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미북 실무 협상 결렬의 의미와 전망









북한은 지난 10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서 열린 미북 실무회담의 결렬을 선언했다.

이 소식을 토대로 이번 미북 회담 결렬의 배경과 그 의미, 향후 정세에 대해 생각해 보자.



1. 배경


미북 정상회담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회담, 2019년 2월 27일 하노이 회담, 6월 30일인 판문점 회담 등 지금까지 세 차례 있었다.

이중 가시적 합의가 있었던 건 싱가폴 회담 뿐이다. 하노이 회담은 수 시간 만에 결렬되었고, 판문점 회담은 깜짝 이벤트이었다.

싱가폴 회담 결과 미북은 합의문을 발표했는데, 그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
2.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
3. 북한은 판문점 선언(2018년 4월 27일)을 재확인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
4. 전쟁포로 및 행불자의 유골 발굴을 진행하며 유해를 즉시 송환하기로 약속

사실 이 합의는 선언적 의미가 크며, 실질적 합의 사항은 미군 유해 송환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이후 미군 유해를 미국에 전달했다.

그러나 북한이 취한 또 다른 행동은 ‘도발의 자제’이다. 즉,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핵실험이나 ICBM 발사와 같은 도발을 억제해 왔다.

반면, 미국이 대북제재를 완화하기로 약속하거나 완화한 바는 없다. 미국은 한미연합 훈련을 중단(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노력)하였을 뿐, 대북제재는 공고히 지키며 북한을 압박했다.

사실 지금 북한이 원하는 건, 제재 해제와 미국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나도록 미국이 버티며 제재 해제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초조할 것이다.



2. 스톡홀름 회담 전개 과정


미북은 판문점에서 깜짝 미팅을 가지면서 하노이 이후 중단된 실무회담을 재개하기로 구두 합의한다. 이후 근 4 개월 만에 재개된 것이 이번 실무회담이다.

이후 북한은 실무회담 재개를 재촉이라도 하는 듯 수 차례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쏘며 시위해왔다.

미국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식’을 가지고 회담이 임한다며 북한의 기대감을 키웠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파인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을 해임하면서 그가 주장한 ‘리비아식 북핵 해결 방식’을 비난하였고, 이 때문에 미국이 단계적 비핵화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미국이 제시한 건, 2018년 싱가폴 합의의 4개 사항 즉,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전쟁포로 유해 송환에 대한 구체적 사항 뿐이었다.

미국은 이를 ‘싱가폴 합의 주요 4개 사항에 대한 진전을 위한 계획 (new initiatives to make progress in each of the four pillars of the Singapore joint statement)이라고 표현했으며, 이것이 참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주장한 것이다.

북한이 기대한 제재 해제나 단계적 비핵화 따위는 없었다.

한 마디로, 미국은 대북 제재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게 너희가 지킬 것을 먼저 지키라고 요구한 것이다.

북한은 당연히 반발하며 화를 냈다.

북측 대표 김명길 외무부 순회 대사는 스톡홀름 주재 북한 대사관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여 ‘미국이 우리의 기대를 부응하기 못해 회담을 결렬한다’고 선언하며, 협상 결렬은 전적으로 ‘미국이 구태의연한 태도와 입장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그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미국 국무부는 대변인을 통해 즉각 북한 대사의 성명을 반박했다.

대변인은 ‘우리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갔고, 좋은 논의를 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한번의 회담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중재를 맡은 스웨덴으로부터 2 주후에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3. 양국의 딜레마


우리는 미북 양국이 원하는 바와 그들이 원하는 바를 획득하기 위해 추구하는 전략을 유추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원하는 건, 당연히 북핵 비핵화이고, 북한이 원하는 건, 대북 제재 해제이다.

양측이 원하는 걸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고 미국은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방식이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건, 북한은 핵을 보유한 체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원하고, 미국은 비핵화 뿐 아니라 북한을 개방하고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즉, 각자 속내가 다른데 오로지 “비핵화와 제재 해제”만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협상하려니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 북한의 딜레마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 해제의 권한이 없다는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

북한이 원하는 카드가 미국 대통령의 손에 없다는 것이다. 대북 제재 해제를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은 미국 의회와 유엔에 있다. 미국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건, 비핵화를 촉구하고, 북한이 제재 해제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 뿐이다.

결국 북한은 자신이 원하는 카드가 없는 상대와 협상해야 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의회가 정한 대북제재법에 따라 북한에 대한 대북 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요건을 충족하려면, 단지 핵무기만 폐기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밖에 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폐기하고, 정치범 수용소를 없애고, 시장을 개방하고, 대의 정치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건 김정은 입장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또 다른 딜레마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김정은의 통치 자금은 말라가고, 북한 주민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을 끄는 건 여러 모로 김정은에게 불리하다.



- 미국의 딜레마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대화와 협상으로는 북핵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이게 가장 큰 딜레마이다.

외교적 수단 외에 미국이 북핵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은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 뿐이다.

미국이 군사적 수단을 쓰려면 여러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남북한 피해 최소화
둘째, 중국 등 외세 개입의 차단 및 국제 사회의 동의와 지지
셋째, 군사력 동원에 대한 국내 반발 최소화
넷째, 명백한 명분과 북한의 도발


그밖에도 한반도 내 주한 미군과 미국 시민들의 안전 보장, 군사력 전개와 물자 동원, 전투 인력 동원령 등이 준비되어야 한다.

시기도 중요하다.

겨울을 앞두고 개전하는 건 미국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한반도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지 이미 한국전쟁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미국은 전쟁이 겨울을 넘길 경우, 미군의 커다란 피해는 물론 수많은 북한 아사, 동사자들이 발생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곧 미국의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대선을 앞두고 전쟁을 시작하는 건 좋지 않다. 그래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어떻게든 북한이 도발하지 않도록 잠재우며, 이를 위해 협상의 끈을 놓지 않고 내년을 넘기도록 시간을 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전망


지금까지의 배경, 전개 과정과 의미를 살펴볼 때 우리는 몇 가지 사항을 예측해볼 수 있다.

미국은 김정은을 추켜세우고 희망을 심어주며 시간을 끌기 위해 계속 협상을 진행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속셈을 눈치 챈 북한은 미국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기 위해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

가장 예측 가능한 도발은 SLBM의 실험 발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현재로는 이것이 미국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또, 북극성 3호를 토대로 한 이동발사대 식 고체 연료 주입형 ICBM 을 실험발사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쩌면, 소형화된 핵탄두를 선 보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식의 도발을 감행할 때 미국의 태도이다.

북한은 판문점 깜짝 만남 이후에도 수 차례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를 했는데, 탄도 미사일 발사는 유엔이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별 것 아니다’라는 식으로 애써 무시하는 척하지만, 만일 북한이 지속적으로 SLBM을 쏘거나 ICBM 을 다시 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더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미국 여론과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무기력을 비난하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선거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또 다른 딜레마는 차기 대선 이후까지 즉, 근 1년 이상 북한과 협상을 하며 시간 끌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과의 협상을 끌고가려면 가시적인 보상을 해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보상은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가 될 수 없다. 전면적 제재 해제는 아예 불가능하고, 부분적 제재 해제 역시 의회의 결의를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이 정국에서 의회를 설득해 제재 해제를 받아내는 건 정치적으로 위험이 너무 크다.

따라서 미국은 제재 해제를 하거나 직접적인 경제 지원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한국, 일본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경제 지원을 하는 건데, 이것도 쉽지 않다. 북한이 이 카드를 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미 북한은 남한의 쌀 지원을 거절한 바 있다.


- 미국식 북풍의 가능성


미국만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북한의 고민도 크다.

북한이 어떤 무기를 개발하든, 그 무기를 미국에 대고 쓸 수는 없다. 그런 기미를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그 즉시 파국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은이 개발하는 무기는 시위용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무기를 흔들어대며 어떻게든 미국과 협상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리고 더 세차게 흔들어댄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아낼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결국 도발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몰려고 할 것이다.

만약 북한의 도발이 선을 넘게되면, 그래서 미국의 군사력 사용의 필요조건을 충족하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을 코 앞에 두고도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왜냐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 필요조건에는 미국의 군사력 사용에 대한 미국 국내외의 지지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도발해 국제 사회와 미국 여론이 들끓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다릴 필요없이 군사적 해결을 감행할 수도 있다.

대선은 어떻게 하냐고?

미국은 전쟁 중에 지도자를 쉽게 바꾸는 나라가 아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은 오히려 더 확고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6 개월 가량 협상에 매달리는 모양새를 취하고, 결국 협상이 결렬되면, 오히려 냉소적이고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이며 선거에 유리하게 끌고갈 수도 있으며, 만일 이 때 북한이 도발하면 이를 빌미로 미국식 북풍으로 대선에 활용할 수도 있다.

만일 이렇게 추정하면, 느긋하게 서론을 펼치는 미국 협상팀과 바로 각론으로 들어가자는 북한 협상팀의 입장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2019년 10월 6일



No comments

Theme images by fpm.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