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28, 2013

직업 선택의 속성



직업 선택의 속성


보통 사람들이 직업 선택을 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직업 선택의 속성>이 있는데, 첫째는 자아 실현의 속성, 둘째는 사회 참여의 속성 마지막 세번째가 소득이랍니다.

이 <직업 선택의 3가지 속성>은 고용주이거나, 관리자일 때도 중요한데, 직원들의 잦은 이직, 사직의 이유가 이 3가지 속성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입니다.

급여 조건은 나빠도 끈끈한 소속감이 있거나, 하는 일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다면, 이직할 리가 없으니까요...


Sept. 28 2013

무상의료의 허상


무상의료의 허상



<현장 1>
대략 20 명의 가정의학과 의사 (주치의)가 있는 메디컬 빌딩의 달랑 하나 있는 검사실.
이 검사실은 혈액과 소변 등의 임상병리검사와 심전도 검사, 단순 X-ray와 초음파 검사 등 방사선 검사도 같이 진행하는 곳이다.
대기실 의자는 10여개로 늘 대기자들이 의자를 전부 채운 체 기다리고 있어 앉아 기다릴 공간도 없다.
임상병리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병행하는 창구의 직원은 단 2명. 모두 임상병리기사이다.
검사를 해야 하는 환자들은 창구 앞에 있는 번호표를 뽑은 체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두 명의 기사는 번갈아 대기 번호를 부르고, 의뢰지를 보고 창구 안쪽 작은 칸막이로 환자를 부른다.
벽면에는 서너통의 기사들을 위한 일회용 글러브가 있으며, 채혈을 하거나 검사를 할 때 매번, 글러브를 갈아 끼어야 하는 것은 '의무'이다.
간이 침대의 시트는 종이이며 환자 순서가 바뀔 때마다 종이 시트는 쓰레기 통으로 들어간다.
보통 한 명의 환자당 소요 시간은 5분 내지 10분. 전혀 친절하진 않으지만, 그렇다고 전혀 서두르지도 않는다.
용무를 마친 임상 기사가 다시 접수 카운터 자기 자리에 앉으면 그제서야 다음 번 번호를 부른다.
혈액 검사를 위해 30분 쯤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현장 2>
“수술량이 많다. 하루에 해결이 안될 만큼 수술을 집어넣는다. (중략) 환자 당겨서 빨리 하고, 또 하고. 그럼 간호사는 엄청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중략) 실제로 환자들 세팅이 길어지면 매우 문제가 된다. (중략) 시간이 안 맞으면 마취해 놓고 그냥 기다리게 한다. 수술시간이 맞지 않은 경우, 환자는 마취해놓고 펠로우(전임의)가 열어 두고 그렇게 기다리는 거다. 환자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


현장 1은 NHS를 시행하는 캐나다의 모습이고, 현장 2는 미디어 오늘에 실린 기사에서 인용한 우리나라 수술 방의 모습입니다.

둘의 차이는 현장 2의 경우 일 (밀려드는 환자)이 업무를 조정하지만, 현장 1은 근무자가 일 (밀려드는 환자)를 조정한다는 차이입니다.

NHS는 국가가 의료비를 부담하는 체계입니다. 영국, 캐나다가 대표적입니다.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미국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의 아내 힐러리 클린턴을 위원장으로 하여 의료개혁위원회를 만들어, 미국의 의료 개혁 방안을 구상해 달라고 하면서, 캐나다 의료시스템을 참고하라고 했답니다.
반 년도 넘게 지나, 힐러리는 미소를 지으며남편 빌에게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달링, 방법이 없어요."

30분 대기 3분 진료란 용어는 사실 만들어진지 20년은 된 용어입니다.
지금도 잘 나가는 대학 병원에 가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캐나다 예를 볼까요?
NHS 하에서는 환자는 자기 주치의를 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는 환자가 주치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치의가 환자를 정합니다.
즉, 환자가 어느 의사가 용하다고 해서, 그 의사를 자기 주치의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러면, 빽을 써야 합니다.

캐나다의 주치의란 가정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을 이야기합니다.

주치의를 만나려면 예약을 해야 하고, 그 예약해서 만나기까지는 통상 2주 정도 걸립니다.
그러니, 감기나 배탈로 주치의를 찾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의사를 만나기 전에 나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는 주치의 외에도 Walk in clinic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통 한국의 의원과 같이 오는 순서대로 진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염없이 기다렸다가 의사를 만날 수 있지만, 감기나 배탈에 처방전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행히 처방전을 받았다면 약은 환자가 자기 부담으로 사야 합니다. 약값은 NHS가 커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꽤 비싼데다가, 한국처럼 친절하게 약 봉지에 서너 알을 넣어 포장해 주지 않으므로 처방받은 약을 빠짐없이 복용하는 편입니다.

한국처럼 약을 보따리로 가져와서 대충 몇 봉지 먹고 쳐박아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런 나라의 주치의를 만나면 30 분 정도 장시간 허물없이 의료 상담과 모든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길어야 대략 10분, 정말 이슈가 있다면 15분 정도? 대개는 한국의 여느 병원 외래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면, 다른 예약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진 즉 새로 주치의를 정하는 환자가 올 경우에는 따로 날을 잡아 full exam. 을 합니다. 이걸 하려면 보통 또 2,3 주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가정의들은 이들은 가벼운 질환을 다루며 처방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의료 코디네이터 (medical coordinator)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낫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거나 further evaluation이 필요하면, 전문의 진료를 받게 하는데, 보통 3,4 개월이 걸립니다. 만일 3 개월 안에 전문의와 약속을 할 수 있다면, 그건 굉장히 운이 좋았거나, 그 전문의가 굉장히 실력이 없는 의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정의가 자기 환자를 정하듯, 가정의가 의뢰한 환자를 전문의가 진료해 줄 것인가 아닌가의 결정도 그 전문의가 합니다. 무슨 어마어마한 훈장처럼 전문의는 가정의에게 팩스를 보내고, 환자는 아무리 멀리 살고 있어도 그 팩스를 수령하기 위해 가정의를 친히 찾아가야 합니다.

왜냐면, 그 팩스에는 나를 진료해주시겠다는 “전문의 님”의 연락처와 주소가 있으며, 팩스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1 주일 안에 다시 전화를 걸어 예약을 확정하지 않으면, 그 예약은 취소되며, 예약을 확정하고 그 날 무슨 일이 생겨 진료를 보러 가지 못하면, 벌금(100불)을 내야하고, 다시 예약을 잡으려면 또 예약비 50불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을 냅니다.
NHS를 시행하는 국가에서,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예약을 어겼다고 돈을 받는 것입니다.

간기능 검사, 일반혈액 검사는 Working day로 최소 5일이 지나야 주치의한테 결과 통보가 가고, MRI를 찍으려면, 통상 3,4 개월, 만일 암의 진단을 받았다면, 수술을 잡는데 또 몇 개월,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는데, 또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리다가 죽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이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는 않겠지만, C"est La Vie 즉, ‘That’s Life’라는 인식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의사 멱살을 잡아 “무조건 살려내!”라며 아우성을 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망할 경우 의사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뭘 잘못해서 미안하다기 보다는, 유족들에게 유감을 표시하는 건데, 한국에서 의사가 환자 가족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바로 소송이 들어올 것입니다. 의사 멱살을 잡고 “무조건 살려내!”라며 아우성을 치는 건 덤이구요.

저는 의료는 '그 나라 교육 수준, 생활 수준, 오랜 역사 등등 속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의 영향을 받기에 의료에 왕도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골백번 죽지 않고 우리나라에 이런 의료문화는 도입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의사에게 불만이 있으면 의자를 집어던지거나 칼로 의사를 찌르는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환자를 <통제>하면 우리나라 의사의 절반은 제명에 죽지 못할 것입니다.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이 돌아가는 이유는 환자들이 기다려주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북미에서 소위 <대체의학>이 발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치료, 자가치료를 하지 못하면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캐나다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그 어떤 근로자도 절대 서두르지 않습니다.
의사도 환자를 가려보고, 임상병리기사도 자기 일이 끝나야 다른 환자를 봐 줍니다.

우리나라 병원 종사자들이 <현장 2.>에서처럼 숨을 헐떡이며 떠밀려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행위>가 돈이기 때문인가요?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서너달 기다려야 겨우 찍을 수 있는 MRI도 환자가 직접 돈을 내겠다고 하면, 당일에도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너달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는 전문의도 진료비를 직접 내겠다고 하면, 언제라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건 불법이 아닙니다.

실제, 많은 캐나다 국민들이 본인이 자비로 의료기관과 시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NHS를 시행하는 나라에서 이런 환자들만 치료하는 소위 말하는 <영리병원>이 따로 세워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무상의료 무상복지를 주장하는 분들은 이런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임의비급여로 간주하고 불법행위로 처벌할 것입니다.
빈부격차 운운, 돈 없으면 기다리다가 죽으란 말이냐! 고 항의와 촛불 집회로 나라가 시끄러워질 일입니다.

좌파들이 주장하는 <주치의 제도>의 실체가 이것입니다.
<무상 의료>란 이런 모습입니다. 캐나다는 <총액 계약제>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의사들이 검사를 잘 해주지 않으려는 건, 그 총액에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중병에 걸리면 입원, 수술을 무료로 해 주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실지 모릅니다.

사실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모든 국민들에게 무료로 활짝 열려있습니다.
결코 안 해 준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늦게 해 줄 뿐입니다.

저는 캐나다 의료시스템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옳다 틀리다도 아니며 그저,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것 입니다.

한 가지는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환자들은 복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도 오래 가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한국 의료 공급이 붕괴되고 있으니까요.
성수대교, 삼풍 백화점만 무너지는 게 아닙니다.

Sept. 28 2013

2012년 의료분쟁조정중재원 통계 연보



2012년 의료분쟁조정중재원 통계 연보



얼마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통계연보를 냈습니다.
이 연보는 2012년 분으로 조정중재원이 개원한 2012년 4월부터 12월까지의 통계입니다.

주요 통계만 간략히 보면,
1) 같은 기간 조정중재 신청 건수는 503 건입니다.
2) 이중 신청을 취하하거나 (6건) 조정에 참석하지 않아 각하(305건)된 것을 합치면 311건이며, 실제 조정중재에 들어간 것은 192건에 불과합니다.
3) 각하는 대부분 의료인이 조정에 불참했기 때문입니다.
4) 192건 중에서, 조정 중 취하한 건이 20건, 조정이 성립되지 않았거나, 조정하지 않기로 한 건이 40건으로, 약 130건이 조정되었습니다.
5) 조정 금액은 전체 건수의 45% 가량이 5백만원 미만이며, 평균 약 7백만원입니다. (조정 신청금액은 40만원부터 15억 7천만원까지, 평균 3천8백만원에 달합니다.)
6) 조정 기간은 약 93%가 90일 미만이었으며, 평균 79일입니다.
7) 조정 사고로 분만 건 역시 12건이 있었으나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건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료에 없음)
8) 대불제도 이용자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없었던 것 같음)
9) 2012년 조정중재원에 투입된 정부 예산은 100억원이 넘고, 2013년에는 114억원이 투입되었습니다.
10) 또 2013년 정부 예산에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예산으로 22억원을 별도 책정했는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지출 비용의 70%를 정부가 부담합니다.

의료계가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라 부담하는 금액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대불제도에 따른 준비금.
이는 조정 후 의사가 피해자에게 물어줘야 할 목돈을 마련하기 힘들 때, 중재원이 보유하고 있던 대불 준비금에서 먼저 보상을 해 주고, 의사는 후에 나누어 갚는 제도입니다.
의사들이 소액을 각출해서 만드는, 일종의 부조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불제도가 있으면, 의료사고에 대한 보험이 필요없어지며, 의사들이 보험료를 내서 보험회사 먹여살릴 필요도 없어지게 됩니다.
지금 의사들에게 의료사고를 대비한 보험을 의무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는 의사를 팔아먹으려는 자입니다.

대불제도에 따른 준비금은 소멸되는 예산이 아니므로, 한번만 내면 됩니다. 이미 2012년 의사들은 이를 부담했고, 이 때문에 병의원 경영이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두번째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금 재원입니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는 말 그대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것인데, 이를 왜 의사들이 부담해야 하느냐로 논란이 거듭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말 그대로 의료사고의 하나입니다. 다만, 의사라 할지라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러나 피해자가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무과실 보상과는 다릅니다.
아무튼 이 재원의 70%는 정부가 부담합니다.

그런데 한 때, 일부에서는 의사들이 조정중재원 운영 예산도 지원해야 한다는 루머가 돌았습니다. 법에 엄격히 정부가 부담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실제 정부 예산이 투입되었는데도, 믿지 않으려 했습니다.

악의적인 선동 때문입니다.

의료사고는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의 하나 생길 경우, 조속히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료 행위는 애초 선의로 시작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선의로 시작된 것이 예기치 않은 피해로 이어질 경우, 서로가 납득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일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소송을 통해 법정 다툼을 하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닙니다.
위 통계를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덤의 문화, 그것의 맹점



덤의 문화, 그것의 맹점




우리나라 건설 현장과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건설 현장의 가장 극명한 차이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만일 어떤 공정을 하는데 필요한 공구가 없으면, 한국의 건설 현장에서는 그 공구를 그 자리에서 임시변통으로 만들어 일을 한다. 공구가 없어 일을 못한다는 것 무능력의 입증일 뿐이다.
반면에 선진국 나라의 건설 현장에서는 특정 공구가 없으면, 그 공구를 써서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는 손을 놓고, 일을 중단한다. 공구가 올 때 까지.

또, 선진국 나라의 노동자들은 아무리 육체를 써서 하는 노동일이라고 해도 결코 무리하게 힘을 써가며 일하지 않는다. 모든 자재는 혼자 힘으로 충분히 들 수 있는 무게여야 하며, 그 무게를 넘어서면 장비를 쓴다.
우리나라 노동 현장에서는 힘자랑하듯 일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자의 급여는 주로 일당 혹은 일의 양에 따라 돈을 받는데, 선진국 나라의 노동자들은 시간 당 노임이 책정된다.
시간당 (통상 30불~50불) 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구석에 모여 담배를 나눠 피며 농담을 하거나 꾀를 부리는 건 쉽지 않다. 째깍째깍 시간은 돈이다.

우리 현장은 노임을 주고, 사용자는 ‘내가 이만큼이나 급여를 주었으니, 요 정도 일 하나는 그냥 해주면 안될까?’라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시급을 계산하는 선진국 나라 노동자들에게는 그런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선진국 나라에 덤이라는 건 없다.

우리나라는 ‘덤의 문화’가 있다.
덤은 곧 정이겠지만, 때론 그 정을 핑계로 착취하기도 한다.

근로 현장의 덤은, 정겹기 보다는 비능률적 업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철야하는 직장인들이 많을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 논의를 보는 시각


연명의료 결정 논의를 보는 시각



그 명칭이 죽음 선택권이든, 존엄사이든, 연명의료의 결정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이고 영혼이 육체에 깃들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의 격과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외국의 영화나 드라마, 특히 과거에 방영되었던 E.R을 보면 죽음을 선고 받고 마지막 순간을 엄숙하고 아름답게 마치는 환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드라마이고 다소 설정 때문이겠지만, 우리는 병원에서 그 같은 환자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그건, 미국의 드라마이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성, 교육적 종교적 배경 등이 합쳐진 의료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한 국가의 의료라는 것은 매우 복잡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 서로 다른 문화 환경이 있다는 것이다.

즉, 어느 날 갑자기 송두리채 그 문화를 바꿀 수는 없다. 더욱이 법을 제정한다고 문화가 덩달아 바뀌지도 않는다.

이건 오랜 논의와 사회적 합의와 관습의 변화를 통해 서서히 바뀌어야 할 것이며, 수 많은 도전과 실패 속에서 서서히 자리 잡아 가야 할 것이다.

물론, 존엄사, 혹은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논의가 거듭되고 중요한 사회적 아젠다가 된다면, 그 시기는 더 단축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논의 핵심에, 이 논의를 이끌어가는 주도적 역할에 의사라는 직분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면, 이것은 의사 대 환자, 의사 대 국민으로 논의가 전개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 즉, 종교인, 환자 단체, 시민 사회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사 혹은 의료계가 이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순간, 원래의 본질은 훼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사란, 한 인생의 종점을 찍는, 종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저, 최선을 다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여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행위만 하면 된다.

그 행위에, 돈이나, 부족한 병실이나, 인력 낭비 따위가 개입해서는 안되며, 조금이라도 개입하고 있다는 것처럼 비쳐져서도 안 된다.

‘연명 의료의 결정’이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으로 불리던 과거 그 시점에 이미, 그 의미는 훼손되었고 왜곡되었기 때문에 더 더욱 그러하다.

이 논의에서 의사의 역할은 의료 현실에 대한 조언자의 역할에서 그쳐야 한다.

만일 의사들이 주도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이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다면, 그건, 아직은 사회적 합의가 미성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처럼 단일 보험자를 갖는 경우, 보험자는 곧 정부기관이므로, 정부가 이 문제를 선도적으로 나서게 되면, 보험자가 불요불급한 보험료를 지불하지 않으려 한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

정부는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것에 그쳐야 한다.

여전히 다수의 국민들은, 연명의료나 존엄사에 대한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만일 정부 주도하에 이의 법제화가 이루어지고, 만의 하나라도 원래의 목적이 곡해되고 오해될 경우 그 파장은 클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건, 다소 더디게 진전되더라도 사회적 합의라는 순리에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의료계와 정부가 너무 나서는 것 같아 보여 걱정이다.

Sept. 16 2013

Monday, September 2, 2013

초짜 사무관이 정책을 좌지우지 한다고?


초짜 사무관이 정책을 좌지우지 한다고?






의료계 입장에서는 정부가 어떤 과정과 방법을 통해 정책을 기획하고 수립하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아래 기사는 이를 환기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긍정적 면이 있지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체, 다분히 작위적인 내용으로 채워진 감이 없지 않다.

첫째, “의정간 신뢰구축과 소통 강화”는 구호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주 만난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기사에서 지적했다시피, 행정부의 부족한 면을 의료계가 채워주고, 행정부는 의료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때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둘째, “모든 의료정책은 사무관 책상에서 시작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아니며, 사실이다. 사무관이 정책 기안, 정책 기획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며, 자연스런 행정 과정이다.

문제는 사무관이 독단적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기안하여 수립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어느 행정부이든, 그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국정과제와 집권자의 통치 이념에 따라 정해지기 마련이고, 이 기조 안에서 새로운 정책을 기획하게 되며, 이는 내부 검토를 거쳐 ‘과’내 과제로 선정되고, 다시 업무 협의를 거쳐 ‘부’내 과제로 숙성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관련 연구소나 연구기관, 학계의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이론적 배경을 만들고, 이 연구를 맡은 연구자는 또 관련 의료계나 의료단체로부터 의견을 조회하는 과정을 거친다.

과내 과제나 부내 과제가 곧 정책으로 자리 잡는 것도 아니다.

어떤 정책이든, 법령, 고시 등을 통해 법이 개정되어야 하므로 법령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관련 단체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과연, 의료계가 행정부에 정확하게 의견을 제대로 전달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고시 출신 공무원, 기사에서 말하는 20대의 초짜 사무관을 이해시키고 설득하여 의료계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도록 진정코 최선의 노력을 다 했느냐 하는 것이다.

의료계의 경우, 지역, 직역, 전문과목 별로 입장 차이가 있고, 이를 통합하여 의견 조율을 해야 할 역할은 의사협회가 진다. 냉정히 가슴에 손을 얹고 의협이 다양한 목소리를 충분히 조율해 내서 하나의 입장을 정해 이를 확실하게 정부에 제시하였던가?

이건 의료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입법은 정부도 발의를 하지만,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정부 입법은 법안을 마련하기 전에는 연구 용역을 받은 연구자가, 또 법안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정부가 직접 각종 위원회를 구성하여 의료계의 입장을 듣거나 또 개별적으로 의견서를 통해 의견 수렴을 할 뿐 아니라, 법안이 마련되어 입법 예고를 하는 동안에도 공식적으로 의견 조회 기간을 두고 있다.

또, 정부가 발의하는 모든 법률은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규제 사항이 있는지 검토 받으며, 차관회의 장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경우도 해당 상임위, 법안심사소위, 법사위 등을 줄줄이 거치고, 매번 입법처의 전문위원 역시 법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필요하면, 의료계 인사를 불러 청문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법이 바뀌어야 정책이 바뀌는데, 비록 그 시작은 사무관의 책상에서 시작하였다 하여도, 여러 단계의 통과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의료계의 전문적 지식, 필드에서 발생하는 의료인이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상황은 얼마든지 전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의료계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의료계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며 또 어떨 때는 상식적으로 납득 되지 않는 정책이나 법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A부터 Z까지 몽땅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럴까?
또 다른 행정부는 어떠할까?

보건의료 분야는 의료 공급자인 의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직역이 있고, 이와는 별개의 의료 기사 단체, 약사 등이 있어 이들 직역간의 갈등이 엄존하고, 더 넓게는 보건의료는 이들 공급자 외에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소비자가 있다.

보건의료는 그 특성상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국방, 교육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사회 안전망에 속하며, 어느 특정 산업, 시장에 치우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정부는 이들의 사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정부를 대변하고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이 기본적인 원리를 잊으면 결코 의료계는 정부와 소통하거나 신뢰를 쌓아갈 수 없다.

의료 공급자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의료의 영역범위는 매우 느슨한 경계로 되어 있고, 애초 모든 의료의 영역은 의사에게 속하였지만, 시대의 흐름과 의학의 진화에 따라 의료 영역은 끊임없이 침범당하고 있어, 의사는 수성하고, 다른 직역을 공격하는 형세를 취하고 있는데다가 날이 갈수록 의료 영역은 갖은 이유로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의사는 피로에 찌들 수 밖에 없다.

이를 지키자는 것이 의권 수호이며, 의사들이 그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 의약분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2월 17일 여의도집회

한국 의료계의 현실은 이를테면 막장에 떨어져있다고 할 수 있다.

이대로 두면, 가장 중요한 사회 안전망은 붕괴되고, 그 피해는 곧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를 복구하고 회복하려면, 정확한 정보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아래 기사는 단편적 사실을 엮은 것에 불과하다.
의료 정책이 엉망이고, 의료계 현실이 이 모양인 이유가 사무관의 의료현실 몰이해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이건 오히려 의료계에 대한 모욕이다.

지피지기하려면 공무원의 의료 현실 몰이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과연 우리는 철저하였는가?


링크 : 

"의료용어도 모르는 초짜 사무관이 정책 좌지우지"


Sunday, September 1, 2013

이석기, 민주당에 주목한다 (정재규 TV)


** 아래 내용은, 한국경제 논설실장인 정재규 실장의 정재규TV에 실린 동영상을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내용을 첨가하고 각색한 것입니다. 원본 동영상은 아래 링크를 보시면 됩니다.



이석기, 민주당에 주목한다


젊은이들에게 기성 세대의 성장 과정이나, 기성세대들이 어떤 고난과 과정을 통해 나라를 세우고 일으켰는지에 대한 과정은 사실 관심 밖이다.

그들은 오로지, 주어진 현실만 보며, 현실에 대한 불만과 기성 세대에 대한 불만만 늘어 놓게 되며, 어렵고 힘이 들수록 기성 세대, 권력층에 대한 타도를 주장하게 된다.
이를 ‘젊은 날의 방황’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누구나 한번 쯤은 이런 성장통을 겪는다.

그런데, 자칫 이런 현상이 일탈(逸脫)되면서 하나의 사교 집단화가 이루어지고 컬트화(Cult. 어떤 체계화된 예비의식, 특정한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예찬, 열광적인 숭배, 나아가서 그런 열광자의 집단, 또는 주교적인 종교단체를 의미하는 말.) 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특히 사상적으로 왜곡된 일부 부류가 있는데, 그 중 자생적으로 생겨난 조직 중에 주사파라고 하는 것이 있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학생 운동의 주축은 레닌-막시즘을 기본으로 하는 사회주의 운동이었을 뿐, 노골적으로 친북 혹은 종북 성향의 학생 운동은 없었다.

주사파를 주도하고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김영환은 사상 전향서에서 학생 운동이 친북, 종북으로 성향이 바뀐 계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시 학생운동에서는 레닌-막스에 대해 식상해 하였는데, 새로운 전기 마련으로 <민족자주>와 <반미 운동>을 전개하던 중 이의 이론적 기초를 확립하기 위해 닫치는 대로 자료를 모아 보다가, 북한의 주체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이에 매료되어 주사파를 만들게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더 지하로 숨어 들어 갔고, 더욱 더 컬트화, 더 광신성이 강화된 형태로 바뀌게 되는데, 그들의 특징은 현실과 가상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달라지지 않는다.

정신적 질병적 상황에 놓인 것이며, 가상현실과 현실을 구분 못하고, 혁명 놀이, 전쟁 놀이, 레닌 놀이, 볼세비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상현실과 현실을 구분 못할 뿐더러, 현실에서 발생하는 것들을 가상 현실에서 믿고 있는 바를 재구성하는 재료로만 사용할 뿐이다.

결국, 평생 시대 착오적 생각과 판단으로, 무엇이 잘못되면 오히려 오류를 강화하려는 쪽으로 “그럴 리가 없어” 라고 반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종말론 신도들이 그런데, 이를테면 마야력으로 지구 종말이 2012년에 있다고 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보통은 ‘정말 종말이 오면 어떻하지?” 라고 장난처럼 웃고 말지만, 종말론 신자들은 이를 사실로 믿고, 산속에 숨거나, 극단적 행동을 하게 되고, 막상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한 날짜가 지나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으면, 종말론이 허구임을 깨닳기보다는, 자신들이 날짜 계산을 잘못했다고 주장한다.

왜냐면, 이들은 현실 감각(reality)가 없기 때문에 종말론이 허구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단지 계산 실패가 문제였을 뿐이라고 정당화하기 때문인 것이다.

주사파에 사로잡혀 컬트화되어 지하로 숨어들어간 그들도 그랬다.
<공산주의 혁명>을 기다리는 것은 종말을 기다리는 것과도 같았던 것이다.

이석기 같은 부류들은, 마치 광신도들이 언젠가는 세상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대한민국에 공산주의 혁명이 터질 것이라고 맹신하는 일종의 종말론 신도와도 같은 것이다.

이들은 이미 1991년에 구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체제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소련의 붕괴는, 자본주의의 일시적 승리이며, 간사한 자본주의자들의 음모이며, 볼세비키적 논리가 세계적 규모로 관철되기 위한 일종의 우회전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건 실패가 아니라, 시련일 뿐이라고 가장하며, 자신과 조직을 단련하고 강화시킨다.

그래서 이석기 같은 부류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컬쳐(cluture)와 신념체계에 의해서, 거의 광신적 착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내부 조직에는 이를 계속 믿어야 하느냐, 버려야할 것인가로 고민하는 추종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탈자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단속하고 단합하려고 한다.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이들은, 보통 자기 고백(confession) 시간을 갖는다. 이 고백에는 극히 내밀한 개인적인 사항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는 충성 맹세로 연결이 되어, 전사(戰士)가 완성되게 되는 것이다.

레닌 놀이, 볼세비키 놀이를 가상 속에서 하는 것인데, 사실 어느 사회에서나 이렇게 일탈하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자살 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같이 자살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종말의 그날을 기다리며 산속에서 생활하는 사교 집단처럼, 모두 가상 속에서 자기 논리에 파묻혀 살고 있는 이들이다.

이런 집단은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19세기에 미국에도 수없이 이런 집단이 존재했다.

어느 사회나 이런 집단이 존재하는데, 우리나라는 주체사상과 종북의 결합이란 사고적 질병에 걸린 집단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지하의 어두운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면에 설 수 있게 정치권에 끌어들이고 금 뱃지를 달아 줌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이다.

이를테면, 최근 대학가에 막시즘을 교육하거나 연수하는 조직이 굉장히 늘어나고 있는데, 분명한 사실은 이석기 같은 부류가 국회의원이 됨으로써, 이들 조직을 늘리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금뱃지를 달고 국회에 진출하게 하도록 해 준 “숙주”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민주당이다.

야권공조를 통해 통진당이 의석을 얻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석기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두 번이나 사면을 받았는데, 문재인이 두번 째 사면 실무를 맡았던 책임자이었다.

어느 사회나 질병은 존재하고, 특정 신조를 가지고 있는 이단아들은 존재하는데, 이들 이단아들이 존재하도록 용인되는 사회는 사실 좋은 사회이다. 사상의 자유가 있음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단적 사고를 가진 자들이 주류가 되려고 하거나, 현실을 비틀려고 하는 것, 이를테면 집단 자살로 몰고 가거나, 집단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것 등을 시도할 때는 강력하게 응징할 수 있는 사회는 더욱 더 훌륭한 사회이다.

생각은 자유이나, 행동은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러나 그 주먹을 나에게 휘두르면 먼저 징벌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을 햇빛 아래 정치 일선으로 끌어낸 것은 민주당인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석기를 보호해야 한다, 아니다 라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신을 빨리 차리고 이석기와의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

지금처럼 범법 집단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국민적 의심이 있는 이상, 민주당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공당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번에는 분명히 입장 정리를 해야 한다.

골방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것과, 전쟁발생시 무기를 들자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국민 누구도, 새누리당이 일당 독재를 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국가가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당이 정권을 주고 받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고, 정치를 하다 보면 치고받고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지역색을 드러내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범죄 집단의 교두보 혹은 숙주라는 의심을 받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이는 사상의 자유, 이념의 자유와는 관련 없는, 넘어서는 안 될 일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안보의 문제이고,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재규TV 동영상 링크



임의 비급여 합법화를 !


임의 비급여 합법화를 !







지금 의원, 병원 가릴 것 없이, 경영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은, 너나할 것 없이 다 아는 사실인데, 이를 개선시킬 뽀족한 방법이 없다.

최선의 방법은 당연지정제 폐지인데, 이건 워낙 반대가 많고, 눈 앞에 해결책은 아니다.

또 다른 방법은 수가인상인데, 수가 인상 이야기가 나오면, '건보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의문'이라는 분들의 가열찬 반대와 국민적 저항 (수가인상은 곧 보험료 인상을 의미하므로)에 따라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다 함께 손 잡고 죽어야 하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 건보재정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할 수 있으면서,
* 환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그런 신기하고 기묘한 방법.

그건 바로, <임의비급여를 합법화>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임의비급여를 규제하는 것인가?

여러가지 이유를 들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공단, 정부가 '자애로운 관리자'로써 국민의 호주머니를 걱정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걱정마시라.
내 돈 내고 더 좋은 의료재료, 더 좋은 술기, 더 좋은 서비스를 원하는 국민들도 있으므로.

그런데 왜, 이런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국민과 이런 의료서비스를 하고자 하는 병의원의 건전한 시장 경제를 막는 것인가?

임의비급여를 합법화한다고 건보재정에 손해나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더욱 더 도움이 된다. 왜냐면, 심지어는 보험에 해당되는 급여 항목 대신 임의비급여 재료, 술기를 선호할지 모르므로.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급여 항목은 고시로 정해야 하는데, 의료 기술과 재료는 나날이 새로운 것이 아니는데 반해, 급여 전환은 매번 늦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자애로운 관리자>들은 아마도, 임의비급여를 허용하면, 환자를 꼬득여, 비싼 재료, 비싼 술기를 받도록 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걱정할 필요 없다. 대한민국 환자들이 그렇게 어리숙하지 않으니까.

지금이 1970년대가 아니잖아!

임의비급여 합법화는 건강보험이라는 사회주의 제도 아래, 시장 경제 원칙을 도입하는 작은 숨구멍이 될 수 있다.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전향적, 적극적 검토를 해야 한다.


초음파 급여화 결정에 의료계는 침몰하게 될 것이다.


초음파 급여화 결정에 의료계는 침몰하게 될 것이다.







가령, 인체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자동차 차체에 스크래치가 생겼다고 운행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그러나, 브레이크 시스템이나, 트랜스미션에 고장이 있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치료함에 있어서도, 생명에 직결되는 ‘필수 의료’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선택 의료’가 있다.

필수 의료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만큼 이를 담보로 의료 서비스 공급자들이 지나친 우월적 권리를 남용할 것을 우려하여 이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의료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이므로 이런 가정은 예측 가능하다.

그런데, 만일 그렇다면, 그 규제의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가격 통제”가 가장 큰 규제 수단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수단은 ‘행위 통제’이다.

그런데, 정부가 양손에 들고 있는 이 수단들은 사실,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으며, 실제 그 문제는 곪아 터지며 드러나고 있다.

<가격 통제>를 통해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행위를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의료보험 도입 초기부터 적용되었던 것인데, 애초 의료보험을 도입하면서 낮은 가격, 즉 낮은 의료수가를 정한 이유는 보험료를 낮게 책정하며 보험 가입을 쉽게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소위 저보장, 저수가 정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국민의료보험 의무 가입이 된지 30년을 바라보는 긴 시간 동안 “가격 통제”를 가장 큰 규제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우리나라 의료 수가는 낮은 수준을 유지했을지 모르지만, 의료서비스 공급자들이 버틸 낼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이미 그 부작용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느 나라든 의료보험제도 혹은 사회보장으로써의 의료보장제도는 의료 서비스 공급이 된 이후에 시작되었다.

의료보험제도는 보험사가, 의료보장제도는 통상 국가나 정부 기관이 의료비의 전부 혹은 일부를 지급하게 되는데, 그 이전에는 의료서비스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직거래만 존재했기 때문에 이들 제도가 도입되기 전의 가격 구조 즉, “관행 수가”라는 것이 있었다.

이른바 ‘관행 수가’는 자연스럽게 시장 경제 원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데, 의료보험 도입 시기인 1970년 후반만 해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관행 수가는 비교적 높은 가격에 결정되었고, 가격 통제를 하는 정부는 공급이 늘어나는 미래를 예견(!)하고 미리 낮은 가격으로 보험수가를 고시하였는데, 이런 관성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 국가에서 시장 경제 원리를 무시한 체, 전체주의적 가격 통제를 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가격 결정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사실은 시장 원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될 수 있으며, 이 가격은 공급자와 수요자의 암묵적 사회적 합의에 따르게 됨으로 최선책은 아니어도 차선책은 될 수 있을텐데, 정부의 강력한 개입으로 그 순리가 무너지면서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문제이다.

또 다른 문제는 비록 사회 안전망 유지를 위해, 공급자들이 우월적 권리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가격 통제라는 수단을 쓴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우리나라 의료공급자들의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의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법적 근거는 있다. 그리 법을 만들었으니… 그러나 철학적 경제적, 시장적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왜냐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인들에게 국가가 교육 비용을 부담하였거나,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이들에게 정부가 국고를 지원한 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민간의료기관은 순전히 민간에서 출연한 자금으로 개설되고 운영되고, 경영의 모든 책임 역시 개설자가 지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두고,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그 가격을 따르라고 하는 근거의 원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게다가 이 가격 가격 통제를 따라 생존하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정부가 아닌 개인이 져야 한다.

즉, 생존은 자본주의 원칙에 적용받아야 하고, 규제는 건강보험이라는 사회주의 원칙에서 통제 받고 있는 꼴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 입장에서 가격 통제 외에 사회안전망 유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엄격하게 말하자면, 사회보장이 필요한 자 즉, 극빈층, 고령층, 영유아 등에 대한 사회 보장 지원이다.

다시 말해, 시장원칙에 의해 결정된 가격에서 모자란 만큼을 정부가 보조해 주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지, 가격을 후려쳐서 깍아, 사회보장의 책임을 의료서비스 공급자에게 떠넘겨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적어도 국민소득 2만불이 넘고, 세계 무역 10대 국가인 나라에서…

그러니, 그럴 역량이 안되면 함부로 사회보장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면 안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번 초음파 급여화 결정이다.

이미 오랜동안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된 초음파 수가를 100% 인정하고, 이를 급여화할 경우 건보 재정으로 부담할 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보장성 강화 차원에서 급여화해야 할 것이지, 가격 통제라는 수단으로 가격을 후려쳐서 부담을 의료기관이 지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도 과거지향적인 통제 방법이자, 가격 통제라는 오랜 관성의 후유증이다. 이를 극복 못한 의료계 협상 대표자들에게도 그 책임은 크다.

그나마, 의료 수가 중에 시장 원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비급여 항목이다.
대부분의 비급여는 공급이 늘어나고 경쟁이 과열됨에 따라 사실 대부분 그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비급여 항목의 대표 주자는 바로 초음파이다.

이번 초음파 급여는 이른바 ‘관행 수가’의 50%에서 가격이 결정되었다.

단언코 예언하건대,

이번 초음파 급여화는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다.

지금 상당수 병의원의 경영 마진이 종이 한장 정도로 박(薄)한데, 초음파 급여화로 이를테면 경영 지축이 흔들리게 되었고, 이의 여파로 인해 상당 수의 의료기관이 collateral damage로 무너질 것이다.

“초음파 급여화”가 갖는 상징적, 실질적 의미는 매우 크다.

초음파 검사는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비급여로 남아 있었고, 비급여를 상징하는 대표적 항목이었을 뿐 아니라, CT, MRI. PET과는 달리 비교적 장비 도입 비용이 적어 소규모 병의원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진단 기기이며, 실질적으로 어려운 병의원 경영에 큰 도움을 주던 검사이었다.

정부나 사회시민단체는 그저 비급여 항목 하나가 급여로 바뀐 것에 불과할지 몰라도, 의료계가 받아들이는 심리적, 경제적 충격은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일부는 초음파가 급여화되면 가격이 내려가는 대신 빈도가 올라가게 됨으로, 당신이 주장하는 시장경제 원칙대로 하자면, 결국 총액은 비슷해질것인데, 무슨 불만이 많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야기이다.

비급여가 급여화 된다는 것은, 가격이 바뀐다는 것 외에, “가격 규제”외 정부의 통제 수단인 “행위 규제”가 개입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가격이 싸졌다고, 찍고 싶은대로 초음파을 찍어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가격이 싸졌기 때문에 싼 맛(?)에 불필요한 초음파 검사를 원하는 환자들을 달래고 설득해서, 검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심평원이 적정성 평가를 통해, 초음파 행위를 삭감해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초음파 급여화 결정은, 정부 및 정부기관, 이에 개입한 사회시민단체, 이를 막지 못한 의료계 대표자들 공히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이 3자 모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을지 모르지만, 이번 결정이 몰고 올 파급과, 그 파도에 침몰하게 될 수 많은 의료인, 의료기관의 억울함에 비하자면, 새발의 피가 될 것이다.

두고 보라.


쿠바 의료에 대한 환상



쿠바 의료에 대한 환상






쿠바의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에...

이 환상의 배경은, 식코란 영화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이 이상적 의료제도의 예로 쿠바를 들었던 적이 있었고 (이를 좌파들이 십분 활용하며 침소붕대한 측면도 있고) “맨발의 의사들”이라고 불리는 쿠바 의사들이 대거 해외에서 의료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배경과 내면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않다.

우선, 쿠바의 의과대학은 수업료는 물론, 수업에 필요한 교자재는 모두 쿠바 국가가 지불한다.

그러다 보니, 쿠바 국민은 물론, 미국에서 의대에 갈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 중남미 국가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대거 몰려들어와 쿠바에서 의대에 다닌다.

2006년~2007년 공식 자료를 보면, 쿠바의 의과대학 수는 약 30개 (28개?)이며, 쿠바 의대생의 수는 25,728 명이다. 그러나 이건 쿠바 출신의 의대생이 그렇다는 이야기고, 외국 출신의 의대생 수는 21,863 명이나 된다.

즉, 2006년 당시 의대생 수의 합은 4만7천 명이 넘는 것이다. (즉, 한 의과대학에 약 1,700 명, 6년 과정이니 한 학년에 평균 약 3백명이 수업을 받는 것이다.)

그 당시 의사는 수는 70,594 명이며, 이는 33,769 명의 가정의를 뺀 숫자이다. 즉 쿠바의 활동 의사는 무려 10만명이 넘는다.

한편, 쿠바의 인구 수는 1천1백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참고로, 쿠바의 병원은 248개에 불과하며, 폴리클리닉 (의원의 개념이나 다수의 의사가 근무하는 소규모 병원)의 수는 470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원이 2만8천개, 병원이 1만5천개 가량, 종합병원이 300 여개 있다.

공산주의 국가나 전체주의 국가에 의과대학생이 많은 것은 일반적이다. 북한이나 구소련 등도 그랬다.

문제는 교육의 수준이다.
병원과 의과대학의 수는 적고,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병원의 시설, 장비는 열악하여, 실습이 제대로 될리 없으며, 의약품 부족으로 소위 “대체 의약”이 난무하고, 이런 나라들의 의대 교육은 evidence based medicine이 아닌, 자기들 나름대로의 커리큘럼으로 교육한다.

그럼에도, 식코에서 말하는 쿠바의 낮은 영아사망율은 높은 낙태율로 인해 고위험 분만이 적은 이유도 있지만, 쿠바가 발표하는 통계 자체에 신뢰를 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정부가 의료시스템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국가 (캐나다, 영국 등을 포함해서)의 가장 큰 문제는 의료소비를 강력하게 통제한다는 것인데, 쿠바 역시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쿠바의 의사들 (혹은 의료제도)이 예방의학에 치중하고 있으며, 이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라고 칭송(?)하는데, 그건, 쿠바의 의료시스템이나 의사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략 한 명의 가정의가 100~200 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데, 의약품 부족, 검사 기기 부족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즉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교육, 사업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 예방이 쿠바 의료 제도의 아젠다이기 때문이 아니다.

“맨발의 의사”의 활동이 큰 이유는, 쿠바 의과대학을 졸업한 경우, 쿠바에서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의사로 근무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인데, 쿠바 정부는 남아도는 의료인력으로 외국에 생색을 내거나 막후 딜을 하기도 한다는 의혹을 받는다.

왜냐면 쿠바는 원유는 물론 이렇다할 지하자원이 없는 가운데, 국민소득이 낮아 중남미 국가로부터 원유 등을 원조받을 때, 그 댓가로 쿠바 의료 인력을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중남미의 상당수 국가들은 자국의 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실, 지구 상에 재해가 발생하거나 의료 인력 자원이 부족한 국가들 입장에서는 어찌되었든 쿠바 의사들이 반가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재난과 같은 상황에서는 고도의 전문적 기술이 필요한 의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선 쿠바의 수만명 의사들이 지구를 떠돌며 의료 활동을 하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고, 쿠바의 의료제도나, 쿠바의 의료 현실을 극찬하며 동경하는 것은 우스운 일임에 분명하다.

의료기관 폭력행위에 대한 게으른 대처법

의료기관 폭력행위에 대한 게으른 대처법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난 국회에서 입법 추진을 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환자 단체의 장이란 분이 "폭력이 두려우면 어떻게 의사를 하나"라는 망발을 하자, 의료계 내부에서 공분이 끓었었다.

이후, 폭행당하는 의사들의 동영상이 SNS에 자주 올라오는데,
그 동영상을 보거나, 개인적으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상황을 보자면,

첫째, 의사가 구타를 당할 때, 병원 직원 (청원경찰 포함)이 달려들어 말리거나, 적극적으로 의사를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둘째, 경찰이 신고를 받고 오더라도 폭행하는 자를 신체 구속하거나 물리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막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폭행을 휘두르는 자를 잡거나, 물리력으로 막을 경우 자칫, 그 행위가 위법해진다는 이유를 댄다는 것이다.

즉, 청원경찰은 물론, 현장에 출동한 경찰 공무원도 폭력행위를 휘두르는 자를 제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위법해질까봐...

게다가 폭행을 당하는 경우에도, 의사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왜냐면, 맞서 싸울 경우, 쌍방 폭행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누군가 물리력을 동원해서 나에게 위해를 가할 경우, 자구하지 말고 요령껏 피하라고 할 뿐이다.

폭력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응급실의 경우, 대부분 20대 후반의 젊은 의사들이 상주하는데, 혈기왕성한 이들이 폭행을 당할 경우, 이 때문에 더 큰 자괴감과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의료기관 내 폭력행위를 가중 처벌하는 법을 입법하는 것은, 말 그대로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주먹이나, 칼이나, 의자에 맞고 나서, 폭행 행위가 성립된 이후에 처벌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보다 더 현실적인 대응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응급실 폭력 사고의 예를 들면,
우선, 응급실의 출입을 엄중하게 통제해야 한다. 즉, 환자를 제외한 모든 보호자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거동이 불편하거나, 응급 환자가 아닌 경우에는, 환자 대기실에 진료 순서를 기다리도록 해야 한다.

이건, 어느 병원 한 군데가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응급의료기관 공히 이런 방식으로 패턴을 바꾸어, 응급실 안은 응당 환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한다.

또 응급실 입구에는 출입을 통제할 인원 (청원경찰 등)이 배치되어야 한다. 외국 응급의료기관의 입구에 총을 찬 경비원이 경비를 서는 것을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자구책 외에, 경찰청과 의료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본청은 의협과, 지방이나 지역은 그 관할 경찰청과 만나, 의료기관내 폭력 사태의 중대성에 대한 교감을 나누고, 의료기관 내 폭력 행위가 발생할 경우 이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하여야 한다.

또 법조계와의 협조, 협력관계 또한 중요하다.

연석회의, 좌담회, 세미나를 통해, 응급의료 치료 형태에 대한 이해와, 응급실에서 폭력이 발생할 경우 의사 혹은 병원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미비하다는 것, 폭력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가해자를 잡거나, 물리적으로 억제할 수 밖에 없는 현실 등등에 대한 이해를 같이 하고, 안정적 진료 환경 구축을 위해, 법조계와 공조할 것을 협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의료기관 내 폭력행위시 가중 처벌하겠다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병원 가서 성질 한번 잘못 부리면 큰 코 다치겠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자는 것인데, 과연, 그 법이 만들어진다고, 폭력행위자들이 술 취한 상태, 극도로 흥분된 상태에서 그 법조문을 떠 올리며 흥분을 가라앉힐까?

법으로 인간의 충동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란 건, 순진한 생각이다.

정말 의료기관 내 폭력행위를 근절하려면 보다 적극적인 노력과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그저, 법이나 고치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의료계 지도자 그룹의 한심한 게으름일 뿐이다.

특히 병원 경영진이, 응급실 내 폭력 행위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폭행 사고 발생 시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경우 이는 병원계, 의료계 내에서 이슈화하고 규탄하여야 할 것이다.

또 정부는 응급의료 수가에 안전한 진료를 위한 시설, 장비, 인력에 대한 수가를 신설하여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안전한적 진료 환경을 구축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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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기기의 구성 요소


컴퓨터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는 입력장치, 출력장치, 주기억장치, 보조기억장치, 연산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블렛 PC나 스마트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모바일 기기라는 점에서 통신 장치와 배터리 같은 전원 장치는 그 기기의 특성을 좌우하는 주요 장치이므로 이 둘을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모바일 기기의 통신 장치는 3G, 4G, LTE와 같은 무선전화망, Wifi, bluetooth, GPS 등을 사용하도록 합니다.

타블렛이나 스마트폰을 기준으로 볼 때,
입력장치는 터치 스크린, 마이크, 스타일러스 펜과 카메라가 주로 사용되는 입력장치입니다.

마이크는 모바일 기기에게 작동을 명령하기 위한 입력 장치로도 사용됩니다. 아이폰의 시리, 구글 나우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GPS는 일종의 통신망이기도 하지만, 위치 좌표를 입력해주는 입력장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센서가 입력장치로 사용되는데 거리센서, 조도 센서, 가속센서, 위치 센서, 중력 센서 등이 그것입니다. 

출력 장치로는 스크린, 스피커, 이어폰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진동 장치도 출력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연산장치는 흔히 CPU라고 불리는데, 사실 이건 적절한 용어는 아닙니다.

CPU는 Central Processing Unit의 약자로, 중앙처리장치란 의미이며, 초창기 컴퓨터의 중대형 기종을 사용할 때 사용되던 용어입니다. 초기 컴퓨터는 연산장치와 주제어장치가 독립된 기기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지만, 개인용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는 하나의 기기에 주기억장치, 연산장치 등이 같이 있으므로 굳이 부르자면, MPU(Microprocessor Unit)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합니다.
Super computer Titan

* 위 사진은 최근에 Cray 사가 만들어진 무려 6천만불짜리 수퍼컴퓨터로 타이탄이라고 불립니다. 미 정부 산하의 연구소인 Oak ridge National Lab.에 설치되었는데, 이 연구소는 2차세계 대전 당시 맨하튼 프로젝트 때 만들어져, 핵무기 개발을 한 연구소입니다. 
타이탄은 16코어를 갖는 AMD 사의 Opteron CPU를 무려 18,688 개 사용합니다. 코어로 치면, 약 30만개의 코어가 있는 셈입니다. 
하나의 기판에 CPU가 4개씩 장착되며, 하나의 캐비넷에 24장의 기판이 들어갑니다. 이런 캐비넷 200개로 구성되며, 이 캐비넷들을 (즉, CPU)를 두려면 404 평방 미터(20미터 X 20미터)의 크기가 필요합니다.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의 주 처리회로를 코어라고 부르는데, 모바일 기기의 CPU는 단일 코어에서 두 개의 코어를 갖는 듀얼코어, 네 개의 코어를 갖는 쿼드코어로 진화하다가, 갤러시 S4의 경우 8개의 코어를 갖는 옥타코어로 발전했습니다. 즉, main processor가 무려 8개 있는 건데, 근래 나오는 앱들이 그만큼 강력한 처리 속도를 요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옥타코어의 경우 코어가 8개라고 8개가 동시에 작동하는 것은 아니며, 4개는 고성능 코어로 3D나 고성능 게임같은 것에 사용되고, 전화나 SMS 등을 보내는 단순한 작업을 할 때는 저전력 코어 4개가 작동하여, 배터리 소모를 줄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모바일 기기는 이처럼, 입력, 출력, 연산, 기억 장치 등과 함께, 통신, 배터리라는 6가지 요소의 집산체입니다.


혁신적 기기의 의미


애플로 대변되는 개인용 컴퓨터는 정보화 시대를 이끈 혁신적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폰으로 시작되는 스마트폰 역시 PC를 뛰어넘는 혁신적 제품입니다.

이 두가지 모두 스티븐 잡스라는 천재적 혁신가에 의해 창조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 제품 모두 스티븐 잡스가 최초 발명한 것은 아니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애플 이전에도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주기억장치(RAM)을 조합한 것이 있었고, 아이폰 이전에도 윈도 CE 등을 사용하는 모바일 기기가 있었으며, 심지어는 아이패드 이전에도 타블렛 PC가 존재했었기 때문입니다.
(참고 : 시리에 대하여)

그러나 스티븐 잡스가 놀라운 것은, 이것들을 창조했다기 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보다 혁신적으로 재창조하고 널리 유통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윈도우즈와 같은 GUI, 마우스 등 모두 스티븐 잡스가 상품화하여 히트를 쳤을 뿐 아니라, 인류 문화를 바꾼 것들이지만, 이미 과거에 남들이 만들었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스티븐 잡스의 사후에 애플에 더 이상 혁신은 없다며 애플의 몰락을 예측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만간 애플에서 새로운 형태의 혁신적 제품이 출시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워치 즉, 최초의 워어러블(Werable) 모바일 기기입니다.


이 사진이 아이워치란 증거는 없습니다.


사실 최초라는 단어는 좀 궁색해 보입니다. 왜냐면, 이미 이 같은 시계 형태의 컴퓨터는 이전에도 만들어진 적이 있고, 무엇보다도 구글의 구글글라스 역시 몸에 장착하는 형태의 모바일 기기이며 이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이미 시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 역시 애플에 뒤질세라, 삼성 갤럭시기어라는 이름의 스마트워치를 9월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아이워치, 갤러시기어에 대한 우려를 합니다.

과연 이들이 <혁신>적 제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 때문입니다.

IT기기가 가져다 주는 혁신이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 기준으로 혁신을 정의할 수 있겠지만, 우선 다수가 사용하며, 인류의 삶의 형태를 바꾸고, 새로운 시장,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PC는 불의 발견이나 산업 혁명에 버금가는 혁신적 제품으로 평가되었고, 스마트 폰이나 타블렛 기기 같은 모바일 기기는 그 PC의 위치를 위협하는 혁신적 제품입니다. 노트북으로 대명되는 랩탑 컴퓨터 역시 모바일 기기이긴 하지만 이것이 데스크탑 PC를위협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스마트 워치

이 사진도 아이워치란 증거는 없습니다.



아이워치, 갤럭시기어 등 스마트워치는 사실 현재의 시각으로 보자면 여러가지로 단점이 많은 제품들입니다.

첫째, 시계의 형태를 취해야 하는 특성상, 입력이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역시 터치 스크린을 사용할 것으로 보이는데, 너무 작은 스크린 때문에 타이핑을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물론, 손가락을 작동하는 것이 결코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설령 스마트 워치에 마이크가 있다고 하여도, 팔목에 찬 체 입에 가져다 대고 장시간 통화하는 것은 매우 불편할 수 밖에 없으며, 게다가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 또한 아직은 익숙한 방식은 아닙니다. 특히 공공장소면 더욱 더 그럴 것 같습니다.

둘째, 모바일 기기의 주요 출력 장치 즉, 스크린, 스피커, 이어폰 모두 스마트워치에서는 불리하는 것입니다.

스크린은 너무 작아 한번에 보여 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제한되고, 설령 스피커가 있다고 해도, 벨 소리나 알람 외에는 적절치 않아 보이고, 결정적으로 스마트 폰이나 타블렛과는 달리 이어폰을 손목에 꼽고 쓰기에도 불편할 것으로 보입니다.

입출력 뿐 아니라, 전원 장치 즉, 배터리의 문제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마트 워치가 지나치게 크면 거부감이 생기므로, 적절한 무게와 적절한 크기로 만들어져야 하므로 큰 용량의 배터리를 장착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스마트 워치는 Wearable 컴퓨터라는 혁신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PC나 스마트폰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부정적 시각이고, 보도에 의하면 애플이나 삼성은 내년에 스마트 워치를 수천만대 생산해 팔 것이라고 기염을 토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들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며,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스마트 워치는 어떤 용도로, 누가, 왜 사용하게 될까요?

추측컨대, 스마트 워치에서 3G, 4G, LTE와 같은 전화망을 사용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스마트 워치 구매자의 대부분은 이미 스마트폰이나 무선 전화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별도로 USIM 칩을 구매하여 스마트 워치에서 굳이 전화를 하려고 할 가능성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 전력문제입니다.

만일 스마트 워치에 전화 기능을 넣을 경우, 스마트 워치는 계속해서 조금씩 전력을 소모해야 합니다. 이는 배터리 소모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게 됩니다.

이 이미지는 애플이 미국 특허청에 제출한 서류 중 일부로, 시계 밴드에 배터리 cell을 넣는 기술에 대한 특허 신청입니다. 즉, 시계줄이 배터리 역할을 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전화망만 전력소모를 급증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wifi 역시 전력 소모를 급증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또, wifi 못지 않게 강력하게 전력 소모를 급증시키는 것은 gps 입니다. 스마트폰의 경우도 계속 gps를 감지하도록 하면 수시간 내에 배터리가 소모됩니다.

따라서, wifi 는 아예 빼버릴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스마트워치의 절대적 필요성으로 gps 기능은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는 wifi, bluetooth, gps 기능을 통합한 칩셋이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제조사 간의 성능 경쟁 심리에 따라 이 모든 통신 수단을 다 지원할 기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러나 wifi 기능을 넣는다고 해도, 스마트워치의 주 통신 수단은 bluetooth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bluetooth가 전력사용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가정해 볼 수 있는 것은, 애플의 경우 Direct Wifi라는 기술을 도입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순전히 예상이지만, 이 기술은 기존 wifi와는 달리 bluetooth와 유사하게 acess point가 필요없지만 blutooth에 비해 10배 넓은 전송범위에, bluetooth의 100배 빠른 전송 속도를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직 호환기종이 많지 않고 전력소모가 기존의 bluetooth 보다 많다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이런 기술적인 문제, 특히 배터리의 문제로 스마트 워치의 활용도는 제한을 받을 것입니다.


스마트 워치의 사용


그렇다면, 스마트 워치를 누가, 어떤 용도로 사용하게 될까요?

여러분은 모바일 기기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나요?

첫째 의사 소통입니다. 전화, 메시지, 메일을 주고받는 것은 모두 의사 소통의 방법입니다.

둘째, 정보 교환입니다.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은 정보를 찾거나 나누는 방법입니다.





셋째, 비서(assistant)의 역할입니다.





일정을 관리하거나, 걷거나 달리기를 하면서 위치를 tracking 하거나 (pedometer)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assistant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모두 현재 스마트폰, 타블렛 PC 등이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스마트워치는 이런 역할과 기능을 좀더 정교하게 하거나 보조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즉, 스마트워치는 물론 단독으로도 임무를 수행하겠지만, 스마트폰이나 타블렛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스마트워치가 출시된다고 하여도, 기존의 스마트 폰은 여전히 사용될 것이며, 오히려 허브 기능을 하며 더욱 더 중요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우선, 스마트워치와 스마트 폰 등의 모바일 기기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 방법은 bluetooth가 될 것이며, 스마트워치의 입출력 장치를 보완하기 위해, 역시 bluetooth로 작동되는 블루투스 헤드셋이 사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스마트워치의 사용자들은 스마트폰을 호주머니, 가방, 서랍 등에 넣어 놓고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를 통해 의사 소통, 정보 교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전화가 걸려오면, 스마트워치가 벨을 울리거나 진동을 하여 전화가 온 것을 알려주고,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통화를 하는 식이 될 것입니다.

또 메시지가 오거나, 메일이 오면 알려주고, 알람을 작동하는 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보조적 수단을 하는 기기가 과연 인류 문화를 바꾸고,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스마트 폰과 타블렛 PC가 PC의 기능을 상당 부분 대치하고 있지만, 여전히 PC가 사용되는 것처럼, 또 여전히 종이와 펜, 책과 도서관이 그 기능을 하는 것처럼, 스마트워치가 스마트폰이나 타블렛을 대치하지는 못할 것이며, 보조적 장치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스마트워치가 단독으로 사용될 때의 기능입니다.

아마도, 별도의 센서가 장착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테면, 온도나 습도 센서를 장착하는 것입니다. 또 인체의 맥박을 측정하는 센서가 부가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미 아무런 부가 장비 없이, 아이폰만으로 심박수를 측정하거나,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앱이 나온 바 있습니다. 전자는 아이폰의 마이크를 이용하며, 후자는 카메라를 이용합니다.

또, 부가 장비를 이용하여, 혈압, 혈당, 산소포화도를 측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스마트워치를 차고, 걷거나 달리면 GPS와 맥박 센서는 사용자의 이동 경로와 거리, 심박수 등을 기록할 수 있으며, 지나치게 심박수가 높거나 낮을 경우 경고를 줄 수 있습니다. 부정맥을 감지할 수도 있고 응급상황시 자동으로 앰브란스를 부르거나 의사와 연락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wifi 사용이 가능하거나, 스마트폰과 연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기술이 발달되어 무혈 혈당계 (glucometer)의 기능이 가능해지면, 당뇨 환자의 혈당을 추적할 수 있으며, 역시 지나치게 높거나 낮을 경우 사용자나 다른 사람, 의료기관에 연락을 주게 할 수도 있습니다.









즉, 스마트워치는 인체에 늘 접촉해 있다는 장점이 있어, 운동관리 및 건강관리 등과 함께 만성질환 관리에 사용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오늘 날의 main global agenda는 "고령 사회와 저출산"인데, 이는 세계 많은 나라, 특히 경제력이 높은 나라일수록 큰 문제이어서 이 문제의 solution을 가진 기술이나 기기는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스마트워치 사용자들은 혈압, 혈당, 심박수 등의 자신의 생체 정보를 누군가에게 보내 자신을 팔로우업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할 것이고, 그 누군가는 가족이나 친구일 수 있지만, 의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패러다임의 변화가 오게되고, 삶의 형태를 바꾸는 혁신적 기기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스마트워치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는 이들의 판단 기준은, 현재의 기술, 현재의 트렌드라는 단서 하에서 내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바꾸어 말하자면, 새로운 기술이 뒷바침되거나 트렌드가 바뀌면 스마트워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예를 들어, 입력 장치의 한계를 생각하자면,

애초 인류가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언어 이후 기술의 힘으로 먼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의사 전달을 한 최초의 방식은 "음성"이 아니라, 전신(電信)이었습니다. 최초의 전신은 모르스(Morse) 이었습니다.




즉, 최초의 장거리 통신은 디지털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이후 전화가 발명되면서, 디지털 방식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휴대폰(cellular phone)이 생기고, 휴대폰에서 텍스트 문자를 보낼 수 있게 된 이후부터, 페이스북이나 카톡 등이 널리 사용되는 지금까지 상당 수는 전화 즉, 음성통화보다 text를 통한 의사 소통을 더 선호합니다.

즉, 상당수는 음성이란 아날로그에서 (물론 휴대 전화 송수신 방식을 아날로그로 볼 수는 없지만) 다시 텍스트란 디지털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3G 시대 이후 화상통신의 사용이 가능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화상을 보며 통신하는 경우는 매우 예외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의 하나 스마트워치가 널리 보급될 경우, 텍스트를 기초로 하는 의사 소통은 음성과 화상 메시지로 다시 바뀌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스마트워치를 통해 음성이나 화상으로 메시지를 입력하여 보내고, 받는 이 역시 스마트워치를 통해 텍스트 메시지가 아닌 음성이나 화상 메시지를 수신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문자 메시지는 음성 통신에 비해 저렴하여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며, 음성이나 화상 메시지는 문자 메시지에 비해 많은 양의 데이터를 보내야 하는데, 전화망의 발달로 고용량 데이터의 송수신이나 전송 속도, 비용은 지금은 크게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또, 이미 현존하는 기술인, 음성을 문자로 바꾸는 프로그램을 통해, 입력은 음성으로, 전송은 텍스트로도 가능할 것입니다.


스마트 워치 판매 전략

우리는 스마트 워치의 부정적 측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스마트 워치는 혁신을 가져올까요?

앞서 IT기기의 혁신이란, "다수가 사용하며, 인류의 삶의 형태를 바꾸고, 새로운 시장,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즉, 스마트 워치가 혁신적 기기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우선 많이 팔려야 합니다.

많이 팔리기 위해서는 매력적이어야 하고, 가격이 적당해야 합니다.

판매 시점은, 삼성은 2013년 9월에 선을 보이고(공개 시점이며 판매 시점은 미정), 애플은 더 늦은 2014년 경 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삼성은 먼저 출시함으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전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고, 애플은 후발주자가 되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삼성 갤럭시 기어의 기능과 동향을 보며 완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각기 기존의 스마트폰이 허브 역할을 할 것이므로, 삼성은 갤러시 사용자들이 주 고객층이 될 것이며, 애플은 아이폰 사용자가 주 고객이 될 것인데, 아시다시피 누적판매 댓수를 비교하면 아이폰의 판매댓수가 월등히 많습니다.

삼성의 경우 갤럭시 S 이후 S2, S3, S4 와 갤럭시 노트 1, 2를 합쳐 대략, 1억5천만대 가량 판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아이폰의 경우 2007년 이후 대략 3억 3천만대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수가 실사용자 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스마트 폰 시장 점유율은 삼성이 애플을 눌렀지만, 실제 사용되는 스마트 폰의 댓수를 보면, 전세계적으로 아이폰의 경우 2억 6천만대 이상이 사용되며 월등히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존 사용자가 많다는 것은 매우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볼 수도 없습니다.
왜냐면, 스마트워치의 판매 전략 때문입니다.

애플이나 삼성 모두 기존 스마트폰 유저가 아니라, 신규 구매자가 스마트워치의 주요 타겟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일부 투자그룹 분석가는 아이워치의 경우, 시판 후 1년 내 약 6천만대가 팔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같은 기간에 아이폰은 1억 3천만대가 팔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신규 아이폰 구매자의 약 46%가 아이워치를 같이 구매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아이폰이나 갤러시폰을 구매할 때, 당연하다는 듯, Screen protector나 스마트 폰 케이스를 구입하는 것 처럼, 아이워치 역시 구매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스마트폰은 통신사와 장기 계약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거나, 장기 할부로 구입이 가능하지만, 이미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는 경우, 스마트워치는 현금을 주고 사야합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신규 고객의 경우 삼성과 같은 제조사는 스마트워치를 번들로 판매하고, 스마트워치의 가격과 스마트폰의 가격을 같은 조건 즉, 할인 혹은 장기 할부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기존 고객보다 신규 고객을 주 타켓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즉, 스마트워치는 스마트폰의 번들로 판매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며, 특히 삼성은 이런 판매 전략을 쓸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예측컨대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 워치는 최소 200불에서 최대 400불 대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스마트 워치 즉, 갤러시 기어가 애플의 아이워치에 비해 더 저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스마트 워치가 판매가 늘어나고, 스마트 워치의 사용자가 스마트폰 사용자에 육박하게 될 경우, 이를 활용하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시장은 커지고, 이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고, 새로운 트렌드가 올 것은 분명하나, 이것이 진정한 혁신을 가져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확실한 것은, 스마트워치는 기존 스마트폰이 가지지 못한, 또 앞으로도 갖지 않을 별도의 센서와 같은 새로운 기기적 특성을 갖게 될 것이며, 구매자는 이 특성 때문에 스마트워치를 구매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기술이나 기기의 혁신이라기 보다는 판매 전략의 혁신이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혁신은, 인류의 삶의 형태를 바꿀지언정, 새로운 생태계를 늘린다는 의미보다는, 새로운 매출과 수익 창출을 늘린다는 의미가 커 보이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마도, 스마트폰의 선두 주자, 거대 제조사의 수퍼 갑의 입장에서는, 매출 확대와 판매 기술의 혁신로 기록될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이 자료는 2012년 1월 기준이므로 현재와는 많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