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31, 2019

신탁 통치와 권력의 공백






1. 한반도 신탁 통치

2차 세계 직후 유엔은 경제력, 정치력의 부재 등으로 스스로 통치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지역이나 나라를 다른 국가에 위임하여 신탁통치하도록 한 바 있다.
신탁통치의 근거 규정은 유엔 헌장 제 12장 ‘국제신탁통치제도’ (75조~85조)이다.
이렇게 신탁통치의 대상이 된 곳은 모두 11 곳이며, 수임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 오스트렐리아, 벨기에, 이태리 등이다.
사실, 한반도 역시 신탁 통치의 대상이었으며, 미국이 수임국이 될 전망이었다.
그러나, 유엔이 신탁통치를 할 경우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정치인들은 좌, 우익을 떠나 일치단결하여 반탁 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유엔이 신탁통치를 할 경우 영구히 식민지를 벗어날 수 없다’며 선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탁은, 그 나라의 독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실제 유엔의 신탁을 받은 11 개 곳 중 독립하지 못한 나라는 없다.
대대적 반탁 운동의 결과, 한반도의 신탁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만일, 이 때 신탁 통치를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의 신탁은 46년부터 5년간 유지될 계획이었으므로, 미국의 통치 하에 있었다면 한국전쟁은 발발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지금과 같은 비극적인 분단을 초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신탁을 받은 11곳 중 미국이 수임받아 통치한 곳은 모래알처럼 뿌려진 태평양 제도의 작은 섬들 뿐이다.
이들 섬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에 의해 폐허가 된 곳들이며, 스스로 식량을 수급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즉, 기본적인 식량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공급해줘야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섬에는 괌, 사이판, 팔라우 등도 포함되는데, 현재 이 섬들의 인프라와 생활 수준은 미국 본토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이게 가능했던 건, 미국이 신탁통치했기 때문이다.

2. 북한의 신탁 통치?

역사를 돌아보면, 해방, 독립, 혁명, 쿠테타 등으로 권력의 진공 상태가 오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혼란이 생긴다. 권력 공백을 빠르게 메우고 차치하기 위한 현상이다.
이때는 온갖 마타도어, 음모, 루머는 물론 납치, 살인도 서슴치 않는다.
최근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었던 국가가 바로 리비아이다.
카다피의 40년 넘는 독재 권력이 무너지자, 권력 진공 상태가 되었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가 극성을 이루었으며,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였지만, 9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국가 출범을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카다파의 독재에서 해방되었다고 기뻐했던 리비아 국민들은 지금은 오히려 독재 권력 시대를 그리워한다.
만일, 북한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게 되면, 마찬가지 현상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이 때 중요한 변수는 이런 것이다.

첫째, 어떻게 북한 정권이 무너지게 되느냐
둘째, 누가 북한 정권을 무너트리느냐
셋째, 누가 북한을 수복하느냐

즉, 미국(누가)의 북폭(어떻게)으로 김정은이 사망하고 정권이 붕괴하고, 미군이 유엔군의 이름으로 진격(수복)할 경우,
북한 군부(누가)의 쿠테타(어떻게)로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유엔군(미군)이 수복할 경우,
권력 공백이 오는 건 같지만, 이 공백을 차지할 자들은 다르다.
변수의 조합에 따라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겠지만 단언컨대, 어떤 형태로든 남한의 일부 인사들 역시 숟가락을 얹으려고 할 것이 분명하며, 이들과 북한 권력과의 결탁과 야합도 있을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작후에는 유엔이 신탁통치란 방식으로 권력 공백을 메꾸었지만, 북한이 붕괴할 경우, 또 다시 유엔이 북한 지역을 신탁통치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면, 유엔 헌장은 신탁통치 지역을 다음 세 가지로 한정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유엔 회원국은 신탁통치 지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한 유엔 회원국이다.
가. 현재 위임통치하에 있는 지역
나.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서 적국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지역
다. 시정에 책임을 지는 국가가 자발적으로 그 제도하에 두는 지역

3. 국민의 수준에 맞는 국가

한국인의 성향, 수준, 능력에 비춰볼 때, 무난히 건국하고 대한민국을 출범시킬 수 있었던 건 기적이고, 혁명을 통해 잡은 권력으로 근대화, 산업화, 공업화를 이루고 경제 강국으로 키워낸 것도 기적이다.
이 기적들은 이승만, 박정희라는 정치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럼 나머지 대통령은?
그냥, 한국인의 성향, 수준, 능력에 걸맞는 지도자들이었다.
역설적으로, 북한이 김일성 일당독재 체제에서 해방된다고 한들, 이승만, 박정희 같은 지도자가 없으니 (혹은 없다면), 북한이 지금의 남한처럼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히려, 각종 시정잡배들과 권력에 눈 먼 이들의 진흙탕 싸움터가 될 것이다.
사실상 신탁통치가 불가능해진 최근에는 국가 권력이 붕괴하여 공백이 생기면, NTC(국가이양위원회 혹은 과도국가위원회 National Transitional Committee)를 구성해 그 공백을 메우는 경우가 많다.
이 위원회에서 룰을 정하고, 그 룰에 따라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제헌의회가 헌법을 만들고, 그 헌법은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되고, 그 헌법에 기초해 다시 총선을 실시하여 의회를 구성하고, 그 의회에서 수상을 결정하거나(의원내각제), 총선을 통해 의회가 구성되면 의석수에 따라 여야가 나뉘고 전당대회를 통해 대선 주자를 뽑고, 또 다시 대선을 통해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다(대통령제).
이 지난한 과정에 복병과 암초와 함정은 헤아릴수 없게 많다.
다들 자기에게 유리하게 헌법과 법을 만들자고 할 것이고 제대로 국가 체계와 치안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각종 불법 행위, 불법 선거운동이 극성을 부릴 것이며, 결탁과 야합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를 민주화의 산통이라고 부르겠지만, 남한의 현재와 과거 역사를 놓고 봤을 때, 민주화, 민주주의에 걸맞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는지 사실 의문이다.
북한은 다를까?

4. 결론?

결론을 내리자는 글이 아니므로, 결론은 없다.
21세기에, 세계 10대 무역국가에서 대통령 부정 선거가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한 자조적인 글일 뿐이다.
이 수준에, 북한이 붕괴된 들, 북한을 제대로 재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권력 공백을 틈타 자기 뱃속을 챙기고, 크고 작은 권력을 서로 잡으려 할 것이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미국이 위성국을 세우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북한 주민들에게 말이다.
물론, 또 과거의 반탁운동과 같은 대대적인 반대 운동이 전개되고, 없던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
지난 열흘간 이 나라에서 벌어진 일만 봐도, 빨리 안 망하는게 희안한 나라이다.
다음 정권은 보수도 좌익도 아닌 관료들이 잡기를 바란다.
관료주의는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적어도 국가의 허리를 맡고 있는, 국가를 운영해 본 이들이 정치적 고려에서 한 발 떨어져 무너진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전 총리가 이들을 진두지휘하며 국가를 대청소하고 규율을 바로 세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2019년 1월 31일




Tuesday, January 29, 2019

Black Earth Rising












르완다는 중앙 아프리카의 인구 8~9백만의 빈국이다. 인구의 85%는 후투 족이며 나머지는 투치와 다른 종족이다.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후, 90년 내전이 발생했고, 94년 후투족이 투치족을 집단 학살했다. 

르완다 정부는 당시 약 3개월 걸쳐 살해된 투치족과 중도 온건 후치족의 수가 1백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투치와 후투의 종족간 차이는 사실 구분이 어렵다. 다만, 투치는 목축에, 후투는 농경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식민 지배 당시 벨기에와 유럽은 식민통치를 위해 종족을 분리하고, 소수인 투치 족을 우대했다.

즉, 투치족 족장을 더 뽑도록 하고, 이들을 통해 토지개혁을 단행해 후투족의 토지를 몰수했으며, 투치 들의 자식들을 유럽에 데려가 고등교육을 받고 식민지 행정 엘리트로 일하도록 했으며, 심지어 식별 카드를 주어 종족간 계급 이동을 막았다.

반면 후투족은 농경지를 빼앗긴 체, 대규모 강제 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

여기에는 로마 카톨릭도 한 몫 했다.

유럽국가의 아프리카 식민지 지배에 첨병이었던 로마 카톨릭에 의해 르완다는 인구 약 70%가 카톨릭 신자인 아프리카 최대 카톨릭 국가가 되었는데, 카톨릭 교회는 Hamitic Hypothesis (성경에 나오는 Ham(함. 노아의 둘째 아들) 족이 중앙아프리카의 Negroid(니그로 족)보다 우수하다는 가설) 을 내세워, 투치족을 우대하고, 인종 갈등을 부추겼다.

한편, 후투족 상당 수는 투치족의 압박을 피해 우간다, 콩고 등으로 대피했는데, 이들은 그곳에서 의식화 교육을 통해 르완다를 전복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아이러니하게 여기에 힘을 실어 준 것도 로마 카톨릭 교회였다.

62년 벨기에서 독립한 이후, 르완다의 로마 카톨릭 교회들의 사제와 수녀들은 태도를 바꿔 이번에는 후투 족에 가세하여 정권을 잡고 있던 투치족을 몰아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100만명이 넘는 투치족 학살은 오로지 반군이나 의식화된 혁명군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 학살에는 후투족 민간인 즉, 일반 주민들도 개입했으며, 이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르친 “투치족 학살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에 세뇌당한 것이었다.

사제와 수녀들의 학살 가담은 단지 선동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들은 직접 학살에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이 학살에 동참한 사제 몇 명은 국제 전범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교황청과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대량 학살에 대한 책임을 부인해왔고, 르완다 교단은 ‘그건, 개개인의 범죄일 뿐’이라며 공식적 사과를 하지 않았다.

로마 교회가 이를 인정하고 최초로 사과한 건 2017년에 이르러서 였다.

르완다에서 투치와 후투의 갈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당시에 벌어진 투치족 인종 청소, 대량 학살, 민족 말살은 여전히 예민한 주제이다.

그런데, 이 예민한 주제를 넷플릭스가 다루고 있다.

최근 스트리밍을 시작한 “Black Earth Rising”은 영국 출신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어 이미 지난 해 말, BBC를 통해 영국 내에서 방송된 바 있다.

이 드라마는 르완다 내전과 인종 청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법정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 Soap Opera를 통해 르완다의 아픔과 진실을 다 알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또, 예민한 주제를 다루는 만큼, 사실이 줄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장치를 쓰기도 한다.

대량 학살에 앞장 섰던 사제를 다룬 에피소드도 그렇다.



2019년 1월 29일



Wednesday, January 9, 2019

식민지배에 대한 개인의 대일 청구권은 유효한가?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한일기본조약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몰라서 찾아봤다.


(한일기본조약의 체결로) 한․일 양국 및 양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4조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 (외교부)


한일 양국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대일 청구권에 대해 위와 같이 결론을 내렸다. 한일기본조약과 관련 협정을 맺음으로 일본은 한국에, 한국은 일본에 대한 국가와 국민의 청구권이 소멸된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 문구는 한일기본 조약 체결 과정을 기록한 외교부 자료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 4조는 다음과 같다.

“(a) 이 조항의 (b)의 규정에 따라, 제 2조에 열거된 지역의 일본국 및 일본 국민의 재산의 처분과, 현재 그 지역을 통치하는 당국 및 그 주민(법인을 포함)에 대한 일본국 및 일본 국민의 청구권(채무를 포함)과, 일본국에서의 이들 당국 및 그 주민의 재산, 일본과 일본 국민에 대한 당국과 그 주민의 청구권(채무를 포함)의 처분은, 일본국과 이들 당국 간 특별협정의 주제로 한다.”

즉, 외교부의 문장을 다시 해석하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4조에서 언급한 한국 및 한국민의 일본과 일본 국민에 대한 청구권은 당국간 특별협정 즉, “한일기본조약”과 “재산 및 청구권 협정”에 갈음하여 해결 (즉, 소멸)된 것이라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뭘까?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1951년 일본의 전후 처리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미국이 연합국들을 샌프란시스코에 불러 모아 체결한 조약이다.

사실 이는 일본에 대항해 전쟁을 치룬 국가들의 승전 파티이자 동시에 냉전 시대에 직면한 미국이 일본에 대해 가진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미국의 “일본의 전후 처리” 계획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죄를 빨리 털어주고 재건시키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쓸 계획이었던 것이다. 일본을 미국의 품 안에 두면, 태평양은 자연스레 미국의 앞바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며, 일본이 하와이를 방어하고, 공산주의를 막을 성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참석하지 못했다.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합군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국은 승전국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였고 일본의 동맹국과 다를게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불참하게 되었음으로, 훗날 일각에서는 한국은 ‘전쟁 중 일본에 의해 발생한 피해와 고통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없었다는 지적도 한다. 그러나 한국은 승전한 연합국이 아니었다. 이 배상은 연합국에 해당하는 것이다. (제 14조)

수개월동안 공방을 거듭한 가운데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핵심은 일본 주권의 회복과 면책이었다. 나머지는 사실 겉가지였을 뿐이다.

미국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 도중 만든 철도, 공항, 산업시설 등 일본의 해외 자산을 모두 해당국에 주고 대신 대일청구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해야 했다. 그래서 5/16 혁명 정부가 뒤늦게나마 시작한 것이 한일기본조약 교섭이다.

즉, 우리는 식민지 독립으로 발생하는 재정적, 민사적 채권 채무를 해결해야 했다. 물론, 주일 한국인의 지위 및 신상에 대한 것도 협의를 해야 했다.

일본 입장으론, 한국에 남겨진 일본인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 즉 대한 청구권을 해결해야 했다.

오랜 교섭 결과, 일본은 무상 공여 3억불, 정부 차관 2억불, 민간신용 제공 3억불 이상을 한국에 제공키로 하고 양국과 양국민의 청구권은 해결된 것으로 합의했다.

이로써, 개인에 대한 청구권도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다.


한․일 양국 및 양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4조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


이게 한일회담 합의 사항이었다.

이는 한일 기본조약과 함께 체결된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다.

제2조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 일방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들어오게 된 것.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

이 조항으로 인해, 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지금까지 일본은 징용, 위안부 등 ‘개인적 피해’에 대해서도 배상을 끝냈다고 주장해 왔으며, 그 같은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이를 부인하여 개인적 피해에 대한 대일 청구권이 유효하다고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겨레는 대법원이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이 유효하다는 한 근거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핵심 쟁점인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한일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는지’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대6 의견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어서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수의견은 “따라서 한일협정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그 이유로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이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권리 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 관계라고 보기 어렵고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면서, 한-일 정부가 일본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 등에 들었다.”

대법원이 옳은 판단을 한 걸까?

나는 잘 납득이 안 된다.

참고로,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한 박정희 정부는 이 조약과 협정을 통해 들어오게 된 자금의 운용과, 민간인의 대일 청구권 보상을 위해 몇 가지 법을 만든 바 있다.

언급한대로, 국가가 민간인을 대신해 민간의 청구권 등을 포함하여 일본에 일괄 청구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민간의 대일청구권에 대응해 보상을 해줘야했기 때문이다.

우선 ‘청구권자금의운용및관리에관한법률’ (1966년) 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들어오는 자금의 운용에 대해 입법한 것인데, 이 법 제 5조는 민간인의 대일청구권 보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5조 (민간인의 대일청구권 보상) ①대한민국국민이 가지고 있는 1945년 8월 15일이전까지의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은 이 법에서 정하는 청구권자금중에서 보상하여야 한다.

즉, 한일기본조약과 관련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자금은 민간인의 개인 청구권에 의한 보상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며, 이를 한국 정부가 받은 이상, 일본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민간인에게 대일청구권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줘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 (1971년), 대일민간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 (1974년) 등을 잇달아 입법했다.

이 과정을 보면, 민간인의 대일청구권은 일본 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에게 요청해야 하며, 이제와서 일본국에 대일 청구권을 발동하고 국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는 것에 대해, 일본은 억울할 수 있다.

자, 이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해결할 수 있을까?

첫째는 국제재판소로 가져가는 것이다. 매우 길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둘째, 힘과 힘의 충돌로 가는 것이다.

한국 대법원이 국내 일본 기업의 재산을 압류하면, 일본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통상 마찰을 통해 압력을 넣는 것이 있다.

만의 하나, 한일무역전쟁이 벌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일본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국 5위이며, 일본은 우리나라가 주요 수입국 7위에 해당한다.

2018년 우리나라는 일본에 281억585억불을 수출하고, 503억283억불을 수입해 약 222억불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수치로만 보면,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수입을 중단해 일본에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대일 무역 적자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50년동안 이어져왔다. 우리가 일본에 무역 적자를 보는 이유는 수입 품목이 소비재가 아니라 부품, 소재, 기계 설비 등 생산재 혹은 중간재이기 때문이다. 만일 일본으로부터 수입이 중단되면, 그 즉시 우리나라 산업 전반이 충격을 받게 된다.

특히 소재, 부품은 대체가 어려울 정도이어서 가격이 얼마이든 계속 수입할 수 밖에 없다.

반면, 우리가 일본에 수출하는 건,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제품이 주종을 이룬다.

만일 일본이 이들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수출에 타격을 받지만, 일본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우리나라 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즉, 통상 마찰로 진행될 경우, 그 결과는 뻔하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 기업에 일하고, 그 노동의 댓가를 받지 못한 체 70년 넘는 시간을 보냈고, 이제 일본 기업을 압류해서라도 그 댓가를 받겠다고 하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 억울함은 이미 일본으로부터 청구권을 행사한, 특히 민간인의 청구권까지 행사한 한국 정부에게 풀어야 한다.

60년에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이 필요해 대일청구권으로 받은 자금을 쓸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 돈을 종자돈으로 경제 부흥을 일으켰다면, 지금이라도 국가가 민간인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는 것이 도리이다.

뻑하면 국가 간의 약속을 휴지조각만도 못하게 만들어서야 되겠나. 한 두번도 아니고 말이다.

이게 상식 아닐까?



2019년 1월 9일





Monday, January 7, 2019

거리를 활보하는...























정부가 파악하는 알콜 의존/남용 환자는 전체 국민의 3.5%이다.
이중 10% 에서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면, 17만5천 개의 병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내 전체 정신과병원의 병상 수는 의원을 포함해 83,405 개이다. 즉, 전체 알콜 중독자의 5%만 입원시켜도 우리나라 정신과 병상이 다 찬다.





실제로, 우리나라 정신병동은 상당히 많은 알콜 중독환자가 병상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 중 많은 수가 의료급여 환자들이다. 즉, 소득이 적거나 없어서 국가가 주는 생활비, 진료비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오해는 말자. 급여 대상자가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다)

이들은 국가에서 주는 생계비로 술을 먹고, 술 사 먹을 돈이 떨어지면 알콜 중독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다. 병원에서 따뜻한 밥과 깨끗한 침대와 옷, 잠 잘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부 지원금이 나올 때 쯤 되면 퇴원해 다시 술을 마시고, 또 입원하기를 반복한다.

국가가 알콜 중독자를 양산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응급실은 숙박업소이다. 춥고 잘 곳이 없으면 만취한 체 전국 응급실로 찾아가 행패를 부린다. 우리나라 어느 응급실이나 이렇게 찾아오는 단골 몇 명은 다 있다.

119 구급대가 이들을 모셔오면, 이들은 침대 위에 토사물을 쏟아내고 대소변을 본다. 20대 나이어린 간호사들이 이들의 몸에서 그 오물을 닦아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 알콜 의존/남용 환자의 5%만 입원시켜도 병상은 다 찬다.

정신병동은 정신장애 환자들이 입원해야 하는 곳이다.

우리가 말하는 ‘정신병’에 시달리는 환자 대다수는 괴롭다고 느끼지 않는다. 지금은 조현병으로 이름이 바뀐 정신분열병도 마찬가지이다.

조현병 환자는 자신이 괴로워 스스로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병원에 데려간다.

조현병 환자들은 때로 매우 위험한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정작 자신이 하는 행동을 모르고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이런 경우, 격리치료해야 한다. 양극성 장애도 마찬가지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조현병 유병율은 0.2%이고 양극성 장애는 0.1% 이다. 그 수만 15만명이다.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로 모두 입원할 필요는 없지만, 불과 8만 4천개의 병상에서 알콜 의존/남용 환자가 차지하고 남은 병상에 입원할 수 있는 조현병, 양극성 장애는 얼마나 될까?

게다가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는 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과거 지금보다 정신병원 병상이 훨씬 더 적었을 때에는 이들을 불법 감금 수용하는 시설도 있었다. 수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여기에 수용되었고, 그들의 인권은 짓밟혔다. 그러나 그 덕에 가족들은 시름을 덜고, 사회는 좀 더 안전했다.

지금은 이런 시설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 열악하고 불결한 시설에 수용되는 경우는 없을지 모른다. 그럼 그들은 모두 정신병원에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입원 절차를 더 까다롭게 만들어 놓아, 반듯이 격리하고 입원치료해야 할 환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아무런 대책없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여파가 상식선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살인, 폭행 사건들이다.

단지 희생자를 애도하고 잠시 슬퍼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반복된다고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

- 그러나, 위험 따위가 뭐 중요하겠는가. 인권이 중요하지. 아무렴. 그렇지...



2018년 1월 7일






Sunday, January 6, 2019

아시아 안심법과 국방수권법










지난 해 연말 미 의회를 통과한 두 개의 주요 법안 즉, 아시아 안심법 (Asia Reassurance Initiative Act)과 국방수권법(NDAA)의 한반도 관련 핵심 사항은 다음과 같음.
(출처 : VOA)



1. 아시아 안심법


- CVID가 미국의 협상 목표이며 미국의 북핵 정책이라고 법으로 못 박음

- CVID 전까지 대통령이 대북 해제를 임의로 할 수 없도록 법제화
- 아시아 안심법 이전에 이미 대북제재법은 법이 정한 항목들 즉, CVID, 북한 민주화 등을 실현하기 전에 대북제재를 풀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아시아 안심법은 이중 장치임.
- 일각에서는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지 어떻게 북한만 일방적으로 비핵화를 진행하느냐고 주장하나, 대북제재법, 아시아안심법 때문에 미국 대통령도 일방적으로 대북제재를 해제할 수 없는 것임.
- 즉, 북한이 CVID 하기 전에 미국이 움직일 수 있는 건 없음.



2. 국방수권법

- 이 법은 1년짜리 한시법으로 2019년도 미국의 국방정책과 국방예산을 법으로 규정한 것임. 해마다 새로 법을 개정함.

- 올해 국방수권법은 주한미군을 2만2천명 밑으로 줄이지 못하게 규정함.
- 이 의미는 주한미군 철수를 비핵화와 거래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것임.
- 만일 미국 대통령이 그 이하 수준으로 미군을 철수시키려면 의회의 허가를 받아야 함.

- 의회가 대북 정책을 직접 챙기겠다고 나섬
- 60일 내에 미 국방부는 북핵 조사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후 90일 단위로 갱신한 보고서를 내야 하고, 이와는 별개로 북핵 역량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해야 하며, 180일 단위로 갱신해야 함.
- 이와 별개로 수시로 의회 브리핑을 해야 함.


2019년 1월 6일



Friday, January 4, 2019

미국에 의한 중국의 민주화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은 4/19 혁명으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인 80년 봄부터 본격화되었고, 전두환 대통령 임기 말기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은 학생들이 앞장 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만 그런 건 아니다.

미국과 일본도 똑같은 반정부 학생 시위 과정을 겪었다. 또 그 학생들에게 이념의 배경을 제공하고 선동하는 배후가 있었다는 것도 같다.

일본은 이미 1960년대에 매우 과격한 학생 시위를 거쳤다. 대표적인 게 전공투가 도쿄대 강당을 점거한 야스다 강당 사건 (1969년)이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의 기원은 역시 서유럽이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년)은 영국 왕이 가졌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빼앗고 의회 민주주의를 이룬 민주화의 시발점이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다.

프랑스는 대혁명(1789년)을 거쳐 공화국으로 변신했다.

서구의 민주화가 단기간 안에 정착된 건 아니다.

영국에서 보통 선거가 치뤄진 건 1928년에 이르러서이며, 프랑스는 1944년, 1776년 독립한 미국도 1920년에 이르러 겨우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에도 공포정치, 쿠테타, 7월 혁명(1830년), 2월 혁명(1848년) 등 수십년에 걸친 질곡의 민주화 과정을 겪어야 했다.

1968년 동유럽 체코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운동이 일었다. 소련은 20만명의 군을 이끌고 체코로 진격해 민주화의 씨앗을 밟아버리며 이 시도는 끝났다.

체코 등 동유럽이 실제 민주화된 건, 89년 독일이 통일하면서이다.

89년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체코, 루마니아 등지에서 민주화 혁명이 시작되었다. 당시 중국 천안문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지만, 중국 공산당의 무차별적인 탄압으로 중국 민주화의 불꽃이 금새 꺼졌다.

91년 소련 연방이 해체 되면서 조지아,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우즈벡 등 11개국이 독립을 선언했고, 92년에는 유고슬라비아가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등으로 쪼개졌다. 체코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붕괴하자, 사회주의를 채택했던 몽고, 이디오피아, 남예맨 등도 사회주의를 폐지했다.

쿠바, 라오스, 베트남 등은 공산당 일당체재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20년 후 민주화의 열풍은 또 한번 지구를 감아돌았다.

이번엔 중동의 민주화였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행상을 하던 젊은이가 부패 경찰의 탄압에 저항하며 분신 자살하면서 열기가 솟구쳐 올랐다.

튀니지 혁명은 알제리, 레바논, 요르단, 수단, 오만, 사우디, 이집트, 예맨, 이라크, 바레인, 리비아, 모로코, 쿠웨이트, 시리아 등 아랍 문화권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 튀니지에서는 장기독재하던 대통령이 축출되었고, 이집트의 군부 독재자 무바라크가 퇴진했으며, 리비아에서는 43년간 독재하던 카다피가 성난 국민들에게 맞아 죽었고, 예맨에서도 살레 대통령이 사임 후 나라를 떠났고, 그 외 국가들에서도 독재를 했던 여러 정치인들이 정치를 포기하거나 출마를 포기했다.

아랍 국가들은 여전히 군주가 있는 국가가 많으며, 부족 국가의 성격이 짙고,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강요와 굴종에 익숙하다는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의 민주화는 어찌보면 서구의 민주화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사우디 등 왕정 국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민주화 열기이다.

아무튼 시시때때로 민주화란 이름으로 국민들이 각성하며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열풍이 불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올해는 그 열풍이 아시아, 특히 중국에 불지 않을까 싶다. 그럴 때도 됐다.

지난 해(2018년) 3월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개최해 국가 주석의 임기를 폐지하는 것으로 중국 헌법을 개정했다.

이로써, 2023년 임기가 끝나는 시진핑에게 무기한 중국을 통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실상 중국 천황이 된 것이다.

홍콩 시민들은 주석 임기제 폐지 이후 중국의 홍콩 간섭이 너무 심하다며 1월 1일부터 수천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실 반환 당시 홍콩의 가치는 막대한 달러 보유지이며 중국의 돈줄이자 투자 유입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홍콩을 '방임'한 측면이 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할 수 있다. 그러면, 조여야지.

홍콩 시민들이 주장하는 건, 홍콩 독립이며, 구체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파견하는 행정장관을 선거로 뽑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만도 예사롭지 않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신년사를 통해 “중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2,300만 대만 국민을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시 주석은 즉각 '중국인은 중국인을 공격하지 않는다'면서도,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부 문제'라며 대만이 분열 공작을 시도할 경우, '흡수 통일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총통의 신년사가 아니었어도, 대만에 대한 시진핑의 계획은 "홍콩식 흡수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홍콩처럼 대만도 제도는 유지하되, 행정장관 (혹은 총독)을 중국 정부가 임명하고, 외교, 국방권을 중국 정부가 가져가는 것이다.

한편, 미국 정부는 지난 12월 31일 아시아 안심법(Asia Reassurance Initiative Act)을 통과시킨 후 대통령이 서명했다.

이 법은 아시아 각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과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대만과 경제, 정치, 안보 관계를 유지하며, 기존의 대만과의 협약, 조약 등을 공고히 하고, 미국 고위 관료들의 대만 여행을 장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슨 법이 공무원들더러 여행가도록 촉구하라고 하나 의문이 들지 모르지만, 미국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이 요구한 One China 정책에 따라 대만과 단교하고, 공무원들의 대만과의 접촉을 금지시킨 바 있다.

그런데 지난 해, 미 하원은 대만여행법을 발의해 미국의 모든 관료가 대만을 여행하고, 대만 공무원들과 접촉하며 대만 공무원들이 미국을 업무차 방문할 수 있도록 입법화하였다. 중국을 긁는 거다.

한편, 아시아 안심법은 "미국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발생하는 현재와 미래의 위협과 비대칭 전략에 대비할 수 있게 대만에 무기를 판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을 현재와 미래의 위협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법은 중국에 대해서,

"중국은 중국 시민 사회와 종교를 날이 갈수록 더 제약하고 있으며,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 간의 규범을 훼손하고 있는 매우 우려스러운 국가이므로, 국제 규범과 룰을 따르고 준수하여 국제 관계에서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시각은 트럼트 대통령의 시각이 아니라, 미 의회의 시각이다. 미 조야가 중국을 어떻게 보는지 명확하다.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이 법은 미국 정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민주화, 인권 강화, 시민 사회 단체 지원, 투명성 강화 등에 매년 2억1천만 달러를 2019년부터 5년간 투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이 예산은 중국 민주화 촉진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으며, 티벳 자치구와 중국 인도 지역의 티벳인들의 비정부기구 활동에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달러를 들여서라도 대만을 지원하고, 티벳 등에 자금을 지원해 중국을 민주화시키겠다는 의미이다.

미국 의회가 이를 법으로 만들었고, 미국 대통령이 승인한 것이다.

아직 아시아 안심법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논평은 없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에게 유예해 준 무역 전쟁 90일 휴전 기간의 1/3이 지났다.

두 달 안에 중국은 미국이 만족할만한 후속안을 만들어와야 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 (만들 가능성, 만들어와봐야 미국이 만족해야하며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사실 미국은 지난 연말 약 1천개 가까운 품목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아들여 고율(25%) 관세를 철회했다. 금액으로 치면, 340억 달러 상당의 수입품에 해당한다. 승자의 여유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화답하듯 중국은 미국산 쌀 수입을 허용했다. 2001년 중국의 쌀 시장 개방 후 미국 쌀 수입 허용은 처음이다. 호의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산 쌀은 동남아 쌀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없어 중국에서 사 들일 가능성은 없어 실효성없는 제스처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에 있는 한 예비역 소장은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사상자 발생'이라며, '미 항모 두 척을 격침시켜 1 만명을 수장하면 두려움에 떠는 미국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망발을 했다. 머리가 나쁜 건지, 철이 없는 건지...

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있었고, 10년 뒤인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있었다. 주기로 보자면 올해는 중국발 금융 위기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다 경기 안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기가 불안하고 요동칠 때 기회가 있다가 생각하는 사람은 경제 위기를 바란다.

중국의 경제 위기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평과 분석이 있지만, 요약하면 중국은 이상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부실대출이 너무 많고, 전체 대출의 40%가 부동산 담보대출인데, 부동산 버블이 형성되어 있고, 버블이 터지는 순간 금융기관은 부실화되고 경제 위기로 빠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상한 경제구조란 중국 주요기업 은행이 모두 국영기업, 국유은행이라는 것이다. 이 중 상당수 부실 기업, 은행은 모두 당과 정부만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중앙당 중앙정부는 이들 부실 기업, 은행을 정리할 수 없다. 왜냐면 이들은 지방 정부나 군이 가진 것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과 정부는 위기가 오더라도 중국 은행의 자산 규모가 크고, 외환 보유고가 충분하며, 채권도 충분하므로 어느 정도 위기에는 견디어 낼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자위하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파편에 맞아 쓰러지는 기업과 중국 국민은 있겠지만 말이다. 중국에는 기업과 국민이 아주 아주 많으니까 그 정도야 뭐... 이런 생각일까?

아무튼 중국의 민주화, 중국 경제 위기, 남중국해의 미중 충돌 모두 우리나라로서는 예삿일이 아니다.

이래저래 중국은 세계의 앓는 이가 되었고, 올해는 또 한번 다이나믹 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Buckle up!


2019년 1월 4일





Wednesday, January 2, 2019

휘슬블로어를 막아라!











“신재민을 보호해야 한다.”
“신재민이 잘못되면, 추가 내부고발자가 나서지 않을 것이다.”

vs

“신재민이 더 나불대지 못하게 구금해야 한다.”
“신재민을 처참하게 밟지 못하면, 휘슬블로어(whistle blower)가 계속 나오게 된다.”




김태우, 신재민 등을 격리하고 입을 막으려는 공작이 있을지 모른다.

그 공작은 이들을 구속 수감하거나 망신주고, 깎아내리고, 가족과 지인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김태우, 신재민은 자신이 고통받거나 망신당하는 건 참아도 무고한 가족과 주변인이 털리고 괴롭힘을 당하면 참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 피의자들이 수사 도중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주변을 털며 피의자에게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다시 조용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을 터는 건 잘못된 수사방법이다.

- * -

신재민이 유독 정의로운게 아니라, 관료 사회는 이미 부글부글 끓고 있다.

높은 곳에 있는 아마추어들 때문이다.

오죽하면 여당 스스로, 높은 곳의 아마추어들이 일을 크게 만든다고 한탄하고 있을까.

이 아마추어들이 관료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비상식적 명령을 내려 관가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은 기압과 같다. 지지율이 높아 기압이 올라가면, 냄비 속의 물은 쉽게 끓지 않지만, 지지율이 떨어져 기압이 떨어지면 물은 100도가 아니어도 끓기 시작한다.

이렇게 임계점이 낮아져 쉽게 끓어 오르니 휘슬블로어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신재민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신재민이 피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정의로운 일을 하려던 이들도 냉정을 찾을 수도 있다.

- 공익?
- 내가 먼저고, 가족이 우선이다.

이렇게 말이다.

그렇다고 안심하라는 건 아니다.

딥 쓰로트(deep throat)가 있기 때문이다.

딥 쓰로트는 익명의 제보자를 말한다. 이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체 현직을 유지하며 언론에 제보를 하게 될 것이다.

총선이 가까우면, 서류 뭉치를 든 자들이 은밀한 장소에서 여의도에서 온 이들과 만나는 걸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 * -

풍향이 바뀌면, 관료들이 더 빨리 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한 생존의 본능 때문이다.

바람이 바뀌어 불길이 나를 삼키지 않게 하려면 재빨리 돌아서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부역이 강요와 강제에 의한 것이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차곡차곡 자료를 모아둬야 한다.
그것만이 불길로부터 자신을 막아줄 방패이다.



2018년 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