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ugust 23, 2021

왜 탈레반은 여성을 학대할까?

 




전세계의 테러 집단은 알카에다나 IS 가 전부가 아니다.
유엔이 지정한 국제 테러 집단은 70개 단체가 넘는다.
이들은 필리핀 (ASG, RSM), 인도네시아 (JAT, JI, MIT, JAD), 중국 (ETIM) 등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IIB), 아프리카 나아지리아 (보코하람), 말리 (AAD, JNIM), 모로코 (MICG) 등을 비롯해 수많은 중동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거의 모두가 이슬람과 관련된 집단이다.
왜 이슬람 테러 집단이 성행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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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테러 집단일까?
탈레반은 아프간 탈레반과 파키스탄 탈레반으로 나뉘는데, 현재 UN 이 테러집단으로 지정한 건, 파키스탄 탈레반 Tehrik-i-Taliban Pakistan (TTP. Taliban Movement in Pakistan) 이다. 미국 역시 2020년 9월 TTP 를 테러 집단 리스트에 올렸다. 그러나, 아프간 탈레반은 테러 리스트에 없다.
즉, 현재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공식적으로는 테러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만일 미국 정부가 탈레반을 테러 리스트에 올렸다면, 2020년 2월 미국은 테러 집단과 평화 협정을 맺은 게 된다.
사실 탈레반은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기 전 아프간을 실효 지배한 정치 집단 (정부)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아프간의 탈레반은 여성 인권을 말살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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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운동(movement)' 이 성공을 거두려면, 다음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 분노
- 사상
- 돈

분노는 운동의 동기(drive) 가 된다. 스스로 억압받고 공정하지 못하게 차별받는다는 각성이 생기면, 분노가 끓어오르게 되고, 분노는 전염병처럼 번지게 된다.
그 배경은 외세의 침략, 독재, 가난 등 다양하다.
이때 분노를 폭발시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다.
그러나, 이 단계는 아직까지 분노의 표출일 뿐이다.
이런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고 제 풀에 주저앉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분노와 '운동'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운동 집단이든 그 배후에는 사상적 배경을 만드는 이론가가 있기 마련이다.
공산주의 운동에는 맑스라는 이론가가 있었고, 자본가 계급에 의해 박해받는다고 각성한 노동자 계급이 있었다.
또, 아무리 뚜렷한 명분과 사상적 배경이 있어도 '활동가'가 있어야 운동이 지속될 수 있다. 이 활동가를 만드는 힘은 바로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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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테러 집단은 그 명칭이 무엇이든 이 코스를 그대로 답습한다.
알카에다의 경우, 자신을 배척한 사우디와 서방 특히 미국이 분노의 대상이었다.
(알카에다는 1988년 창설된다. 소련은 79년 아프간을 침공해 89년 철수했으므로, 알카에다는 소련의 철수 직전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알카에다나 IS 등 대부분의 이슬람 테러 집단의 사상적 배경에는 사이드 쿠틉 (Sayyid Quṭb) 이라는 인물이 있다. 알카에다를 만든 빈 라덴에게 무장투쟁론을 주입한 인물은 사이드 쿠틉의 동생 무함마드 쿠틉 교수이다. 그는 사우디의 킹 압둘아지즈 대학 교수였다.
사이드 쿠틉은 1906년 생의 이집트 인이다. 그는 왜소한 체격을 가진 조용한 성품의 책벌레이자 학교 선생이었다. 문학 서적이나 시를 읽고, 토론하는 걸 즐기던 젊은이였고, 서방에 대한 불만이나 반감도 없었다.
이집트 교육부는 쿠틉이 42세이던 1948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주었다. 미국에서 약 2년간 머물던 중, 그는 서구 문화에 대한 강력한 적개심을 갖게 된다.
많은 학자들은 그가 미국에서 경험한 파티와 문화를 통해, 원 나잇을 즐기는 미국인들을 보며 성적 방탕함에 대한 경멸을 느꼈고, 미국에서 심각한 인종 차별을 겪으면서 서방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반면, 일부는 그가 백인 여성에게 접근했다 차이고, 실패한 유학 생활을 합리화하기 위해 주변에 분노 섞인 편지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는 귀국 후 무슬림 형제단에 가입해 그의 특기를 살려 선전부에서 일하며 이슬람 부흥 운동에 참여한다.
무슬림 형제단은 1928년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하산 알바나가 만든 이슬림 운동 단체이다. 당시 이집트는 친 서방 왕정 국가 시대였고, 하산 알바나의 무슬림 형제단이 세속주의를 반대하며 대중 속에 파고 들어가 세력을 확대하자, 위기를 느낀 왕정은 1949년 하산 알바나를 암살한다.
이로써, 무슬림 형제단의 위세가 약화 되었는데, 사이드 쿠틉이 52년 가담하며 다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쿠테타를 일으켜 왕정을 뒤집고 권력을 잡은 나세르 정권과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현재 무슬림 형제단은 가장 큰 무슬림 집단 중 하나이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이 테러 집단과 연계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
1954년 무슬림 형제단원 중 누군가가 나세르 암살을 꾀하다 실패하자, 이집트 정부는 이를 무슬림 형제단의 쿠테타로 보고, 3천명을 체포하고, 무슬림 형제단을 불법 집단으로 규정해 와해시키려 했다.
이 때, 사이드 쿠틉도 같이 체포된다. 교도소에 수용된 쿠틉은 옥 중에서 자신의 반미, 반서구 사상을 정리해 책으로 펴 낸다. 이 책의 제목이 바로 "진리를 향한 이정표 (Ma'alim fi al-Tariq, Milestones)" 이다. 이 위험한 책이 이슬람 전문가인 서 모 교수에 의해 번역되어 국내에도 시판되고 있다.
사이드 쿠틉은 형기 중 석방되었지만, 이 책을 출판하였다는 이유로 국가 반역죄로 다시 체포된 후 사형을 당한다.
과연 이 책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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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쿠틉은 세계는 자힐리야 상태라고 정의한다. 자힐리야 (Jahiliyyah)는 무지의 시대(Age of Ignorance)를 의미하며, 원래 이슬람이 태동되기 이전 시대를 말한다.
그러나 사이드 쿠틉은 지금도 자힐리야 시대이며, 모하메드가 메카에서 추방된 후 메디나에서 무리를 모아 이슬람을 재건했듯, 코란과 샤리아 율법으로 무장해 무지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싸움이 바로 지하드(Jihad) 즉, 성전(聖戰. Holy War)이다. 성전을 위해 싸우는 지하드 전사를 무자히딘 (Mujahideen) 이라고 한다.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 소련에 맞서 싸운 이들이 무자히딘이다.
참고로, 탈레반은 소련의 퇴각 후인 1993년 경 만들어졌다. 그러니 탈레반이 소련과 싸웠다고 하면 그건 틀린 말이다. 물론, 탈레반의 구성원 대부분이 소련과 싸운 무자히딘이다.
즉, 쿠틉은 이슬람과 자힐리야는 양립할 수 없으며, 이슬람은 신의 통치를 받는 반면, 자힐리야는 인간의 통치를 받으며, 이는 배교이라는 것이다.
또, 그는 인간의 주권은 없으며, 오로지 신의 주권만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 대부분의 국가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정의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인류 보편의 원리이자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쿠틉은 이를 인간의 오만이라고 주장한다. 주권은 인간에게 있을 수 없으므로, 대통령, 수상, 왕 등도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로지 알라 만이 주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알라가 주권을 가진 이슬람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상은 인도의 무슬림 알 마우두디 (Abul A`ala Maududi)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알 마우두디는 1903년 남부 인도 명문가에서 출생한 학자로 인도 민족주의에 관심을 가지다 차츰 정치에서 종교로 관심을 옮겨, 이슬람 국가론에 심취한 원리주의 이슬람 학자이다.
마우두디는 Jama’at-iIslami 라는 단체를 결성해 자신의 사상을 펼치며, 이슬람 부흥 운동 (이슬람 세계 정부 건설)을 했는데, 후에 이 단체는 Jama'at-e-Islami Pakistan 와 Jama'at-e-Islami Hind 로 나뉘게 되고, Jama'at-e-Islami Pakistan 은 파키스탄 탈레반 설립에 영향을 준다. 파키스탄 탈레반이 곧 아프간 탈레반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아프간에서 소련이 물러난 후 설립된 정부가 탈레반에 의해 무너지고, 탈레반이 이슬람 국가를 세워 통치 했던 사실을 알고 있다. 빈 라덴은 이 정부만이 올바른 이슬람 국가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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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이슬람은 표면적으로는 지하드는 세속에 물들려는 자신과 싸우라는 것이지, 총칼을 들고 이단과 싸우라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 식민 지배, 빈곤 등이 유발하는 분노는 사이드 쿠틉이나 알 마우두디와 같은 이들이 주장한 자힐리야의 척결, 이슬람 국가 건설이라는 명분과 만나 무기를 들고 지하드를 벌이게 한다. IS 역시 같은 맥락에서 Islam State (이슬람 국가)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 지하드에 참가하는 전사들은 누굴까?
이들 대부분은 분노에 쩌든 인물이거나 이슬람 국가 건설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몽상가들 일수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달리 할 일 없는 무직의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현실 불만에 의해 가담하고, 무기를 들어 자신감을 얻고,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안도감을 얻으며, 돈을 받으며 만족해 한다. 그러면서 사상가들에 의해 세뇌되고 자신이 행동이 알라에게 축복을 받을 길이라 믿으며 자살 테러를 저지르며 감정없이 사람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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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급진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 중의 하나는 와하이즘(Wahhabism) 이다.
와하이즘이란, 사우디 출신 학자인 무함하드 이븐 압둘 와합 (Muhammad ibn Abd al-Wahhab. 1703~1792)이 창시한 사상으로, 원래 이슬람 재건 운동을 목적으로 했다.
당시는 오스만 제국 중심의 이슬람 사회가 기독교 사회에 비해 뒤처지고 있었던 시기였고, 이슬람의 부흥이 필요했다.
와합의 사상의 뿌리는 이븐 타이미야(Ibn Taymiyyah. 1263~1328) 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븐 타이미야는 시리아의 신학자였는데, 당시 아랍권은 몽골 제국의 침략과 십자군 전쟁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이븐 타이미야는 이슬람 침몰의 결과가 묘지 순례, 죽은 자 숭배 등 이슬람 신비주의에 빠진 수피즘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코란과 샤리아 율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슬람 학파를 한발리 파 (아흐마드 빈 한발리가 주창) 라고 한다.
즉, 와하이즘 (와하브 파)의 뿌리는 한발리 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와합은 이븐 타이미야의 원리주의에 더해, 엄격한 종교 생활, 음주 도박 간통 금지, 여성의 외출 및 사회 생활 제재 등등 구체화시켰다.
그러나 수피즘은 와합의 시대에 더 대중적이어서, 와합은 박해를 받았다.
수피즘메블라나 루미(Mevlana Rumî)가 창시한, 한때 이슬람의 주류 종파이었으며, 이슬람이 중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불교와 인도 종교와 접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현재도 모로코, 세네갈, 체첸, 알바니아 등에서는 수피즘을 신봉한다.
수피들의 박해를 받던 와합의 사상을 지지하고 품어 준 건, 현 사우디 왕가의 조상인 사우드 부족장이었다. 와합은 사우드 부족장에 충성을 하는 대신, 사우드 부족은 와합을 보호하며 그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협약을 맺는다.
사우드 부족은 시아파를 공격하며 영토를 넓혀 메카와 메디나도 정복하며 승승장구했고, 와합과의 협약도 지켰다. 그 협약은 현재도 이어진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여전히 와하비즘을 신봉한다. 그 결과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지하드를 위해 수 많은 사우디 젊은이들이 아프간으로 가 무자히딘이 되었고, IS 사태 당시 IS 에 가담한 사우디 청년이 공식적으로만 1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우디는 지하드를 벌이는 IS 등 단체에 자금 지원을 한다.
이를테면, 사이드 쿠틉은 와하이즘에 이슬람 급진주의를 접목하고 자힐리야에 대항해 지하드를 선언하며 순교한 셈이며, 그 순교로 이슬람 무장 세력이 봉기하며 테러를 통해 이슬람 국가를 설립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살라피 지하디즘 (Salafi jihadism) 이라 하며, 이는 초국가적 글로벌 정치 집단 (이슬람 국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사이드 쿠틉을 살라피 지하디즘의 아버지라고 한다.
문제는 이슬람 부흥을 위해 코란과 샤리아 율법으로 돌아가자는 사상이 급진화 되고 비틀어져 현대 사회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의 정욕을 자극시킨다는 이유로 부르카를 입도록 강요하고 (정작 무함마드의 부인 카디자는 히잡도 거부했다), 여성의 교육을 막고, 강제 결혼시키거나 이를 거부하면 명예 살인을 일삼는 이슬람 국가는 비단 아프간 뿐이 아니다.
많은 아랍 국가들은 샤리아 율법을 국법보다 우선 한다. 샤리아는 코란과 하디스 (무함마드의 언행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사실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든 강제 규정이라 봐야 한다.
천년 전의 규율을 현대 사회에 적용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게다가 샤리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인권 탄압의 도구로 쓰고, 범죄를 합리화하고 있다.
탈레반의 여성 탄압에는 이런 역사적, 사상적 배경이 있다.
따라서, 이들의 '온건한 정부' 운운을 믿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이들이 서방과 교류, 협력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미국 정부는 철군의 댓가로 아프간 내 테러 집단 색출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아프간은 테러 집단의 온실이 될 수도 있다. 왜냐면, 언급했듯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살라피 지하디즘 즉, 서방과 싸워 이슬람 국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탈레반의 악행이 거듭되면, 경제 봉쇄를 단행할 것이고, 돈줄이 마르면 탈레반은 지하드 전사를 먹여살리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 분명하다.

그건 곧 자국 국민에 대한 약탈, 마약 판매는 물론 세계를 상대로 하는 인질 테러극이 될 수도 있다.



2021년 8월 23일




Tuesday, August 17, 2021

아이티의 교훈















세상의 이목이 모두 아프간에 쏠려있지만, 아프간의 현 상황은 미래에 대한 공포로 생긴 난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 공포로 더 큰 난리가 난 나라가 있다.

바로 아이티이다.

아이티는 대통령 암살에 따른 정국 혼란에 이어 지난 14일 진도 7.2 의 강지진으로 1,200 명 이상이 사망한 가운데, 허리케인 그레이스가 아이티 섬을 강타하고 있다. 아이티는 허리케인이 지나는 길목에 있어, 자주 영향을 받는다. 2016년에는 5 등급 허리케인 메슈로 900 명 가까이 사망했다.

게다가 아이티 국민은 코로나 백신을 대부분 맞지 못한 상태이다. 상황이 이러니 아이티에 대한 구호의 손길도 예전 같지 않다.

예전이란 2010년 1월 아이티 대지진을 말한다.

당시 미국을 비롯해 수십 개 국가들이 의료진과 피해 복구를 위한 물자를 아이티에 지원했다. 적십자는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커다란 캠프를 차려 놓고 세계 각국에서 온 적십자 구호단체를 수용해 조직적으로 의료지원, 구호 활동을 펼쳤다.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단 2대 있는 병원선 중 1 대를 보내고, 미 해병대를 보내 치안을 유지하는 한편 군용기로 물자를 실어나르고 환자를 본국으로 수송해 치료해 주었을 뿐 아니라, 미국 내 종교단체와 병원 등이 자부담을 들여 참여한 의료진을 꾸려 아이티로 몰려왔다.

우리나라도 의협과 적십자가 공조해 여러 대학의 지원을 받아 한 달간 의료 지원 캠프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번 지진 피해에는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 엄두도 내지 못한다. 게다가 아이티 치안은 극도로 불안해 국경없는 의사회도 개설한 산부인과 병원을 폐쇄하고 현지를 떠났다.

그나마 지금 아이티에 손길을 내밀고 있는 건, 미국이다. 2010년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아이티는 왜 불운이 겹칠까?

아이티는 현재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다. 일인당 GDP 는 700 불 내외이며, 70% 가까운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최악의 실업률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실업률은 6% 가 안된다. 이것도 이 정부 들어 크게 오른 것으로 보통 3~4% 내외였다.

아이티는 세계사에 유래없는 몇 가지 기록이 있다.

첫째,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의 독립한 비 백인 국가이다. 그것도 노예였던 흑인이 주도해 무려 나폴레옹 제국과 싸워 독립을 이룩한 국가이다.

아이티는 현지어로 '산이 많은 땅'이란 의미이다. 실제 아이티 국토의 3/4 이 산이다. 수도 포르토프랭스 역시 높은 산맥에 둘러쌓여 항구를 낀 분지와 같은 형세이다.

산이 많아 한때 벌목 산업이 흥했는데 지금은 지나친 벌목으로 산에 나무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콜롬버스가 아이티 섬을 발견한 후, 스페인 인들이 섬에 상륙하자, 50만명에 달한 원주민들은 전염병과 학살로 몰살한다. 그러자, 스페인 인은 대서양 건너 서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사와 아이티에서 일을 시켰다. 이들이 현재 아이티 국민들의 선조이다.

이후 유럽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유럽을 침공했고, 이를 막기 위해 이른바 9년 전쟁이 벌어지는데, 오스만에 대항해 싸운 건 오스트리아, 잉글랜드, 네델란드, 신성 로마제국, 스페인 등 동맹국이다.
전쟁이 길어지자, 동맹은 프랑스의 참전을 요구했지만, 루이 14세는 오히려 오스만을 도와 동맹과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의 결과 프랑스는 루이 14세가 편입한 영토를 고스란히 반환해야 했고, 대신 아이티 섬의 서쪽 절반을 스페인으로부터 얻어낸다.

그 결과 아이티 섬의 서쪽은 프랑스 어를 쓰는 현재의 아이티로, 동쪽은 스페인어를 쓰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나뉘게 된다.

프랑스는 아이티가 사탕수수와 커피 생산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을 가졌다는 걸 알고, 흑인 노예를 부려 대규모 농장을 꾸려, 당대 최고의 설탕과 커피 생산지가 된다. 18세기 유럽 설탕 소비량 40%, 커피 소비량 70%가 아이티에서 나왔으며, 프랑스 국부의 30~70% 가 아이티에서 나왔다.

이후 미국 독립 전쟁이 벌어지자 흑인 노예들은 프랑스 군에 편입되어 미국 독립을 위해 싸우기도 했다. 미국의 독립은 그 흑인들에게 독립의 의미를 각인시켰고, 이들은 아이티로 돌아와 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둘째, 루이지애나를 미국 영토에 편입시킨 공로가 있다.

당시 프랑스는 캐나다 퀘벡과 루이지애나를 식민지로 두고 있었는데, 7년 전쟁에서 영국에 패한 프랑스는 퀘백과 아이티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당시 프랑스 입장에서 쓸모없는(?) 황무지인 퀘백을 포기하고 돈줄인 아이티를 지키는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후 아이티와의 싸움에서 패전한 프랑스는 아이티의 독립을 지켜봐야 했고, 아이티도 못 지킨 프랑스는 루이지애나를 더 이상 방어할 수 없다고 판단해, 토머스 제퍼슨 미 대통령에게 단돈 1500만 달러 (에이커당 42센트), 현재 화폐 기준으로 불과 2억 달러 조금 넘게 받고 루이지애나를 팔아 넘기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예 손을 떼 버린다.







이로써 미국은 영토를 거의 두 배로 늘려버릴 수 있었다. 프랑스가 헐값에 넘겨버린 루이지애나 지역은 미시시피 강이 흐르는 대평원이 포함되어 있으며, 미국이 최대 곡물 생산국이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한다.

한때 잘 나갔던 아이티는 왜 최빈국으로 전락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아이티가 독립한 후 독립을 이끈 장자크 데살린은 스스로 총독이 된 후 군주국을 선언하며 곧 나폴레옹을 흉내내 스스로를 자크 1 세라 칭했다.

그러나 이에 반기를 든 공화정 파의 과거 독립운동 동지들에게 암살된다.

이렇게 반란을 일으킨 이들은 다시 최고지도자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이다가 북과 남으로 각기 분열하여 남에는 
아이티 공화국이, 북에는 아이티 국이 선포되며 남북 분단이 야기된다.

아이티 국은 다시 아이티 왕국을 선언하며 앙리 1세가 즉위하며, 북의 왕국과 남의 공화국이 대립하게 된다. 앙리 1세는 후에 자살한다. 왕국의 국민들이 남쪽의 공화국을 지지하며 반기를 들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지만 그 역시 곧 암살 당하게 된다.

이후 아이티는 공화국으로 통일되지만, 이후에도 권력 투쟁으로 암살당하거나 쫓겨나는 대통령이 수십명에 달하며 40 여명의 최고 지도자 중 태반이 임기 1년 미만이다.

이후에도 정권을 빼앗아 왕국을 건국한 이가 또 있었다.

이런 막장 국가에 경제개발 계획이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주 소득원이었던 설탕과 커피 역시 재배나 할 줄 알았지 이를 수출할 방법은 몰랐다. 수출은 프랑스인들이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19 세기 이후 설탕과 커피 재배국이 늘어나면서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노예를 통한 경작은 효율도 엉망이었다. 아이티는 노예 국가에서 독립국이 되었지만, 노예제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는 아이티 독립을 인정해 주면서 배상금을 청구했다.

프랑스 농장주의 농장과 노예를 훔쳐갔다는 이유이다. 아이티는 이 말도 안되는 주장을 반박할 수 없었다. 독립전쟁 중 백인 부녀자를 강간하고 고문하는 등 아이티 백인 인종 청소를 벌였기 때문에 국제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1804 Haiti massacre (아이티 대학살)이라고 한다. 이때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프랑스인이 3천~5천명에 달한다.






학대받았다고 주장하던 이들이 칼을 잡으면 더 잔혹해지는 법이다.

결국 아이티는 1838년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한 후 무려 122년동안 프랑스에 아이티 국가 예산의 80%를 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게다가 이 배상금을 내기 위해 미국, 독일과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돈을 빌려야 했다.

1915년 미국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아이티를 침공해 약 20년간 군정을 펼치기도 했다.

미국은 군정 동안 아이티를 재건하기 위해 헌법을 재정비하고 산업화를 도모했다. 또 재정 지원과 원조를 했다. 만일 아이티가 이 기회를 잘 잡았으면 크게 도약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아이티 원조는 역설적으로 아이티 몰락을 가져왔다.

아이티의 국토 면적은 약 2만7천 평방 킬로미터이다. 우리나라는 10만 평방 킬로미터이니 남한의 27%에 불과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대로 아이티는 산이 많은 나라이고 평지 대부분은 농장이라 거주 면적은 상당히 좁아 인구 밀도가 높다.

그런데 인구는 1천150만명에 이르러 세계 32번째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프로토프랭스와 같은 도시는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아이티 빈민가



인구 밀도로 보면, 1900년 아이티 인구 밀도는 평방 킬로미터에 58명 (인구 약 150만명)에 불과했다. 미 군정이 끝난 이후 1950년에는 120명 (약 325만명) 으로 두배 넘게 늘어났다. 1960년에는 143명 (약 386만명) 으로 늘었고, 이후 전세계가 아이티에 원조를 지속하면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당시 아이티 인구 밀도는 376명 (약 1천15만명) 이 되었다. 약 100년간 인구가 6 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이런 빈국이 이렇게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건 원조 말고는 설명이 안된다.

식량 원조는 중단되는 순간 몰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아이티는 농업 국가이지만, 식량 자급률은 40% 대에 머물고 있다.

인구가 늘면 원조도 늘어야 하는데, 이건 쉽지 않다. 결국 피폐한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이를 수 밖에 없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그 불만을 꺾기 쉽지 않다.

아이티의 고난은 계속 될 것이다.

지진과 허리케인 같은 자연 재해 때문이 아니다. 아이티에서 지진으로 피해가 큰 건, 성냥갑처럼 턱없이 부실하게 지은 건축물 때문이다. 아이티 지진으로 파괴된 건물은 모두 샌드위치처럼 포개져 부서진다. 대규모 지진으로 피해가 많은 나라에서 내진 설계나 시공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허리케인에 의한 손실도 무차별적인 벌목과 허리케인에 대한 대비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같은 섬에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은 똑 같이 허리케인을 맞아도 아이티와 같은 피해를 보지 않는다.

아이티의 역사를 보면, 국가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국가 체계가 완전히 잡히면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기만 해도 된다. 그러나, 국가 수준이 어느 정도 오를 때까지는 권력 투쟁이 아니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물론 국민의 수준도 매우 중요하다.

노예 국가였던 아이티는 독립한 후에도 노예제를 유지하고, 심지어 도미니카 공화국에 침입해 노예처럼 부리기도 했다.

맞고 큰 자식이 자기 자식도 때리는 법이다. 그 근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이티, 아프간, 리비아, 베네주엘라 등 자구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자립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국가, 국민, 사람은 아무리 도와줘도 그 기회를 잡지 못한다.

해방 후 한국이 불과 3년 만에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설립하고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강인한 지도자를 만나 새마을 운동을 통해 국민성을 개조해 성실 근면해지고, 중공업 국가로 일어서 그 덕에 세계 10위권 경제국이 될 수 있었던 건 한 마디로 기적이다.

그걸 모른다.


2021년 8월 17일


Monday, August 16, 2021

미국 외교의 승리







미국의 아프간 철수 이후 탈레반은 아프간 주요 도시를 파죽지세로 점거하고 있다.

수도 카불도 점령되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다시 점령하자, 전 세계는 미국에 대해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태는 지난 해 2월 말, 미국이 탈레반과 평화 협정을 맺고 아프간 철수 결정을 할 때 이미 예견되었다.


과연 미국은 실패한 걸까?

외교의 본질이 국익을 추구하고 국가간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미국의 아프간 철수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국의 경제와 국민 보호이다.

미국이 2001년부터 지난 해까지 아프간 전쟁에 투입한 재정은 무려 2조 달러, 2천4백 조원이다.

전쟁에 참여하여 희생되거나 부상당한 참전용사들에게 지불해야 할 보상금, 치료비는 제외한 금액이다.
게다가 전쟁 비용은 부채로 마련되었는데, 언론에 따르면 2050년까지 이자만 6조5천억달러(약 7천598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다. 미국 참전용사 2만4천명 이상, 미 직원 수천명이 전쟁에서 사망했다 (BBC 보도) . 부상자는 헤아릴 수 없다.

미국 입장에서 왜 이 전쟁을 계속해야 할까?

애초 이 전쟁의 목적은 9/11 테러를 저지른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빈 라덴이 탈레반의 보호 아래 아프간이 숨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빈 라덴은 소련이 이슬람 국가인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 무자헤딘 (성전)을 벌이기 위해 아프간에 가서 알카에다 조직을 만들어 소련과 싸웠던 사우디 부호의 아들이다.

일각에서는 빈 라덴이 미국 정보기관의 배후 아래 아프간 게릴라 등에게 무기 등 전쟁 자원을 조달하고, 동굴을 파는 토목 기술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빈 라덴은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했다.

소련이 철수하자 승리자가 된 빈 라덴은 사우디로 돌아가길 바랬으나 사우디 왕가는 전쟁 경험이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의 입국을 거부했다.

미국과 사우디 양쪽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빈 라덴은 사우디와 유럽에서 연이어 테러를 저질렀고, 결국은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른다. 그게 9/11 테러이다.

9/11 테러를 저지른 19 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빈 라덴은 CIA의 추격 끝에 2011년 5월 파키스탄에서 사살되었다. 이것으로 사실상 아프간 침공의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미국은 아프간의 민주화를 위해 무장 집단으로 변신한 탈레반과의 전쟁을 이어왔다.
미국은 아프간 정부가 국방력을 갖춰 자립적으로 탈레반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소 100 조원 이상의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군은 허수아비와 다름 없었다.

미국이 철수하자 맥없이 무너진 것이 이를 반증한다. 정부군은 피페해진 경제 속에서 월급을 받기 위해 지원한 군인이 다수이다. 실제로는 명단에 이름만 올려 월급을 받아먹거나, 가짜 이름을 올려 급여를 횡령한 간부도 수두룩하다.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자구 노력을 하지 않는 인간, 집단, 민족에는 미래가 없는 법이다.

상황이 이런데, 미국이 자국 젊은이들의 피를 계속 흘리고, 막대한 국부를 이 전쟁에 쏟을 이유가 있을까?

역사 이래 아프간을 침공한 그 어떤 제국도 결말이 좋지 못했다. 심지어 소련은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붕괴되었다. 미국은 늪에 더 깊히 빠지기 전에 발을 빼야 할 필요가 있었다.

탈레반이 다시 아프간을 점령한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2020년 2월 말, 도하에서 미국과 탈레반이 평화 협정을 맺었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할 때인데 그게 탈레반과 주변국이 될 수도 있다"


'이 일' 이란, 미군이 아프간에서 테러리스트를 제거한 일을 말하며, 그 테러리스트란 알카에다를 의미한다.

실제, 미국은 도하 협상에서 탈레반에게 내건 평화 협상의 조건이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 테러 집단이 그들이 통치하는 지역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즉, 아프간의 테러 집단은 앞으로 탈레반이 잡으라는 것이다.

만일 알카에다나 다른 테러리스트 들이 아프간에 은닉해 활동을 한다면? 이때는 미국이 다시 개입하겠다는 건데, 그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 테러 집단이 또 다시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벌인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실제 문제는 아프간에 은닉한 테러 집단이 아니라, 탈레반이다.

탈레반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이며,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구하는데, 이는 코란과 샤리아 율법으로 사회를 통치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21세기 민주주의 가치에 반하는 인권 탄압, 특히 여성의 인권 탄압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변국' 이라는 단어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프간의 주변국으로는 이란,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이 있다.

이란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시아파이고, 탈레반은 수니파이다. 이들은 상극이므로 적대적 관계라고 해도 무방하며, 이란과 아프간이 공조할 가능성은 없다.

탈레반은 아프간 뿐 아니라 파키스탄에도 있으며, 상호 협조적인데, 만일 탈레반과 파키스탄이 밀약을 맺거나 공조할 경우, 가장 타격이 큰 건 인도이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매우 적대적이며, 파키스탄은 핵을 가지고 있다.

만일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탈레반이 인도에 공격적 행위를 하면, 미국은 자연스럽게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 자체는 반미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만일 파키스탄이 아프간 탈레반과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미국이 파키스탄을 압박해 이를 강력 제지할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떨고 있는 나라, 즉 외교적으로 바짝 긴장하는 나라는 바로 중국이다.

중국을 긴장시키는 것이 바로 미군 아프간 철수의 두번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간 지도를 보면 동쪽으로 중국과 닿아 있는 긴 꼬리와 같은 땅이 있다. 이 땅을 와칸 회랑 (Wakhan Corridor) 이라고 부른다. 이 곳은 과거 실크 로드의 한 부분으로 무역로로 사용되던 곳이다.






와칸 회랑은 과거 대영제국이 인도, 파키스탄, 아프간을 점령하며 북진할 때, 러시아 제국과 부딪히며 만든 완충 지대였다. 훗날 영국은 이 완충 지대를 아프간에 넘겨주었고, 결국 아프간 영토가 된다.

문제는 이 회랑의 동쪽 끝이 중국과 닿아 있고, 그곳이 바로 신장 위구르 지역이라는 것이다. 신장 위구르는 이슬람 인들이 사는 곳이며, 동시에 중국이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 곳이다.

중국은 지금도 와칸 회랑과 맞닿은 국경을 폐쇄하며 출입을 통제한다. 이슬람인들의 출입을 허용할 경우, 신장 위구르가 봉기하거나 탈레반 테러 집단이 중국에 테러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아프간 철수를 서두르자, 중국은 재빨리 탈레반 2인자를 불러 유화 제스쳐를 펼쳤다.

어쩌면 중국은 미국이 떠나 무주공산이 된 아프간에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며 영향력을 미치며 일대일로를 펼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희망 회로를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중국 계획대로 될까?

그 가능성보다는 아프간 탈레반이 신장 위구르의 독립 조직을 지원할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는 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미국이 커다란 짐(burden)을 중국에 떠넘겼다는 것을.

앞서, 외교의 본질은 국익을 추구하고 국가간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역설적으로 적대국의 국가간 긴장을 고취시키는 것도 성공한 외교이다.

따라서 미국의 아프간 철수는, 미국 외교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물론 일각에서는 미군 철수로 아프간 주민들의 인권이 몰락하게 되었다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 대부분은 '미국은 세계 경찰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던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2021년 8월 16일




Sunday, August 8, 2021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자의 감염이 느는 이유


 





최근 매사추세츠 반스터블 카운티에서 7월에 개최된 여러 여름 행사 등을 통해 outbreak 가 발생해 469 명이 신종 코로나 신규 확진을 받았다. 그런데, 이중 347 명 (74%)이 2회 백신 접종을 완료했거나, 얀센 백신을 맞았던 사람들이었다. 이중 274명에서 증상을 보였다.

또, 입원 환자 5명 중 4명이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이었다.

CDC 는 최근, 백신을 완전히 접종한 사람도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만큼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 같은 결과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왜냐면, 백신을 맞았거나 안 맞았거나 코로나에 걸리는 건 같을 뿐 아니라 백신을 맞은 사람이 오히려 신종 코로나 감염에 더 많이 걸렸단 얘기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결과는 나왔을까?


첫째, 델타 변이의 강력한 전염력애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인들이 맞은 화이자, 모더나 등 mRNA 백신은 델타 변이가 발견되기 전의 백신이다. mRNA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S 단백질에 대한 항체를 형성하도록 하는데, S 단백질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체 세포를 침투하기 위한 '키'와 같다.

기존의 백신의 역할은 이 키를 무력화하는 것인데,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세포 침투를 위한 새로운 키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체내에서 훨씬 더 빠르게 더 많이 증식해, 더 강력한 전염력이 갖게 되었다.

즉, 기존의 백신으로는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를 대응하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백신으로 얻어지는 면역력의 유효 기간 때문이다.

미국이 화이자 등 mRNA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해 12월 중순 경이다.

화이자는 긴급사용승인을 받기 전, 자사의 백신의 면역력 유지 실험을 4~5 개월 밖에 할 수 없었다. 즉, 6개월 후 혹은 7~8 개월 후에도 면역력이 지속되어, 코로나바이러스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지 정확하게 몰랐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만 검증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재빨리 백신을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mRNA 백신은 2회 접종했다고 면역력이 영구히 지속되지 않으며, 접종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점진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때문에 이미 화이자 등은 세번째 접종 즉, 부스터 샷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부스터 샷의 경우, 델타 변이에 대한 면역력을 갖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CDC 는 국민들에게 다시 마스크를 쓰라고 강조하고 있다.


셋째, 백신 접종 완료자들에게서 더 많은 감염이 생긴 이유는 경각심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에 백신을 맞은 접종 완료자들은, 백신 접종을 완료했으므로 자신은 감염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대중이 모이는 곳에 마스크 없이 돌아다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첫번째, 두번째와 같은 이유로 면역력이 떨어져 오히려 이들이 더 많이 감염되었을 것이다.
델타 변이의 확산으로 허를 찔린 것이다.

이런 배경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일각에서는 '전염력이나 감염 정도가 백신 미 접종자 수준과 같다면, 왜 백신을 맞아야 하나?' 라며 백신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는다.

그러나 CDC 에 의하면 미국 전역의 새로 입원하는 환자의 약 97%와 사망자의 99.5%가 백신 미 접종자였다.

즉, 백신 접종은 중증으로 이행하거나, 사망하게 될 가능성을 현저하게 줄여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전히 백신을 맞아야 하며, 백신을 접종했다 하더라도 마스크 착용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해야 한다.

델타 변이로 인해 확진자가 대폭 늘고, 이중 중증 환자가 늘면 병원에 부하가 걸리게 되고, 연쇄작용으로 다른 질환자들도 모두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막으려면, 코로나에 의한 입원율을 줄여야 하는데, 현재로는 그 방법이 백신을 맞는 것 밖에 없다.

게다가 국내의 경우, 우려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월 65세 미만의 요양 시설 등의 입소자 27.2만명, 의료기관의 의사, 간호사 등 종사자 35.2 만명, 119 구급대 등 방역 요원 7.8 만명 등 약 70만 명에 대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접종했다.

또, 5월 이후 60~74세 약 900만명, 유치원, 어린이집 등의 교사 36만명 등에 대해서도 AZ 백신을 접종했다.

코로나 치명률이 고령일수록 높다는 점, AZ 백신이 사실상 델타 변이에 무기력하다는 점, AZ 백신의 면역력 역시 오래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초기에 AZ 백신을 접종한 고령자들은 델타 변이 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내 델타 변이 확산에 따라 고령 감염자들이 늘어나면,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사망자가 더 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막으려면, 초기에 AZ 백신을 접종한 이들에게 mRNA 백신을 추가 접종하는 수 밖에 없는데, 이는 현재로는 요원한 일이다.

결국 개인이 스스로 감염 위험성을 줄이며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감염전담 병원 등 직접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 역시 지난 4월에 접종을 완료했으므로, 올해 가을에는 부스터 샷을 맞아야 한다. 만일 이때 부스터 샷을 맞지 못할 경우, 가을 이후 감염전담 병원 의료진의 확진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프론트 라인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돌파구는 백신, 그것도 델타 변이에 대한 면역력을 갖는 백신을 맞는 수 밖에 없다는 게 더 명료해졌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백신 접종률은 세계 평균에 비해도 낮은 편이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백신 접종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백신을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북미와 유럽은 부스터 샷 즉 3 번째 접종을 위해 대량의 백신을 주문하고 있으며, 그 와중에 화이자 모더나 등은 mRNA 백신 가격을 올리겠다고 한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기대를 거는 건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중에는 국내에서 mRNA 백신 개발이 완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말 그대로 '가능성' 뿐이다.


2021년 8월 8일


Tuesday, August 3, 2021

올림픽은 지속 가능한가?

 






삼성 전자는 도쿄 올림픽 참가 선수 1만7천여명에게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S21의 올림픽 버전 ‘갤럭시S21 도쿄올림픽 에디션’, 무선 이어폰 ‘갤럭시 버즈 프로’, 이어폰 케이스, 펜 등이 담긴 하얀 가방을 선물했다.
선수들은 깜짝 선물을 반기며 소셜 미디어에 개봉기를 올렸다.
선수들에게 준 선물의 총합은 '고작' 240억 원 정도라고 한다.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기업들이 올림픽을 마케팅의 장으로 활용하고 올림픽을 이용해 브랜드 가치를 올린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성은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CDMA 기술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휴대폰 시장 석권의 발판을 만들었고, 2016년 리우 올림픽을 남미 시장에서 TV, 스마트 폰의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활용했다.
WSJ 은 일본 기업들이 이번 도쿄 올림픽 후원에 약 3조 4600 억원 (30억 달러)를 지불했다고 보도했다.
이중 절반 이상이 토요타가 낸 것이다. 토요타는 도쿄 올림픽에 약 2 조원을 썼고, 자가 소속 선수를 200 명이나 내보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 일본 내 자사 광고를 내보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토요타 사장인 토요타 아키오는 개막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파나소식, NEC, NTT 등의 스폰서 기업의 경영진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 내에서는 올림픽 개최 반대 여론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기업들이 적극적인 광고를 내보내고 마케팅을 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다면, 올림픽을 마케팅의 장으로 활용하던 기업들의 관행이 바뀐 걸까? 다만, 이번 올림픽에서만 그런걸까?
우리는 올림픽을 세계인의 축제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선, 개최지를 먼저 보자.
올림픽은 사실 그 개최 횟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근대 올림픽이 1896 년에 처음 시작한 이래 지난 31회 리우 대회까지 모두 28번 열렸을 뿐이다. (31회 중 6, 12, 13회는 세계대전으로 취소) 28 번 중 1964년 18회 도쿄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개최지를 보면, 미국 두번 (3회, 10회), 호주 한번 (16회)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유럽에서 개최되었다.
18 번 만에, 시간 적으로 68년 만에 유럽과 미국을 제외한 첫 개최지가 일본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 이후에는 남미와 러시아, 한국, 중국도 올림픽을 개최했지만, 여전히 유럽이 주요 개최지이다.
개최지만 놓고 보면, 세계가 아니라, 유럽인들의 축제하고 할 수 있다.


우승국을 한번 보자.
28회 대회 중 우승국은 모두 6 개국에 불과하다. 이중 프랑스, 영국, 나치 독일, 중국은 모두 자국에서 올림픽을 개최할 때 우승했다. 개최국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했다는 얘기이다.
이들 국가를 제외하면, 미국이 17번, 러시아/소련이 7 번 우승했다.
올림픽은 국가 대항전이 아닌데, 국가 우승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 올림픽 헌장은 명백히 올림픽 경기는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니라, 개인전 혹은 단체전이라고 못 박고 있다.

제 6조 1항 : 올림픽대회의 경기는 국가간의 경쟁이 아닌 개인전 또는 단체전을 통한 선수들간의 경쟁이다.

그러나, 각 국가와 언론은 여전히 국가 등수를 매긴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을, 한국은 일본을, 인도는 중국을, 아르헨티나는 브라질 과의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발버둥 치며, 자국 선수를 응원한다. 올림픽이 국가 대항전이 아니라는 건, 사실 선언적 의미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 헌장은 '정치'라는 단어를 숱하게 언급하며, 올림픽에서 정치색을 지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제 2조 10항 : 스포츠와 선수의 정치적 상업적 남용을 반대한다.

만일 선수가 올림픽 경기 중 정치적 표현을 하면 메달을 박탈할 수도 있다.

제 50조 제 2항 : 올림픽 장소, 베뉴 및 기타 구역에서 어떠한 형태의 시위나 정치적, 종교적 혹은 인종적 선전도 허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개최국의 대통령, 수상 등 최고 지도자는 개막식에서 연설도 할 수 없다.

제 55조 제 3항 : 개/폐막식 및 각종 행사를 포함하여 올림픽대회 기간 중, 정부나 공공 기관의 대표나 정치인은 조직위원회의 책임 하에 있는 개최지에서 어떠한 형태의 연설도 할 수 없다.

이건 스포츠 제전을 하는 동안 만이라도 종교, 피부색, 이념 등에 의해 갈등을 빚지 말자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퇴색된 이상론이다.
현실을 보면,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 했고, 소련 등 공산국가들은 LA 올림픽을 보이콧 했다. 심지어 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팔레스타인 테러 집단이 이스라엘 선수 등 11명을 인질로 삼고, 팔레스타인 포로 석방을 요구하다, 11명 전원이 사망하기도 했고, 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노골적으로 나치 체제 선전의 장으로 사용 되었다.
과거 뿐이 아니다. 유럽 의회와 영국 하원은 홍콩 사태와 신장 위구르의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아 2022년 북경 동계올림픽 보이콧을 촉구하는 의결을 한 바 있다. 이런 식의 보이콧 선언 즉, 정치적 이유로 인한 대회 불참 선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대통령의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빌미로 한일 현안을 해결하겠다고 덤볐다가 망신을 당했다.
정치색을 빼자는 올림픽은 IOC 구성과 개최지 선정에서 대회까지 사실 매우 정치적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 개최는 '무리'였다. 현재 일본은 하루 만명 이상의 확진자가 생기고 있다. 지방 정부들의 '락 다운' 요구가 빗발친다. 델타 변이는 물론 델타 플러스 변이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올림픽이 감염 확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머지 않아 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올림픽이 지속 가능한가 하는 의문은 단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더 이상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하는 도시가 없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결정될 당시, 경합 도시는 모두 11개 도시였다. 2020년 올림픽 개최 희망지는 5개소로 줄었고, 2024년 올림픽은 파리와 LA, 2개 도시만 희망해 결국 파리로 결정되었다.
여전히 올림픽 유치를 희망하는 곳은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결국 유치 지원서를 찢어버린다.
그 현실적 문제는 결국 돈이다.
한 도시에서 수십 가지의 올림픽 종목 경기를 소화하고, 수 만명의 선수, 스탭, 기자 등 관계자를 수용하기 위한 시설을 만들고, 게다가 이를 대회 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올림픽의 저주'이다.
76년 캐나다 몬트리올은 올림픽을 개최하였다가 막대한 부채를 갚는데 30년이나 걸렸다. 그 기간 동안 올림픽 부채는 캐나다 경제에 영향을 주었고, 캐나다 최대의 도시였던 몬트리올은 그 패권을 토론토로 넘겨야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2011년 그리스 금융 위기의 단초가 되었고, 2016년 리우 올림픽 역시 브라질 경제 불황의 배경이 되었다.
이번 도쿄 올림픽의 경우, 훗날 '올림픽의 저주'를 거론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한 대회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대회가 무관중으로 이루어지면서 입장권 판매 수익과 관광 수익 등 부대 수익은 거의 제로에 수렴할 전망이다. 언론은, 20 조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기대한 이 대회가 결국 12 조원의 손실로 마무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64년 도쿄 대회를 발판으로 GDP 10% 대의 고도성장을 거듭해 미국에 이은 2대 강대국으로 발돋음했다. 지금의 일본은 장기 불황의 늪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일본 경제 성장률은 -4.8% 이다. 일본은 이번 도쿄 대회를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대회로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올림픽이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선수와 선수를 꿈꾸는 꿈나무들을 위해서라도 올림픽 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운동 선수들의 꿈은 올림픽 메달이 되었다. 그러나, 올림픽이 아니어도 이미 각종 종목의 세계선수권 대회는 있다. 이들 대회는 올림픽만큼 정치적이지도, 상업적이지도 않다.
만일 올림픽이 사라진다면 그들의 꿈은 더 이상 올림픽 메달이 아닐 것이다.
근대 올림픽은 애초 민족주의, 전체주의에 기대 시작되었다. 대회가 거듭되면서 IOC의 위상과 권력은 더욱 커졌고, 올림픽을 마케팅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기업과 올림픽 상업주의, 대회를 통해 체제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국가 권력 등의 이해 관계로 인해 대회가 이어졌다.

앞으로도 올림픽은 계속 될까?
그럴 것이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그 위상은 추락하고, 관심은 멀어지며, 대회는 쪼그라들 것이다.

여전히 많은 선수들은 올림픽 메달을 위해 땀을 흘리겠지만, 그 가치는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다. 엘리트 선수 육성을 지원해 얻어 낸 메달의 수가 국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차츰 사라질 것이다.



2021년 8월 3일



Sunday, August 1, 2021

Moderna arm

 






모더나 등 mRNA 백신을 맞은 후, 평균 8일 (4~11일 사이) 지나 뒤늦게 주사 맞은 부위의 발적, 압통, 부종 등 연조직염과 유사한 증상을 보일 수 있음.

이는 일종의 지연성 국소 과민 면역반응 (Delayed Localized Hypersensitivity Reaction)이라 할 수 있으며, 해외에서는 이미, Moderna arm 혹은 COVID arm 이라 알려져 있고, 국내에서도 발견.

며칠 전에도 같은 증상의 환자가 있었는데, 이 환자는 접종 7일 만에 증상 발현.

주로 모더나를 맞은 후 생기는데, 간혹 화이자 백신 접종 후에도 생기며, 대개 평균 6 일 (2 to 11) 지나 증상이 사라진다 합니다.

조직 검사 소견은 superficial perivascular and perifollicular lymphocytic infiltrates with rare eosinophils and scattered mast cells.



2021년 8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