디 있느냐고?

사실 화장실에 휴지 넣을 돈이 없었을까 만은, 사실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특징상 모든 행위는 돈을 받아야 하고, 소모품 또한 그러한데,

대부분의 소모품은 아무리 많이 쓴 들 비용을 주지 않기 때문에, 병원 경영자들은 거즈나 솜, 글러브 등 별도 청구할 수 없는 소모품 사용에 극도로 예민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따로 돈 받을 수 없는 휴지를 화장실에 넣다니!

그러나 오래지 않아 서울 시내 큰 병원 화장실부터 시작해서 병원 화장실에 휴지를 넣는 것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병원 화장실에 휴지가 들어가고 나서부터, 대중 음식점이나 공공 화장실에도 휴지가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화장실에 휴지를 넣게 한 공로는 삼성의료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화장실 휴지만 그럴까?

어느 기업이나 오랜 역사가 있고 큰 기업은 나름대로의 기업 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현대는 좀 덜 세련되지만, 밀어붙이는 돌쇠 정신(?)이 있고, 삼성은 일본 귀족같은 세련된 이미지가 있다.

삼성 그룹의 어느 정직원이든 반듯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단정한 머리를 하고 있는 특징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삼성 기업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관리 문화이다.

관리의 삼성이 어쩌면 오늘의 삼성을 이끈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관리의 삼성은 전자나 물산 뿐이 아니라, 삼성 의료원도 마찬가지이다.

그 대표적인 것은 과거 대학병원에는 없는 관리 조직이 두었다는 것인데, '두었다'고 과거형을 쓰는 건, 지금은 어지간한 대형 병원은 물론, 대학병원에도 비슷한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이 관리조직이 하는 일은 경영 분석이다.

부서별 관리를 통해 어느 부서가 매출이 크고, 어느 부서가 지출이 큰지를 알아내고, 이를 분석해 무엇을, 어떻게 보강하고, 투자해야 하는지를 밝혀 낸다.

병원을 차리고 문을 열어 놓고 환자만 성실하게 보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시대의 병원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삼성뿐 아니라, 아산병원 등 재벌 그룹이 투자한 병원들과 대학병원들 마저도 마치 화장실 휴지 따라 넣듯이 이런 관리 조직을 가동한다.

정부와 공단은 쥐어짜기를 하고, 이들 병원은 비켜가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어나는 건, 어떻게 비켜갈지 모르는 중소 병원과 개원가이다.

이들은 정확하게 무엇을 어떻게 보강하면 되는지 분석해서, 이를 정책 제안하고, 그 방대한 데이터와 논거 앞에서 정부는 굴복한다.

로비라고 불러도 좋고, 설득이라고 해도 좋고, 선진화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게다가 필요하면 노조를 가동할 수도 있다.

뭐? 재벌 그룹과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조를 움직인다고?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이들 보건의료노조 노조원의 대부분은 이런 대형병원,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종사자들이다.

노조의 이익은 곧 자신들의 이익이고, 자신들이 잘 되려면,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이 일단 잘 되야 한다. 아닌가?

2000년 초반에 암정책을 만들어, 의약분업에 타격받은 대형 병원들을 회생시킨 것은 민노총이다.

막대한 재정 지원이 필요한 암정책 (암 진단시 본인 부담금 5%로 감면)으로 큰 병원일수록 승승장구 했다.

대형병원들은 앞 다투어 암병동을 만들고, 그 병동을 채우기 위해 전국의 환자들을 빨아들이고, 의료는 왜곡되었고, 외과 의사는 외상보다 암에 전념하게 되었다.

큰 병원은 더욱 커졌고, 작은 병원은 문을 닫았다.

지금도 병원 수익의 일부로 관리 조직을 강화하고, 탈출구를 찾아간다.

그러는 사이에 의사들은 경영에서 밀려나고 기능공으로 전락했다.

이게, 삼성이 화장실에 휴지를 넣기 시작한 나비 효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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