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30, 2018

화재 예방을 위한 전기 배선과 북미의 화재 대책











우리나라 화재 원인은 절반이 부주의 때문이고, 1/4 가량이 전기로 인한 화재이다. 대부분 합선, 누전, 과부하가 원인이다.

그 원인은 대부분 잘못된 전기 시공, 부적합한 전선과 차단기의 사용, 전기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합선 사고는 전선의 노후나 피복제의 경화 등으로 피복이 벗겨지거나, 쥐가 전선을 갈아먹거나, 전선을 이은 곳에 누수가 되며 생기는데, 사실상 가장 큰 이유는 전선을 이어 붙이며 시공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어느 전기 업체가 신축 주택 배선을 하면서 배전함에서 천장으로 선 하나를 보내 거기서 여러 가닥의 전선을 방사형으로 각 방으로 분배해 시공한 것을 보고 아연질색한 적 있다.

전기 공사 중 배선을 하다가 전선을 이을 필요가 있으면 반듯이 배전함(electric gang box)을 설치하고 그 박스 안에서 이어야 하며, 차단기에서 전등, 스위치 박스, 전기 소켓함(receptacle box) 등으로 잇지 않은 하나의 전선을 바로 보내야 한다.

전선을 이을 필요가 있을 때는 절연테이프로 감아 두기보다는 pigtail wire connector 등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어떤 상가에서 에어콘을 돌리면 자꾸 차단기가 떨어진다고 차단기를 빼버리고 아예 전선으로 이어버린 것을 본 적이 있다.

차단기(breaker)를 설치하는 이유는 전선이 허용할 수 있는 용량 이상의 전기가 흐를 경우 전선이 과열되어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따라서, 전선의 굵기와 차단기 허용 전류량(암페어)은 정해져 있다.

만일 14게이지(G)의 굵기의 전선으로 배선했다면 차단기는 15암페어를 설치해야 한다. 이 때, 전압 110 볼트라면 50 피트, 220 볼트라면 최대 100피트 이상의 전선을 배선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 전선에 전등이나 가전기구를 여럿 사용하여 15 암페어 이상의 전류가 흐르게 되면 과열될 수 있으므로 차단기가 전기를 끊는다.

예를 들어, 에어컨, 전자렌지, 전기 오븐, 커피 포트 등 사용 전력양이 큰 가전을 동시에 쓸 경우 차단기는 떨어지게 된다.

전류(암페어) X 전압(볼트) = 전력(와트) 이므로, 동일한 전압(예를 들어 220볼트)에서 사용 전력양이 큰 가전, 예를 들어 1000 와트의 가전을 사용한다면, 그 전선에 걸리는 전류는 4.5 암페어이므로, 1000 와트 이상 가전 3개 이상을 동시에 쓰게 되면 15 암페어 차단기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단기를 20 암페어 혹은 그 이상의 암페어를 사용할 경우 전기가 차단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전선이 과열되어 화재로 이어진다.

또 만일 15 암페어 차단기를 설치하고 14G 보다 가는 전선을 배선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화재가 생길 위험이 있다.

전선의 길이가 차단기의 허용 한계를 넘어 너무 길게 배선할 경우에도 저항이 발생하면서 화재가 날 수 있다.

우리나라 주택은 대부분 콘크리트와 벽돌로 골조를 하지만, 목조로 골조를 하는 미국, 캐나다 주택은 화재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화재 예방에 대해 과할 정도로 강력한 규제를 한다. 특히 대부분의 화재가 전기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전기 공사에 대한 감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까다롭다.

(북미의 경우, 공정이 끝나면 공정별로 시에서 나오는 감리자(inspector)가 승인을 해야 다음 공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가장 까다로운 승인 절차가 기초 공사, 배관, 전기인데, 특히 전기 승인 받기가 가장 어렵다.)

북미의 건축법은 주택에서 화재가 날 경우 어떻게 불을 끄느냐 보다는 어떻게 빨리 화재 현장에서 탈출 하느냐가 화재 대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화재가 날 경우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는 대비책을 한다.

만일 어느 한 방에서 화재가 나면, 그 화염이 다른 방으로 퍼지는 것을 막아 대비의 시간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

북미 목조 주택의 벽과 천장은 모두 1/2 인치 혹은 5/8 인치 두께의 드라이월이라는 석고보드로 시공된다.

이 석고보드들은 불연재이므로 불에 타지 않는다. 다만, 열기를 전달하는데, 벽의 구조재인 목재는 화염이 아니라 열기에 의해 발화될 수 있다. 이렇게 발화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1시간 방화벽 (1 hour fire rated wall), 2 시간 방화벽 등으로 나누는데, 일반 주택의 경우 1시간 방화벽 기준으로 시공하게 된다.










즉, 방안에서 불이 나서 가구와 침대 등을 타더라도 다른 방으로 불이 옮겨붙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물론 방안에서 피어나는 화염의 양은 변수가 될 수 있다. 국내 목조주택의 일부에서 나무의 질감을 느껴보겠다며 벽이나 천장을 목재로 마감하는 경우가 있다. 보기는 좋을지 몰라도 화재 발생 시에는 매우 취약할 수 있다.

두 번째 대비책은 빠른 대피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는 모든 외부 출구는 밖으로 열리도록 설계한다. 방 문의 시건장치는 발로 차면 잠금 장치가 부러질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캐나다와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원형의 문 손잡이를 퇴출시켰고, 레버 형으로 바꾸도록 하고 있다. 화재로 당황할 때 문을 열기 쉽게 하기 위함이다.

또, 방의 창문, 거실, 부엌 등에 일정 크기 이상의 창을 설치하도록 하여, 위급시 창을 깨고 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외벽에 나 있는 창문의 크기가 크면 외부에서 침입도 쉽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외부인의 무단 출입, 특히 창을 깨고 들어오는 침입은 가중하여 처벌한다. 때문에 집 주인에게 총 맞아 죽고 싶지 않거나 반 평생을 교도소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 남의 집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건 참아야 한다.

화재는 예방이 가장 중요하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무조건 밖으로 대피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화재 현장에서 자신만 대피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도와 같이 대피하는 건 이타적인 고귀한 행동이지만, 화재 발생시 누굴 구해보겠다고 화염 속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는 건 숭고한 행동일지는 몰라도, 동시에 바보같은 행동이다.

밀양 병원 화재 시, 1층에 있었던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세 명은 얼마든지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바보처럼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 생각만 하며 억장이 무너진다. 바보들... 그들의 명복을 빈다.



2018년 1월 30일





Saturday, January 27, 2018

공명심의 댓가-연명의료결정법












연명의료결정법은 결과적으로 의사의 재량권, 의사에 대한 환자 보호자의 신뢰, 환자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모두 빼앗아간 꼴이 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의 대상자는 1) 모든 임종 환자 2) 말기환자 등 죽어가는 모든 환자이다.

이 둘의 차이는 사망이 임박했느냐 아니면, 회복 가능성이 없어 수 개월 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느냐의 차이이다. 현행 법으로는 말기환자의 대상 질환은 암, AIDS, COPD, LC 이다.

이 법은 한 마디로 '죽으려면 서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서류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이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다.

환자가 생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었다 해도,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또 필요하다.

즉, 환자가 의식이 있으면, 환자에게 직접 확인해야 하고, 의식이 없으면 의사 2명이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에게 확인해야 하는데, 이들은 모두 19세 이상이어야 하며, 가족 2인 이상으로부터 환자가 평소에 연명의료중단을 원했다는 진술을 받아 법정 서식을 작성해야 하며, 만일 가족 중 누구라도 그에 반하는 진술을 할 경우 연명의료 중단을 할 수 없다.

이 절차를 어기면 의사는 3년 이하의 징역, 3천만원 이하의 벌금, 면허 정지 혹은 취소를 당할 수 있다.

만일 사전에 사전영면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지 않았던 환자가 말기 환자라면 의사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 과정은 한 마디로 '당신은 말기 환자이므로 치료해도 회복할 수 없으며 조만간 사망할 것이므로 우리는 치료를 중단할 것인데 이에 동의하느냐'고 물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의한다는 서명을 받고, 이 과정을 녹취 혹은 녹화하라는 것이다.

만일 사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지 않았던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거나 의식이 없는 경우가 발생하면,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를 받아야 한다.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해외에 있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가족 전체의 합의를 받기 전에 심정지가 발생하면,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어겨도 의사는 3년 이하의 징역, 3천만원 이하의 벌금, 면허 정지 혹은 취소를 당할 수 있다.

이 같은 처벌은 환자의 가족, 친지 등이 부적절한 과정을 겪었다고 고발하거나, 병원 근무자의 내부 고발이 있거나, 당국이 인지하여도 처벌할 수 있다. 환자가 연명의료중단 결정으로 사망하면, 이 같은 고발이 들어오지 않을까 적어도 공소시효 기간이 지나는 3년은 마음 졸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이 연명의료중단 결정은 너무나 복잡하고 가정이 많으며, 고지해야 할 사항, 작성해야 할 서류가 많아, 어디서 어떤 헛점이 발견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했을까?

한 마디로 이 법을 고안한 고명하신 교수님들은 의사들이 감히 환자의 사망에 관여하는 것이 미덥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네 주제에 환자의 치료 중단 결정을 내리고, 너 따위가 환자에게 사망 선언을 해?'

라고 생각했던 것 아닌가 싶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애초 취지는 치료를 중단하고자 하는 환자와 여러가지 이유로 더 이상의 치료를 원치 않는 가족의 의지를 존중하자는 것이다. 그랬을 때, 그 결정을 내린 의사를 법적으로 보호하자는 것이어야 했다.

과거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는 가족의 의지를 존중했더니 느닷없이 의사를 살인죄로 몰아 기소했던 일이 있었다.

그게 보라매 병원 사건이다.

보라매 병원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외상으로 뇌손상을 받은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 보호자를 수소문하다 연락이 닿지 않자, 보호자의 동의없이 수술이 진행되었다. 이후 부인이 나타났고, 부인은 '보호자 동의없이 수술 했고,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퇴원을 원했고, 의사들은 그럴 경우 사망 한다며 만류했는데, 부인은 사망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환자를 데려갔다. 결국 환자는 사망했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올케가 경찰서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결국 검찰은 부인을 살인죄의 주범으로, 의사들은 종점으로 기소 했으며, 재판 끝에 의사들은 징역 1년 6개월 형과 집예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이후 사실상 존엄사로 간주되었던 Hopeless Discharge(소생 희망이 없어 병원에서 객사하지 않도록 집으로 모시는 것)나 DAMA(Discharge Against Medical Advice. 즉, 의학적 권고에 반하는 환자의 퇴원)라는 관행은 사라졌다.

즉, 사법부의 무리한 판결로 환자나 가족들이 치료받지 않고 퇴원할 권리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의사들은 살인죄로 기소당하지 않기 위해 사망에 이르기까지 치료를 계속해야 했다.

이후 또 변수가 생겼다.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이다.

2008년 김 할머니는 Y 대 S 병원에서 폐조직 검사 중 과다출혈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후 인공호흡기 등에 연명하였는데 가족들은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병원은 거절했고, 이에 소송을 제기하여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 사망했다.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 제거 후에도 200 일 이상 생존했다.

가족은 왜 그리도 강력하게 연명치료 중단을 원했는지, 또 병원은 왜 그리도 강력하게 이를 반대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핵심이 "소생 가능성"은 아닐 것으로 추정한다. 즉, 소생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연명치료 중단을 반대했거나,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연명치료 중단을 원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어쨌든 김 할머니 사건은 연명치료 중단과 존엄사 논쟁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존엄사는 악용될 수 있다.

즉, 존엄사를 빌미로 더 치료하면 소생할 수 있는 환자의 죽음이 발생하거나 환자의 의지에 반하여 연명치료 중단이 발생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가능성에만 힘을 주어 입법한 건, 마치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며 막무가내 식으로 정신보건법을 개정한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정신보건법이나 연명의료중단결정법은 모두 사실상 의료 현실을 무시한, 탁상논리적 입법이기 때문이다.

이 법이 없어도 의료 필드에서는 치료자와 환자 간의 자생적 규율이 만들어져 큰 탈 없이 실행되었다. 굳이 필요하다면, 환자가 치료를 받지 않을 권리의 선언과 이 권리를 존중 했을 때 의사를 보호할 장치 정도만 있었으면 됐다.

그러나, 입법의 결과는 산으로 간 꼴이 되었다.

연명의료중단결정법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불보듯 뻔해 보인다.

적어도 당분간은, 모든 의료기관에서 임종 환자는 거의 예외없이 심폐소생술이 시행될 것이며, 말기 환자의 경우도 적극적 치료가 계속될 것이다.

왜냐면, 과거에는 환자의 상태, 가족의 의지, 경제력, 의학적 소견 등을 가장 잘 아는 주치의가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료의 정도를 조절하거나 자연사하도록 했다면, 이제는 그렇게 오지랍을 떨다가 감수해야 할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연명의료중단을 하기보다는 심폐소생술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사실상,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DNR(심폐소생술 금지)은 암묵적인 존엄사의 한 형태이었다.

그러나, DNR이 무력화된 이상,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환자에게는 존엄사는 실현되지 못하게 되었고, 의사는 의미 없음을 알면서도 환자의 늑골을 부러트려가며 가슴을 눌러댈 것이다.

몇몇 인사들의 공명심을 만족시킨 댓가로는 너무 크다. 누가 이 책임을 질 것인가?


2018년 1월 27일






Thursday, January 25, 2018

개탄스러운 연명의료결정법











일명 <연명의료결정법>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취해진 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제각각 입장이 다른데, 의료계의 입장은, 회생이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 등에게 단지 생명을 지속시키기 위해 막대한 의료 자원이 투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대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법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만일 연명의료(치료) 중단을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면, 의료계는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의학적 자문을 하는 선에서 역할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고, 연명의료 중단을 위한 입법을 먼저 주장하거나 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으나, 바램대로 되지 않았다.

의사는 환자 치료에 대한 제반 여건, 환경에 좌우되어서는 안되며 단지 동원가능한 모든 자원과 최선의 노력을 다해 치료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바꾸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명의료 중단은 ‘존엄’이란 단어로 어떻게 아름답게 포장하더라도 환자가 사망하도록 방치하는 것인데, 그 결정을 의사가 주도하거나 권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환자나 그 가족이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면 의사는 환자의 자기 결정을 존중하고 따르는 선에서 그쳐야 하며, 마찬가지로 입법 과정 역시 환자 단체나 시민 단체들이 입법을 추진하고 의료계는 자문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일부 의료계 인사 들이 총대를 멘 꼴이 되었고, 동시에 야기된 혼란의 책임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게 되었다.

법이 “~~을 하지 않으면, 혹은 하면, 처벌한다’고 규정하면 이건 규제 법이며 처벌 대상이 있다는 얘기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는 법인 동시에 규제법이다. 이 법이 정한 주요 규제, 처발 대상자는 의사이다.

이 법 39조는 법이 정한 방식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아닌 경우에 연명의료 중단을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천만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법이 정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요건이 매우 까다롭고, 법이 공포된지 2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이 법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이제까지 관례적으로 이루어진 DNR이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DNR(심폐소생술 금지) 은 주로 의식이 없거나 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 보호자들에 의해 작성되며, 이 서식은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더라도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겠다는 (혹은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아 사망하더라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일종의 사전 각서라고 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없을 당시 많은 병원들이 이 DNR을 근거로 치료를 중단하거나 소극적 치료를 해왔다.

그런데, <연명의료결정법>의 처벌 조항이 2월 4일 자로 발효되면서, 만일 DNR을 믿고 치료를 중단할 경우, 그 의사는 이 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천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된다.

즉,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없는 등, 법이 정한 복잡한 절차의 연명의료 결정이 없는 경우 치료를 중단할 수 없으며, 할 수 있는 모든 의료 행위를 다해야 처벌을 면할 수 있다. 물론 기관삽관 등 심폐소생술도 해야 한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하고, 치료를 중단하여 사망에 이르는 것이 존엄사라면, 당분간 수 많은 환자들은 존엄하지 못한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다. 오로지 이 법의 잘못된 설계와 어리석은 처벌 규정과 게으른 입법 홍보와 멍청한 사람들 때문에.

연명의료결정법은 지난 2016년 2월 입법되었고, 1년 6개월 후 시행되도록 하였으며, 위에서 언급한 법 39조 1항의 처벌 규정은 2년의 유예 기간을 두었는데, 오는 2월 4일 그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처벌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 법의 입법 후 법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다수 설치하고 이를 홍보하여 미리 연명의료계획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작성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이것이 미흡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굳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의 복잡한 요건을 정하는 규제 법을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 법은, 형식과 틀을 좋아하는, 대형 병원의 사정을 알지 몰라도, 그러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병원의 실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하더라도, 매우 아쉽다. 아쉬움을 넘어서, 걱정이 앞선다.
악의를 가지고 이 법의 약점을 파고 들어 의사를 고발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에 말이다.


2018년 1월 25일





Saturday, January 20, 2018

가상화폐는 실물 화폐의 대체제가 아니다.





케인즈






1.
"가상통화 열풍의 근원은 국경 없는 가상화폐가 전 세계 통화를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오마이 뉴스 기사 중)
     

그렇지 않다.

사토시를 비롯해 가상 화폐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들이나 여기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가상화폐가 전 세계 통화를 대체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토시나 초기 비트코인에 관여한 자들은 비트 코인을 실험으로 생각했을 뿐, 이것이 실물 화폐를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단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게 지난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미국 저소득 주택 담보 대출자들이 금리 상승으로 주택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했다.
금융 기관들은 대출금 회수 불능 상태에 빠져 파산한다.
달러 유동성 위기는 다른 나라 금융기관으로 퍼진다.
유동성 위기는 실물 경제로 전이되면서 국제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오마이 뉴스 기사 중)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미국 금융기관이 파산 위기에 빠진 건 담보 대출자들이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걸로는 AIG가 파산 위기에 빠진 걸 설명할 수 없다. AIG는 주택담보대출을 하는 리테일 금융기관이 아니라 보험이 주 업종이다.

물론, 리만브라더스처럼 모기지 채권에 직접 투자하였다가 파산한 경우도 있지만,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파장이 컸던 건, AIG 같은 금융기관들이 자제력을 잃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왑(CDS. Credit Default Swap)을 마구 팔았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은 모기지 채권이 부도 났을 때, 이 채권의 CDS를 사고 꼬박꼬박 프리미엄을 낸 CDS 매입자에게 부도난 만큼의 돈을 갚아 주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즉, 모기지 채권 부도는 직접적으로는 채권 소유자에게 손실이 가지만, 이에 대한 CDS를 팔며 프리미엄을 먹었던 금융 기관 역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면서 금융 기관이 파산에 몰리게 된 것이다. AIG는 무려 85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았다.

기자가 주장하듯 단순히 대출금 회수 불능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한 것이 아니다.

실제 주택을 위해 대출한 금액의 20배에 이르는 금융 시장이 MBS, CDO, synthetic CDO, CDO squared, EDS, TRS 등 각종 파생 상품으로 만들어졌고, 이 시장이 붕괴된 것이다.



3.
브레튼 우즈에서 케인즈는 어느 나라도 무역수지 흑자나 적자가 나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했다. 특정 국가의 지나친 흑자나 적자는 타국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International Clearing Union을 만들고 이 기구가 방코르(Bancor)라는 화폐를 만들어 무역에 이 화폐를 쓰자고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만일 어느 국가가 적자가 나거나 흑자가 나면, 그 국가는 이자를 내도록 강제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제안은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이긴 했지만, 케인즈의 주장대로 되었다면, 우리나라 같은 개도국의 성장은 정체되었을 것이며, 미국은 지금처럼 만년 무역 적자국이 될 필요도 없었고, 중국의 고도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자국 통화가 기축 통화이기 때문에 무역 적자를 감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무역수지 흑자는 곧 다른 나라의 적자를 의미한다.

달러 기축통화 체제가 세계 경제의 위협이라고 단순화 시키는 건, 그냥 반미적 주장일 뿐이다.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건, 미국의 경제력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월등했기 때문이다. 세계 대전 이전만 해도 영국 파운화가 기축 통화였다. 브레튼 우즈 체제가 구축될 당시만해도 금환본위제를 기반으로 화폐의 가치를 보증했기 때문에, 독보적인 양인 8천톤이 넘는 금을 가진 미국 화폐를 기축 통화로 결정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하는 건 결국 달러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소비되는 막대한 자금은 달러가 기축 통화이기 때문에 누리는 시뇨리지 효과 등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 경제가 영향을 받은 건, 달러 기축 통화 체제의 문제라기 보다는, 화폐 제도 나아가 금융 시스템 자체가 여전히 미성숙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가상 화폐가 실물 화폐, 특히 달러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는 건 억측이다. 스마트 폰이 컴퓨터를 대체할 수 없듯이 가상 화폐는 실물 화폐의 대체제가 아니라, 보완재로 자리매김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2018년 1월 20일






Friday, January 19, 2018

맥에서 가성비 최고로 윈도우즈 쓰기 - 버츄얼 박스 설치 요령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맥 만 쓰기에는 우리나라 컴퓨팅 환경이 완벽하지 않습니다.

특히 여전히 active X를 써야 하는 은행이나 정부 기관 사이트 들이 그렇지요. 이 때는 어쩔 수 없이 윈도우즈 환경에서 작업을 해야 합니다. 맥북이나 아이맥에서 윈도우즈를 돌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애플이 제공하는 부트캠프를 쓰거나 가상 머신을 쓰면 가능합니다.


부트 캠프는 무료이지만 부팅할 때 macOS나 윈도우즈를 선택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두 OS를 오가며 작업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패라렐즈나 VM웨어는 가상 머신을 구현해 주는 프로그램인데, 유료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윈도우즈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맥을 쓰다가 잠깐 윈도우즈를 쓸건데 이 조합은 (패라렐즈 or VM웨어 + 윈도우즈 정식 버전) 이걸 위해 적지않게 투자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료로 쓸 수 있는 가상 머신도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걸 쓰고 있습니다. 바로 오라클이 만든 '버추얼 박스'입니다. 버추얼 박스는 무료 프로그램입니다.

게다가 마소(마이크로소프트)는 개발자 사이트에서 가상 머신용 윈도우즈(이걸 버추얼 머신이라 부름)를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무료 사용 기간은 90일이지만, 가상 프로그램이 지원하는 스냅 샷(Snap shot)기능을 이용하면 거의 무제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능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무제한으로 쓰는 건 불법이 아니며,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가 안내하고 있는 겁니다.

개발자 사이트의 다운로드 페이지에 이런 안내가 있습니다.

These virtual machines expire after 90 days. We recommend setting a snapshot when you first install the virtual machine which you can roll back to later. Mac users will need to use a tool that supports zip64, like The Unarchiver, to unzip the files.
The password to your VM is "Passw0rd!"

즉, 90일로 사용이 제한되어 있지만, 스냅 샷으로 롤백 해 계속 써라.
맥 사용자의 경우, 가상 머신용 윈도우즈(버추얼 머신)이 zip 파일 형태로 저장되어 다운로드되니, 앱 스토어에서 unarchiver 를 다운로드 받아라. (다른 앱으로 압축을 풀면 에러가 납니다.)
버추얼 머신의 암호는 Passw0rd! 이다.

이럴 때 보면, 참 친절한 마소입니다.

이걸 받기 전에 먼저 오라클에 가서 버추얼박스(Virtualbox)를 다운 받아 깔아 놓습니다. 버추얼 박스를 실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버추얼박스는 5.2.6 버젼까지 나와 있습니다.

다음 페이지에서 두 가지 파일을 받아야 합니다. 먼저, OS X host 용 패키지를 받고 그 다음 확장 패키지(VirtualBox 5.2.6 Oracle VM VirtualBox Extension Pack)를 받습니다.

https://www.virtualbox.org/wiki/Downloads


그런 다음, OS X host 용 패키지를 깔아 실행 후, 확장 패키지를 실행합니다.

이게 끝입니다.

그 다음, 마소가 안내한 Unarchiver를 다운받아 깝니다.

그리고, 윈도우즈 개발자 사이트에 가서 원하는 윈도우즈를 선택해 다운받습니다.

이 개발자 사이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developer.microsoft.com/en-…/microsoft-edge/tools/…/



이 페이지로 가면, 사용하려면 버추얼 머신(가상 머신용 윈도우즈)을 먼저 선택하게 합니다. 현재 윈도우즈 7부터 10까지를 받을 수 있으며, 어떤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쓸 건지에 따라 여러 버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가장 최신 버전을 원하면 "MSEdge on Win 10(x64) Stable"을 받으면 됩니다.

그 다음 플랫폼은 VirtualBox를 선택하고 다운받으면 됩니다. 다운 용량은 5.28GB 입니다.

이를 다운받으면 'MSEdge - Win10.ova'라는 파일이 생성됩니다. 이 파일을 더블 클릭하면 자동으로 버추얼박스가 실행됩니다. 가상 머신 생성시 여러가지 조건을 임의로 조정할 수 있지만, 잘 모르면 그냥 프로그램이 권하는 사양과 하드 디스크 용량으로 계속 클릭을 누르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오래 걸리지 않아 윈도우즈가 가상 머신에서 설치됩니다.

비디오 램에 따라 풀 스크린으로 윈도우즈를 실행할 수도 있지만(비디오 램 16GB이상), 대부분의 맥북이나 아이맥에서는 윈도 형태로 윈도우즈가 실행될 것입니다.

컴퓨터 사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버벅거려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제 경우는 그런대로 잘 돌아가고, 쓰는 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대신 영문 윈도우즈가 깔리는데, 설정에서 한글 언어 팩키지를 깔고, 지역을 한국으로 맞춰주면 됩니다.

그 다음 평소 윈도우즈 셋팅하듯 이것 저것 프로그램을 깔고, 바탕 화면도 바꾸며 설정을 개인화한 후 사용하면 됩니다.

설치가 끝나면, 버추얼박스 우측 상단의 스냅샷을 클릭해 두었다가 만료가 될 때 쯤 스냅샷만 불러오면 사용 기한이 90일 다시 연장됩니다.

프로그램 설치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돈 주고 프로그램 살 필요도 없습니다.

맥 사용자들이 윈도우즈 잠깐 쓰기에는 가성비 최고입니다.



2018년 1월 19일







Wednesday, January 17, 2018

가상화폐 열풍, 통과 의례일수도...














따지고 보면, 핵전쟁의 공포가 인터넷을 만든 셈이다.

인터넷의 최초 백본(backbone)은 아르파넷(ARPANET)이었는데, 이건 미 국방부가 미국이 핵 공격을 받을 경우를 대비하여, 미국 전역에 동일한 데이터를 갖는 컴퓨터를 분산 배치하기 위해 구축한 망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곳이 바로 아르파(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이고 이의 시작은 1960년대 말이었다.

추진은 미 국방부가 했지만 실제 연구는 대학 연구기관에서 이루어졌는데, 처음 이에 관여한 곳은 UCLA, 스탠포드, 유타, UC 산타바바라 대학이었고, 이들 대학이 최초로 연결되었다. 이후 알음알음 컴퓨터 사이언스 학자들이 이 망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정보 보안의 개념이 있을 리 없는 학자들의 어설픈 망 관리로 해킹 사건이 빈번하자 결국 국방부는 아르파넷은 민간 연구용으로 떼어 주고, 밀넷 (MILNET) 이라는 군사 전용망으로 별도로 구축했다.

인터넷 초창기 연구자들은 유닉스나 제닉스 하에서 돌아가는 중대형 기종의 터미널을 사용했고, 당연히 텍스트 기반으로 문자를 사용했다. 즉, ASCII 코드로 이루어진 문자만 주고 받을 수 있었고, telnet, gopher, ftp, usenet 등으로 인터넷을 사용했다.

그럼, 초창기 인터넷 이용자들은 오로지 경건하게 인터넷으로 연구만 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처럼 모니터에 그림을 띄어 바로 볼 수는 없었지만, 바이너리 파일인 jpg 그림파일을 ASCII 코드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써서, 이진(binary) 파일을 텍스트 파일로 바꿔 전송하고 전송받은 쪽은 다시 이진 파일로 바꿔 그림을 감상하곤 했다. 그 그림이 성화는 아니었을 것이다.

WWW 즉 월드와이드웹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CERN 즉,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한 근무자가 고안한 것이다. CERN 에는 유럽 각국 출신의 연구자들이 일하고 연구하는데, 이들은 유럽 전역에 있는 학자들과 정보를 교류한다. 이들은 텍스트보다 복잡한 계산식이나 구조식을 컴퓨터로 보내고 싶어했다. 이를 고안하다 만들어진 것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인터넷이다.

인터넷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계기는 바로 www과 웹브라우저이며, 누구나 쉽고 직관적으로 인터넷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린 가장 결정적인 건, 화상 정보와 하이퍼텍스트를 이용한 포르노 사이트와 도박 사이트이다. 포르노와 도박이 인류의 정보화를 앞당겼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중의 대부분은 학자가 아니다. 이들이 인터넷에서 추구하는 건 고급 정보가 아니라 가십거리와 흥미거리일 뿐이다. 인터넷를 정보의 바다라고 하지만, 사실 쓰레기의 바다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여전히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 가치있는 진짜 정보를 찾는 건 어렵다.

포르노 배포나 온라인 도박이 초창기 인터넷의 부작용이었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 본능에 따른 통과의례였을 것이다. 지금 포르노와 도박 때문에 인터넷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미친 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가상 화폐 역시 마찬가지 통과 의례를 겪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 싶다.

자제심 잃은 묻지마 투자는 필연적으로 한번은 겪어야 할 것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를 통한 대박 꿈이 없었다면, 전국민이 가상 화폐에 대해 이렇게 관심을 가졌을리 없었을테니 말이다.


2018년 1월 17일




퇴색한 올림픽 정신












만일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한다면, 이는 사실상 올림픽 정신과 올림픽 대회 절차에 관한 올림픽 헌장의 많은 부분을 위반하는 것이다.

올림픽 헌장 제 2조 10항은 다음과 같다.


"스포츠와 선수의 정치적 혹은 상업적 남용을 반대한다."
(to oppose any political or commercial abuse of sport and athletes;)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오랫동안 프로 선수들은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었다. 스포츠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mens sana in corpore sano)'는 표어 아래, 건강한 육체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신사들의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좋게 말해 신사, 사실은 귀족들의 운동으로 시작)

근대 올림픽은 이 같은 정신을 이어 받아 스포츠 역량 뿐 아니라, 공정한 경기, 결과에 대한 승복 등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스포츠를 업으로 하는 사람과 건강한 육체를 갖기 위해 운동하는 아마추어가 같이 경기하는 건 공정하다고 볼 수 없었기에 프로 선수의 출전을 금지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아마추어 선수 출전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아마추어 선수의 경계는 매우 모호해졌다. 단지 프로가 아닐 뿐 올림픽 경기를 위해 전문적으로 길러지는 선수를 아마추어 선수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올림픽 조직위는 '흥행'을 위해 높은 경기력을 가진 프로 선수의 참가를 은근 슬쩍 용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프로 선수의 참가 여부는 올림픽 위원회가 아니라 각 종목의 국제경기연맹(IF)이 정하고 있다. 지금 올림픽 종목 중 프로 선수가 참가하지 않는 경기는 거의 없다.

올림픽 정신의 퇴색이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 경기는 국가 대항전이 아니다. FIFA 월드컵과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올림픽 헌장 제 6조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올림픽대회의 경기는 국가간의 경쟁이 아닌 개인전 또는 단체전을 통한 선수들간의 경쟁이다."
(The Olympic Games are competitions between athletes in individual or team events and not between countries.)


즉, 올림픽 경기는 A 매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각 선수는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기 위해 뛰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언론과 관전자들은 각 국가의 메달 수와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이 역시 올림픽 정신을 퇴색시키는 것이다.

올림픽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건 올림픽 헌장에 수 차례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사실, 올림픽은 이미 정치적 도구로 이용된 바 있다.

제 11회 베를린 올림픽이 개최된 1936년, 나치 독일은 올림픽을 체제 선전의 장으로 활용했다. 정치적 이유로 올림픽을 보이콧한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북한의 이번 올림픽 참가는 누가 봐도 정치적이다. 불과 10 명의 선수에 140명에 달하는 응원단, 예술단을 보내는 건 올림픽을 이용해 체제 선전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한 선수들이 한반도 기를 앞세우고 입장한다고 해서 평화에 한 걸음 다가갔다고 믿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올림픽 헌장은 올림픽 장소 등에서 어떠한 형태의 정치적 선전도 허용하지 않는다(제 50조)고 선언하고 있다. 개,폐막식 시상식 등 올림픽 개최지에서 정치인은 어떠한 형태의 연설도 할 수도 없다.(제 55조)

그러나 올림픽 헌장의 이 강행 규정들이 잘 지켜질 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역사가 히틀러가 올림픽을 체제 선전의 장으로 썼던 것을 비난한 것처럼, 2018년 동계 올림픽에 대해 이렇게 쓸 것이다.

"핵 개발로 국제 사회를 위협한 북한은 개최국이자 동족들의 국가인 남한의 협조를 받아 자신들의 무고와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것에 올림픽을 십분 활용했다."



2018년 1월 17일




Tuesday, January 16, 2018

진찰료 인상-의료계가 반대?












공급자-건보 공단의 수가 계약이 시작된 건, 의약분업 이후이다.

이 수가 계약 과정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아는 국민은 별로 없다. 이게 얼마나 비정상적 과정인지 설명하면 길지만, “최저 임금 위반하면 신불자 만든다.”는 황당함의 백만배 쯤 된다고 이해하면 된다. 한마디로 정상적 사고를 가진 자들의 계약 과정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다.


아무튼 그 결과, 해마다 수가는 1~3% 가량 올랐다. 3.0% 이상인 경우는 지난 17년 중 몇 차례되지 않는다. 당연히 물가상승률, 임금 상승률을 따라 잡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의료계 경영 상태는 날로 악화 되었는데, 특히 문제가 되는 건, 행위료라고 할 수 있다.

의료 행위는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행위료가 지나치게 낮으니 검사, 의약품, 비급여 소모품 등으로 손실을 메꾸려고 했다. 그러니 검사가 남발되고, 불필요한 의약품 소모가 많았다. 물론, 지금은 의약품 실거래가 제도, 심평원 삭감, 리베이트 법 등으로 원천 봉쇄된 상태이다.

낮은 행위료는 경영 압박뿐 아니라, 의료인들의 자긍심에도 문제가 된다. 수술은 매우 중요한 행위이지만, 수술 행위료를 다 합해야 2천억원 정도로 조제료의 1/6 수준도 안된다. (2011년 기준) 외과 의사 수나 약사 수는 비슷하다. 약사의 업무를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수술 행위가 조제 행위 가치의 1/6 도 안된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의료인들이 자신이 하는 행위의 값어치가 그토록이나 저렴하고 싸구려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자괴감에 빠지기 시작한다. 거기에 숭고한 희생, 인류애 따위를 붙이려고 해선 안된다. 요즘 말하는 열정 페이와 뭐가 다른가.

행위료 중에서도 또 문제가 되는 건, 진찰료이다.

우리나라 진찰료 수준은 전세계에서 가장 저렴하다. 주사나 처방이 없으면, 진료받고 돈 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니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아무튼, 진찰은 진료의 시작이며 끝인데, 우리나라 진찰료는 지나치게 낮다.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도 이보다는 더 받는다.

진찰료가 유럽이나 북미, 적어도 싱가폴 수준만 되어도 많은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우선 3만여 개원가는 진료 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가지고 진료하고 상담할 수도 있고, 검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진찰료 인상으로 의료비 총액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낮은 진찰료를 올릴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의료 수가는 각 행위에 고정된 상대가치점수에 환산지수를 곱해 계산하는데, 진찰료의 상대가치점수가 워낙 낮은데다가 환산지수 인상율이 고작 1~2%에 그치니 오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찰료만큼은 수가계약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즉, 진찰료는 과거처럼 정부가 정해 고시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찰료만큼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해야 하며, 시민 단체는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의제이다. 진찰료 인상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공감대를 조성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더 큰 복병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의료계 일각에서 반대할 것이라는 것이다.

진찰료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부터 언급되었지만, 의료계 일부는 진찰료 인상으로 인해 환자가 감소할 것을 우려한다. 주로 일일 진료 건수가 많은 진료과목이 그렇다.

결국 의료계 발등을 찍는 건, 의료계이다. 이것 하나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암담하다.



<참고 자료>



2018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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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anuary 3, 2018

진료비 미납 환자 사망 사건에 대해








중랑구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응급실 접수를 거절한 원무과 직원이 과실치사 혐의로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그 직원은 과거 그 환자가 수납을 거부하여 발생한 미납금을 문제 삼아 접수를 거절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 원무과 직원의 잘잘못은 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며, 그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참고로 보도에 의하면, 법원은 금고 1년 형을 선고한 후 항고심에서 다툴 여지를 고려해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항고심에서 다툴 여지란 무엇일까?

의료법 제 15조 1항은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 6조 2항은 “응급의료종사자는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 응급의료종사자는 의료인과 응급구조사를 말하며, 원무과 직원은 의료인이 아니므로, 이 법에 적용 대상은 아니다.

의료법 등에 명시된 “정당한 사유”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다음과 같이 예시한 바 있다.

=======
*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예시

○ 의사가 부재중이거나 신병으로 인하여 진료를 행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

○ 의사가 타 전문과목 영역 또는 고난이도의 진료를 수행할 전문지식 또는 경험이 부족한 경우

○ 환자가 요구하는 검사나 투약을 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양심상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 환자 또는 보호자 등이 해당 의료인에 대하여 모욕죄, 명예훼손죄, 폭행죄, 업무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는 상황을 형성하여 의료인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행할 수 없도록 한 경우

○ 병상, 의료인력, 의약품, 치료재료 등 시설 및 인력이 부족하여 새로운 환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 의원 또는 외래진료실에서 예약환자 진료 일정 때문에 당일 방문환자에게 타 의료기관 이용을 권유할 수밖에 없는 경우

○ 환자가 의사의 지시에 불응하여 치료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경고를 받은 후에도, 계속하여 지시에 불응하는 경우에는 다른 의료기관으로 전원을 권고하거나 퇴원을 요구할 수 있다.
========

환자가 진료비를 미납한 것은 병원에 대한 업무방해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원무과 직원이 접수를 거부한 행위는 원무과 직원이 의료인이 아니므로 의료법 등에 따른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병원 업무 방해에 따른 조치라고는 이해할 수 있다.

기사로 추측컨대, 이 환자는 평소 주취 상태로 응급실을 자주 찾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진료비를 미납했을 당시에도 술에 취해 사라진 것으로 보도되었다.

또, 통상 50대 남자가 특별한 이유없이 갑자기 복막염이 발생하여 불과 5~6 시간 만에 심정지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급성 복막염은 복부내 장기의 외상이나 심한 염증으로 생긴다. 이 환자의 경우 외상의 병력이 없었다면, 궤양 등에 의한 위장관 천공이나 급성췌장염의 합병증으로 복막염이 생겼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두 경우 모두 알콜과 깊은 관련이 있다. 즉, 과도한 양의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는 환자의 경우 이로 인한 위 혹은 12지장의 천공이 발생할 수 있으며, 급성 췌장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만일 이 추정이 맞다면 이 환자는 술에 취해 자주 이 응급실을 찾았을 가능성도 있으며, 이 경우 치료에 협조적이지 않으며 어쩌면 응급실에서 취중 난동을 부린 경력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두번 술에 취해 온 환자를 단지 진료비 미납의 이유로 접수를 거부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즉, 원무과 직원은 단지 진료비 미납의 이유가 아니라, ‘과거처럼’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릴 것을 우려하여 접수를 거절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추정은 억측일 수도 있다.

이 환자는 성실한 가장이며, 알콜 의존성이 전혀 없으며, 단지 자다가 복통이 심해 응급실에 왔을 수도 있다.

환자는 누구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접수를 거절한 이유가 1만7천원 때문이었다면, (실수로 잊고 있다가) 미납한 진료비를 수납하고 접수해서 진료를 받았어야 했다.

만일 원무과 직원의 처사가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다른 병원을 찾아갔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는 허무하게 사망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4시 15분 경이었고, 심정지에 빠진 건 오늘 9시 20분쯤이었다. 5 시간 동안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다시 말하지만, 원무과 직원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가 위법했다면 법원이 판단해 처벌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 환자는 스스로를 보호할 충분한 자기 결정권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기 결정 하에 미납한 병원비를 내고, 접수해 진료를 받거나, 아니면 다른 병원에 갈 수도 있었다.

자기 결정권은 권리이자 의무이다.

우리 사회는 자기 결정권에 대해 인색하며 어떤 부분에서 있어서는 지나치게 남에게 의존적이다.

의료의 경우도 그러하다.

병원에 들어선 순간 환자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모든 것을 병원이 알아서 해결하거나 책임져 줄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건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의사는 환자의 주소(주로 호소하는 증상)를 기준으로 진단하며, 여기에 집중한다. 안과 의사가 눈의 질병에 집중하고, 이비인후과 의사가 코나 귀에 집중하듯, 내과 의사도 발목이 삐거나 골절된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든 질환 환자들이 몰려오는 응급실의 의사는 모든 질환을 다 진료하는 수퍼맨이 아니라 응급 질환에 대한 처치의 전문가일 뿐이다. 즉, 응급 조치를 하고 각 과로 교통 정리를 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 나는 그 순간부터 늙기 시작하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누구나 대부분 외상이나 질병으로 죽는데, 병원은 미래에 다가올 질병을 예견하고 치료하는 것도 아니다.

병원은 완벽한 곳이 아니며, 모자라고 실수 투성이의 장소이다. 그러니 병원이나 의사를 믿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 한다. 의사는 전문적 영역을 조언하고 도울 뿐이다.

국민들이 병원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건, 국가의 잘못이 크다.

국가가 마치 부모처럼 국민을 돌봐줄 것을 약속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상 그 역할은 민간 병원에 떠 넘긴다. 그런 정부를 믿는 건 바보이다.

원무과 직원은 분명, 미납 진료비를 수납하고 접수하라거나, 다른 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했을 것이다. 기사에는 4시부터 9시 심정지까지 환자가 무엇을 했는지 보도하지 않고 있다.

만일 환자가 오가지 않고 그대로 접수 창구 앞에 있었다면 환자는 죽음으로 향하는 자기 결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책임을 최저 생계비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야간 수납을 하는 젊은이에게 모두 지라고 하는 건 지나치게 과한 처사이다.

법원은 소장에 인지대를 붙이지 않아도 접수를 받아 줄 것인가?


2018년 1월 3일




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











메디게이트 뉴스 임솔 기자는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는 과거부터 있었다는 것이며 그 예로 보사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4년 8월 발표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의 경향과 과제‘ 연구보고서를 들었다.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2014년이 아니라 수십 년 전부터 있어왔으며,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는 2016년에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2009년 말 구성되었다.

이 의정 협의체가 구성된 배경에는 의료법 개정이 있었다.

2009년 당시 의료법 제 3조 2항은 “②의료기관의 종류는 종합병원·병원·치과병원·한방병원·요양병원·의원·치과의원·한의원 및 조산원으로 나눈다.”라는 선언적 의미만 가지고 있었는데, 2009년 1월 30일 개정되고 2010년 1월 31일 시행 예정인 의료법은 “② 의료기관은 다음 각 호와 같이 구분한다.”라고 명시한 후, “의원은 주로 외래 환자를 대상으로”, “병원은 주로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기관이라고 업무를 보다 명확하게 구분했을 뿐 아니라, 3항 역시 “③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은 보건의료정책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의료기관의 종류별 표준업무를 정하여 고시할 수 있다.”고 개정한 바 있다.

당시 의협은 이와 같은 법 개정을 명분으로 삼아 의료기관 표준 업무를 정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2009년 당시 논의되었던 원격 의료 도입에 대하여 전달체계가 명확하지 않는 상태에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도입할 경우 일차의료가 붕괴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뚜렷하게 했다.

복지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2009년 12월부터 의료전달체계 개선 의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그 첫 번째로 의료기관의 종별 표준 업무를 고시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2011년 6월 24일 시행규칙 “의료기관의 종류별 표준 업무규정”이 고시되었다.

의료기관의 종별 업무 고시는 의료전달체계의 첫 단추를 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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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주요 정책을 만들 때, 행정 부처 산하의 연구기관이 그 학문적, 이론적 근거를 만들며, 이를 토대로 관련 단체와 협의하여 입법을 거처 정책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사연은 복지부의 보건의료 행정과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주요 연구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이후 의료계가 의료상업화(!),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 등의 논란과 의협 회장에 대한 고소 고발 및 신임 회장에 대한 탄핵 등 내분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정부와 학계는 의료전달체제 구축을 위한 정책 개발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임솔 기자가 인용한 보사연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의 경향과 과제”라는 연구 결과라고 하겠다.

연구자는 이 연구서 서두에 “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라는 용어를 언급했다.

이는 전근대, 근대, 탈근대라는 결코 동시성을 가질 수 없는 특성이 한 시대에 공존하는 부조화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의 결과, 이 같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 역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있는데, 일견 세계적으로도 우수하다고 자평하는 한국 의료에는 동시에 같이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후진적 성향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암치료는 세계적이나 외상 영역은 여전히 후진적이며, 불임 치료 수준은 세계적이지만, 미숙아를 위한 중환자실 관리는 낙후된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의 목표는 의료서비스 공급 (즉, 의사 간호사 등의 인적 자원과 병상, 병원, 의료장비 등의 물리적 자원)의 총량 증대에 두어, 전국민에게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라도 제공하자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의료기관들은 마치 군비 경쟁(medical arm race)하듯 병상 공급 과잉과 의료 장비의 중복 과잉 투자를 하였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따라서 이제는 전달체계 구축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보고서의 많은 부분은 충분한 자료와 개연성을 근거하여 작성되었고, 우리나라 만의 의료 정책과 보험의 특수성 (단일 보험 체계, 저 수가, 저 보장책, 단 시간내 고도 성장한 의료 수준 등등)을 고려할 때 이른바 한국적 의료전달체계 구축을 고안하기 위한 고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이 보고서의 제안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글은 보고서를 소개하거나 비평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임솔 기자는 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복지부 주도의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숨은 의도 혹은 음모가 있는 것처럼 썼다. 즉, 이른바 가치 기반 지불제도(VBP, value based purchasing)를 도입하기 위해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조는 매우 유감스럽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지불제도인 행위별 수가제와 포괄수가제는 모두 단점과 문제점이 있으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지불제도가 필요하며, 그 대안이 가치 기반 지불제도이며, 이는 ‘비용 효율성’과 ‘의료의 질’ 개선 측면에서 이 둘을 모두 반영하여 그 성과를 지불 제도와 연계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가치기반 지불제도는 한 마디로 평가지표를 만들고 그 지표를 충족하면 포지티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공급자 인센티브에서 공급자-환자 인센티브 형태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지표에 따른 보상 기전은 이미 병원내 여러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며,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지표 내용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임솔 기자가 음모론을 편다기 보다는 자극적 제목으로 의료계 여론은 환기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마디로 제발 정부의 움직임에 관심을 좀 가지라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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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연의 전달체계 개선안이나 VBP 도입 검토 또, 복지부가 제시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에 대한 의료계의 반응은 “뜸금없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부의 개선안은 의료계 일부만 공유한 체 일반 의사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임솔 기자 만이 계속 이를 추적해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의료계는 정부 안에 대해 반론을 제시하거나 의료계의 대안을 제시한 역량도 없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 안을 알고 있는 지도부는 회원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킬 능력도 없다. 오히려 쉬쉬하며 감추는 듯 한 태도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만일 감추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부안이 공론화될 경우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부 안이라면 일단 부정적 시각을 갖는 의사 대중들이 그 화살을 지도부에 돌릴 것이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면 회장 선거가 코 앞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뜸금없다며 ‘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하자.’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시간을 가지고 포괄적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의료계에 엄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적어도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서 정부는 늘 의료계보다 몇 발 자국 앞서 가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나 보건산업진흥원 같은 연구소 뿐 아니라, 심평원 연구소 등은 해외 각국의 새로운 의료, 보험 제도를 연구해서 이를 차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 복지부내에서도 각종 과제를 계속 오븐에 넣고 구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의료계 유일의 대응 기구인 의협은 늘 내분과 소란에 휘말려 있고, 그나마 얼마 안되는 자원들은 국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부당한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소모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바람직한 의료계 미래의 청사진을 만들고 이를 추진하는 건 언감생심일 뿐이다.

정부가 주요 정책을 추진하려고 안건을 제시하면 이를 숙지하지 못한 체 반대하기에만 급급하고 뒷북치기만 할 뿐이다.

세상은 내가 준비되기를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다. 의료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의사 모두가 200 쪽 분량의 보사연 보고서를 읽어 봐야 한다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모르는 걸 추진하는 건 반칙이라는 주장을 더 듣고 싶지도 않다. 의료계의 이런 주장과 반대는 의협과 관련하기 시작한 지난 25 여년 동안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다. 그 동안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정부를 상대하는 의사들이 믿는 구석은 오로지 하나 뿐이다.

“의사가 모두 결사 반대하면 절대 못한다.”는 것.

이 믿음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의사 사회 내부에서부터 깨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의약분업은 의사 대중이 모두 반대하는 가운데, 의협의 일부가 동조하면서 실현되었다. 몇 년전 신포괄수가제 도입 반대 역시 의협의 일부가 동조하며 시위의 칼을 버려야만 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나는 그들 모두 자신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도모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어렵다.

지금 거의 모든 주요 의료계 정책은 의료계뿐 아니라 사회시민단체가 참여하여 정책 조율을 한다. 시민단체는 끝장을 보려고 덤벼들고 의료계 일각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스스로 칼을 던지고 의료계를 포로로 내모는데, 오히려 복지부 관료들이 이러다간 의료계가 붕괴된다며 방어막을 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복지부 공무원이 ‘적’이라면, 그 적들에 의해 목숨이 부지되는 형국인 것이다.

나라가 어렵다. 어려운 만큼 국운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의료계는 더 어렵다. 전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새해도 이렇게 시작한다.


2018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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