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9, 2014

나는 프로이다!



- I -

여인네가 우물가, 빨래터에서 들은 근거 없는 소문은 금방 마을에 퍼지고, 그 소문을 놓고 요리저리 회를 친다. 그래 봤자 지레짐작이지만 청자(聽者)는 이미 소문을 맹신하는 단계에 이른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난히 빨래터 담화(談話) 즉 뒷담화가 심하고, 소문에 예민하다.

왜일까?

아마도 반만년의 세월 동안 워낙 난리를 많이 겪었던 탓이 아닌가 싶다. 어찌되었던 빠른 정보 획득이 빠른 피난을 가져 올 수 있는 구명(求命)의 유일한 도구라고 체험(體驗)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DNA에는 “얇은 귀”, “뒷담화”가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 II -

여러분은 지금 그 직업을 어떻게 결정했는가?

어릴 적부터 가졌던 꿈과 포부에 따라서?
고등학교 성적에 따라, 성적 맞춤형으로 대학과 전공을 정해서?
미래 소득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예측 하에?
개념 없이 인생이란 개똥 바닥을 구르다가?

사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느냐 하는 직업 선택의 기준은 학교에서 이미 교육받았다.
다만, 기억을 하지 못할 뿐이지.

중학교 교과서를 통해서 본 직업 선택의 세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아(自我) 실현을 할 수 있는가?

즉,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자아 실현의 도구가 될 수 없는 직업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자아 실현을 위해서는 그 직업에 대한 애착, 취미와 흥미, 적성이 중요하다.

둘째, 사회 참여를 할 수 있는가?

즉, 그 직업을 통해 Socialize(사회화) 할 수 있느냐? 사람과 어울리고, 직장이나 직업 사회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찾고, 사회에 기여하고, 그래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인가 하는 것이다.

셋째, 만족할만한 보상을 받는가?

즉, 그 직업을 통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금전적 소득과 복지를 제공받는가 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사실 중학교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건,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중학교 교과서에 있는 내용은 “인간의 속성”에 대한 내용이며, 그것을 맘대로 각색, 응용해서 만든 <직업의 선택 기준>이다.

아무튼, 인간의 속성에는 사회 참여의 속성과 자아 실현의 속성이 있으므로 이 둘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적당한 금전적 보상이 있어야겠다.

그런데, 과연 나는 이 세가지 기준을 만족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나?


- III -

전설(Legend)과 같은 이야기들이 전해 온다.

말도 안 되는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근성”하나만으로 자기의 직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바로 그 전설 말이다.

그 전설의 인물들은 소방관, 경찰, 상사(商社) 맨들, 열사(熱沙)의 나라에 간 해외건설업체의 근로자들 등이다.

한 때 그 전설의 직업에 의사와 기자도 있었다.

일 주일 내내 샤워 한 번 못하고 환자 밥을 대신 먹어가면서 중환자실에서 앰부를 짜면서 100 파인트가 넘는 수혈을 해가며 환자를 살려보겠다고 밤을 새워가는 젊은 전공의. 

그래 봐야 대졸 초급 직장인 급여의 절반도 받지 못했다.

어깨에 가방 하나 둘러메고, 경찰서 당직실과 유치장을 오가며 “특종”하나 해 보겠다며 밤을 낮처럼 새우고도 또 사건 현장을 달려가는 신참이나, 거침없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겁 없이 장차관은 물론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퍼부은 고참 기자들도 있었다.


- IV -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비현실적이고,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요즘이다. 그들에게 지금은…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더 안락하고, 인생을 좀 더 즐기며,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고 주요 쟁점인 시대이다.

직장은 내 머리와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오는 곳이지 그곳에서 사회 참여를 통해 무언가를 획득한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는 끔찍한 일일 뿐이다.

자아 실현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직업을 통하거나 직장,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일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자아 실현 따위를 위해 뭘 더 해야 한다는 건 멍청한 짓일 뿐이다.

직업을 통한 소득은 많을수록 좋고, 직업 환경은 무조건 경쟁사보다 좋아야 하고, 나쁘면 옮기면 된다.

전설을 개뿔. 나는 소시민이다. 적당히 표 안 나게 일하고 소리 없이 나타났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면 된다. 나설 필요도 없고 무리할 필요는 더 더욱 없으며 세상을 책임질 이유도 없다.

내 관심은 복권과 보너스와 주말에 가족들과 어디 갈까 하는 것과 언제 강남에 내 집 마련할 수 있느냐 뿐이다.

사회가 제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도, 난 느긋하고 천천히 가면 된다. 세상과 소문엔 관심 없고, 내가 발끈할 때는 내 밥그릇 건드릴 때 뿐이다.


- V -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터졌다.
사건의 크기는 광고 수입과 비례한다.

퇴출 기자에게 새로운 활로이고, 이류 방송국에겐 떠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거기에 정의와 배려심과 팩트는 없다.

기자 짓은 먹고 살 방편일 뿐 인생의 목표도 아니다.

이런 ‘기레기’ 들과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얇은 귀, 뒷담화 DNA가 화학 반응을 일으켜,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코 앞에 둔 선거로 사건의 본질은 사라진 체 좌우 진영 모두에게 먹잇감이 되고 있다.

그들에게 기자 윤리, 기자 정신 따위는 오간 곳이 없다.

물론 기자 전체가 그렇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기레기들도 할 말이 있다.

나에게 ‘근성’과 프로 정신(Professionalism)을 요구하는 너는 무엇이냐? 과연 너는 그러하냐?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어떠한가?
그런 근성을 가진 과거 전설들과 유사한가? 
프로 정신, 직업 윤리로 무장되어 있는가?

나는 프로인가?



2014년 4월 29일

새로운 시작, 우리의 나아갈 바에 대하여 / 의협 정총에 즈음하여



2014년은 여러 모로, 의협 사(史)에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의협이 만들어진 이후 최초로 총회에서 회장이 불신임 받는 기록을 남겼고, 한 달 사이에 총회를 세 번이나 개최한 기록도 남기게 되었다.

의료계는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
짧게는 최근 2년, 길게는 지난 14년 동안의 의협 사가 그랬다.

지난 99년 유성희 회장이래 3년의 회장 임기를 제대로 채운 회장은 단 2명 뿐이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 두 명의 회장의 임기를 제외한 8년 동안 회장 대행까지 무려 7명의 회장이 자리를 바꾸었다.

협회는 다양한 고유 업무 외에도 대의원총회가 의결한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하는 중장기 업무를 집행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는 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 

회장이 바뀌면서 임원도 덩달아 바뀌게 되어, 대관 업무의 일관성이 사라지고, 복지부나 국회 등 주요 기관도 의협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번 정기 총회는 지난 2년 여간 노환규 전 회장이 남긴 갈등을 봉합하고 정관 미비 사항을 보완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변영우 의장은 “의협 대통합 혁신위원회” 구성을 제안했고, 총회는 이를 의결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노 전 회장은 임총 의결에 불복하여 효력 가처분 신청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지금도 여전히 페이스북을 통해 사원총회 개최를 주장하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또 60일 이내에 잔여 임기 1년을 채울 신임 회장을 선출해야 하며, 1년 후에는 새로운 회장을 다시 선출해야 한다.

투쟁은 종결된 것이 아니며, 지난 임총에서 의결된 비대위도 활동을 개시해야 한다.

노 전 회장이 정부와 체결한 제2차의정협상 결과에 대한 처리도 남아있다.

따라서 4.27총선은 마무리가 아닌 새로운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늘 그렇지만, 우리는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교훈을 얻지 못하는 실수는 상처와 갈등만 남길 뿐이다.


뼈 아픈 교훈

노 전 회장이 강력한 지지를 받고 회장에 선출되었던 이유도 곱씹어봐야 한다.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다수 의사들이 절벽 끝으로 내몰린 절박한 심정에서 강력한 투쟁을 갈망하였기 때문이며, 이들은 노 전 회장이 그 투쟁을 이끌어 줄 메시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의료계 상황이 더 물러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사실(fact)과 노 전 회장이 의료계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환상(fantasy)가 오묘하게 결합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수렁에 빠진 의료계를 건져 올릴 수 있는 구원자가 될 수는 없다. 의료계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과 지난(至難)한 협상과 도전을 해야 할 뿐이다.

그런데도 의사들이 누군가 자신을 구해 줄 것 같은 판타지에 빠진 이유는 노 전 회장의 선동가적 기질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선동으로 실재(實在)하는 성과를 낼 수는 없다.

그건 마치 컨설턴트(Consultant)가 사업 컨설트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직접 사업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노 전 회장은 임상가로서의 경험보다 사업가(?)로서의 경험이 더 많고, 의사회 회무 경험이 없어 의료계 문제의 본질을 더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피상적이고 감각적인 의료 현안에 대한 선동에는 탁월할 수 있어도 그것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미숙할 수 밖에 없었다.

사업을 컨설트(consult)하는 것과 사업을 수행(execution)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컨설턴트는 대부분 그 용역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이 사업은 안 된다’거나 ‘어렵다’고 하지 않으며, 대부분 장밋빛 그림을 그려 주는데 익숙하다. ‘안 된다’고 하는 컨설턴트에게는 누구도 용역을 의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 전 회장의 그 장밋빛 그림에 다 속은 것이다.

어쩌면 그가 만든 전의총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며 의협을 견제하는 의료계 시민단체의 역할을 하는 편이 오히려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선택도 우리의 판단이었으므로, 그 결과 역시 승복해야 한다. 그로 인해 소비한 수 년 간의 시간과 쓸모 없이 낭비한 회비, 실추된 의협의 권위와 신뢰, 깊어진 내부 갈등과 반목 등 모두 우리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이렇게 망실(亡失)한 자원을 통해서 그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다면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의협 대 통합 혁신위원회에 거는 기대

이번 정총에서 변영우 의장이 지적했듯 의협은 지난 갈등을 봉합하고, 대폭 늘어난 의사들의 민의를 반영할 수 있도록 정관 전면 재개정의 필요성이 있다. 

의협 건물이 낡았듯 정관 역시 필요에 따라 부분 개정을 하여 누더기처럼 낡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회원 수 만 명에 소수 의료계 지도자들에 의해 운영되었던 의협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훨씬 더 많은 회원과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하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낡고, 좁아진 옷을 입고 있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정관 개정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고, 또 이미 수 차례 정관 개정안을 만들고 폐기하기를 거듭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정관 개정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마치 헌법을 전면 개정하는 것과도 같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의견이 다른 수 많은 직능, 지역 단체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고 만족할 수 있는 정관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정관 개정의 필요성이 누적되었고, 다수 회원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1년 동안 정관 개정 작업을 통해 내년 정총에 정관 개정안을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의협 대통합 혁신위원회가 이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대통합은 오히려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정관 개정은 갈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관 개정에 참여하는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낮출 필요가 있다. 과거의 예를 보면, 정관 개정 때마다 소수의 목소리가 주도하고 나머지 다수는 끌려가는 형국을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변영우 의장이 주장한 정관 개정의 필요성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이를 잘 조율하고 통제할 필요가 있으며, 의료계 지도자들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의료 정책 위원회’와 ‘보험 정책 위원회’의 필요성

원래 의협 조직과 업무는, 정관과 규정에 따르면, 회무의 대부분은 상임이사에 의해 추진되며, 각각의 상임이사는 총회에서 수임 받은 사항에 따라 그 업무를 추진하게 된다.

그래서 추진하고 있는 내용을 매주 열리는 상임이사회에 보고하고, 주요 결정 사항은 토의 안건으로 제출하여 상임이사회에서 심의한 후 의결하도록 되어 있다.

즉, 각각의 상임이사는 독립된 추진 기구이며, 협회 사무처는 이 업무를 보조한다.

또, 각 지역, 직역의 입장을 듣고 주요 업무의 추진 방향을 정하기 위해 각각의 상임이사가 위원장이 되고 각 지역, 직역의 해당 상임이사들이 위원이 되는 독립된 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

회장은 회를 대표하고, 상임이사를 선임하고 회의를 주관할 뿐 실무를 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노 전 회장은 모든 주요 업무를 스스로 추진하려고 하면서 독단적 결정을 수 차례 반복한 바 있다.

노 전 회장이 가장 크게 잘못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

협회 업무 구조가 이렇게 상임이사 위주로 구성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한편, 현 정관과 규정에 따라 업무 추진 방식은 20년 이전에는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방식이었으나, 현재의 회장 선출 방식과 정부와의 갈등, 급박하게 바뀌는 의료제도, 보험정책에는 맞지 않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지난 10여년간 협회 업무 추진의 결과를 볼 때, 빈번한 상임 이사 교체로 인해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졌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장기 정책을 정해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번 정관 개정을 통해 이를 보강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사실 이 같은 필요성은 이미 언급된 바 있어, 지난 97년 상근부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정책협의회” 운영 규정을 마련하여, 주요 회무계획과 정책 개발을 하도록 한 바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유명무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협회의 장기 정책을 꾸려가는데 매우 중요하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실화되지 못한 것은 각 집행부들이 그 같은 위원회를 구성할 경우 자신의 업무 영역을 침범한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번에 정관 개정을 하게 될 경우, 업무 추진은 현행과 같이 소관 상임이사들이 하더라도 협회의 주요 정책 개발과 그 아젠다 구성을 위한 별도의 의결 기구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즉, 가칭 ‘의료 정책 위원회’와 ‘보험 정책 위원회’를 따로 두고, 이 위원회를 의료계 내의 의료 정책과 보험 정책에 대해 내공이 깊은 회원들과 각 직역, 지역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인사들로 구성하여 그 안에서 주요 의료 정책과 보험 정책 방향을 정하고 이를 장기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집행부 임기와 무관하게 장기간 위원회를 이끌도록 하여 정책 개발과 추진의 연속성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보험의 경우, 집행부 보험 이사 중 1인은 이 위원회의 위원이나 위원회가 추천하는 인사로 임명하여 건정심에 오랫동안 관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비대위와 새로운 집행부가 해야 할 일

지난 임총에서 의결된 비대위는 투쟁을 이끌고, 새로운 집행부는 협회 고유 업무를 담당하여야 한다.

우리는 늘, 정부에 대해 의료계의 어려움을 알아달라고 하고, 정책 개선을 요구하지만, 늘 피상적 현안에 대해서만 주장할 뿐,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고 정책 제안을 하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나도 늘 같은 자리에서 맴 돌 뿐이다.

차제에 비대위가 주축이 되어, 이 작업을 해야 한다.

정책 대안을 만들고, 이를 회원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반면 지난 노 전 회장이 이끈 투쟁의 가장 큰 문제점은 투쟁 아젠다를 노 전 회장이나 소수의 몇 명이 결정하고 회원들로 하여금 이를 따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전쟁의 명분이 중요하듯 투쟁의 명분도 중요하다.

투쟁은 회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이 하는 것이며, 회원들은 왜,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 지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쟁 아젠다 선정을 위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전체 회원이 참여할 수 있는 토의와 숙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렇게 투쟁 아젠다가 결정되면, 이를 교육하고 숙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즉, 투쟁 아젠다는 상향식으로 결정하고, 이 아젠다에 대한 교육은 다시 하향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 협회는 중앙회인 의협을 중심으로 지역적으로 시도의사회, 시군구의사회, 반회로 이루어진 조직망이 있고, 직역으로는 전공협의회, 공보의협의회, 교수협의회, 의학회, 병원의사협의회, 개원의협의회, 각과 개원의사회 등으로 세분되어 있다.

이처럼 씨줄과 날줄로 만들어진 전체 조직을 가동하여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수 백 명이 모인 회의체에서 투쟁 아젠다를 선정하여 제출하고, 이 아젠다가 비대위에서 결정되면, 다시 이 조직체들을 통해 교육하고 숙지하도록 하여 투쟁에 대해 한 마음, 한 뜻이 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014년 4월 27일

우리는 신이 아니다.




응급실로 실려 들어 온 환자가 응급실 자원을 다 투입하고, 서너명의 의사가 매달려도 허망하게 사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담당 의사는 제일 괴롭고 곤혹스러운 절차를 남기게 됩니다.

바로 사망 선언과 보호자에게 환자 사망을 통보하는 것입니다.

사고 유형과 환자 상태에 따라서는 이미 보호자들도 스스로 포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 예를 들어 평소에 멀쩡했던 환자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거나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 경우에는 미처 마음의 준비가 되지 못한지라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터져 나오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다 필요없고, 살려놔라."

의사가 자기 환자의 사망을 애도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의사가 말하는 미안하다는 것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환자를 놓친 것이 미안하다는 것인데, 그 말이 잘못 이해되면, 내가 잘못해서 미안하다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 한 마디가 화근이 되어, 멱살을 잡히고, 빰을 맞고, 소송을 당하기도 합니다.

의사는 신이 아닙니다.
의사는 수퍼맨도 아닙니다.

그의 지식과 능력의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재수없게 그런 의사를 만나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운 좋게' 그런 의사를 만나서 좋은 결과를 얻은 환자는 수백배 더 많을 것입니다.

저는 긴급 구조에 투입된 구조대 (해경, UDT, 민간 다이버들 등) 모두 그들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도대체 그 어떤 해경이나 지휘부가 아이들 구조에 몸 사리고, 이것 저것 가리고 따졌을까요?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정부의 잘못이 크다고 하지만, 한 명의 아이라도 구조해야 한다는 마음은 대통령이나, 총리나 장관도 마찬가지이고 어쩌면 부모만큼이나 절박하고 애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을 대통령으로 둔 것이 아닙니다.
수퍼맨을 총리로, 장관으로 둔 것이 아닙니다.

우왕좌왕하고 실수하고 잘못한 부분, 그래서 책임을 묻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은 또 그렇게 하면 됩니다.

국민들도 잊지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아직 다 수습되지 않은 지금, 정부 관계자의 말 한 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트집잡고, 의혹을 가지고, 딴지를 걸어대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구조는 포기하겠습니까?
이제 사망 선언을 해도 좋겠습니까?

지금 선정적 기사, 저열한 가십으로 도배하는 언론,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쏟아내는 기사, 근거없는 루머와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는 자들은 이미 멍든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에 또 한번 상처를 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 사고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사고이며, 본질적으로 그 둘의 관계입니다.

정부는 피해자 편에서 사고 대처와 구조를 하는 것이며, 국민들 역시 이 편에 서야 합니다.

따라서 이 상황을 악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국민의 이름으로 규탄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정부의 지휘를 믿고 따를 때입니다. 불신과 의혹으로 구조와 수습이 방해되어서는 안됩니다.

정부의 잘못을 가리고, 이를 비난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미디어 엘리트"라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우리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갖는다”고 하고 있다. 
(헌법 제21조 1항)

이 때 ‘언론’은 말할 자유(Speech)를 의미한다. 신문 방송에 대한 자유는 ‘출판’의 자유에 속한다.

말할 자유가 있다고 하여도 그 자유가 무제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 찬양을 떠들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며, 남을 비방할 목적으로 떠들거나 글을 쓰면 형법에 따라 처벌되고, 비방할 목적이 아니었고 사실을 말했다고 하여도, 공연히 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명예를 훼손하면, 이 역시 형법에 따라 처벌된다.

또, 사실이든 거짓이든 남을 비방할 목적으로 페북이나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는 정보통신보호법으로 가중 처벌한다.

이렇게 언론의 자유가 무제한 허용되는 것이 아닌 이유는, 헌법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다음과 같이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헌법 제21조 4항)

그럼에도 “언론의 자유(Freedom of speech)”라는 깃발을 전가의 보도인양 흔들어 되며 마구 아무 말이나 하고, 아무 글이나 쓰고 있다.

또 언론의 자유만큼이나 흔들어 대는 또 다른 깃발은 “국민의 알 권리”이다. 
이 깃발을 흔드는 자들은 신문 방송 등 미디어 매체이다. (이 알 권리는 법으로 보장되는 것이며 법적 용어이다.)

현재 우리나라 미디어 (신문, 잡지, 인터넷 신문 등) 창업은 모두 등록제로 되어 있어 누구나 매체를 만들고 소유할 수 있다. 

또 굳이 신문의 형태를 갖지 않는다고 해도 요즘 미디어의 생산과 소비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를 Media Prosumer(Producer + Consumer) 라고 한다. 

이렇게 제한 없이 만들어지는 매체와 Prosumer 들이 양산해내는 정보와 이 정보들을 퍼 날라 다시 확대재생산 되는 양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정론과 B급 언론 (yellow journalism)의 경계를 무너트리며 국민들을 정보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는 “제대로 알 권리”를 의미한다.

때문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매체 즉, 악의적이며 의도적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선동하기 위한 언론 매체는 척결되어야 한다.

이 같은 언론 규제를 헌법이 보장한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이는 헌법에서도 다음과 같이 보장하고 있다.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헌법 제21조 4항)

즉, 방송과 신문의 제 기능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법으로 규율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규율 하는 법률은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그리고 “방송법” 등이 있다.

이 법들이 신문과 방송에 어떤 의무를 부여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어떻게 규율 하는 지를 보자.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조(신문 등의 자유와 책임)
① 신문 및 인터넷신문에 대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
② 신문 및 인터넷신문은 제1항의 언론자유의 하나로서 정보원에 대하여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그 취재한 정보를 자유로이 공표할 자유를 갖는다.
③ 신문 및 인터넷신문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여야 한다.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
제5조(뉴스통신의 공정성과 공익성)
① 뉴스통신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성별•연령•직업•종교•신념•계층•지역•인종 등을 이유로 차별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
② 뉴스통신은 국민의 윤리적•정서적 감정을 존중하여야 한다.
③ 뉴스통신은 국민의 기본권 옹호 및 국제친선의 증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④ 뉴스통신은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신장(伸張)하여야 한다.
⑤ 뉴스통신은 지역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⑥ 뉴스통신은 정부 또는 특정 집단의 정책 등을 공표할 때 의견이 다른 집단에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각 정치적 이해당사자에 관한 편집에서도 균형이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

방송법
5조(방송의 공적 책임)
①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여야 한다.
②방송은 국민의 화합과 조화로운 국가의 발전 및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지역간•세대간•계층간•성별간의 갈등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된다.
③방송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④방송은 범죄 및 부도덕한 행위나 사행심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된다.
⑤방송은 건전한 가정생활과 아동 및 청소년의 선도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음란•퇴폐 또는 폭력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된다.

제6조(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①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②방송은 성별•연령•직업•종교•신념•계층•지역•인종등을 이유로 방송편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 다만, 종교의 선교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가 그 방송분야의 범위 안에서 방송을 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방송은 국민의 윤리적•정서적 감정을 존중하여야 하며, 국민의 기본권 옹호 및 국제친선의 증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④방송은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신장하여야 한다.
⑤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⑥방송은 지역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⑦방송은 사회교육기능을 신장하고, 유익한 생활정보를 확산•보급하며, 국민의 문화생활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⑧방송은 표준말의 보급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언어순화에 힘써야 한다.
⑨방송은 정부 또는 특정 집단의 정책등을 공표함에 있어 의견이 다른 집단에게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또한 각 정치적 이해 당사자에 관한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함에 있어서도 균형성이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

과연 언론 매체들은 헌법과 이 법률에 따라 국민의 올바른 알 권리를 위해 법적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선정적이고 편향적 보도,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선동, 품위나 품격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는 표피적인 내용과 믿을 수 없는 취재원, 비 전문가인 인터뷰이 (interviewee)를 통해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가?

언론 매체가 해야 할 역할은 진실한 정보를 대중에게 제공하여, 건전한 토론의 장이 열리도록 하고, 국민들이 사실에 접근해 사리분별을 할 수 있도록 하여, 국민의 주권적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십과 관음증을 유발하고, 대중이 선호하는 정보만을 제공하여 분열을 야기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언론은 ‘악’이다.

악은 제거함이 맞다.

다시 말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출판의 자유는 무제한 적인 것이 아니며, Prosumer 들은 자신의 말과 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언론매체들은 이를 넘어서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녀야 하며, 나아가 국민의 올바른 알 권리를 충족시켜 건전한 토론과 주권의 권리 행사를 하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방임하거나 언론의 자유란 구호 뒤에 숨어 사회를 분열시키고, 싸구려 선동을 책동하는 언론에게는 철퇴를 가함이 맞다.

정보 소비자인 국민은 바른 언론과 바른 정보를 구분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바른 언론과 바른 정보를 판단하는 가이드 라인은 이렇게 볼 수 있다.

첫째, 정보의 취재원을 믿을 수 있는가? 그는 전문적이며, 명망이 있는가?둘째, 언론과 매체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반론도 동시에 제공하고 있는가? 편향적이지 않은가?셋째, 이 정보는 일방적 비방인가 아니면 대안 있는 비판인가?넷째, 이 정보는 내가 민주적 주권을 행사하도록 도움을 주는가?다섯째, 이 언론 매체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을 때 공식적으로 정정하고 사과한 적이 있는가?


아래 내용은 미국 드라마 “newsroom”에서 주인공인 앵커가 자신의 방송을 통해 지난 방송에 대한 사과와 새로운 각오를 밝힌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첫 이탤릭 체의 내용은 부시 행정부의 테러 책임자가 청문회에서 실제 발언한 내용이다.

(리차드 클락)
저는 이번 청문회를 환영합니다.

그 이유는 이런 기회를 통해 왜 9/11사태가 발생했으며 이러한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국민 여러분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번 청문회를 빌어 9/11의 희생자와 유가족에 사과의 말씀을 드릴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 합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분들께 또 현재 TV로 시청하시는 시청자 여러분께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의 정부는 여러분을 실망 시켰습니다.
여러분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진 사람들이 여러분을 실망 시켰습니다.

저도 여러분을 실망 시켰습니다.

(앵커)
안녕하십니까

윌 매커보이 입니다. News Night입니다.

방금 보신 화면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 테러 최고책임자였던 리차드 클락이 2004년 3월 24일 하원청문회에서 증언하는 장면입니다.

우리 미국인들은 그런 모습을 좋아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성인이라면 실패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방송의 시작은 클락 씨와 마찬가지로 저도 국민 여러분께 잘못에 대한 사과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본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재직하는 동안 유권자 여러분께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고 교육시켜드리지 못한 점 사과 드립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할 점은 제가 드리는 사과는 모든 방송 언론인을 대표한 사과가 아니며 또한 모든 방송언론인이 사과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제 자신에 국한시켜 말씀 드립니다. 

저는 재난과도 같은 작금의 현실을 초래한 오랜 기간, 반복되었으면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고치려고 하지도 않은 엄청난 실수와 잘못을 같이 저지른 공범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선거결과를 잘못 판정하고, 테러 위협을 부풀리며, 논란을 부채질하고, 이 나라의 지각변동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 업계에서 리더의 자리에 있습니다. 

금융시스템의 붕괴로부터, 우리가 정말 강한 나라인지에 대한 진실, 우리 앞에 놓인 위험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또한 제가 리더로 있는 이 업계는 정확한 상황파악도 없이 우리의 수십만에 달하는 용감한 젊은이들이 전쟁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후디니(Harry Houdini: 20세기 초의 유명한 스턴트맨)에 비견될 만한 능수능란함으로 여러분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렸습니다. 

저희가 실패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청률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매스컴이 처음 탄생했을 때 방송 언론의 콜럼버스이자 마젤란이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페일리와 데이빗 사노프는 워싱턴에 가서 의회와 거래를 했습니다. 

의회는 갓 태어난 방송사들이 납세자의 소유인 전파를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해주는 대신 한가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습니다. 그 공공서비스란 매일 저녁 1시간 씩 정보를 전하는 방송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저녁뉴스라고 부르죠. 

광고가 방송을 통해 소비자에게 미칠 엄청난 파급 효과를 예측하지 못했던 의회는 이 나라의 국민적인 담론의 수준을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일 수 있었던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을 거래에 포함시키지 못했습니다. 

정보방송을 할 때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유료광고를 넣을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간과하고 포함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의회가 잊고 하지 못했던 말은 우리가 전파를 무료로 사용하도록 해줄 테니 하루 중 23 시간은 이윤추구에 사용하고 저녁 1시간은 우리를 위해 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저희에게는 이윤이 많이 남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News Night 은 지금 이 시간 부로 그런 관행에서 손을 뗍니다. 놀라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오랜 경력에 뛰어난 두뇌와 감각을 지니고 뉴스 보도에 대해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언론인들이 아직도 활동 중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소수에 불과합니다. 서커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선정성과 흥미 일변도의 보도와 맞붙는다면 절대 승산이 없습니다. 

역부족이죠 저는 이제 그 서커스를 관둡니다. 팀을 바꾸겠습니다. 연일 패배에 휘청거리는 그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아직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에 감명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한두 수 배우고자 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무엇을 어떻게 방송할지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확한 정보가 주어진 현명한 유권자라는 단순한 진리를 기준으로 결정할 겁니다. 

폭넓은 관점에서 정보를 다루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네트웍을 통해 수집 된 정보는 그 자체 만으로는 뉴스가 탄생하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팩트를 신봉할 것이며 간접 비방, 추측, 과장, 불합리의 천적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손님의 구미에 맞춰 스토리를 요리해서 내놓는 레스토랑의 웨이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오직 팩트 만을 쏟아 내는 컴퓨터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뉴스는 인간이라는 컨텍스트(context) 하에서만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함에 주저하지도 않겠습니다. 동시에 제 의견과 다른 합리적인 현명한 의견에도 여러분이 노출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너희들이 대체 뭔데 이런 결정을 하느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란 저와 맥켄지 맥헤일입니다. 맥헤일은 책임PD로써100명이 넘는 기자, PD 분석팀, 기술진을 총지휘합니다. 맥헤일 씨의 경력은 얼마든지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News Night의 책임 편집장으로서 본 프로그램에서 여러분이 보고 듣는 모든 내용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결정을 하는 우리가 누구냐구요?

저희가 바로 미디어 엘리트입니다. 잠시 후 뉴스를 시작하겠습니다. 



2014년 4월 24일

특혜의 정도가 사회적 실익의 정도를 넘어서는 것인가?




보건복지부는 23일 "신의료기술평가 통과 이전 일정 의료기관에 한해 예외적으로 진료를 허용하는 제한적 의료기술평가제도 도입을 담은 '신의료기술 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24일 개정 공포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현재, 매년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의료 행위들이 있는데, 이 행위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거쳐 신의료기술로 평가를 획득해야, 건강보험에서 급여로 할 것인지 아니면 비급여로 남겨 둘 것인지를 정해 환자에게 시행할 수가 있다. (급여로 한다는 것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즉, 신의료기술로 평가 받지 못한 의료행위나, 급여 혹은 비급여로 결정되지 않는 행위를 환자에게 제공하고 진료비를 받을 경우 이를 “임의 비급여”라고 하며 불법행위로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개정안의 표면적 이유는, 대체치료기술이 없는 질환이나 희귀질환의 경우, 의료법에 따른 신의료기술 평가를 인정받지 않았다고 해도, 비급여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모든 행위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며, 안전성은 확인되나 유효성에 대한 근거가 부족한 경우 중 대체 치료기술이 없는 것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며 현재 9개 행위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또, 이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모든 의료기관이 아니며 제한된 의료기관 (아마도 상급종합병원 중 신청기관으로 제한할 가능성 높아 보인다)에서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9개 기술에는 관절 불유합 환자의 줄기세포 치료, 심근경색 환자의 줄기세포 치료, 당뇨 환자의 하지 허혈에 대한 줄기세포 치료 등 줄기세포 치료 항목이 유난히 많다.

줄기세포 치료는 사실 신의료기술이라기보다는 “신약물”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

줄기세포 치료는 신약을 개발하듯, 동물 실험과 임상 실험 등을 통해 안전성, 유효성을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줄기세포 치료는 보통의 신약을 개발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약물을 주사 맞거나 약을 먹듯이 인체 실험을 할 수가 어렵다. 이것이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관절 불유합 환자의 줄기세포 치료, 심근경색 환자의 줄기세포 치료, 당뇨 환자의 줄기세포 치료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치료제와 치료 방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는 것은 환자가 제한되며, 그 환자의 줄기세포를 사용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폭넓은 실험을 통해 안전성, 유효성을 획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 행위의 안전성, 유효성은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안전성, 유효성이 담보된, 신의료기술로 인정받는 행위만 허용하는 것은 일견 당위성 있어 보이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 당위성이 새로운 의료기술과 약물의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규정을 완화하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의료 기술 개발을 적극 고려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를 더 깊숙이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이는 돈 문제로 귀결된다.

왜냐면 법이 다루는 규제는 신의료기술로 등재되지 않았으면, 급여나 비급여로 돈을 받지 말라는 것이지, 그 행위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의료기술이 있고, 그 기술이 신의료기술로 평가 받지 않았다면, 연구자나 약물을 개발하려는 기관, 회사, 병원 등은 임상 시험 대상자의 동의 하에 <돈을 받지 않고> 치료를 제공하거나, 혹은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임상적인 안전성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의료 행위의 임상 적용은 법으로 규정된다기 보다는 윤리적인 문제이며, 대개 이런 경우 병원 내에 설치된 임상시험윤리위원회(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 의 승인을 거치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규정 개정의 의미는 연구자 (줄기세포를 개발해 상품화하려는 기관, 회사, 병원 등)가 비급여로 환자에게 돈을 받아가며 그 치료 기술의 안전성, 유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예상할 수 있는 문제는 만약, 부작용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같은 행위라고 해도, 임상 시험의 경우 피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받겠다는 동의 하에 진행하게 되므로, 사실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물론 도덕적 책임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성 유효성이 확립되지 못한, 그래서 신의료기술로 평가되지 못한 행위를 비급여로 환자에게 돈을 받고 행위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용하고 이를 시행하였다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과연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것이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래서,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해당 신의료기술 치료 환자의 예상치 못한 상황 발생 등 불안감에 대비하기 위해 별도 사보험 가입비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라며, 국고 4억5천만원을 들여 사보험에 가입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를 생각해 보려면, 과연 이 조치의 수혜자는 누가 될지 생각해 보는 것이 빠르다.

이 신의료기술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의료기기 회사, 의약품이나 줄기세포와 같은 신약물의 개발, 제조 회사가 우선 수혜자가 될 것이다.

정부가 피험자를 모아주고, 피험자에 대한 임상시험비용 역시 낼 필요가 없고, 만약의 사태에 대해 그 피험자에 대한 보험까지 지원해 주니, 이들 기관, 회사들로써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일 것이다.

또, 이 의료기술을 시행하고 비급여로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특정 병원들이 수혜자가 된다.
요즘 대학병원, 대형병원들도 어렵다는데, 이 규정 개정이 조금이나마 혜택이 될 것이며, 나아가 이 같은 줄기세포 개발에 따른 지분을 요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의 임상을 적용하여 새로운 의료기술을 창출해 내게 될 의사도 수혜자라고 볼 수 있다.
이 치료 방법이 개발된다면, 이에 대한 학문적 업적은 물론이고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대체 치료 방법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했을 환자도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임상 시험으로 진행되었다면 공짜로 받았을 치료를 정부가 의료기술로 간주해 돈을 내도록 한 것이 못 마땅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안전성, 유효성이 확보되어 새로운 의료기술로 개발된다면, 잠재적 환자들 역시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실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옆집 아저씨도 좋은 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의료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선도할 경우, 의료산업화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바램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산업 분야에 정책 자금을 투입하는 것에 비하면 사실 이 정도 정부 투자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정부는 복권 사는 심정으로 “약간의 돈”을 베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렇게 길을 열어줘서 새로운 의료기술을 개발하면 대박이고, 안 되도 그만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럼, 다 만족하니, 이 규정 개정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정부가 가진 고유의 정책 권한으로 소정(?)의 국고를 투입하여 새로운 기술기반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는데, 4대강 사업처럼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엄청난 특혜를 주자는 것도 아니니 일견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에게는 특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그 특혜의 정도와 사회적 실익의 정도를 비교하여, 사회적 실익이 더 큰 경우에는 그 특혜를 묵인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이 가치 기준에서 보자면, 신의료기술이 아닌 즉, 유효성, 안전성이 담보되지 못한 줄기세포 치료의 사회적 실익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만일 규제 완화라는 특혜와, 돈을 받고 임상 시험할 수 있다는 특혜와, 국고를 지원해서 보험료를 내준다는 특혜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치료의 유효성을 결국 검증하지 못하거나, 안전성이 담보되지 못해 치료 방법으로 쓸 수 없다면, 

특혜의 정도가 사회적 실익의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어느 국가든 신약 개발에 국고를 함부로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신약 개발 뿐 아니라 그 어떤 새로운 창조적 기술에도 국고를 함부로 남용하고 특혜를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이를 개발코자 하는 자는 자신의 능력으로 최소한의 기술적 가치를 담보(guarantee )하여, 그것을 발전시키는 데에 특혜를 주어도, 그 특혜에 비해 미래의 사회적 실익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때에 특혜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특혜를 주는 것은 “먹튀”를 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정부의 조급증과 부조리, 일부의 사기 행각에 밀려 국고가 그런 식으로 낭비되고, 특혜를 받아 자기의 잇속만 챙기는 사례를 숱하게 보아왔다.

그럼에도 이 같은 고질적 관행이 바뀌지 않는 것은,

특혜의 정도가 사회적 실익의 정도를 넘어서는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고 반복적인 질문을 던지는 공무원이 부족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규정 개정의 적용도 이 같은 숙고와 고민 속에 이루어지길 바란다.



2014년 4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