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9, 2014

Shallow water blackout에 대하여



이제 바캉스 시즌이 다가온다.

바캉스가 시작되면 전국 바닷가, 휴양지 부근 병원 응급실은 만원 사태를 이루게 되는데, 물론 가장 흔한 질환은 휴양지 음식을 잘못 먹고 생긴 여름철 장염이나, 에어컨을 틀어놓고 잠이 들어 생긴 여름철 감기와 같은 가벼운 질환이 대부분이지만, 평소 심장 질환이나 심근경색의 소인을 가지고 휴가를 왔다가 객사하는 것 같은 심각한 경우도 드물지 않게 생긴다.

따라서 만일 심근경색의 과거력이 있거나, 고혈압 당뇨를 오래 앓고 있는 노인의 경우, 휴가지 부근의 응급의료센터가 어디에 있는지 미리 알아 두고, 휴가를 가기 전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 니트로글리세린 알약이나 스프레이를 가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하는 경우라면 상비약으로 기내에 지참하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언제 이 약을 사용하고,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대해서도 숙지할 필요가 있다.

한편, 계곡이나 바닷가에서는 여름철 익수 사고가 빈번한데, 우리나라의 익수 사고에 대한 구체적 통계가 없어 국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전세계적으로 해마다 물에 빠져 사망하는 사망자 수는 35만명에 달하며, 미국의 경우 평균 해마다 1만 명 가량이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는데, 이 중의 40% 가량이 사망한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수치는 공식적으로 익수가 확인된 통계이므로, 사실 익수 사고나 익사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이며, 한 국제 단체는 방글라데시의 경우 매일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익수 사고는 자동차 사고 다음으로 빈번한 사고이며, 자동차 사고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를 내는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익수 사고라고 하면, 수영장이나 계곡을 가지 않는 자신과는 무관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역시 미국의 통계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미국의 경우 해마다 약 1,000 명 가량이 욕조에서 익수 사고를 당하는데, 이 중 40%는 사망한다. 미국에서 통계에 잡힌 익수 사고 건수가 평균 년 1만명 수준이므로 전체 익수 사고의 10%가 욕조에서 생긴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의 경우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경우가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욕조 익수 사고 역시 적은 수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또 익수 사고의 90%는 이 같은 욕조, 수영장, 강, 호수, 계곡 등의 민물에서 생기며, 바다에서 생기는 익수 사고는 10%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역시 바다보다는 강이나 계곡에서의 사고가 많은 편인데, 강이나 계곡에는 안전 요원이 없고, 유속이 빠르며 웅덩이와 와류가 있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사태가 더 자주 생기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공공이 사용하는 수영장은 물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수영장의 수도 엄청나게 많으므로 (미국 내에만 공공 수영장 36만개를 포함해 약 1천만개의 수영장이 있다고 함) 수영장 사고가 많아 전체 사고 건수의 60% 가량이 수영장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 수영장 익사 사고의 경우는 사고 건수에 비해 낮아 사망 사고의 17% 가량을 차지한다.

이는 역시 사고 시 이를 대처할 수 있는 안전요원이나 다른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익수 사고의 원인으로 꼭 눈 여겨 봐 두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대개 물에 빠지게 되면, 발버둥을 치면서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구출되게 되는데, 어떤 경우는 언제 물에 빠졌는지도 모르게 물 속에 가라앉아 사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뒤늦게 발견되므로 사망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지게 된다.

이런 경우는 특히 수영장이나 계곡, 강 등에서 자주 생기며, 바다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이런 경우는 대개 반복적으로 잠수를 하던 중 생긴다.

이런 사고를 “Shallow water blackout(SWB. 수면 실신)”이라고 하는데 매우 치명적이다.

SWB는 수영장이나 강, 바다 등에서 여러 번 반복적으로 잠수를 하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게 되는데, 만일 의식을 잃을 당시 다행이 하늘을 쳐다보고 수면에 뜬 상태로 의식을 잃으면 의식을 잃어도 호흡은 가능하므로 살 가능성이 높지만, 엎어진 체로 의식을 잃을 경우 잠시 떠 있다가 그대로 조용히 가라앉으면서 익사하게 된다.

SWB가 더 위험한 건, 이처럼 비교적 ‘조용히’ 익수 하기 때문에 발견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SWB와 같은 현상이 생길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과호흡(hyperventilation)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뇌 속에는 호흡, 심장 박동 등 생명과 관련된 생명 중추가 있는데, 이 생명 중추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호흡을 하게 하거나, 심박수를 조절한다.

호흡 중추는 뇌척수액 속의 산소 농도가 아니라 이산화탄소 농도 (즉 분압)의 영향을 받으며, 이산화탄소 수치가 높아지면 숨이 차다고 느끼게 되면서, 호흡 수를 늘리고, 반대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떨어지면 숨이 찬 것을 느끼지 못하며, 호흡 수를 낮추게 한다.

즉, 사람은 산소가 모자라서 숨을 헐떡이는 것이 아니라, 체내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숨을 헐떡이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잠수를 할 때, 잠수 전에 여러 번 깊은 호흡을 하고 물 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런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체내에는 호흡을 참음으로 산소 농도도 떨어지지만, 빈번한 과호흡 탓에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잠수 전 과호흡을 한다고 체내에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면, 대부분의 경우, 평소에도 이미 산소포화도는 97% 이상이 되기 때문이다.

즉, 잠수 전 과호흡은 호흡을 더 참기 위해, 즉 숨이 차다고 느끼는데 걸리는 시간을 더 연장시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잠수 전 과호흡을 반복할 경우에는, 체내에 산소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이산화탄소 농도 때문에 숨이 차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 만일 수심 5미터 혹은 그 이상으로 잠수를 하게 될 경우, 체내 산소는 수압을 받아 산소 분압이 높아져 세포로의 산소 확산(diffusion)이 용이하게 되지만, 점차 더 산소를 소모한 상태에서 수면으로 상승하게 되면, 체내 산소가 점차 감소된 상태에서 수압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어, 산소 분압 마저 떨어지게 되므로 뇌 속의 산소가 모자라 Blackout 즉, 실신하게 된다.

그래서 대개 이런 경우, 수면에 올라 온 후 실신하기도 하지만, 올라오는 도중에 실신하기도 한다. 이렇게 실신하면 잠수를 위해 의식적으로 호흡을 참고 있던 상태가 해제되면서, 뇌는 호흡을 명령하게 되고, 폐 속에 물이 차 위험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발견했을 때, 응급조치는 보통 익수한 경우와 같은 방법으로 하게 된다.

즉, 호흡과 심장 박동을 확인하고, 호흡이 없고 심장이 정지했다고 판단할 경우 바로 인공호흡과 심장 마사지를 시작하고, 자발 호흡과 심박동이 있다면 자극을 주어 의식을 깨우고 기침을 시켜, 폐에 차 있을지 모르는 물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폐에 물이 차지 않았고, 의식이 돌아오면 안정을 취하면 되지만, 호흡이 멈었다면 응급 처치 후 바로 병원으로 후송해야 하며, 의식과 자발 호흡은 돌아왔지만 폐 속에 물이 찼던 것으로 보이면 역시 병원으로 가서 전문의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


<직업 선택의 기준> - 사회구조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무엇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가?'는 좋은 의문이 아니다.

좋은 직장의 기준은, 어떤 직업(직장)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직업(직장)을 정할 때는 다음의 세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자기 완성'
둘째, '사회 참여'
셋째, '소득'

아무리 급여 수준이 높은 직장이라도, 그 일을 좋아하지 않고, 그것으로 자기 만족이나 자아실현의 계기를 삼을 수 없다면, 그건 좋은 직장(직업)이라고 할 수 없다.

좋은 직업(직장)이란, <자아 완성>의 계기가 되는 곳이다. 역으로 말해, 좋은 직장은, 직원들에게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할 수 있는 곳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늘 어딘가에 소속되길 원하며, 사회참여의 기준은 자아 완성의 기준만큼이나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사회 참여>란, 그 직장에 다님으로써, 소속감을 가질 수 있고, 사회적 안정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역설적으론, 이 같은 소속감을 제공할 수 있는 직장이 좋은 직장이다.

<소득>은 물론 많을 수록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경우, 년봉을 기준으로 소득 수준을 판단하는데, 사실 년봉 보다는 시급을 기준으로 급여 수준을 판단하도록 하는 형태가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웨이트레스는 시급 얼마, 택시 기사는 시급 얼마, 은행원은 시급 얼마, 의사나 변호사는 시급 얼마라는 식으로 가늠할 수 있으면, 소득 수준이 더 쉽게 비교될 수 있고, 거기에 주당 근무 시간을 알아, 이를 곱하면, 일자리에 따른 소득 비교가 훨씬 용이할 수 있다.

한편, 고용 시장의 국제적 추세는 우리나라의 정규직 형태보다는 계약직 형태로 옮겨가며, 파트 타임 고용과 좀 더 자유스런 채용과 해고를 통해 더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인데, 소위 평생 직장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 같은 추세를 따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 만일 누군가 나는 시간당 적어도 10만원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시간당 10만원 대 직업군에서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시간당 급여 수준이 높은 직장일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더 길고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하며,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적어도, 왜 중고생들이 어렵고 힘든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납득과 설명이 가능해진다.

한편으론, 나는 좀 더 쉬운 길을 가고 대신 시간당 3만원 정도의 급여를 원한다고 하면 그 수준의 직업군에서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면 된다.

문제는 사회 구조가 과연 이렇게 결정하고 선택한다고 과연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같은 사회 구조의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을 돌아보면, 중고생들은 꿈이나 목적을 설정하지 못한 체 방황하고 갈등하며, 사회 초년생들은 아무런 오리엔테이션 없이 지남력을 상실한 체 불만에 가득 차 사회를 향해 삿대질 하고 있을 뿐이며, 중년들은 막대한 교육비를 쓰면서 노후 대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체, 고용 불안에 허덕이며, 한편으로 불만과 방황으로 고민하는 자녀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애써 외면하고 있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교육자들은 교육자대로 눈 앞의 떨어진 이권과 이념만 가지고 다투고 잘못된 사회 구조 개선은 엄두도 내지 못한 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 오늘 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무조건 경쟁에 내몰고, 취향이나 능력은 무시된 체 성적에 맞추어 직업 선택이 강요되는 것은 인적 자원의 낭비이고, 업무 효율성을 떨어트리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약화 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이런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젊은이들이 미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다.

누구나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할 때, 그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하는데 요원한 이야기이다.

젊은이가 쓴 글에, 무엇을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로 고민과 갈등을 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관련 기사>



세상은 믿을만 한가?





만일 학교를 마치고 사회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세상은 아직 믿을만 하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오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굉장히 운이 좋은 삶을 살고 있거나 혹은, 멍청한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이건, 아니면 사회주의 사회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21세기 현대의 사회 구조로는 '믿을만한 삶'을 살기가 사실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믿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가족뿐이며, 때론 그 안에서도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친다.

의사나 변호사, 금융 자문가를 믿는 건, 그들이 전문가라 믿을 만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별 대안이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전문직종 중에, 전문가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손을 들어 "윤리 선언"과 같은 선언을 하는 직종은 의사나 간호사 정도이다. 대통령도 취임 시 선언을 하지만, 그건 국가에 대한 충성과 대통령 직에 대한 의무 선언이지, 윤리 정신을 선언하지는 않는다.

변호사나 세무사, 부동산 중개사가 그 직의 수행 전에 의무적으로 윤리 선언을 한다는 이야기는 불행히 듣지 못했다.

그러나 윤리가 필요한 건 의사나 간호사 뿐이 아니다.

윤리적이어야 하는 건, 변호사나 금융전문가 뿐 아니라 미용사나 주방에서 일하는 조리사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

우리는 미장원이나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매만지는 그들이 그들의 양심을 걸고 최선을 다한다고 믿을 수 있나?
(얼마 전 면도기를 두번 사용하면 벌금 50만원을 부과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주방에서 조리하는 요리사가 양심껏 청결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내게 집을 보여주는 부동산 중개사가 가장 튼튼하고 적절한 가격의 주택을 보여 주고 있다고 믿을 수 있나?

그걸 확신하는가?

또, 내게 금융 상품을 추천하는 은행원이나 보험/금융 상담사가 가장 안전하고, 수익율이 높은 상품을 권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혹시 그들은 안전성이나 수익율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미는 상품 혹은 자신이 받을 수수료가 가장 높은 상품을 권하는 건 아닌가?

금융상품을 파는 은행원이나 금융 상담사들은 자문을 할 뿐,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이니 그들에게 윤리를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의사도,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하고, 환자에게 수술 결정을 하도록 하며, 구매한 투자 상품의 자금 운용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 운용사에서 한다. 나는 투자금을 낼 뿐,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언제 주식을 사고 파는지, 얼마나 자주 회전하는지, 알 수도 없고, 안다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수술 결정은 환자가 하지만, 수술은 의사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술을 잘못 할 때만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다.

노후 자금을 몽땅 잃은 노인이 자살하는 일은, 수술 잘못으로 사망하는 경우 만큼이 빈번하다. 설령 자살하지 않더라도, 재산을 잃은 투자자는 수술을 잘못 받은 환자 만큼이나 오랫동안 고통스런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며 처음부터 거액의 수임료를 요구하는 건, 사실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교사는 어떨까?

우리는 그 교사가 아이들을 얼마나 잘 가르칠지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반사회적인 불온한 생각을 심어주거나 왜곡한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나?

그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는 것은 어리석으며 불손한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윤리 선언"이라도 하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는, 비행기를 조정하는 비행사나, 지하철이나 버스를 모는 이들이, 아니 내 옆에 차를 몰고 가는 운전사가 뱃속이 좋지 않아 빨리 화장실에 가려고 서두는 것이 아닌지, 술을 마셨거나 감기에 걸려 약을 먹고 몽롱한 체로 운전하는 것이 아닌지, 부부싸움 끝에 나와 화가 가시지 않아 난폭하게 운전하는 것은 아닌지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들을 믿고 옆에서 운전하며 갈 수 있을까?

해마다 수 백명이 죽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믿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있는데도?

인생이 복불복일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은 이렇듯, 불확실과 불신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받아들여야 할 엄연한 진리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돌아가는 건, 이 불신을 상쇄하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들이 있고, 사실 그래도 세상은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장치 중 하나는 바로, '법'이다.

의료법, 변호사법, 식품위생법과 민법, 형법 등으로 우리들 사이에 '그러지 말라'고 약속을 정하고 그걸 어길 경우, 처벌하고 보상하도록 규율을 정해 두고, 이를 시행하기 때문이며, 그것으로 '막 가는' 행동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법이란, 믿을 수 없는 세상이 그나마 돌아가게 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이 약속을 깨면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
즉, 처벌받아 인신이 구속되고 재산상 피해를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세상을 통제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행하는 '믿을 수 없는 행동' 모두를 법으로 규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장치 만으로는 믿을 수 없는 세상을 믿어가며 살 수 있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남들처럼 그냥 다소 멍청하게 살던지, 아니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주의깊게 살아야 한다.

이미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

방어 운전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방어 운전만 필요한 게 아니라, 방어 인생을 살아야 하며, 그걸 잘 하려면, 육감을 길러야 한다.

육감, 즉 6th sense는 부지불식 간에 내가 나 스스로에게 알람을 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설마?'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사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설마, 저 사람이 나한테..."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의 지력이나 판단력이 아닌 육감이 이미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에게 피하라고 사인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니, 육감을 기르거나, 육감이 뛰어난 사람 곁에 있는 편이 좋다.

네비게이터의 여성은 프로그램된 사실을 알려줄 뿐이지만, 마누라 말은 그래서 믿으라는 것이다. 보통 남자보다 여성이 육감이 뛰어나고, 여성보다는 마누라들이 육감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하게는 남자들의 육감이 여성에 비해 떨어진다고 보긴 어렵지만, 다만, 남자들은 자기 확신이 강해서 육감보다는 오감, 오감보다는 이성적 판단을 더 믿으려 하기 때문이다.

또 남자들의 문제는 육감이 보내는 사인보다는 '의리', '허세', '체면'을 더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통계학적으로, 미혼남이나 독신남의 수명이 짧은 이유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보다 마누라의 육감이 뛰어난 건, 보통 부인들의 경우 가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더 크고 가족 보호 본능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 보호 본능이 뚜렷하다보니, 육감이 발동하면, 의리나 허세, 체면 따윈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Fido Net 추억


Fido-Net Logo


1980년대 말에서 90년 대 초, PC 가격이 하락하고, 하드디스크 가격 역시 떨어지면서 PC가 더 많이 보급되고 더 많은 정보들이 저장되기 시작했고, 한편, 2400 BPS 모뎀의 보급으로 한국경제신문의 케텔(ketel. 1989년 말), 한국데이터통신의 PC-Serve(1990년) 등 대중을 위한 상용PC 통신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또, 이들 상용 통신망 외에도 개인이 호스트 시스템을 구축하여 전자게시판(BBS)형태의 통신시스템을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 하늘소 팀이 만든 통신 에뮬레이터인 이야기가 있었고, BBS 호스트 프로그램인 호롱불이 있었기에 훨씬 더 빠르고 쉽게 BBS가 보급될 수 있었다.


이야기 구동 화면

우리나라 최초의 BBS는 1988년 시작된 것으로 보여지며, 89년에는 한국데이터통신의 H-mail 이용자들이 떨어져 나와 엠팔(Empal)이라는 멀티노드 BBS를 운영했다.

그러나 BBS의 전성기는 호롱불이 나온 91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들 BBS는 대부분 하나의 전화망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특정 사용자가 이 전화망을 점유하면 다른 이들은 접속할 수 없다는 불편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 호롱불을 만들었던 최오길 씨에게 부탁해 지난 접속 이후 올라온 새 글을 압축하여 일시에 다운받을 수 있는 일명 'L' 기능을 부탁했는데, 이를 통해 새로 올라온 글을 다운 받아 오프라인 상태로 읽고, 오프라인 상태에서 글을 작성해 업로드 할 수 있게 되어, 상대적으로 접속 시간을 줄여 보다 많은 사용자들이 BBS를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화망을 이용하므로, 같은 지역에서는 시내 전화요금으로 접속할 수 있지만, 지역이 다르면 시외전화요금을 물어가며 써야 했는데, 일부는 간혹 외국에서 비싼 국제전화요금을 물어가며 접속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유료 전화망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접속자에 비해 노드가 적다는 것과 함께 BBS의 가장 큰 두 가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Fido Net은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국제적인 시스템이다.

Fido Net은 국내에 PC통신이 보급되기 훨씬 전인 1980년대 중순 이미 만들어진 것인데, 기본 개념은 전세계를 Zone 1에서 Zone 6까지 6 대륙으로 나누고, 각 대륙에 최상위 호스트(Zone Coordinator)가 하나씩 있고, 그 아래에는 지역 코디네이터(Region Coordinator) 역할을 맡는 호스트 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다시 Net Coordinator, Hub 등의 이름이 붙은 하위 호스트들이 있으며, 이에는 최종적으로 node 개념의 BBS가 연결되게 된다.

이런 피라미드 구조를 통해 node (BBS)에서 특정 시간에 시내, 시외전화 등을 통해 Hub로 새로 올라온 글, 메일 등으로 압축하여 전송하면, Hub들은 다시, 상위 개념인 Net Coordinator에게 보내고, 이는 다신 Region Coordinator Server에게, 이는 다시 최종적으로 Zone Coordinator로 보내는데, Zone Coordinator에서는 이를 다른 5개 Zone Coordinator와 데이터를 주고 받아, 이를 다시 하위 BBS로 내려 보낸다는 개념이다.

즉, 모두가 다 시외, 국제 전화를 걸 필요가 없이, 지정된 할인 시간대를 이용해 누군가 데이터를 모아 국제 전화를 걸어 데이터를 주고 받아 다시 배포하면 된다는 개념이다.

한참 잘 나갈 때, Fido NET에 물린 BBS는 전세계적으로 4만개 가량이었으며, 즉 수백만 명이 이를 사용했고, 물론 국내에서도 Fido NET 망을 이용하였다.

인터넷 망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전화망을 이용한 국제간 데이터 교환의 궁여지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정보 통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인데, Fido NET은 비록 공간은 초월하고 시간 역시 극복할 수 있었지만, real time의 개념이 아니므로, 단지 단축시킬 수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Fido NET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사라지게 된다.

Fido NET의 독특한 특징은, 그것의 물리적 특성상 비록 멀리 떨어진 다른 사용자의 글이나 정보를 볼 수는 있지만, 그와 직접 부딪힐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동시에 한 서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real time으로 채팅을 하거나 글을 주고 받을 수 없다.

이 점은 현재 많이 사용되는 블로그나 카페, SNS와 가장 큰 차이이다.

전세계 어디서나 real time 문자 채팅은 물론, 화상 통화까지 가능한 시대에서 이게 무슨 불편인가 싶겠지만, 사실 오늘 불연듯 Fido-NET이 생각난 이유는 그것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블로그와 카페가 인터넷 통신의 주류를 이루었고, 페이스북, 트위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2000년대 중후반, 혹시 이런 개념의 새로운 서비스를 구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다.

즉, 사용자는 각자 자신의 블로그를 가지고, 그 블로그에 글을 쓴다.

블로그에는 여러 개의 디렉터리 (즉, 서로 다른 방)이 있고, 그 중 한 방에 올리는 글은 Fido NET처럼 상위 개념의 호스트로 자동 이동(공유)된다.

상위 개념의 호스트는 이렇게 공유 받은 데이터들을 역시 하나의 방에 넣어, 그 호스트에 접속하는 사용자들이 볼 수 있게 하고, 마찬가지로 이 호스트 접속한 사용자들은 더 상위 개념으로 공유할 자료를 특정 방에 넣는다.

마찬가지로 더 상기에 있는 호스트도 이렇게 정보를 취합하여 정리하고, 마찬가지로 하위 호스트에 정보를 내려 보낼 수 (공유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카페와 다른 건, 카페는 한 호스트 (혹은 사이트)에 다수가 집중하여 동시에(즉, Real time으로) 글을 올리거나 보거나 한다는 것인데,

이 시스템은 자신의 블로그 (혹은 명칭이 뭐든)를 플랫폼으로 하여, 오로지 자신의 블로그에만 글을 쓰되, 유통될 정보만 분류하고 공유해 각각의 사용자들이 서로 다른 플랫폼과 호스트를 사용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어떻게 보면, 타임라인 (플랫폼)과 포스팅 공유 개념을 쓰는 페이스 북과 유사한데, 페이스 북은 '친구'란 개념이 있고, 친구를 늘려나가는 것이 일종의 gamification처럼 사용되는 반면, 이 시스템은 오히려 각 사용자들을 격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근데, 이게 왜 필요하냐구?

필요하다.

왜냐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유통시키기는 원하지만, 사용자들과 직접 contact하여 서로 argue하거나 conflict되는 걸 원치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경우, 구글링하여 다른 이의 블로그나 카페 혹은 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받아 볼 수 있고, 지금처럼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 있지만, 이 경우는 대단히 일방적이기 때문에, 그 보다는 쌍방성을 더 높이되, 의도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용자와 물리적 실시간 충돌을 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필요성을 모르겠다고?

문자는 보내야겠는데, 상대가 그 문자를 보관하기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일정 시간 후 문자가 자폭되는 SNS 시스템도 나와 있고, 대단히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시스템을 만들겠다거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인터넷 소통이 발전할수록 그에 비례해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사고 방식과 매너를 갖는 이들이 늘어나기에 생각했던 것이고, 그 때의 구상이 불연듯 떠올라 하는 말이다.

또, 정보의 유통은 필요한데, 그것의 대부분이 real time을 기본으로 하여, 이로 인해 분쟁이 되거나 상처받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DRG 제도의 본질적 문제



우리나라 DRG 제도의 본질적 문제



  • 의료계의 '도그마'들

좌파 시민단체나 야권 입장에서 "의료민영화 반대"는 슬로건이고, 일종의 도그마이다.

마찬가지로 의료계의 도그마는 “원가 이하의 저수가”, “원격의료 반대”, “당연 지정제 반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의료계에 소속된 자가, 원격의료를 찬성한다거나, 당연지정제를 찬성한다고 한다면, 그건 돌 맞아 죽을 일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의료계에서도 언젠가부터 소위 말하는 “의료민영화”에 대한 균형이 깨지면서 차츰 <의료민영화 반대>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면에는 지금은 불명예 퇴진 당한 전임 회장의 영향이 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진주의료원 폐쇄, 의료법인 영리자법인 설립에 대해 반대하였고, 이 반대를 빌미로 좌파 시민단체, 야권 등과 공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야권이 그를 이용한 건지 아니면, 그가 야권을 이용한 건지, 그건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난 의료법인 영리자법인 설립도 찬성이고, 의료민영화도 찬성일 뿐 아니라 의료민영화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료민영화란, 건강보험 독점 구조에서 벗어나 다보험 체제로 전환하고 당연지정제를 철폐하고 건보 국민의무 가입을 폐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원격 의료 도입은 반대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원격 의료를 시행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으며, 실익을 따져 볼 때,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또 무엇보다도, 이 제도를 무작정 도입할 경우, 안 그래도 열악한 의원의 지역 기반이 붕괴되어 1차 의료가 공멸할 가능성이 크며, 정부가 원격의료를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것들은 무리하게 원격의료를 강행하지 않아도, 다른 방식을 통해 얼마든지 획득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격의료를 하려면, 확고한 전달체계 구축과 1차의료의 게이트 키퍼 역할이 확립된 후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그 외에도 위에서 언급한 양측의 도그마 들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오늘 말하고자 하는 건, DRG 즉 포괄수가제이다.


  • 진료비 지불 방식의 분류와 종류

다시 말하지만 <포괄수가제 반대>는 의료계의 강력한 도그마이며,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비추어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명확하게 말하자면, DRG (Diagnosis-related group)는 지불제도 그 자체를 의미하기 보다는 질병 분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DRG는 1980년 에일 경영대와 보건대 교수들에 의해 질병 별로 467 그룹으로 분류된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분류는 곧 미국 사회보장제도인 메디케어의 진료비 지불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이로써 DRG는 Prospective Payment System (PPS)의 한 방식으로 널리 사용되게 된다.

진료비 지불 방식은 크게 진료행위 후에, 시행된 행위에 따라 돈을 내는 사후 진료비 결정 방식>이 있고, 진료행위 전에 진단이 내려진 후, 미리 진료비를 정하는 사전 진료비 결정 방식>으로 나눌 수가 있다.

사후 진료비 결정 방식(Retrospective Payment System)이란, 치료나 수술, 검사 후 이에 대한 각 항목별로 진료비를 계산하여 청구하는 방식이며, Fee for Service(FFS) 즉 행위별 수가제가 가장 흔히 쓰이는 방식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방식의 문제점은 각 행위에 따라 모든 행위에 대한 가격을 매겨 청구하므로, 모든 재료, 행위에 대한 가격이 미리 정해져야 하며, 모든 행위 때마다 이를 일일이 찾아 기록해 두었다가 청구해야 하므로 복잡하고, 각 행위가 적정한지,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심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심사와 적정성 평가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하고 있으며, 이는 거대 조직이어서, 이 심사 및 평가를 위해 써야 하는 비용이 상당하다.

즉, 청구 과정이 복잡하고 행정 처리가 많고 행정 처리 비용이 많이 필요한 제도이다.

반면 사전 진료비 결정 방식(Prospective Payment System)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른바 총액계약제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DRG라는 것이다.

사실 원칙적으로 볼 때, 의료서비스도 상품이므로, 각각의 상품을 사용하고 나서, 쓴 만큼 돈을 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의 경우 상품의 선택권이 환자보다 의료진에게 있고, 입원, 간호, 검사, 수술, 투약 등 입원 기간 중 사용하는 상품의 가짓수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이를 일일이 따지는 것이 지나친 소모일수 있다.

DRG나 총액계약제는 모두 이 같은 인식에서 개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병원과 환자 모두 진료비 예측이 가능하도록 하고, 진료비 청구에 필요한 복잡한 기록을 생략하고, 또 이를 심사하고 적정성 평가하는 과정 역시 간소화하여 결과적으로는 행정 절차를 대폭 축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예상 외로 널리 사용되는 PPS 방식과 DRG의 문제점

DRG는 언급했다시피 질병을 분류하고 그 질병에 따른 진료비 가격을 미리 정해 두고, 해당 질환자에게는 같은 가격을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총액계약제는 병원 단위의 일년간 소모 예산 즉, 인건비, 재료비, 경상비 등등을 미리 계획을 세운 뒤 이를 정부, 보험자 등으로부터 미리 받아 그 예산 내에서 경비를 지출하며 병원을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즉, DRG나 총액계약제는 경영적 측면, 보건경제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지불방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행위별 수가제에 익숙한 우리나라 의사들에게는 생소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제도이다.

왜냐면, 행위별 수가제는 행위를 할 때마다 돈을 청구할 수 있고, 새로운 행위는 매출 증대라는 의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오해는 말기 바란다. 그렇다고 의사나 병원이 맘대로 아무 행위나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니까. 병원이 갖는 고유한 자율 시스템은 물론 심평원이 이를 강력하게 감시하고 있으며, 심사와 행위에 대한 적정성 평가를 통해 불필요한 행위이거나 과하다고 <판단>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삭감의 칼을 가져다 대고 있다.
  • 심평원과 의사들의 긴 싸움은 이 때문에 생긴다. 심평원 <판단 기준>이 의학적이지 않으며 지나치게 경제 논리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 지루한 논쟁과 다툼은 심평원이 존속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DRG 문제는,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제도 도입 방식과 제도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제도란 DRG 라는 원래의 제도를 의미하며, 변형된 형태인 한국형 DRG즉 KDRG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DRG가 그렇게 악마의 제도이고 저열한 제도라면 미국 대다수 병원에서 DRG를 채택하여 진료비 지불을 정할 리 없으며 미국 뿐 아니라 캐나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 일본, 대만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중동의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 사전 진료비 결정 방식(Prospective Payment System)으로 진료비를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DRG와 유사한, 사전 진료비 결정 방식으로 진료비를 받아왔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보험이 통용되지 않던 시절, 병의원을 방문해 맹장염 진단을 받고 수술을 권유 받으면 (그 당시에는 의원에서도 수술을 하곤 했다.) 누구나 이렇게 물어 볼 것이다.

“그런데, 수술비는 얼마나 할까요?”

이 때, 

“입원비는 하루 얼마이고, 수술비는 얼마, 마취비는 얼마이고, 주사 값은 한 대당 얼마인데…. 나중에 맞는 만큼 계산하면 됩니다.”

라고 설명하면 그건 행위별 수가제로 계산하는 것이고, 그냥 “얼마입니다.”하면, 그게 바로 DRG인 것이다.

즉, 그 “얼마입니다”는 수술비, 입원료, 마취료, 주사료, 간호료 등이 모두 포함된 가격인 것이다.

의료보험 전에는 공단에 청구할 필요가 없으므로, 적당히 알아서 받아왔던 것이며, 이 가격은 병의원에 따라 제각각 달랐으니 누군 의사나 병원의 명성을 듣고, 누군 그 가격에 따라 병원을 선택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DRG는 전국 어느 병원이나 같은 가격이다.

왜냐면, 지금은 보험제도가 있고, 그 보험제도는 모든 의사의 의료 수준은 동일하며, 모든 병원의 시설도 같다고 보고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 그러니, 같은 값이라면 큰 병원, 시설 좋은 병원을 찾아가려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문제는 그 인지상정 탓에 의료 공급 체계가 통째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의료 이용체계를 구축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 의료계의 미래는 없다.

미국의 메디케어 제도가 DRG 방식으로 진료비를 지불하는 것은 언급한 대로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진료비 산정 경비를 줄이고, 진료비 지출을 예측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DRG에는 문제가 없을까?

아니다. 

이는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한 지불제도이기 때문에 결정적 결함이 있는데, 그건, 하나의 질환에 대해 동일한 가격을 지불하기 때문에, 공급자 즉 병원 입장에서는 가급적 입원 일수를 줄이고, 행위를 줄여 지출을 줄이면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 반대로 환자에게 합병증이 생기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여 입원 기간이 늘거나 행위가 늘어나게 되면 당연히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DRG를 지불제도로 사용하는 외국의 수 많은 병원에서 이 같은 점을 문제삼지 않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DRG 수가가 우리처럼 지나치게 싸거나 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설령 어느 환자로 인해 손해를 보아도, 마찬가지로 또 다른 환자를 통해 이득을 보는 경우도 있어 상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DRG 지불 제도를 채택하여도 병원은 경상 이익을 낼 수 있으며 (즉 손해보지 않으며), 특히 미국의 많은 병원들은 비영리병원이고 기본적으로 병원은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마인드가 깔려있기 때문에 이를 크게 문제 삼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우는 어떨까?


  • 우리나라 DRG 제도의 문제

우리나라 DRG 제도는 언급하였듯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책정했다는 문제가 있다.

지나치게 낮다고 한다면,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인가?

우리나라는 일부 질환에서만 DRG를 의무 적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질환 (예를 들어, 맹장 수술이나 백내장 수술, 제왕절개 등)의 경우 환자가 입원해서 수술, 투약 후 퇴원할 때까지 발생할 각 행위를 행위별 수가제로 계산하여 보고, 그 가격과 DRG로 책정된 가격을 비교할 때, 행위별 수가제로 계산할 때보다 오히려 낮거나 낮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낮을 가능성이란 건, 만일 행위별 수가제로 환자를 치료할 경우 예상할 수 있는 비급여 항목이 있는데, DRG의 경우 이 같은 비급여가 완전히 제외되거나 제외될 가능성을 말한다. (질병에 따라 차이가 있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DRG 제도를 도입할 때, 단지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진료비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넘어서 DRG제도를 진료비 통제 수단을 삼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수 많은 나라에서 DRG제도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를 진료비 통제 수단으로 삼고 있는 나라는 없다.

병의원과 의사들이 이 제도에 반감을 갖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DRG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제도 도입의 취지와 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DRG도입을 통해 진료비를 인하하고 통제하려고 하려고 하는 한, 이 제도 시행에 따른 갈등과 반목은 사라질 수 없다.

한국 의사들이 DRG에 반감을 갖는 다른 이유는 이미 장기간 행위별 수가제도와 저수가에 익숙해왔기 때문이다.

저수가 즉 가격이 싼 경우에, 일정 수준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빈도를 올리는 방법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대비 전세계에서 가장 진료비(진찰료)가 싼 나라인데, 그 같은 이유로 단위 시간 당 가장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건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이처럼, 빈도를 올려 겨우 수지를 맞춰 오던 한국 의사나 병원 입장에서는 <빈도>라는 변수를 아예 없애 버리는 제도인 DRG는 말 그대로 멘붕 그 자체 일수 밖에 없다.

그러니 DRG를 좋지 않은, 악마의 제도라고 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DRG 제도를 개선하려면 직설적 화법을 써야.

한편, 의협 등은 DRG의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이 제도는 의료의 질을 떨어트리고 종국에는 환자에게 불이익이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맞는 주장이고, 최소한 한국의 DRG 제도 하에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DRG 제도의 탓이라기 보다는 지나치게 낮은 DRG 수가에 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언급했듯이 이 제도를 도입해 쓰고 있는 수 많은 나라에서 이로 인해 환자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그 어떤 보고도 찾아 보기 힘들다.

DRG가 의료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이야기는 가격이 싸기 때문에, 환자에게 할 수 있는 행위의 제한이 있고, 더욱이 수술에 소모되는 재료의 질이 떨어지거나, 검사에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투약이나 입원 기간, 검사를 줄이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문제 역시, 가격의 문제이지 DRG 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제껏 의사 협회 등에서 DRG 를 거론하며 이슈화 할 때, 왜 직설적으로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주장하지 않고, 변죽만 울렸는지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DRG 제도의 문제의 핵심은 지나치게 낮은 가격과 이 제도를 진료비 통제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이를 개선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DRG 제도 본질에 문제가 있는 양 주장하거나, 그 외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할 경우, 본질은 사라지고 문제 해결은 영원히 미궁으로 숨어 버리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바이다.



.2014년 6월 25일

토요타 전쟁 (Toyota War)




아래 기사는 미군이 2011년 이라크에서 철수할 당시 남기고 간 수 백대의 험비를 이라크 군으로부터 탈취한 수니파 반군 ISIS가 마치 반란의 상징처럼 사용하고 있어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를 보고 격세지감(?)을 느낀다.

왜냐면 사실 중동의 반군하면 의례 떠올리는 건 사실 토요다 픽업 차량이기 때문이다.

탈렌반의 활동 지역인 중앙아시아 아프간, 파키스탄에서부터 이란, 이라크 등 중동을 거쳐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등의 북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 이르는 반군은 물론, 과거 수십 년간 중남미 국가의 게릴라들이 전통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차량은 바로 토요타 픽업이다.

그래서 의례 “반군”이라고 하면, 머신 건으로 무장된 낡은 토요타 Hilux나 range rover, 아니면 러시아제 AK 소총을 들고 토요타 픽업에 잔뜩 올라탄 어린 반군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오죽하면, “토요타 전쟁”이라고 이름 붙여진 전쟁도 있다.

그건 바로 1987년 차드 내전 이후 수립된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려던 북아프리카의 깡패 카다피가 차드 북부를 침공하여 벌어진 전쟁을 말한다.

주로 전투가 벌어진 차드와 리비아 사이는 사하라 사막이었고, 리비아 군은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차드 북부까지 수천 킬로미터의 사하라 사막을 토요타 픽업으로 이동했다.

결과는 당시 리비아 군의 10%에 해당하는 7,500명과 차드 군 1천명의 전사로 끝났고, 리비아 군의 일방적 패배로 수 억불에 달하는 군수물자를 버리고 달아난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당시 사막에서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하던 동아건설은 보유하고 있는 대형 중장비를 동원하여 리비아 군을 지원했다고 하며, 카다피는 고등학생들을 무장하여 총알받이로 내세워 한 학교의 학생들이 전멸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이 때 군사작전을 지휘했던 칼리파 히프터 장군(카다피의 혁명 동지)은 차드 군에 의해 잡혔는데, 카다피가 그의 존재를 부인하였고, 결국 칼리파 장군의 이집트 지지세력이 그를 구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하였는데, 지난 자스민 혁명 이후 리비아로 복귀하여 리비아 임시 정부를 상대로 쿠데타를 선언하고 자신의 지지세력을 모아 현재 “Operation Dignity”라는 무장세력 제거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칼리파 장군

아무튼 이 차드-리비아 간 전쟁은 “토요타 전쟁”으로 명명되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이들 반군들이 사용하는 토요타는 주로, Toyota Hilux이며, 그 외에도 Toyota Range Rover가 많이 쓰인다.

그럼 왜 반군들은 이 픽업 트럭을 애용하는 걸까?

아프간과 같은 산악 지방은 물론,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사막, 중앙아프리카나 중남미의 밀림을 가리지 않고 잘 달리고 고장이 적기 때문이다.

토요타 Hilux에 대해서 내려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영국의 유명 자동차 관련 TV 쇼인 탑기어는 지난 2006년, 주행거리 30만 킬로미터의 18년된 다 낡은 중고 토요타 Hilux를 1,500 달러에 매입하여, 이 차로 나무를 들이박고,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닷속에 5시간 동안 담구어 파도에 휩쌓이게 두었다가, 3미터 높이에서 떨어트리고, 그래도 시동이 걸리자, 이 차로 창고를 뚫고 지나가고, 차를 부수기 위해 캠핑RV를 이 차 위에 떨어트려 부수고, 그리고, 건물 철거용 쇠공으로 내려치고,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래도 시동이 걸리자, 이번에는 20층 건물의 72미터 옥상에 차를 올려놓고, 그 건물을 폭파시켰다.

그리고는 건물 더미에서 완전히 파손된 차를 꺼내 망치, 렌치, WD-40 (윤활제)만으로 그 차를 수리했는데, 그 어떤 부속을 갈지 않았음에도 Hilux는 불사조처럼 스튜디오 안으로 굴러들어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미군이 쓰던 수백 대의 험비는 당연히 군사용으로 생산된 차량이니 토요타 픽업보다 더 튼튼해 보이고, 방탄 효과 역시 더 크겠지만, 이 미제 차량들이 과연 Hilux 처럼 생명력이 질길까는, 글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험비가지고 너무 폼 재지 마라.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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