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y 15, 2013

"Life comes with many challenges."


"Life comes with many challenges."





현지 시간으로 14일 (화) 영화 배우이자 감독인 안젤리나 졸리의 기고가 뉴욕 타임즈에 실렸습니다.

그녀는 전혀 현학적이지 않은, 매우 간결하고 쉬운 문체로 자신의 신념과 경험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고에는 자신의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려 10년 넘게 투병을 하다 50대 중반에 사망한 사실, 그래서 첫 아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이 ‘엄마의 엄마’가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 아이들이 엄마 안젤리나 졸리 역시 같은 병에 걸리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는 이야기, 그러나 실제 자신은 유전자 결함으로 인해 의사로부터 유방암이 걸릴 가능성이 87%, 난소암이 걸릴 가능성이 50%가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 등이 쓰여있습니다.

그녀는 현실을 직시하기로 마음먹고 양쪽 유방을 제거하고 보형물을 넣는, 3개월에 걸친 수술과 재활 과정을 극복해냈으며, 치료 과정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또 이 기고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적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암은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지만, 혈액검사를 통해 유방암과 난소암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토대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이 기고를 통해, 여성에게 유방을 제거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나, 그녀는 자신이 그것을 해냈다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며, 그럼으로 유방암 발생 가능성이 5% 이하로 낮아졌고 아이들이 유방암으로 엄마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졸리의 경우는 염색체 중 특정 부위의 변이가 생겨 유방암이나 난소암이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우인데, 통상 유방암은 5배 이상, 난소암은 10배에서 30배까지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유방암이 BRCA1 유전자 변이로 생기는 것은 아니며, 전체 유방암의 약 5%~10% 정도가 이 같은 경우이라 합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이 기고가 감동적인 것은, 여배우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부끄러울지 모르는 집안의 내력과 자신이 받은 수술을 가감 없이 공개해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시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실제 이 기고가 나간 후 인터넷판에는 하루 만에 1,300 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렸으며, 그녀의 용기를 칭송하며 자신도 검사를 받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내용은 물론, 이미 유방암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유방을 절제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여성들이 수술을 결정했노라 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수술을 받기까지는 어쩌면 그녀 자신의 결정이었겠지만, 이 기고를 싣는 것은 큰 용기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여배우의 짧은 기고는 유명 의사들의 강연이나 논문보다 훨씬 더 강한 파장과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입니다.

물론, 한편에서는 ‘헐리웃 스타이고 돈도 많으니 그런 검사도 하고, 수술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냐는 비아냥은 없지 않을 것입니다.

졸리 역시 BRCA1 검사에만 3천불의 돈이 들어가며, 이런 고비용이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암이 발생하여 수술을 받거나 항암 치료를 하는 비용을 계산한다면, 사전에 검사를 받고 예방적 목적으로 유방절제술을 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검진과 예방을 통해 사전에 대응할 수 있는 암이나 질병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대장내시경을 통해 폴립을 제거하여 암을 예방할 수 있고, 주기적인 위내시경과 가슴 X-ray 촬영 만으로도 조기에 암을 진단할 수 있으며, 암 표지자(cancer marker)의 발전으로 대장암. 위암, 간암, 전립선암 등은 혈액 검사만으로도 예측이나 진단이 가능합니다.

BRCA1 유전자 변이를 가져 암 발생이 현저하게 높아지는 것처럼, 특히 우리나라에 많은 B형간염 보균자의 경우 상당수가 종국에는 간경화나 간암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데, 이 역시 질병 발생 전에 주기적인 검진과 관찰로 조기에 진단을 받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또 한 때 우리나라 여성들의 가장 흔한 암이었던 자궁경부암 예방접종도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모든 여자 아이들에게 무료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것은, 자궁경부암으로 쓰여지는 진료비에 비하자면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암은 아니지만, 당뇨나 고혈압의 사망 원인의 대부분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즉, 적극적 치료와 예방을 통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의 발병을 막거나 지연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한 사람의 글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이 이 같은 기고를 할 경우 그 파장이 조용하게, 그러나 대단히 깊고 멀리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듯 합니다.

저는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상당히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얻고, 새 삶을 찾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깊은 마음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어쩌면, 대중으로부터 명성(fame)을 가진 이들이 사회에 돌려주어야 할 의무를 다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눈을 돌려 신문의 정치면, 사회면을 보면 이른바 한국 사회의 지도층, 고위 공무원들의 추태와 졸렬한 작태가 대비되어 우울하기도 합니다.


My Medical Choice


Monday, May 13, 2013

대중은 우매한가?


대중은 우매한가?






“대중은 우매하다”라고 주장한 철학자가 있다.
그는 바로 플라톤. 
그는 [국가]에서 대중은 우매하므로,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며 철인정치를 주장하였다. 그의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불경죄로 기소되어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사형을 선고 받고 독배를 마신 것도 작용할 것이다.



대중이 우매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또 있다. 
그는 고종 19년인 1882년 증광별시에 문과로 급제하며 정부 관리로 출발, 미국으로 건너가 주미 참사관과 영사를 역임하고 학부대신, 외부대신, 농상공부대신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898년 독립협회 회장을 지냈다. 독립협회에 대한 정부의 압력이 거세 많은 이들이 이 모임에서 탈퇴할 때도 그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정부가 그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전라북도 관찰사로 임명하였으나 회장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이완용이다.
대세순응주의자(?)이었던 그는 조선의 백성은 우매하며, 열악하여 제국 열강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므로 미국에, 러시아에, 다시 일본에 나라를 ‘잠시’ 맡기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거슬러 보면, 수 많은 외세의 침략과 국난 중에 어느 날 갑자기 메시아 같은 지도자나 영웅이 나타나 나라를 구했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의병, 학도병, 독립군과 같은 무지렁이 백성들의 자발적 행동이 국난 극복의 배경이 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완용이 매국노인 것은, 대중을 우매하다고 판단하고, 독선적 행동을 한 결과이다.

대한민국이 위대한 것은 영웅을 양산해내는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 개개인이 근면하고 성실하며, 학구열이 높고, 충과 효를 근본으로 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최빈국에서 시작하여 새마을 운동으로 시작하여 산업화를 이루어 세계 10대 무역국이 된 것이나, IMF라는 절대절명의 국난을 극복하고 오히려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국가 지도자가 잘했다기보다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기업들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고,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물론, 방향을 제시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지도자들의 역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딱히 한민족이라서가 아니라, 대중은 결코 우매하지 않다는 가설과 이를 입증할 근거는 많다.

이를 아래 기사에서는 “대중의 지혜”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군중 심리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대중이 모여 군중을 이루면 크게 2 가지 속성을 보이게 되는데, 하나는 동질성의 확인이며 다른 하나는 폭력성이라고 한다.

근래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군중의 폭력성은 <악성 댓글 달기> 이른바 “사이버 불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중의 속성>으로 대중이 우매하다거나, “대중의 지혜”를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더 우려되는 것은 
아래 기사에 실린 것처럼, SNS, 인터넷의 보급 확산으로 디지털화되고 정리된 정보의 손쉬운 인용으로 인한, “보편화된 공동의 생각 갖기”나, “일부 인사들의 견해에 대한 무한한 신뢰 갖기” 등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SNS나 인터넷의 보급이 더욱 더 가속화될수록 사회와 학교는 올바른 정보의 취사 선택에 대한 방법과 팩트를 찾아내는 방법, 그 팩트를 통해 자신만의 사고와 견해를 견지하는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진정코 대중의 우매함을 목격하고야 말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 시대 : '멍청한 대중'

Saturday, May 11, 2013

"머리 좋은 한국인"을 위한 변명






양상훈 논설위원의 칼럼은 애초 잘못된 가정으로 시작해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은 기출문제집을 만들 생각을 한 한국인은머리가 좋으며’, 그런 기출문제집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한 미국인은어리석은것이라는 것인데, 이 가정이 틀린 것이다.

또 이번 SAT문제 유출 사고를 기출문제집으로 오인한 것 역시 착각이다.

첫째, 기출문제집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 어느 나라에나 있다. 특히 북미에는 기출문제, 예상문제 등으로 모은 SAT참고서는 말 그대로 산더미처럼 많이 있다. 서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수 많은 사이트들이 SAT 관련 문제를 무료, 유료로 제공한다.

SAT는 문제은행 방식으로 POOLING되어있다기보다는 일종의 문제 유형이 패턴화되어 있어, 굳이 기출문제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예상문제를 풀다 보면 그 패턴을 이해할 수가 있다.  

또 바꾸어 말하자면, 외국인이 영어로 된 문제를 풀려면, 영어로 작성된 문제가 요구하는 답을 구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출 문제이건, 예상문제이건 풀어봐야 하는 건 외국 학생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둘째, 이번 SAT문제 유출 사고는 기출문제집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문제가 유출된 사고이다. 이런 사고는 과거에도 있었는데, 연합뉴스에 따르면, 2007년 학원 강사들이 태국에서 SAT시험을 먼저 치르고 그 문제를 한국으로 보내 한국 수험생 900여명의 시험이 취소된 적이 있었으며, 201년에도 같은 사고가 있었고, 이번에도 지난 2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동남아에서 미리 시험을 치르게 하여 문제를 빼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 이런 문제 유출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997년 미국 동부와 서부간의 시차가 있는 것을 이용해 한 곳에서 먼저 시험을 치르고 다른 시간대의 수험생에게 전화로 문제를 알려준 사례가 있었으며,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교장 승진 시험 문제지와 답안지를 빼낸 사건이 있었고, 시민권 자격시험에서 영어를 못하는 이민자들을 시험에 합격시킨 부정합격과 뇌물공여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교장 승진 시험이나 시민권 자격시험은 SAT를 주관하는 ETS가 주관하고 있다.

, 양상훈 논설위원이 말하는 치팅이 미국 내에서도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수영을 못하는 뉴질랜드 유학생 아이의 이야기도 황당하다.

양 논설위원은 아이는 자기 혼자 먼저 학원에서 수영을 배우는 것을 치팅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남들보다 더 노력하는 것을 과연 치팅이며 지름길을 이용하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남들보다 배팅을 수백 번 수천 번 더하고, 남들보다 더 골프채를 더 휘두르고, 아이스 링크에서 남들보다 더 점프 연습을 하면 그게 치팅인가?

조선소 하나 없이 백사장 사진을 찍어 대형 선박을 수주하면, 그것도 치팅인가?

동족을 남의 나라 탄광에 보내고, 남의 나라 전쟁에 보내고, 열사의 사막에 보내 만든 돈을 토대로 산업발전을 일구면, 그것도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이니, 이 또한 치팅인가?

물론 과열된 학업열, 지나친 경쟁 사회,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커닝, 대리시험, 논문 표절은 지나치고 과열한 한국 사회의 모습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비난 받고 법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 범죄행위이다. 이 같은 범죄 행위는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있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양상훈 논설위원의 칼럼에서는 왠지 엽전 의식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