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성공은 실수 때문이다













처음 아파트 낙상 환자를 본건 94년 공보의 때였다.

응급실 호출을 받아 내려가니 마르고 왜소한 초등학생이 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기침을 하며 각혈하고 있었다.


당시 4학년이었던 이 학생은 엄마에게 야단을 맞다가 그대로 거실을 가로질러 달려가 아파트 베란다 난간을 뛰어넘어 추락했다.

10층 높이였는데 다행히 화단으로 떨어졌다.

학생은 왼발이 먼저 땅에 닿았고, 발, 발목, 아래 다리, 대퇴골이 모두 부서졌다. 일부는 뼈가 피부를 뚫고 나와 있었다. 얼굴 부위에도 찰과상이 있었다.

응급실에서 호출한 이유는 각혈과 심한 호흡 곤란 때문이었다.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좌측 기흉과 혈흉이 보였다.

급한대로 가슴에 흉관을 삽관하였는데, 엄청난 양의 공기가 피와 함께 계속 밀려나왔다.

흉관을 통해 나오는 공기의 양만 봐도 폐가 어느 정도 찢어졌는지, 수술이 필요한지 아니면 아물기를 기다리며 지켜볼 것인지 가늠이 되는데, 이건 단순히 지켜 볼 수준이 아니었다.

아주 가볍게 숨을 쉬어도 흉관에 연결된 통으로 펌프질하듯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즉시 수술 결정을 하고 수술방으로 데리고 갔다.

가슴을 열어보니 폐는 멍이 들어 있을 뿐 멀쩡한데, 좌측 하엽 폐의 기관지가 절단되어 있었다. 혈관 손상도 있었지만 그리 심각한 건 아니었다.

추락 사고에 기관지 손상이라...
떨어지는 충격에 의해 폐가 위 아래로 흔들리며 기관지가 찢어진 것이다.

외상에 의한 기관지 절단의 경우 폐엽 절제술을 하는 것이 당시에는 교과서적 치료였다. 특히 이 환자는 수직 절단이 아니라 나사 모양을 돌아가며 절단된 상태였는데, 기관지 절단시 폐엽을 떼라는 이유는 봉합해 이어줄 경우 기관지가 아물면서 좁아질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기관지 협착에 의해 무기폐, 폐렴, 폐농양 등의 순서로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작 3~40 kg 내외의 소아이니 성인에 비해 월등히 좁은 기관지이다.

잠시 갈등했다.

폐엽 절제를 한다고 살아가는데 큰 장애는 없지만, 이제 고작 10년 남짓 산 아이의 폐를 떼낸다는 게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봉합한 후 합병증이 생기면 재수술을 고려할 마음을 먹고 한땀 한땀 정성들여 봉합했다.

다행히 아이는 빠르게 회복했고, 정형외과로 전과되어 여러 차례 다리 수술을 받았다.

반 년쯤 지난 후 우연히 병원 복도에서 엄마와 같이 병원을 찾은 아이를 봤는데, 그 사이에 몰라보게 살이 붙어 있었다. 키도 부쩍 컸다. 성격도 꽤활해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목발을 짚고 있었고, 다리를 절고 있었다. 아마도 장애가 남지 않았을까 싶었다.

순간의 실수로 평생 상처를 가지고 살게 된 것이다.

어쩌다보니, 자살에 실패한 사람을 꽤나 많이 보았다. 물론 자살에 성공해 주검으로 온 경우도 많이 봤다.

이 아이 이후에도 아파트에서 떨어진 환자를 보았고, 그들 중 일부는 살았고, 나머지는 사망했다.

수술 후 이 아이에게 ‘너 왜 그랬니?’라고 물었을 때, 아이는 ‘엄마 야단을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며 후회한다고 말했다. 아파트 추락 후 살아남은 다른 환자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 20대 여성 환자는 심한 내상을 받았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왔는데 응급실에 도착해 ‘제발 살려달라’고 힘겨운 목소리를 냈다.

나는 자살을 시도하여 죽는 사람은 대부분 실수에 의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자살을 목적으로 무엇을 먹거나 마시거나, 손목을 팔로 긋거나, 목을 매거나, 아파트 등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린 사람들을 숱하게 보았지만, 실제 성공하는 경우는 실패하는 경우보다 월등히 적고,

대부분은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고, 그 괴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죽을 만큼 괴롭다는 걸 알리기 위해 자살을 시도할 뿐, 정말 죽고 싶어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은 많다고 보지 않는다.
(조현병과 같은 psychosis(정신병)은 예외이다. 이들은 죽음을 주저하지 않는다. 손목을 그어도 단칼에 과감하게 긋는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자살 시도 끝에 죽은 사람은 괴로움을 알리려고 했을 뿐, 진짜 죽으려고 한 건 아닌데, 먹거나 마신게 우연히 그라목손 같은 치명적인 농약이거나, 손목을 주저주저하며 수십번이나 긋다가 우연히 동맥이 끊어졌거나, 홧김에 뛰어내렸는데 너무 높은 곳이었기 때문일 뿐이었고, 그건 어찌보면 실수지 정작 목숨을 끊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걸 어찌 아냐고?

괴로움을 알리려고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해 병원 응급실로 온 자살 기도자들은 “알림”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살려달라거나, 아프지 않게 해달라거나 심지어는 흉터나지 않게 해달고 애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은 또 같은 상황이 벌어져 또 괴롭다고 생각하면 또 다시 같은 방법 즉, 자살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전에는 운이 좋아 자살에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성공할 수도 있다.

이것이 자살 기도를 응급 상황으로 보고, 입원시켜 관찰하고 정신과 의사의 진찰과 상담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게 자살율 세계 1 위 국가의 실상이다.




2018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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