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시나리오 : Buckle up!










북한의 핵 개발과 비핵화의 과정을 한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 지금은 어디까지 전개된 상황일까.

영화 시나리오는 통상 3막 구조를 구성하는 것이 통례이다.


1 막은 도입과 사건의 발생이다.
2 막은 사건의 전개이며,
3 막은 결론이다.

결론부터 보자.

북핵 문제의 결론은 '비핵화'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결국 북핵을 인정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 의회는 공히 비핵화가 목표라고 수 차례 선언했다. 이 목표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

비핵화는 결국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의미하며, 이는 곧 북한 주민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일, 다른 결론을 가정하면 계산이 복잡해진다.

이를테면, '미국은 김정은 정권을 보장해 줄 것', '김정은이 계속 북한을 통치하게 할 것'이라는 등 허망한 희망 사항을 상상해선 안 된다. 김정은 일가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으로 망명해서 미국 정부의 보호 아래 은밀하게 사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존속할 수도 없고, 존속해서도 안 된다.

자, 이런 결론으로 보면, 이 시나리오 1막은 북한의 은밀한 핵 개발과 이의 발각이다.

북한은 이미 1962년 말 영변에 핵단지를 조성하고 63년 소련의 지원을 받아 원자로를 설치했다. 그 전에 김일성은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중공을 찾아가 핵 개발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다. 이게 도입부이다.

소련은 85년 북한에 NPT 가입을 종용했고, 어쩔 수 없이 북한은 NPT에 가입했다. NPT 즉 핵확산방지조약이 체결된 건 1965년의 일이다. 물론 북한이 소련의 말을 따른 건, 소련의 기술 및 물자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CIA 문건으로 남아 있다.

이후 1989년 프랑스 상업 위성이 북한의 비밀 핵시설을 촬영해 공표함으로써, 북핵 개발 문제가 표면 위로 떠 오른다. 이게 극의 발단이다.

89년은 소련의 붕괴로 동구가 무너지던 시기였다.

또 비슷한 시기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걸프전이 발발했다. 미국은 이라크가 핵개발을 했다는 증거를 찾았고, 핵 사찰의 의무가 있는 IAEA는 이를 간과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IAEA는 실추된 명예를 북한에서 찾으려고 했다. 같은 실수를 다시 할 수는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은 IAEA 사찰을 받아들여 92년부터 93년에 걸쳐 강력한 사찰을 받았다. 그 결과 북한이 제출한 플루토늄 양과 사찰 결과가 불일치했고, 북이 제시한 핵 단지 외에 비밀 시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 되었다.

그러면서 94년 1 차 북핵 위기가 터진다. 북한은 결국 IAEA의 후속 사찰을 거부하고, NPT 탈퇴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미국은 이를 전쟁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합의, 번복, 또 다시 6자 회담과 합의, 합의 파기와 번복이 지리멸렬하게 20여년간 이루어졌다.

이 이야기는 지나치게 지루해서 몇 가지 컷으로 처리하면 되겠다.

그 컷에는 김대중, 노무현 남북정상회담과 김정일의 의문의 사망도 보일 것이다.

여기까지가 1 막이다.

2 막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6번의 북한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로 시작한다.

1 막과 2 막 사이, 2 막과 결론인 3 막 사이에는 구성점이, 전체 시나리오의 중간에는 중간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 지금은 어디쯤일까?

추측컨대, 중간점과 두 번째 구성점 사이 쯤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극의 정점을 지나 결론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비핵화라고 했다.

이는 곧 김정은 정권의 붕괴이자, 북한 주민의 해방을 말한다고 했다.

결론은 해피엔딩이겠지만, 해피엔딩으로 가는 과정은 비참할 것이다.

3 막은 장엄한 음악 아래 깔리는 포연과 비명, 핏빛의 연출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전을 거듭하는 롤러코스터를 탈 준비를 하자.

Buckle up!



2019년 3월 6일






No comments

Theme images by fpm.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