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28, 2014

투자 활성화의 “진짜 문제”라구?




먼저 왜 “의료 영리화 방안”이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 선에서 논의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부 시민단체, 의료계 일각에서 이 방안 (즉, 의료법인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 등)을 <의료영리화>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은 보건 복지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행정부의 전 영역을 대상으로 외자를 유치하고,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수출을 확대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아젠다를 모으는 작업이다.

행정부 중 보건복지부는 이 투자활성화 대책안으로 <의료법인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을 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꾀하고 있는 투자활성화 대책과 보건복지부의 <의료법인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과는 도대체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간략히 말하자면, 의료 체계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건 대한민국 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며, 이 기회를 잡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조치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질병은 시대에 따라 주류를 이루어 온 대표 질환(?)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감염성 질환에서 외상을 거쳐 급성기 질환으로, 다시 암질환으로 그 시대를 대표한 주요 질환들이 있었고, 21세기 오늘 날 전세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질환은 다름 아닌 만성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세계 각국의 보건부는 고령화와 이에 따른 만성질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다시피 만성질환은 고비용 질환이며 낫는 병이 아니어서 치료 (CURE)보다는 관리(CARE)가 더 중요하고, 종국에는 합병증이 병발하여 많은 의료 자원을 소모하게 되는 질환이라는 특징이 있다.

고령화는 우리나라 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추세이고, 더불어 만성질환의 급증은 각국 보건 당국자들로 하여금 자국의 의료 체계를 정비하고 대비하게 하는 촉발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교통과 교역의 발달로 세계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 국경을 넘어 진료를 받으러 가거나 진료를 하러 가는 일은 더욱 빈번해지고 있으며, 돈은 있으나 자국의 의료 수준이나 인력으로 자국 국민에게 제대로 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었던 나라들이 이젠 자국의 의료 설비나 인력을 육성해서 국외로 유출되는 의료비 지출을 줄여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거시적 시각으로 볼 때, 의료 시장에 불어 닥친 이런 바람은 어떻게 보면, 경영적 측면에서 극한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 의료계로서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는데, 이 기회를 노려야 한다는 정부의 판단은 일단 옳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기회를 외자 유치, 기업 투자, 고용 창출, 수출 확대로 연결지으려면, 법적 제도적 뒷바침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의료법인은 비영리법인으로 법인의 자산을 마음대로 국내외에 투자할 수 없다는 법적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기존의 의료법인을 상법상 법인 즉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는 현행법으로는 불가능하며, 설령 투자개방형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한다고 하여도 기존의 의료법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만들어지는 의료법인에 대해서, 투자개방 형태를 취하도록 할 수 있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첫째, 투자개방형 병원은 국민적 거부감과 저항이 크고 둘째, 이미 수 천에 이르는 의료법인에게는 역차별과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으며, 셋째, 기존의 의료법인을 도외시 하고 신규 법인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은 실효성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놓은 묘안(?)이 바로, 기존의 의료법인으로 하여금, 영리 자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이 자법인로 하여금 해외에 진출하거나 외자 유치, 기업 투자, 고용 창출, 수출 확대의 도구(vehicle)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쯤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은 “그런데 과연 어떻게?”이다.

도대체 기존의 의료법인이 영리자법인을 허용한다고 해서 어떻게 해외 진출, 외자 유치, 기업 투자 유치, 고용 창출, 수출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냐는 것이다.

사실 대단히 막연하고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기사의 박형근 교수처럼, 영리 자법인을 허용한다고 도대체 누가 거기에 투자하겠느냐?는 반문이 나올 만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어떻게”는 정부가 일일히 규정하고 가르켜 줄 바가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이미 설명한 바대로 전세계적 보건의료 기조의 변화 흐름 속에서 국내의 우수한 의료 서비스와 기술력, 인력을 토대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토대만 만드는 것이다.

즉, Vehicle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몫이고, 그걸 타고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그건 운전대를 잡은 사람의 몫인 것이다.

하지만 굳이 실례를 들자면, 이런 점이 있다. 즉, 이미 수년 전부터 정부는 병원 수출에 대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추진해 온 바 있다. 병원 수출이란, 병원 건물을 짓거나, 기자재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 건축에서 기자재 등 의료기기 설치와 전산화 시스템 설치 등 하드웨어와 국내 의료 인력이 직접 가서 환자를 보고, 경영을 직접 하는 소프트웨어까지를 모두 말한다.

이미 중동을 비롯한 상당 수 국가들은 자국의 의료서비스를 보완하기 위해 해외에서 병원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이들 국가가 가장 선호하는 나라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지만, 문제는 이들 국가의 의료 인력들이 덥고 생활이 불편한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에 가려고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또 설령 이들이 온다고 해도, 만족할 만한 급여를 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해외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국 병원을 유치하려고 하는데, 국내 병원이 외국에 진출할 때 생기는 첫 번째 문제는 그 나라에 법인을 설립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법인을 설립하지 않으면 병원을 할 수 없다.

이들 나라는 대부분 현지 법인과 합작의 형태로 상법상 법인 즉,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 법인이 병원을 경영하고, 병원 경영에 따른 이익을 지분에 따라 배분하게 되는데, 국내 의료법 상 의료법인은 상법상 법인 즉 영리법인을 설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국내 의료법인의 해외 진출 기회를 막는 독소 조항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즉, 상법상 법인 설립을 허용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럼, 또 이런 반론이 나올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병원이 해외에 진출한다고 법을 바꿔가며 영리자법인 허용을 하자는 것이냐?

그러나 이건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

왜냐면, 중요한 건, 규제를 푸는 것이지, 얼마나 많은 병원이 나갈 것인지 미리 예측하고 우려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천적으로 출구가 막혀 있는 것과 문을 열어 놓고 알아서 나가라고 하는 건 천양지차이다.

실물 경제는 생물과 같아서 그것이 어디로 튈지 알기 쉽지 않다. 좋은 토양과 적절한 햇볕과 물을 주면 상상치 못한 나무가 자랄 수도 있다. 한국인의 저력으로 보자면 지금은 틈새 시장과 같은 해외 의료시장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회를 의료계에 주자는 것인데, 이를 의료계가 반대할 이유는 없다.

또 이 같은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을 굳이 <의료 영리화>라고 부르겠다면, 그것도 좋다.

그런데 의료영리화를 절대악인양 취급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의료영리화를 망국의 길이라고 하는 것도 우습고, 의료서비스보다 사업에 충실하라고 부추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코메디 같은 이야기이다.

병원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벌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쓰느냐이다. 비영리 의료법인이란 형태는그 돈을 법인을 만드는데 출자한 자 맘대로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병원은 이익을 증대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적자를 줄여볼까 혈안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혈안이 되고 있다는 건, 불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환자를 등쳐 진료비를 더 뜯어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지출을 줄여 적자를 줄여 볼까, 직원 급여를 깍고 인력을 줄이는 등 경상비를 쥐어 짜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만일 병원이 해외진출을 하던, 투자 유치를 하던 화장품을 팔던, 메디텔을 하던, 이익이 생기면 당장 적정 인원으로 인력을 보강하고 급여를 정상화시키고 병원 환경을 개선하는 것부터 돈을 써야 할 판이다.

아마 의료법인 형태의 병원 십중 팔구는 그래야 할 것이다.

허대석 교수의 주장은 병원이 진료를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고 이를 통해 정상적인 경영이 되어야지 진료외 수익에 의존해서야 되겠느냐는 것 같다.

대단히 이상적인 이야기이고 절대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현실은 요원하다.

현실을 무시한 체 영리화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마냥 수가나 올려달라고 하는 건, 어린애 떼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가 인상 주장은 10년 전에도 있었고, 20년 전에도 있었고, 30년 전에도 있었던 이야기이다.

앞으로 10년 내에 수가가 현실화될 수 있을까?

병의원 경영자와 종사자들이 10년만 더 견디면 수가가 현실화되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의료기관을 경영하고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대단히 미안하지만, 난 아니라고 본다. 왜냐면 현 건강보험체계의 구조상 수가 현실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허한 수가 현실화 주장만 반복하며 어린애처럼 떼 쓰고 있어야만 하나?

지금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빨리 쥐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이 예상과 달리 중동에 서로 나가겠다고 하는 건 그들도 모험심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본능적으로 국내 의료 여건이 최악의 상황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작, 이 같은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 혹은 의료 영리화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이들 대책은 모두 병원에 대한 대책, 특히 병원 중에서도 의료법인에 대한 대책이라는 점이다.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주체는 의료법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사업자 형태의 의료기관도 다수 있다.

의원의 대부분이 그러하고, 100 병상 내외의 소규모 병원들 대부분이 그러하다. 물론 일부 종합병원 중에도 여전히 개인 사업자를 가지고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다.

의료법인에 대해 혜택을 주는 건, 이들에 대한 역차별이고, 정부의 정책 기조는 지난 1990년 이래 의원보다는 병원, 소규모 병원보다는 종합병원에 치중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합병원이라도 잘 되야 하지 않겠느냐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모든 정부 정책에는 결정적 결함이 있는데, 그건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는 의료전달체계 혹은 의료이용체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 없이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상층을 차지하고 있는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을 더 우대하고 더 혜택을 주면 줄수록, 그 하층을 차지 하고 있는 의원, 병원은 더욱 더 열악해지고 종국에는 의료 공급 생태계 자체가 붕괴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투자활성화 대책과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 너나 할 것 없이 도외시하고 외면하는 것이, 더 크고 더 중요한 현실적 문제이다.

그런데 아무도 이 문제는 들먹이지 않는다.
이게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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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6일


오바마 대통령은 대테러 전쟁에 오판을 하고 있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911 테러는 미국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911 테러를 저지른 테러리스트의 대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으로 알카에다 소속인데, 알카에다를 만든 빈 라덴은 구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 CIA의 전술에 따라 아프간을 지원한 핵심인물이었으며, 아프칸에서 알카에다는 사실 CIA의 지령을 받아 활동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소련에 제풀에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빈 라덴은 미국이 자신을 이용했다고 간주하고 사우디 정부와 미국에 향해 총구를 바꾸게 된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저지하고 아프간의 무슬림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알카에다는 이후 미국과 서방을 향한 테러 조직으로 바뀌었다.

알카에다나 아프간의 탈레반, 이라크의 IS,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리비아의 알샬 샤리아 등의 반군, 테러 조직의 궁극적 목적을 단순히 성전(지하드)이라고 볼 수 없다.

이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테러 조직의 실질적 목적은 오히려 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IS는 자신들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암시장에서 팔아 막대한 돈을 챙기고 있고, 리비아의 알샬 샤리아 역시 이권 다툼을 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은 석유와 같은 전리품 뿐 아니라, 테러 조직을 운영하며 지원받는 막대한 지원금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겉으로는 IS를 비난하고, 미국에 동조하고 협조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이라크의 IS 그룹에 은밀하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사우디 왕가가 전세계가 비난하는 테러 집단인 IS를 지원하는 명목 상의 이유는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에서 수니파 (IS는 수니파로 구성되어 있다.)를 지원한다는 것이지만, 실제 사우디 왕가가 걱정하는 것은 가깝게는 사우디 국민들, 멀리는 무슬림들이 사우디 왕가에 대해 저항하고 반기를 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사우디 아라비아는 2차 세계 대전 전만 해도 국가라고 할 수 없었다. 그저 황량한 사막이었을 뿐이었지만, 서방의 지원을 받은 "사우드" 부족이 아라비아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하여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가 만들어진 것이며, 이들의 가장 큰 우려는 왕가의 지속 가능성과 왕국의 통치이다.

이라크의 반군 IS가 이라크, 이란 출신 뿐 아니라, 사우디 아라비아는 물론 영국, 프랑스, 심지어 미국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전세계적으로 청년 실업은 심각한 수준이고, 독일을 제외한 유럽 각국의 실업난은 우리나라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상황이 열악한 아라비아 반도의 중동 국가들, 아프리카 국가들의 청년 실업은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한 자스민 혁명 역시 청년 실업이 그 원인이며, 한 청년 노점상의 자살로 촉발된 "중동의 봄"이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그렇게 많은 국가들에 영향을 주어,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등 여러 나라의 정권을 교체하고, 이슬람 문화의 영향의 탓으로 비교적 순종적인 여러 중동 국가에서 정부를 상대로 데모를 일으키게 한 근본 이유는 젊은이들의 누적된 불만 탓이며, 그 불만의 뿌리는 바로 일자리 때문이었던 것이다.

독재자 카다피를 몰아낸 리비아의 시민군들이 혁명 이후 더 세를 불리고, 테러 집단화된 이유도 그 집단에 들어가면 돈을 받을 수 있고 일자리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이라크의 IS에 수많은 나라 출신의 젊은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도, 종교적 신념이나, 이데올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사실은 일자리를 보장받고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각국의 테러 집단의 뒤에는 빈 라덴이 만든 알카에다의 잔당들이 있고, 또 이들의 뒤에는 돈을 대주는 중동 여러 국가의 "누군가"가 있다.

따라서 이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한, 중동발 테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고리를 형성한 데에 미국 역시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아니라고 발을 뺄지 몰라도, 이 고리의 근원은 냉전 시대의 미국 정부와 정보국이 뿌린 씨앗들이다.

이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에서 발을 빼려는 우를 저질렀다.

명목 상의 이유는 더 이상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 미국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도록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상 이유는 미국이 자국에서 생산하는 에너지로 자립할 수 있게 되면서 중동 정책의 변화가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우디, 리비아 등 중동 산유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상당 지분은 여전히 미국인, 미국 회사의 것이며, 이들은 자신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미군을 계속 활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고위 공무원, 정부 정책이 이들 해외 자국 기업을 위해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활동해왔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이 IS 에 대한 공격을 선언하면서, 공습만 할 뿐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도 사실 문제이다.

왜냐면, 미군이 이라크에 공습을 하려면, 명확한 타켓이 있어야 하는데, 반군들은 민간인 지역에 녹아들어가 모스크, 병원, 학교, 주택지 등에 무기를 은닉하거나 지휘 본부를 차리기 때문이다.

반군이 이라크에 무기 공장을 가지고 있거나 반군 기지 (캠프)를 두고 있거나 한 것이 아니다. 또, 미군이 공격해야 할 대상은 도로나 항만, 산업시설이 아니다.

과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라크 정부와 정규군을 상대로 하는 전면전이었지만, 지금은 도시 게릴라들과의 전쟁을 해야 한다.

아무리 미군의 전자 장비가 발달하여도 민간인 사이에 은닉된 무기만 공습하거나, IS 반군만 노려 공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상군 파견에 대해 부인하는 건, 미국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지 않겠다는 의도이겠지만,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의 더 큰 희생을 야기할 수 있는 비도덕적이며, 미국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는 비열한 판단일 뿐이며, 대테러 전쟁을 더 길고 오래 끌고 갈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식의 대응이라면, 미국이 테러전에서 지고 있다는 가정이 사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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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9일


단통법 유감



이른바 단통법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단통법은 국가 (특히 국회)가 마치 자애로운 아버지인 것처럼, 국민을 모자란 철부지 어린애처럼 간주하고, 핸드폰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지엄한 관리자’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상한 우월적 가치 기준을 가지고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이 가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 법안의 “제안 이유”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다수 포함하고 있다.

즉, "차별적 보조금 지급이 번호 이동 중심으로 하는 일부 이용자에게만 집중되어 소비자간 후생 배분이 왜곡되고 있어", 불쌍한 호갱들(호구 잡히는 고객이란 의미)이 양산되고,

"동일 단말기 구입자 간에도 어느 시기에, 어디에서 구입하느냐에 따라 보조금이 천차만별로 달라 이용자간 차별이 심화되고 있으며, 단말기 가격이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힘들어" 무지몽매한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에 이 법을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법안 제안 이유에 ‘호갱’이나, ‘무지몽매’니 하는 단어는 없지만, 내용은 그대로 이다.

어쩌면, 우리의 지엄한 관리자들이 우려하듯, 휴대폰 유통 시장은 왜곡되어 있고, 그래서 국민들이 피해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피해라는 건, 바가지를 쓴다거나, 비정상적으로 비싸게 산다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덜 싸게 구입”한다는 것인데, 사실 원래 물건은 제 값에 구입하는 것이 맞다.

휴대폰 보조금이란, 이동통신사, 기기 생산자나 이를 판매하는 소매점이 자신의 이익을 일부 포기하고, sales promotion 즉, 판매 촉진 행위의 일환으로 소비자들에게 되돌려 주는 일종의 리베이트인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판촉 수단이며, 시장주의 경제 체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시장 경쟁 수단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공급자가 우월적 지위에 있을 경우에는 당연히 판촉에 목을 맬 이유가 없으니 보조금은 줄거나 없어야 하는 것이고, 반대로, 소비자가 갑일 경우에는 보다 더 많은 보조금, 지원을 받아가며 이통사와 휴대폰을 고를 수 있는 것이다.

즉, ‘지엄한 관리자’들이 우려하는 국민의 손해라는 건, 남들보다 덜 지원 받는 보조금에 대한 것인데, 이걸 공평하게 지원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적어도 자본주의 시장 경제 하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납득되어서도 안 되는 논리이다.

이것이야 말로, 시장 원리에 법으로 개입하고 규제를 만드는 것이며, 시장을 더 왜곡시키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단통법의 문제는 ‘지엄한 관리자’들이 애초 구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법을 통해 공평한 보조금 지원을 받게 되고, 종국에는 소비자들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입법했다.

그러나, 오히려 지원되는 보조금 수준은 법 발효 이전과 비교해 월등하게 낮은 수준에서 책정되었고, 결국 전 국민이 ‘호갱’이 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때문에, 이 법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건, 이동 통신사, 휴대폰 제조사를 위한 법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왜냐면 결국 이 법으로 차별화되지 않는 보조금은 더 이상 판촉 수단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통사와 제조사는 형식적으로 낮은 보조금만 주게되어, 이 법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국민이 아니라, 이동 통신사, 휴대폰 제조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법은 이통사, 제조사들의 일종의 합법적 단합을 조장하게 되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휴대폰 공급의 한 축인 유통 매장은 오히려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통사와 제조사의 보조금 지원이 줄게 되므로, 당장 휴대폰을 구입하려는 신규 고객이 급감하게 되고, 매장은 이 법이 정한 제한을 넘어서서라도 구매자 확보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줄여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단통법의 제정의 과정을 볼 때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단통법에 대한 법률안은 최초 2012년 10월 24일 새민련 전병헌 의원이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으로 제출된 바 있으며, 2012년 11월 이재영 의원(새누리)에 이어, 2013년 2월 노웅래 의원 (새민련), 2013년 5월 조해진 의원(새누리), 2013년 12월 김재윤 의원(새민련) 등 약속이나 한 듯 5명의 여야 의원들이 교대로 유사한 법안을 쏟아내 결국, 소관 상임위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나서서 이 5개 법안을 통합하는 대안을 만들어 통과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왜 유사한 시기에 약속한 듯 여야 의원들이 비슷한 법안을 쏟아낸 것일까?

휴대폰 보조금 지원에 관한 법이 과연 국민들에게 그리 큰 영향을 주는 민생법안인가?

아무튼 이 법안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을 휴대폰 구매자, 매 달 수만원의 통신료를 내는 국민들이 체감하지 않을 경우 이 법안을 입법 발의하고 통과시킨 해당 의원과 소관 상임위에 대한 질타는 그치지 않을 것이며, 여야 관계없이 비난 받게 될 것이다.

싸움의 원칙 - 산케이 기자 기소에 붙여



싸움의 제 1 원칙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라'이다.
싸움을 피하는 건 비겁한 것이 아니다. 손자도 주위상계(走爲上計) 즉, 전략상 후퇴도 병법이라고 했다.

두번째 원칙은 '상대를 봐 가며 싸워라'이다.

이건 여러 의미가 있는데, 싸움도 격이 있어야 하고, 상대가 나와 너무나 수준이 다르면 싸우지 않는 것이 이롭다는 의미이다. 너무 수준이 떨어지는 상대와 싸우면 그 순간 그는 나와 격이 같아질 뿐 아니라, 수준 떨어지는 상대와 싸워 아무리 이긴들 좋은 소리 듣긴 어렵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공인은, 주목의 대상이 되고, 많은 비난과 음모론에 휘말릴 수 밖에 없는데, 특히 허위의 사실을 통해 명예를 훼손당하기 십상이다.

명예를 훼손하는 주체는 비특정의 시민일수도 있지만, 주요 언론일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공인이 언론을 통해 명예를 훼손당할 때 어떻게 대응 해야 하는게 옳은가에 대한 정리를 이미 50년전에 한 바 있다.

이름하여, <뉴욕타임즈 대 설리반> 소송의 미연방대법원 판결이 그것인데, 결론은,

“자유로운 토론에서는 때로 잘못된 표현이 불가피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숨 쉴 공간’이 필요한 이상 그것(잘못된 표현)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공무원의 행동을 비판하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사실적 측면에 대한 완벽한 정확성을 요구하는 종전의 명예훼손법칙은 언론으로 하여금 ‘자기 검열’을 강요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즉, 자기 주장을 하다보면, 때로는 잘못된 표현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마저 처벌하면 언론을 막게 되며,

만일 공인에 대한 비판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기 시작할 경우, 언론은 스스로 검열을 통해, 공인에 대한 비판이 느슨해질 것이며, 그것은 더욱 더 큰 해악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이 자신의 공무와 관련하여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현실적 악의’, 즉 상대방이 진실이 아님을 알았거나 진실 여부를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한편, 일본 산케이 신문의 한국 지국장은 세월호 사태가 발생한 날,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말로 옮기기 지져분한 추문을 보도한 바 있다.

누가 보아도 이 같은 보도는 악의적인데, 이후 산케이의 보도는 허위 보도임이 밝혀졌고, 이 같은 보도를 한국 언론과 일부 사회시민단체 등이 받아 침소붕대하며 여론화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보도를 수사한 검찰이 산케이 신문 지국장을 기소하였고, 산케이 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을 물론, 일본 정부까지 나서서 이를 비난하였다.

미국 정부 역시 사태를 주목하면서, 기자 회견을 통해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코멘트했다.

미혼의 여성 대통령을 놓고, 너절한 추문을 보도한 산케이 신문은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명예 훼손을 한 것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을 한 것이므로, 당연히 비난받아야 하며, 이 기사를 옮겨가며 국론을 분열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세력 또한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과연 이 기사를 놓고 기소하여 재판정에 세워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싸움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산케이 한국 지국장을 기소함으로써, 산케이를 주류 언론으로 승격시켜 주고, 그들로 하여금 이 소재를 통해 센세이션 시켜 줄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한국적(?) 정서로 보자면 기소하고 처벌할 뿐 아니라, 아작을 내 줄 일이지만, 정무적 판단은 미흡하고 게다가 공인의 명예 훼손에 대한 국민적 정서에도 맞지 않을 듯 싶다.

개가 달을 보고 짖는다고 그 때마다 두들겨 패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격이 맞지 않으면 때로는 모른 척 넘어가줄 필요도 있는 것이다.

참, 싸움의 세번째 원칙은 "일단 싸움을 시작했으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해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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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0일

손석희 앵커의 "뜨거운 커피" 담론의 팩트




손석희가 언급한 뜨거운 커피 소송은 Stella Liebeck이라는 79세 여성과 맥도널드 간의 소송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는 1992년에 발생. 판결은 1994년에 내려짐)

이 소송의 배상액은 100만불이 아니라, 64만불 (판결액)이며, 실제 합의된 금액은 60만불 이하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이 소송은 손석희 주장대로 커피를 마시다 화상을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Drive thru에서 받은 커피를 운전석에 앉은 체로 허벅지 사이에 커피를 끼우고 뚜껑을 열다가 커피가 엎질러지면서 허벅지에 화상을 입어 발생한 사고인데,


배심원단은 맥도널드의 과실을 80% 인정하고 Stella 의 과실도 20% 인정하여 맥도널드로 하여금 20만불의 과실금을 내도록 했는데, 64만불의 판결이 내려진 이유는 징벌적 배상으로,

사고 발생 이전 20년 간 뜨거운 커피로 인해 화상을 입은 케이스가 700건이 넘고, 이는 곧 맥도널드는 커피로 인해 화상을 입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며,

더우기 맥도널드는 커피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업계 기준보다 더 높은 온도의 커피를 의도적으로 제공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맥도널드가 당시에 제공했던 커피의 온도는 180도 이상으로, 180도 이상의 커피가 피부에 닿을 경우 2~7초 사이에 피부 전체 두께에 화상을 입힐 수 있음을 소송 중에 입증함)

즉, 단순히 "뜨거운 커피에 델 수도 있다는 경고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높은 배상액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료가 매우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문구가 종이 커피잔에 붙기 시작한 것은 이 소송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판교 사고로 사망한 망자들을 비난하거나 욕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그들의 어이없는 죽음을 애도할 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고의 책임을 사회 체계나 국가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어이없는 예를 들어가면서 국민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건 더욱 더 올바른 언론인의 자세가 아니다.


손석희 앵커의 "뜨거운 커피" 언급 멘트



환풍기 참사에 대한 손석희의 담론.


뉴스룸 2부는 앵커브리핑으로 문을 엽니다.

"음료가 매우 뜨거우니 조심하라" 일회용 커피잔에 쓰여있는 이런 문구를 한번쯤 읽어보셨을 겁니다.

오늘(20일) 뉴스룸이 주목한 단어는 바로 '뜨거운 커피'입니다.

뜨거운 커피를 주문한 사람에게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994년 미국에서 조금은 황당한 소송이 벌어졌습니다. 커피를 마시다 화상을 입은 여성이 소송을 걸어 상당한 액수의 배상을 받아낸 겁니다. 그 당시 돈으로 100만불이나 됐습니다.

뜨거운 커피에 델 수도 있다는 경고를 소홀히 한 쪽에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다른 장면을 하나 더 보실까요? 일본 도심의 도로 공사장입니다.

지나는 행인이 거의 없는데도 둘레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있고 안전요원까지 배치되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시민들 바로 옆에서 위험천만한 작업을 진행하는 우리의 공사현장과는 매우 상반된 모습이라 볼 수 있겠지요.

실제로 저는 일본 삿포로에서 밤 11시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데도, 안전요원이 서 있는 장면을 본 바 있습니다.

지난 주말. 16명의 사망자를 낸 환풍구 붕괴참사는 위험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막는 사람도, 경고문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인재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왜 조심하지 않았냐는 비판도 나옵니다…그러나 집단 속에 포함된 대중이 얼마나 쉽게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1968년에 진행된 이른바 '방관자 실험'인데요.

닫힌 방 안에 연기가 새어 들어올 때, 혼자 있던 사람 중 75%가 재빨리 이 사실을 지적한 반면, 여럿이 함께 있었던 이들은 불과 38%만이 문제를 지적했단 겁니다.

다시 말해 이 실험은, 대중이 모일 경우 책임이 분산되어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된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전요원은 그래서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통치하는 이상한 지배형태"

폴란드 출신의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은 책임지지 않는 지금 시대의 국가와 사회시스템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란 말을 닳도록 강조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뜨거운 커피에 들어간 경고문구.

지나는 행인이 없어도 공사장을 지키는 안전요원.

개인의 책임이란…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자신의 책임을 다한 그다음에 가장 마지막으로 따져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같은 듯 다른 복지와 사회보장



야당과 일부 사회시민단체들이 주창한 '복지' 정책은 결국 정부와 지자체 등의 예산 부족과 사회적 갈등으로 좌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복지 논란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첫째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 정작 필요한 건, '복지'가 아니라 '사회 보장'이라는 것이다.

복지란 용어는 그 어감적 뉘앙스와 잘못된 인식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하고 있다.


반면, 사회보장은 헌법과 법률로 규정된 국가적 책무이다.

무상급여(무상의료),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 등 무차별적인 복지 용어는 자제되어야 한다.

설령 종국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보편적 복지라고 하여도, 지금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며, 사회 보장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우리는 이를 선택적 복지라고 한다.

둘째, 지난 몇 년간 경험했듯, 복지는 재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북유럽 일부 국가나 중동 국가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복지는 세금 외에 국가 재정을 충당할 수 있는 재정 파이프 라인이 있어 가능한 것인데, 우리 정부에는 그런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떄문에 복지 대상을 넓히려면 결국 증세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 경우 무임승차 등 도덕적 문제와 또 다른 사회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논란과 실험 속에 실제 복지 (사회보장)를 필요로 하는 계층은 소외되고, 희생을 치룰 수 밖에 없다.

이제, 대책없는 복지를 들고 나오는 정당, 정치인은 비판받아야 하며, 퇴출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왜냐면, 이들은 오직 권력욕에 사로 잡혀 있을 뿐, 포퓰리즘으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국고를 말아먹고 정작 사회보장이 필요한 국민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0억불 수출을 달성했다고 감격했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조금 더 잘 살게 되었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자원부재인 상태에서 제조업이 주종목인 국가이며, 이미 중국과 동남아 국가에게 추월당하고 있는 지경이다.

한 발만 잘못 내딛으면 끝없는 추락을 할 수 있는 경박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사회보장은 강화하고, 국가 시혜를 받을 받을 권리가 있는 국민들에게는 혜택을 강화하되, 무조건적 복지 논란은 중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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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2014년 11월 10일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한 반론



아래 컬럼 중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료분쟁 중재를 통한 후 마음에 안 들면 또 소송으로 가야하므로 더 복잡하고 변호사의 일거리만 늘어나는 구조"라고 한 귀절과,

"모든 분쟁에는 당사자 간의 합의가 우선이고 안 되면 법적 소송으로 가게끔 돼"있는데, 이 제도가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의료분쟁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쟁에도 따로 분쟁조정원을 만들어야 이치에 맞을 것"이라는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컬럼 필자가 지적한대로, 분쟁은 합의, 조정, 중재, 판결의 순으로 해결 방법을 전개할 수 있는데, 보편적으로 이 순서는 분쟁해결의 가장 바람직한 순서라고 할 수 있다.


즉, 당사자 간의 합의가 가장 좋은 방법이고, 합의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제 삼자 개입에 의한 조정과 중재가, 이마저도 해결 방법이 안되면 결국 재판으로 가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쟁이 합의나 조정, 중재을 통해 해결될 경우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변호사는 필요 없으므로 변호사의 일거리만 늘어나는 구조라는 필자의 가정은 맞지 않다.

(미국 등의 경우 합의나 조정에도 변호사를 선임하며, 소송 변호사보다, 합의를 이끌어 내는 변호사의 수임료가 더 크다.)

실제 의료분쟁조정법을 만들 때 가장 반대했던 한 축이 바로 법조계였던 이유는 의료분쟁의 조정중재원 설립으로 일거리를 잃은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또 컬럼 필자의 지적대로, 의료분쟁뿐 아니라 거의 모든 민사 소송에서, 법원은 가급적 합의나 조정, 중재로 해결하려고 하지 판결로 소송을 마무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최근의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의료사고의 경우 법원이 아닌 의료분쟁조정원을 만들어 조정하도록 하는 이유는 의료 사고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의료사고는 피해자가 의사의 의료 과실을 입증하기 곤란하다는 특징이 있고, 의사나 병원 역시, 과실하지 않았다는 것 즉, 무과실을 입증하기 곤란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처럼 과실 입증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라는 명제는 의료분쟁의 오랜 숙제이었으며, 그래서 최근 법원은 의사에게 과실하지 않은 것을 입증하라고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추세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과실 입증의 책임 소재는 법 제정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는데, 의료분쟁조정법은 과실 입증의 책임을 의료 사고 피해자나 의사 모두에게 지우지 않고, 의료분쟁조정원이 조사와 감정을 통해 밝혀내도록 함으로써 과실 입증에 대한 쟁점을 피해갔다고 할 수 있다.

즉, 의료분쟁조정원의 가장 큰 유효성은 객관적 관점에서 과실 여부를 밝혀낸다는 것에 있으며, 이에 의료전문가 즉, 의사들의 참여가 절실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의료분쟁조정원 설치로 의료분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도 기우에 불과하다.

환자가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조정을 신청한다고 사고가 접수되는 것도 아니다.

의료사고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 (성형이 예쁘게 안되었다 등등)은 조정 신청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법 27조)

의료분쟁 조정은 의무사항도 아니며 의사 등이 조정을 원하지 않고 바로 재판을 받겠다고 하면, 조정절차에 응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조정 신청은 각하된다.

또, 컬럼 필자는 의료분쟁의 조정전치주의 (소송을 하기 전에 반듯이 조정 절차를 거치도록 의무화 하는 것)가 도입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데, 이는 타 법률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쉽게 결정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 설령 조정전치주의를 채택했다고 하여도 의사가 조정을 회피하면 바로 소송으로 갈 수 있으므로, 실효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새삼 조정전치주의가 거론되는 것은, 막대한 국가 예산을 들여 만든 의료분쟁조정원이 오해와 이해 부족, 막연한 피해의식에 따른 의사들의 회피로 분쟁의 조정 해결 건수가 많지 않고 여전히 소송을 선호하는 데에 따른 궁여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분쟁조정에 따른 보상 규모를 따져 볼 때, 재판 판결에 의한 배상액이나 심지어는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는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배상 규모에 비해 월등히 적은 규모로 배상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유명 연예인 사망 사건의 경우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법적 소송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의료분쟁조정원은 의료사고의 형사적 책임을 입증하거나 묻는 곳이 아니다.

신해철 사망 사고는 유족에 의해 고소된 상태로 경찰에 의해 수사 단계에 있으며, 이는 형사적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일 뿐, 민사 책임에 대한 소송을 진행한 바는 없다.

관련 자료

참고자료


2014년 11월 10일


삼성서울병원의 이유있는 반란





병원의 매출은 병상 수에 비례하여 산술 급수적으로 매출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편'(!)이라는 특징이 있다.

즉, 200 병상 병원의 월 매출이 5억이라면, 400 병상 병원 매출은 월 10억이 아니라 25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하급수적 매출 증가는 대형병원과 중소 병원의 격차를 벌리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기하급수적 매출로 발생하는 잉여금(?)으로 대형병원은 중소병원에서 흔히 투입하기 어려운 분야에 전문가들을 두고, 경영 개선이나 질 관리 등을 할 수 있고, 제도 변화가 발생할 경우, 이를 돌파하기 위한 경영 기획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흔히 4대 메이저 병원으로 분류되는 삼성서울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의료계 시국은, 의원은 물론 병원도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병원계에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3대 비급여의 급여화로 간신히 붙어 있는 숨통이 끊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사실 "잘 나가던" 대형 병원들이 최근 들어 위기를 느끼게 된 계기는 2011년 CT, MRI 등 영상장비 검사의 수가 인하 단행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영상장비 수가 인하는 영상장비를 많이 가지고 있는 병원일수록, 또 영상장비를 통한 매출이 큰 병원일수록 타격이 크므로, 대형병원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물론, 의료비 지출에서 행위료보다 검사료 비중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이를 줄이고 행위료 비중을 높여야 해야 한다는 원론적 이야기는 여기선 논외이다.)

CT, MRI, PET 등의 영상장비 수가 인가 단행은 년간 1천억원 이상의 병원 매출 감소를 가져 올 것으로 보았고, 대형 병원일수록 그 매출 감소는 더 커질 전망이었다.

궁지에 몰린 대형병원들은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영상장비 수가 인하의 절차적 하자를 문제삼아 행정 소송을 제기하였고, 결국 승소하여, 수가 인하 고시 발표 후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 약 5개월 간의 인하된 청구분 750 억원을 되돌려받게 되었다.

물론 정부는 법원이 지적한 절차를 다시 밟아 결국 영상장비 수가는 2012년 이후 ‘적법하게’ 인하된 상태이다.

이후 병원 내 포괄수가제가 일괄 적용되었고(2013년 7월), 이제 3대 비급여 급여화가 도입될 경우 이 충격을 견디어내지 못할 병원은 상당 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고작 몇 가지 수가 항목의 가격 조정이나 급여화로 병원이 휘청거린다는 것이 잘 납득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수가 체계의 모순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건보 수가 중 급여 항목(보험 적용을 받는 항목) 의 상당수는 원가 이하의 수가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적자 원가 구조를 가지고도 병의원이 돌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이의 적자를 보전해 주는 비급여 항목(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항목. 비급여 항목은 정부가 정하지만 그 가격은 각각의 병원이 정한다.)이 있기 때문인데, 정부나 건강보험공단은 이 급여와 비급여를 ‘퉁치면’, 다시 말해 비급여 항목 소득으로 급여 항목의 적자분을 메꾸면, 원가 이하의 건강보험 수가로도 병의원 경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해 왔던 것이다.

정부나 공단의 이 같은 태도는 추정이나 억측이 아니라, 실제 심평원 등이 발간한 자료에 적시 된 이야기이다.

한편, 2000년 이래 병원들은 건보 재정 지출 분 중 의원과 비교하여 가져가는 비중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는데, 그건 1998년 이래 의료전달체계의 완벽한 붕괴와 소위 암정책에 따른 새로운 시장의 도래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지난 77년 의료보험 제도 도입 이후 전달체계가 어느 정도 구축된 시기에는 1차의료기관 즉 의원이 호황을 맞았고, 전달체계가 무너지는 시기에는 병원이 호황을 맞았던 바 있다.

그렇다고 2000년 이후의 모든 병원들의 수익 구조가 월등히 좋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40 여개의 상급종합병원이나 일부 대형 병원을 제외한 지방 병원들의 경영은 상대적으로 더욱 악화되었고, 수익 구조는 날로 박하게 되었다.

지방의 어느 병원 경영자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병원은 자전거와 같다. 멈추면 쓰러지게 된다.”

이 말은 병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 때 성장이란 질적 성장이 아니라, 양적 성장을 의미하며, 이는 계속 외래를 늘리고, 병상을 늘리고, 건물을 지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행 차입을 더 해야 하며, 결과적으로 덩치를 부풀어 오르는 거품처럼 키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런 거품 성장을 하는 것도 병원 주변에 나대지나 확장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여유 부지가 없거나, 인근 토지나 건물을 구입할 여력이 없는 병원은 간신히 바퀴만 굴러가는 자전거와 같다.

물론 거품처럼 커지는 것이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어느 순간 제도가 바뀌거나 경영 환경이 바뀌면 말 그대로 ‘거품처럼’ 터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한 폭탄 같은 병원, 폭탄 돌리기를 하는 병원은 예상 외로 많다.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등의 비급여는 특별히 더 많은 재료비나 인건비가 투입되지 않아도 더 많은 매출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항목에 해당하는데, (선택진료비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런 박한 경영 구조 속에서 알토란 같은 이 비급여를 깍는 건 병원으로서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CT, MRI 등의 영상장비 수가로 대형 병원이 휘청 거린 이유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병원의 수익 구조가 악화될 경우, 당연한 이야기지만, 병원 서비스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병원 서비스 수준을 낮추더라도 수익 구조를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적자를 면하지 못하면, 차입 경영으로 돌아서야 하고, 결국은 파산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열악해지면, 언급했듯이, 대형병원들은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병원 경영 전문가, 위기 관리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나름대로 활로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맬 것이며, 상대적으로 열악한 병원들이나 가볍게 움직이기 쉽지 않는 병원들은 결국 직격탄을 맞고 스러질 것이다.

이게 오늘 날 대한민국 병원계 현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삼성서울병원의 행보는 참신하기보다는 사실 두렵다.

국내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었고, 그래서 종합병원과 병원, 의원이 같은 링 위에서 환자를 놓고 경쟁을 벌어야 하는 가운데, 또 4대 메이저 병원들이 외래 환자, 수술 환자를 싹쓸이 한다는 비난이 오가는 가운데, 삼성서울병원의, 중증 환자를 제외한 재진 환자 진료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사실 '반갑고, 놀랍고, 참신해야' 하는데, 두렵다.

심지어는 '니가 뭔데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를 걱정하느냐?’는 반문까지 하게 된다.

왜냐면 수 만개 의료기관 중 하나, 43개 상급종합병원 중 하나의 일탈(!)로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잡힐 리 없기 때문이다.

또 삼성서울병원의 이 같은 행보가 다른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들에 영향을 주어, 이들도 삼성서울병원처럼 ‘돈 걱정 없이’ 의료전달체계를 따라 진료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일견, 삼성서울병원 경영진의 이 같은 결정은, 병원 수익 구조와 관계없이 국내 병원이 아닌 세계적 병원과 경쟁을 하여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연구 중심 병원, 중증환자 중심 병원으로 돌아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래를 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경영진이 언급한 MD 앤더슨은 1970년 대 초 미국 정부가 암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만든 텍사스 메디컬 센터 중 한 병원이다.

텍사스 메디컬 센터는 50개가 넘는 비영리 의학 연구소와 3개의 의과대학, 6개의 간호대학, MD 앤더슨을 비롯한 20개가 넘는 병원과 8개의 전문 병원 등으로 구성된 메디컬 클러스터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의료시설은 대부분 비영리이며, 미국 정부와 각종 재단의 후원으로 운영되며, 그러면서도 그 비싸다는 진료비를 환자 혹은 보험사로부터 거두어 들인다.

물론 삼성서울병원 역시 삼성생명이 설립한 공익재단이 세운 병원이며, 이 재단은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그 설립 이념을 지켜나가기 위해,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고, 그래서 발생하는 손실은 모두 재단이 메꾸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의 이같은 경영 기조가 반갑고 참신하기 보다는 두려운 건, 삼성은 그럴 수 있을 것이기에 두려운 것이다.

왜냐면, 국내 대부분의 병원들, 심지어 국립 서울대 병원이나 그 외 사립대학의 대학 병원들 대부분이 병원 매출에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연구 중심 병원, 중증질환자 병원으로 돌아서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서울병원의 이 같은 파격은 벼랑 끝 위기에 서 있는 다수 병원들을 불편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삼성서울병원의 이 같은 실험이 일장춘몽이 될지, 대한민국 병원계의 획기적 전기 마련의 방아쇠가 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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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들의 국민성, 한민족의 민족성은 무얼까?





<민족>이란 단지 뿌리가 동일하다거나, 사는 지역이 같다는 말로 정의될 수 없다.

즉, 민족이란 같은 지역에서 오랜 기간 같은 풍습, 문화, 역사, 경제 등을 공유한 인간 집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국가와는 반듯이 동일하지는 않은, 일종의 상상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만 놓고 보자면, 현존 일본인의 상당수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후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 서로 치고받고 싸우느라 정신없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민족 역시 같은 뿌리이고, 독일의 주축을 이루는 게르만, 인도인, 아랍인들은 모두 아리아 족속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유전적 뿌리는 민족의 구성과는 크게 차이가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사실 허상일 수 있으며, 민족이 국민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서도 안 되며, 민족성이 국민성은 아니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자, 특히 유전적 동일성을 토대로 민족주의를 거론하는 자는 무언가 이차 획득을 꾀하는 사기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들에서 민족성과 국민성이 겹치는 경우가 많긴 한데,

이해하기 쉽게 나라를 기준으로 하자면, 나라마다의 국민성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건 그 나라 국민들이 같이 겪어온 역사적 배경과 경제의 부침, 문화성, 관습과 종교적 동일성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근대 일본의 경우, 패권주의와 군국주의의 역사를 가졌고, 전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실전 핵으로 공격받았던 나라이며, 지리적으로 잦은 지진과 쓰나미의 역습을 받아야 했다.

조선처럼 쇄국하였다가 일찌기 개항하여 유럽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문화를 일본화시켜 재생산하기도 했다.

우리처럼 자원 부존의 섬나라인 일본은 그래서 외국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여 철저하게 일본화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으며, 그게 일본의 국민성, 민족성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본화의 특징은 그들이 만드는 신조어에서도 나타난다. 카라오케, 돈가스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문화 속에 종말과 거대 괴물이나 상상 속의 절대자, 막강한 능력을 갖는 재앙적 존재가 흔히 등장하는 이유 역시 이런 일본인의 국민성 혹은 민족성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저급 노동 시장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의 국민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필리핀, 멕시코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험한 환경에서 험한 노동을 제공하며 벌어들인 작은 돈을 송금하여 본국의 가족을 먹여살린다.

그러면서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를 생성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국민성을 갖추고 있다.

나름 노동시장에서는 선배라고 할 수 있는 필리핀과 멕시코가 그런데, 동남아 maid와 nanny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필리핀 출신들은 매 주말 업무에서 손을 떼고 자기들끼의 회합을 갖으며 그 자리에서 정보를 소통하고 오락을 즐기며 시장을 만들기도 한다. (사진 참조)

이건 홍콩이나 싱가폴 등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며, 이들이 있는 거의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여서 우리나라의 경우 혜화동 성당 부근이 이들의 아지트(?)이다.

그럼,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의 국민성, 한민족의 민족성은 무얼까?

우리는 아시아 대륙 동쪽 끄트머리에 살며 중국에 조공을 바친 역사가 있고, 오랑캐와 왜구의 수많은 침략을 받긴 했지만, 중원의 민족들에 비교하자면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살았고, 오히려 극강의 유교 사상과 양반제도에 의한 고통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왕조 이후에도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나라를 구한 건 국왕이나 영웅이 아니라 의병, 농민, 학도병, 학생, 넥타이 부대 등으로 불린 민초들이었고, 그 전통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름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 민족성의 특징을 극대화(maximization)와 동일화(identification)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극대화란, 일본이 외국 문물을 받아들일 때 그걸 철저히 일본화시키는 것과 달리, 우리는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이면 그걸 최대화하여 끝장을 보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동양 최고의 시멘트 공장, 세계 최대의 조선소, 세계 최대의 단일 반도체 라인 등 생산 기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면 끝장을 보이는 극성이 있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좁은 토지와 적은 자원, 많은 인구에 따른 노동집약적 성향, 다랑이 논을 만들어야 한 민족적 성향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불과 1백년 전만 해도, 왕족과 양반과 상놈의 계급, 노비 매매가 존재했던 나라였다.

그 신분제도가 사라진 건, 미국처럼 노예제 폐지를 놓고 전쟁을 벌였거나, 프랑스처럼 혁명을 통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힘에 의한 근대적 개혁 (갑오개혁)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 물론 갑오개혁이전에 임오군란, 동학혁명 등 민초들의 항거가 이어졌지만, 그것이 계급 제도 개혁, 노비 제도 폐지를 목적으로 하였다고 보긴 어렵다. )

일제강점기에도 실제적으론 노비로 볼 수 있는 소작농과 노비와 같은 하녀, 하인이 존재하였고, 실질적으로 계급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 건, 사실 한국전쟁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남침으로 국토가 모두 폐허가 되었고, 거의 모두가 가난했고, 잿더미 속에서 거의 모두가 새로 시작해야 했는데, 물론 전쟁은 위기이고 늘 기회는 위기 속에 있는 것이므로 이를 기회로 삼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정서는 한국 전쟁의 폐허로, 드디어, 우리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게 되었다고 '착각'하였고, 그리고 50년 60년이 지난 지금, 왜 누군 더 부유하고, 왜 누군 더 가난한지에 대한 의문과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이 같은 갈등과 의문은 부를 이룬 자에 대한 맹목적 질시와 경멸로 이어져서, 그 배경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붙어 먹은 친일파이거나, 한국 전쟁 통에 장사를 해서 민족을 고통스럽게 한 장사꾼이거나, 군사 독재 정권을 거치며 치부한 부정부패자의 하나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왜?
우린 같이 시작했으니까,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그런데 저들은 더 부자이니까...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부는 부러움의 대상인 동시에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다.

또, 우리 민족은 한국전쟁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동족간의 내전을 통해 숱한 배반과 고통을 맛보았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피난이다.

피난을 가야 하나? 아니면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하나?

당시 이승만 정부는 방송을 통해 국군이 북괴를 막을 수 있으므로 피난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요인들은 한강을 건넜고, 다리를 폭파했다.

서울에 남은 백성들은 숱하게 죽고, 북한으로 끌려갔다.

이 일은 1.4 후퇴를 통해서 또 한번 반복되었다.

이제 국민들의 뇌리 속에 박힌 건, "정부를 믿지 마라", "남들을 따라 가라", 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즉, 남들처럼 해야만 살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머리 속에 품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남들과 같이 출발해서, 남들과 같이 행동하면 적어도 낙오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한국전쟁을 통해서뿐 아니라, 70년대 강남 개발을 통해서도 체험하였고, 90년대 초 주식투기 열기와 2000년 IT 붐을 통해서도 각인되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파트를 유독 선호하는 이유도 단지 편이성, 용이한 환금성 때문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모양과 같은 구조의 집단적 주택에 모여 사는 것이 동일시의 안정감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남들과 같은 패딩 점퍼를 입어야 하고, 남들이 보는 영화는 나도 봐야 하고, 남들이 좋아하는 과자(허니버터칩 같은)는 어떻게든 구해 먹어야 동일화의 만족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난 버려지는 것이고,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게 우리들의 국민성, 민족성이라고 하면 억측일까?


2014년 11월 22일


저출산은 위기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국가적 주요 아젠다로 대두되면서, 새삼스레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최근 싱글세니 신혼부부 임대주택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자, 이에 대한 반발과 반론이 제기되었고, 급기야, "저출산 망국론"을 정면 반박하는 기자의 논평이 실렸다.

저출산 위기가 과장되었다는 새로운(?) 시각인데, 이 주장이 옳고 그르고 떠나 한번쯤 생각해 볼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출산 고령화 위기론자들의 주장은,


1) 노동인구 감소로 산업이 위축되고,
2) 덩달아 소득세/법인세 감소로 이어져, 세수 마련이 어렵고
3) 소비 인구 역시 감소하므로, 내수가 위축되는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과,

4) 노동인구가 급증하는 고령인구의 생계를 책임지게되는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반면, 이를 반박하는 동아일보 기자의 주장은,

1) 최근 산업구조는 자동화, 기계화되어 노동인구 감소가 산업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며,
2) 실질 실업율을 볼 때, 여전히 취업을 원하는 인구는 많고,
3) 우리나라의 높은 인구밀도로 볼 때, 인구가 더 줄어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이며,
4) 역사적으로 볼 때도 인구가 급감할 때 오히려 일인당 국민소득은 증가했고, (당연하겠지, 인구 수가 줄어 분모가 작아지니...) 근대 이후 인구가 줄어 망한 나라는 없었다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위기론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이 기자의 주장은 그야말로 '무식'한 주장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타박하지 말고 이런 다른 시각의 주장도 한번쯤 생각해 볼만하겠다.

미리 결론을 내리자면, 기자 주장대로, '어느 정도' 인구가 주는 건, 충분히 감내하고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 어느 정도까지는 기자의 주장대로 오히려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행복도가 더 늘어날 수도 있지만, 그 '어느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재앙이 다가 올 것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모르고 있고, 그 어느 정도가 얼마나 빠르게 다가올지 아무도 추정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시기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증가율은 조사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2013년 CIA 자료에 의하면, 0.16%의 인구 증가를 보여, 230여개 국 중에서 183위를 기록하고 있다. UN이 발표한 세계 평균 인구 증가율은 1.17% 수준이다.

아시아 국가 중 우리나라보다 낮은 인구증가율을 보인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며, 일본은 -0.13% 증가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인구가 줄고 있는 건 일본뿐이 아니라, 독일, 그리스, 오스트리아 등 다수의 유럽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며,

또 우리나라 세수 구조를 볼 때, 세수에서 차지하는 소득세 비중이 다른 나라에 월등히 적고, 그나마 고소득자들이 내는 세수가 월등히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노동인구의 감소로 세수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소득세 기준 2011년 GDP 대비 세수 비중을 보면, OECD 평균은 8.5%, 우리나라는 3.8%. 소비세를 기준으로 보면, OECD 평균은 11%, 우리나라 8.1%로 역시 낮음)

따라서, "아직은" 저출산이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없다고 볼 수 있지만, 저출산으로 단지 인구가 줄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구는 줄고 고령인구는 늘어나는 고령화가 문제인데,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일본을 넘어서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고령화는 단지 전체 인구 중 고령인구의 비중이 얼마나 많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속도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점진적인 고령화는 사회가 그 충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바꾸어갈 수 있는 시간을 주지만, 급격한 고령화는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예를 일본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일본의 경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데 24년, (프랑스는 114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12년 (프랑스는 40년)이 걸린 반면, 우리나라 경우 19년, 7년으로 지나치게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것이다.

고령인구가 늘어날 경우, 의료비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이들을 돌봐야 하는데 막대한 세원이 투입되기 때문에, 결국은 이 부담을 비고령인구가 떠안아야 한다는 문제의 핵심이 있다.

때문에, 미리 이를 대비해야 하며, 그 방안은 단지 출산을 장려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정부 재정을 좀 더 건전화하여야 하며,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관리 대책을 강구해야 하고, 사회 구조를 개편하여 고령화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일보 기자처럼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아서는 안되며, 싱글세, 신혼부부 주택 임대처럼 지엽적 문제로 국민을 호도할 일도 아니며,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국민 의식을 개편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대책 마련에 동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많은 보수론자들이 보편적 복지에 반대한 이유 역시, 한정된 재정으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할 경우 실제 사회 보장을 필요로 하는 계층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정부 재정 부담이 가속화되어 재앙을 초래할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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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9일

공항 시설만이 허브 능력을 결정하는 건 아니다.



공항 이용 국제 승객 수 기준으로 볼 때, 2005년 우리나라 10위, 두바이 11위였다가, 2006년을 기점으로 그 순위가 바뀌었고, 인천 공항이 10위 언저리를 왔다갔다 하는 동안, 두바이 공항의 이용 승객 수는 날로 늘어나, 6위 (2008년), 5위 (2010년), 4위 (2011년)를 하더니 드디어 작년 2위로 올라섰고,

이제 1위인 영국 히드로 공항을 위협하고 있다.

(전체 승객수를 기준으로 보면, 아틀란타 공항이 1위, 베이찡 공항이 2위, 히드로 3위, 도쿄 공항이 4위, 두바이 7위, 인천은 25위이며,


비행기 이착륙 수를 기준으로 보면, 시카고, 아틀란타, 텍사스, LA 등 미국 공항이 1~4위를 차지하고, 베이찡 공항이 5위이며,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승객이 이용하는 구간은 서울-제주 노선으로 한 해 1천만명 이상이 이용한다.)

2013년 기준 공항이용 국제 승객수는 런던 히드로 공항-두바이 공항-홍콩 공항-파리 공항-싱가폴 공항-암스테르담 공항-프랑크프루트 공항-방콕 공항, 그리고 9위인 인천공항, 10위 터키 이스탄불 공항 순으로 많다.

일본 나리타는 13위이며, 뉴욕 존F케네디 공항은 17위이며 중국 공항은 30위 안에 없다.

즉, 미국 중국 일본의 주요 공항은 외국인 보다 내국인 이용이 더 많다는 이야기.

런던, 파리, 싱가폴, 프랑크프루트, 터키는 전통적인 국제 허브 공항들이고, 인천 공항이나 두바이 공항이 10위 권 안에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데, 두바이 공항 이용객이 많은 건 두바이 정부의 허브 공항화 전략이 잘 먹힌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 공항은 사실 전세계 어느 공항보다 청사 건물이나 시설이 깨끗하고 좋다고 할 수 있지만, 공항 시설이 좋다고 항공기가 그 공항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기사처럼 24시간 면세점, 수면 의자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란 이야기이다.

항공기들이 특정 공항을 이용하려면 여객 청사 시설보다는 이착륙비용과 유류대가 싸야 하는데, 두바이는 산유국이라는 잇점을 살려 낮은 비용을 책정해 항공기를 유인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인천 공항과 비슷한 시기에 개항한 일본 오사카 공항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가 바로 지나치게 높은 Landing fee와 유류대 때문이다. (오사카 공항은 바다를 메꾸어 만든 공항으로 공사비 탓에 유별나게 높은 Landing fee를 지불해야 함.)

항공기의 공항 이용료의 경쟁력 뿐 아니라, 활주로 갯수와 무엇보다도 자국 항공사의 해외취항 노선 수가 많아야 하는데, 대한항공, 아시아나 양 사 모두 노선을 늘리는데는 소홀하고 돈 되는 노선 경쟁만 할 뿐이다.

사실 대한항공은 승객 수송뿐 아니라 카고 운송에서도 순위에 드는 항공사이지만, 아시아나와 경쟁할 생각을 버리고 좀 더 우뚝 서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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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엔 있고 인천엔 없다, 24時 면세점·睡眠(수면)의자

2014년 11월 18일


새벽에 잘 생기는 변형 협심증 (Variant Angina)



협심증이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의 문제로 심장 근육에 혈액과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기는 증상인데,

관상동맥의 문제란, 혈전 (피떡)이 동맥에 끼어 동맥이 좁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관상동맥의 경련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관상동맥의 경련으로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생기는 협심증을 이형협심증 (Variant angina)라고 하는데,


보통의 협심증은 계단을 오르거나, 운동 시에 가슴 통증이 생기는 것과 달리, 이형 협심증은 안정하고 있어 심장에 많은 산소가 필요하지 않는 경우에도 생긴다는 특징이 있고, 특히 새벽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협심증이 있으면 대단히 강력한 가슴 통증이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어서, 단지 가슴이 답답한 정도거나, 어깨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되는 것처럼 더부룩한 경우도 있어 놓치기 쉬운데,

이른 아침 출근 도중에 가슴이 답답해 차를 몰고 응급실로 멀쩡히 걸어 들어와 응급실에서 심근경색이 생기는 경우도 많고,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변형 협심증이 곧 심근경색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동맥경화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근경색으로 이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변형 협심증은 관상동맥의 경련이 없을 때에는 심전도나 혈액 검사 등을 통해 사전에 밝혀낼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변형 협심증은 관상동맥확장제인 나이트로글리세린에 반응이 좋은 편이라는 것.

따라서, 이미 변형 협심증으로 진단받았거나 협심증, 심근경색의 소인이 있는 경우, 즉, 고혈압 당뇨 등의 기저 질환이 있고, 40대 이상인 경우, 흡연을 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경우에는 비상약으로 나이트로글리세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물론, 나이트로글리세린은 부작용도 있으며, 보관에 주의해야 하고, 진통제 먹듯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약이 아니므로 반듯이 의사의 처방과 약물 사용에 대한 주의 사항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 백승찬 울산시 의사회장님을 애도하며...


2014년 11월 18일

심폐소생술 비용 계산



심폐소생술을 할 때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통상 병원에서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할 경우,

1) 기관내 삽관
2) 심폐소생술
3) 제세동술


과 약물을 투여하게 됩니다.

병원에서 행해지는 각 행위에는 상대가치점수라는 점수가 매겨져 있고, 점수당 가격이 있습니다. 이 가격을 환산지수라고 하며, 해마다 공급자 단체와 건강보험공단의 계약으로 정해집니다.

2013년 기준, 병원 환산지수는 점수 당 67.5원이며, 위 행위의 각 점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기관내 삽관 : 280.36 점 -> 18,924 원
2) 심폐소생술
; 15 분간 시행할 경우 -> 718.25 점 -> 48,481 원
; 30 분 시행할 경우 -> 802.88 점 -> 54,194 원
; 하루 종일 시행할 경우 -> 10,56.76 점 -> 71,331.3 원
3) 제세동술 (횟수와 무관하게)
809.02 점 -> 54,608 원

즉, 심정지 환자가 발생해서, 기관삽관하고, 간호사 2명, 의사 2명 등이 달라붙어 하루 종일 심폐소생술하고, 제세동기를 수 없이 때려서 발생하는 병원 매출은,

144,863원 가량이며, 환자는 이 중 40% (종합병원 50%)인 5만8천원 정도이며 나머지는 공단이 부담하게 됩니다.

의료 사고를 보는 시각





모든 전문직종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의사는 상당 기간의 교육과 수련이 필요한 직종이다.

전국에서 제법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을 추려, 최소한 6년의 대학 과정을 가르치는데, 여느 대학생보다 월등히 많은 수업(학기당 40학점 수준)과 실습, 재시험 제도와 과락 제도 (한 과목이라도 낙제점을 받으면 1년을 다시 다녀야 하는 제도)가 있어, 전국 의과대학생의 평균 재학 년수가 7년을 훌쩍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줄줄히 시험을 치뤄야 해서, 졸업 시험과 국가 고시는 물론, 인턴, 레지던트 시험, 전문의 시험을 모두 치루고 나서야 전문의가 되는데, 이렇게 하기까지 정규 코스를 밟아도 최소 11년의 학습 과정이 있어야 하고, 남학생의 경우 39개월의 군대 생활은 덤이다.


이렇게 전문의가 되는 의사 수는 전국 의과대학 졸업생의 90%에 육박해, 사실상 우리나라 의사의 학력 인플레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과한 편이다.

또, 인턴, 레지던트 5년간의 수련 기간 중 근무 시간 역시 미국 등 선진국의 2배에 달하므로, 실제 그들보다 2배의 수련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의를 딴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낮은 수준의 급여를 받아가면서 또 몇 년씩 병원에 남아 펠로우를 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전문의를 넘어서 세부 전문의 과정을 또 겪거나 학위를 받기 위해 또 공부를 한다.

병원에 근무하거나 개업을 하여도 철마다 학회나 보수교육을 들어야 하는 건 말할 나위 없다.

의료업은 특히나 경험이 중요한데,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 의사들의 업무량은 지나치게 과중한 편이며, 이는 곧 우리나라 의사들의 상당수는 다른 나라 의사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임상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의사가 잘 났다는 게 아니라, 이게 현실이고 적어도 '몰라서' 환자를 소홀히 하거나, '실력이 없어서' 의사짓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 중에는 잘못된 의학 교육을 받거나, 경험을 가진 이들이 없을 수 없고, 게으르거나 주의를 집중하지 않아 생기는 사고도 부정할 수 없다.

의사 조직의 자율 징계와 윤리위가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사의 실력과 의업을 접하는 태도의 문제점은 법으로 규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반인이 알기 쉽지 않기 때문에, 동료들이 보아 의업을 더 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하거나 재교육을 해야 한다고 평가하고 규율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에게 특정 지역에서 개업하거나 취업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의사회의 승인을 얻도록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생각해야 할 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건, 자동차 타이어를 갈거나 범퍼를 교체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의학에서는 '정상치'란 개념이 없다.

다만, '참고치'가 있을 뿐이며, 이의 의미는 사람이란 개체는 너무나도 변이가 많고 개체별 차이가 크므로 어떤 검사 결과나 증상을 놓고 딱히 '정상이다, 아니다'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진료 지침은 존재하나, 그 지침으로 의사의 진료 행위를 제한해서는 안되는 이유와,

의학이 기술이 아니라 art 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값을 input한다고 늘 같은 output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만 명의 환자에게 같은 약을 주사해도 꼭 한 두명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오는 것이 의료 행위이다.

또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의사가 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는 근본적으로 긍휼의 마음에서 나오는 선의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악의를 가지고 환자를 해치려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행위의 모든 기본은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언급했듯이 사람이란 누구나 다 똑 같지 않으며, 질병의 진행도 늘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예상치 못하는 결과가 나오거나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의사가 선의를 가지고 한 의료 행위의 결과만을 놓고 의사를 처벌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의료 사고는 이런 관점에서 들여다 봐야 한다.

따라서, 의사의 과실의 정도보다 환자의 상해 정도를 기준으로 처벌하도록 되어 있는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많은 나라들이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사들이 모여 그 의사의 행위를 검토하고 과실의 정도를 가늠하여 재교육하는 수준에서 처벌하는 이유도 그러한데, 우리나라처럼 형사적 책임을 물어 살인자의 멍에를 씌우는 것과 비교된다.

물론, 의사의 과실 결과에 따른 피해자의 보상 문제는 별도이다.

사람은 누구나 최고의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최고의 의사에게 최선의 진료를 원한다.

더우기 우리나라처럼 어느 병원,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받던 같은 가격이 매겨져 있다면, 이왕이면 더 나은 병원, 더 나은 의사를 찾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며,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산에서 가장 큰 소나무는 단 한 그루이듯, 그 방면의 가장 유능한 의사는 전세계에서 단 한 명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단 한 명에 불과하다.

만일 모든 환자들이 다 같은 바램으로 다 그 의사만 찾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래서 의료 이율은 통제되어야 하며, 의료 자원은 효율적 이용을 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2014년 11월 3일

"무상의료"를 하면 누가 반대할까?





무상의료는 진보 진영과 야당의 주장인데, 무상의료의 개념은 병의원을 이용할 때 별도의 진료비를 부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무상의료를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건강보험을 존속시키고, 보장성을 100%로 끌어 올려 본인 부담을 '0'로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건강보험을 폐지하고 이른바 '의료 복지 제도'를 도입해서 영국이나 캐나다처럼 국가가 직접 의료시스템을 운영하는 NHS (National Health Service)를 도입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보험료를 대폭 인상해야 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보험료를 없애는 대신 세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사실 어느 쪽이든 재원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므로, '무상'이 '무상'은 아니다.

무상의료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의료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 강력하게 통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의료 소비는 제한되고 규제되며 지금과 같은 '선택권'은 강력히 제한되어야 한다.

이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의료소비가 경합되므로 과소비는 극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 공급의 통제는 지금도 지나치게 강력하므로, 사실 의료 공급자들이 겪는 통제감이 더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공급자들은 정부나 공단만 상대하면 되므로 전선을 줄일 수 있고,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받을 수도 있다. '착한 적자'를 내고 있는 공공병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NHS를 운영하는 영국의 1차진료의는 전세계 1차진료의 중에서 가장 소득이 높고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이미 의료업으로 떼돈 버는 시기는 물 건너갔다.

그러니, 무상의료가 도입되면, 국민들은 처음에는 이를 반길지 모르지만, 종국에 이 제도에 불만을 터트리고 반대할 주체가 될 것이다.

지금의 국민들은 현재도 다수의 의료기관에서 쇼핑하듯, 미장원에서 머리하듯, 이것 저것을 해달라고 주문하고, 예쁘게(?) 해 달라고 주문한다.

왜냐면, 자기 호주머니에서 진료비가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며,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환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진료비는 총진료비의 20~30%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매달 내는 보험료는 별도 이야기이다.

무상의료가 실현되면, 이런 주문은 더 이상 씨알이 먹힐 수 없다.

의사를 만나는 건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암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원래 의료는 돈이 많이 드는 행위이다.

그런데, 소비자, 공급자, 보험자의 세 축에서 누군가가 희생을 치루고 있었기 때문에 수십년간 저렴한 의료가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 희생의 임계점이 넘어선지 오래이고, 어떤 식으로든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난, 무상의료가 그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현실성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2014년 11월 1일


우산 혁명의 원인




작금의 홍콩 사태, 즉 우산 혁명 (Umbrella revolution)으로 불리는 민주화 운동의 원인은, 알려진 바와 같이 홍콩 자치 정부의 수반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장관” 선출 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 행정장관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당시부터 현재까지, 홍콩의 헌법 기능을 하는 “홍콩 기본법”에 따라, 800 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추천과 투표를 통해 선출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홍콩 섬은 지난 1841년 영국에 의해 점령 되었으며, 난징 조약에 따라 청나라로부터 정식으로 영국으로 양도 된 바 있다. 이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에 의해 침략되기도 하였지만, 일본 패전에 따라 다시 영국의 식민지권이 회복되어 1997년까지 영국에 의해 통치되었다.

1997년 7월 홍콩은 다시 중국으로 반환 되었고, 반환 전, 영국 지배 하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하에 생활하던 홍콩 시민들은 중국 반환에 따른 제도 변화와 재산권 침해를 우려하여 대거 홍콩을 이탈하기도 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민 하였지만, 실제로는 영국과 중국과의 조약에 따라, 소위 “일국양제”라는 묘안(?)을 통해 홍콩 시민들의 경제권과 자치권은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중 조약은 97년 이후 50년 동안 일국양제를 인정키로 한 것이다. 이 조약을 통해 영국식 민주주의와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의 역할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영국이 임명하고 파견해 온 총독과는 달리 홍콩 출신의 행정 수반을 ‘선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 선출에 대해 홍콩 시민들의 지속적인 불만을 야기하여 왔는데, 이는 지난 행정장관들이 모두 친중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 시민들이 행정장관의 직선제 선출을 끊임없이 요구한 것에 대해, 최근 중국은 전인대(전국인민대대회)를 통해, 2017년부터 선거인단을 1,200 명으로 늘리고, 이들이 추천하는 인물 서너명을 후보로 하는 직선제를 통해 행정장관을 선출하도록 선거 제도를 개편하게 된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은 이 안대로 할 경우, 선거인단이 친중 성향의 후보만 추천하게 되어 결국, 중국이 원하는 후보가 행정장관으로 선출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일국양제에서, 일국일제로 가는 단초를 제공하게 될 것이며, 종국에는 홍콩은 중국 공산당의 발 아래에 놓이게 될 것이라며, 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대 데모를 하게 된 것이다.

영국 역시, 전인대의 행정장관 선출 안은 영-중 간에 맺은 일국양제 조약을 어기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으며, 미국 또한 홍콩시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충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작 중국 본토의 중국인들은 홍콩 사태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침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중국 정부가 언론과 SNS, 구글을 강력하게 검열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 시민들은 이제 단순히 “원칙적인 보통선거” 주장을 넘어서 현 홍콩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중국군 파견을 고려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고 있어, 중국 정부와 홍콩 시민의 충돌을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0월 1일


우리도 아이언 돔과 같은 방공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군사 전문가가 아니어서 내용상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감안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통해 말하려는 것은, 우선,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분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대한 것입니다.


특히, 하마스의 로켓 공격과 이를 막아 낸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에 대한 반응은 제 각각인데, 언론에 따라서도 아이언 돔이 요격한 비율이 90%가 넘는다고 하는 곳이 있는 반면, 채 30%가 안 된다고 평가 절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아이언 돔 방공 시스템 덕분에 이스라엘은 이렇다 할 물적, 인적 피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언 돔이 실전 배치된 건, 2010년 경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이전인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당시 4천발의 카츄사 로켓이 이스라엘을 집중 폭격했고, 이 때 민간이 44명이 사망하고, 4천명 이상이 부상했으며, 25만명이 대피한 바 있습니다.

캬츄사 로켓은 다연장 로켓포를 의미하며, 우리가 “장사정포”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장사정포는 북한이 보유한 장거리 사격이 가능한 화포를 통칭하며, 다연장 로켓포와 자주포를 의미하는데, 북한이 사용하는 다연장 로켓포가 바로 러시아의 캬츄사 로켓을 개량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2000년~2008년 사이 하마스는 약 4천발 이상의 로켓포와 4천발 이상의 박격포를 쏘았는데, 이 같은 포격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아이언 돔인 것입니다.

아이언 돔과 같은 방공시스템은 크게, 날아오는 포탄을 잡아내는 레이더, 이를 요격하는 요격체, 이를 지원하는 컴퓨터로 나눌 수 있는데, 미국의 방공시스템은 이지스 레이더 시스템과 수퍼 컴퓨터를 사용하는 반면, 이스라엘 아이언 돔은 자체 개발한 레이더 망과 소형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언 돔 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미국의 지원을 포함해 약 5억불(5천억원) 가량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편, 북한은 서울을 요격할 수 있는 장사정 포 350 문 이상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군사 전문가들은 1 시간 안에 서울의 1/3을 포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장사정 포는 북한이 보유한 무기 중에서 어쩌면 핵무기 보다 더 현실적이며 위협적인, 가장 파괴력이 크고 효과가 확실한 무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한, 장사정포 공격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은 포가 발사되면, 그 포의 위치를 역추적하여 그 포를 공격하는 방식이며, 날아오는 포탄이나 미사일에 대한 요격 시스템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대응 방식은 과거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적용되었으나 실제 포격을 받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논란이 있었으며 (전체 6문의 포 중 실제 3문의 포로만 대응 사격. 북한군은 포를 쏜 후 포를 이동하여 실질적 손실을 보지 않은 것으로 추정) 이것으로는 충분한 방어를 하지 못함을 드러냈습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장사정포는 방공시스템으로 방어할 수 없다고 단정하지만, 이번 이스라엘의 예를 볼 경우, 상당한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아이언 돔과 같은 방공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레바논 헤즈볼라가 사용한 장사정포인 다연장로켓포는 북한의 기술과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 재미 이스라엘 인 30명은 북한이 이에 기술을 지원했다며 북한에 대한 1억불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하마스 등이 보유한 로켓포 역시 북한이 지원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은 이를 완벽하게 막아냈기 때문에, 이 같은 방공 시스템이 필요성이 더욱 부각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방공시스템을 구성하는 3 구성 요소 중 레이더는 이미 국내 기술로 개발가능하며, 요격체 역시 국내 방산업체가 생산 가능하며, 컴퓨터 시스템 역시 가능합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이지스함을 건조한 기술력이 있으므로, 이 기술을 적용한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서울 인근에 배치할 경우,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도 패트리어트, 천궁 등의 미사일 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가격이 비싸고 수량에 한계가 있는 반면, 이스라엘 아이언 돔과 같이 저가의 작은 무게를 갖는 요격체를 개발하고 더 생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요격체를 미사일이 아닌 레이저로 쓰는 요격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의 장점은 최초 시설 비용은 크나 요격체 단가는 싸다는 것이나 (최초 설치 시 1억4천만 불, 레이저 한 발당 2천불. 아이언 돔의 미사실은 5만불로 추정) 아직 실전 배치된 바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우리나라도 RIM-116 램이라는 방공시스템을 국산화한 바 있으며, 이에 사용되는 요격체는 사이드 와인더 공대공 미사일 개량형으로 소형인데, 현재 이를 이지스 함 등 함정에 배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을 뿐, 차량 이동형 지대공 방공시스템으로는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이를 응용하면 아이언 돔과 같이 수도 서울을 북한 장사정포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 같은 방공시스템은 군가 전문가들과 정부가 잘 알아서 하겠지만,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폭격과 아이언 돔의 효과를 보면서, 일부는 이 같은 방공시스템이 공론화되고, 국민들이 이의 설치를 요구하는 것을 오히려 저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을 오히려 무고한 사람을 이유 없이 학살하는 악의 축으로 간주하려 하고, 하마스라는 테러 집단을 마치 팔레스타인 독립 투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생깁니다.

이를 반대하고 저지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다들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더 부각하고, 강조하여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북한의 장사정포로 직접 포격이 가능한 유효 사거리 내에는, 파주, 고양시 전체, 김포와 인천의 일부, 인천공항, 김포공항 및, 서울 전역, 과천, 안양, 시흥 등이 포함되며, 대략 2천만 인구가 피격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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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4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을 보는 시각





팔레스타인에 지금 전투가 벌어지고 있고, 전쟁으로 진행 중입니다.

전투건 전쟁이건,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하는 것이 맞으니, 전쟁하는 걸 잘하고 있다고 하거나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양비론을 펼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더 나쁜 건 이걸, 유대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종교 갈등으로 해석하거나,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힘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으로 해석하려는 일부 무지각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건 이번 분쟁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 이스라엘이 타깃을 삼는 것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내 하마스 라는 무장 단체라고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자위권을 발동하고 있다고 봐야 하며, 이스라엘 정부가 자국 국민을 보호하고 방위를 목적으로 군사 행동을 전개하는 것을 제 3국이나 제 3자가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사태의 시작은 지난 6월 초 세 명의 이스라엘 소년들이 실종되면서 시작되었고, 결국 이 아이들은 비참하게 살해된 체 발견되었는데,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의 실종이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판단 후에 수색 작업을 전개했고, 이에 맞서 하마스는 봉기를 선언하며 조잡한 로켓을 이스라엘 민간 거주 지역에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나후 총리는 하마스에게 로켓 공격을 중단한 것을 촉구했고, 이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팔레스타인을 침공할 것을 천명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가자 지구를 떠나 대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마스는 이스라엘 국민을 모두 죽이겠다며 로켓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천명한대로 공습을 시작했는데, 하마스 조직은 시민들을 건물 옥상에 배치하여 인간 방패로 삼았습니다.

피습된 지역은 하마스가 뚫어 놓은 땅굴 (이 땅굴은 밀수와 무기 운반, 납치 등에 사용된 것으로 보임), 로켓 발사대 (발사 지역), 무기를 보관 중인 모스크와 하마스 간부들의 주택 등 하마스와 연관된 민간 건물 등입니다.

반대로 하마스 조직이 발사한 로켓은 유도 장치가 없는 발사체로 이스라엘 민간 지역에 무차별적으로 폭격이 가해졌지만, 이스라엘의 방공시스템인 아이언 돔에 의해 대부분 요격되어 큰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일부는 개념 없이, 이유가 뭐든, 무고한 아이들과 민간인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이스라엘을 비난할 수 있는데, 물론 그건 사실이지만, 이건 전쟁 행위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collateral damage이며, 필연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민간인 피해가 커진 것은 하마스가 이들을 인간 방패로 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희생자들의 가족이나 국민들이 항의하고 분노해야 할 대상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들을 인간 방패로 내세우고 무의미한 폭력과 테러로 사태를 악화시킨 하마스와 이를 방조한 팔레스타인 정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마스 측은 이 같은 민간인 피해를 이용해서 이스라엘의 공습이 국제사회에서 비난 받도록 하고 있는데, 이런 선동전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네타나후 총리는 공습에 앞서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 국민에 대한 테러는 용인할 수 없으며, 하마스는 로켓 발포를 중단해야 하며, 이를 선언하지 않으면 가자 지구를 침공할 것이며, 이번에 가자 지구를 점령할 경우, 그 땅은 영원히 이스라엘에 편입시킬 것이다.

팔레스타인 주민은 공습을 피해야 한다. 민간인에게 피해를 줄 수 밖에 없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나 이건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정부가 선택한 것이며, 우리 국민을 대량 학살의 타겟으로 삼게 하느니, 팔레스타인 국민을 난민으로 만들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 이스라엘의 자제를 주문하는 유엔과 세계 각국에 대해서도 일갈했는데, 그건 이 갈등의 근본적인 이유와 이스라엘을 둘러싼 현황에 대한 아무런 이해 없이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충고(?)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건 이런 것인데, ‘이스라엘을 향해 더 이상 지겨운 자제심 충고를 하지 말라, 너희 같으면 어린이와 여자를 포함한 국민을 학살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이 무자비한 폭격을 하고 있는데,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겠느냐, 우리는 자위권을 발동하는 것이다.’라는 것 입니다.

네타나후 총리는 2013년 유엔 연설을 통해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 희망을 지켜주는 것은 경계심이다.’라는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경계심을 잃으면, 희망 역시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역사와 고통을 통해 확고한 교훈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아랍 국가들에 둘러 쌓여, 팔레스타인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구 상에서 쓸어버려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이란과도 대적해야 하는 입장에 있으며, 이란은 현재 핵무기를 개발 중인데, 유엔이 이를 제재하지 않을 경우, 이스라엘 단독으로라도 이를 응징하기 위한 군사 작전을 전개할 것을 천명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아랍 국가들이 이란이나 하마스에 동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입니다.

하마스와 같은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이라크 등에서 봉기하고 있는 ISIS,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 국가와 아프간, 파키스탄 등의 중앙 아시아, 이집트,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탈레반, 알 카에다와 같은 무장 조직들에 대해서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그 같은 폭력적 행위에 대해 반대하며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랍인들과 무슬림들은 평화를 원하며 이스라엘이든 미국이든 갈등을 원하지 않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무턱대고 친 이스라엘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 그만두고라도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는 이스라엘 정부의 스탠스나 네타나후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부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건 정확하고 명쾌한 안보 인식과 자국민 보호에 대한 태도입니다.

어정쩡하거나 애매모호한 태도가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 지켜야 한다면 언제든 무력을 쓰겠다는 명확한 태도 말입니다. 이를 위해 힘을 기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의 거의 유일한 분단 국가이며 휴전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하마스 조직이 이스라엘을 향해 퍼붓고 있는 로켓. 언론에 의하면 이것의 가격은 80만원 정도. 이를 요격하는 데 쓰인 아이언 돔 미사일 가격은 5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2014년 7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