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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3단계 억제 전략으로 본 작계 5026과 제네바 합의의 과거사







1. OPLAN 5026


지난 4월, "긴 시간이 남은 건 아니다"라는 글을 통해 미국 내 여러 씽크탱크 중 미국외교협회 (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에 대한 소개와 함께, CFR의 "Korea Studies and Director of the Program on U.S.-Korea Policy"의 선임 연구원인 Scott A. Snyder가 CNN에 기고한 글을 소개한 바 있다.


요지는, 북한이 핵질주를 하고 있으며, 오바마 행정부가 이에 인내하는 이유는 북한의 핵질주가 아직은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인데, 북한이 5차 핵실험을 벌이면 국제사회가 추가로 취할 수 있는 비군사적 조치는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9월 9일 결국 북한의 5차 핵실험이 있었다.

한편, 지난 9월 19일 청와대와 군은 "한미간 3단계 억제 전략"을 발표하고, 10월에 있을 한미 연례 안보 협의회(SCM. ROK-US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에서 이를 구체화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했다.





"3단계"란, 1 단계-핵사용 위협시, 2 단계-핵사용 임박시, 3 단계-핵사용 시를 말하며, 정부는 현재 상황을 1단계 즉, 핵위협 단계와 2단계 즉, 핵사용 임박의 중간단계 수준에 와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2단계인 핵사용 임박은 핵무기의 실전 배치 혹은 그 직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경우 정밀 유도무기로 북한의 핵전력을 선제타격하고, 동시에 미국의 핵무기로 북한의 핵전력을 타격하는 것도 준비하게 된다.

정밀 유도무기의 핵전력 선제타격은 "작계 5026(OPLAN 5026)"으로 알려진 작전 계획이다.

OPLAN(Operation plan)은 미국의 각 전투통합사령부의 군 사령관에 의해 작성되는 전쟁 시나리오를 말한다.


미국 합참의장 아래에는 모두 9개의 통합전투사령부(Unified Combatant Commands)가 있는데, 이 중 6개는 지역 통합전투사령부이며, 3개는 기능 통합전투사령부이다.
통합전투사령부란, 2 개 이상의 군으로 구성된 사령부를 말한다. 6개 지역 통합전투사령부는 북부, 중부, 남부 및 유럽, 아프리카, 태평양 통합전투사령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태평양 통합전투사령부(USPACOM, United States Pacific Command)는 그 하위 조직으로 일본(USFJ)과 서울(USFK), 하와이에 별도의 통합 사령부를 두고 있다. 








작계 5026은 지난 93~94년의 1차 북핵 위기를 통해 수립된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전면전에 대한 작전계획 5027만 존재했다. 최초 만들어진 작계 5027은 북한이 전면전을 도발할 경우를 대비한 방어 개념의 작전 계획으로 DMZ에서 50마일을 후퇴한 후, 방어선을 치고, 전력 증강을 기다린 후 북괴군을 38선 이북으로 밀어 올리는 작전 계획이었다.

74년 개정된 작계 5027-74는 남침시 개성까지 점령하는 계획으로 바뀌었고, 94년 개정된 작계 5027-94는 유사시 한미 해병대가 원산에 상륙하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었다. 또, 북한의 공격 징후가 포착되거나 전쟁 임박시 병력을 증강하고 한미연합군을 전쟁 준비 태세로 격상시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94년 6월 북한이 IAEA 탈퇴를 선언하고 IAEA 사찰단을 추방하자,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한 미국은 작계 5027에 따라 한반도 주변에 전력을 증강하였다.

그러나, 전면전 발생시 우리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 대안으로 영변 핵시설 등에 대한 제한적, 선별적 선제 타격을 검토하게 된다. 이 같은 계획은 후에 작계 5026으로 거듭나게 된다.


즉, 작계 5026은 JDAMs (Joint Direct Attack Munition)과 같은 정밀 유도 미사일을 이용하여 핵시설에 대한 선별, 선제 타격을 하는 작전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JDAM은 GPS 등 다양한 유도 장비를 가지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Fire & Forget missile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3 단계 억제 전략 중 실제 타격이 발생하는 2단계는 작계 5026과 유사하며, 3단계는 작계 5027의 변형된 형태라고 추측할 수 있다.

5027의 경우 5027-16까지 개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최종 작계는 2015년 11월, 한미간 비밀회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작계에는 북한 핵에 대하여, “4D” (detect, disrupt, destroy and defend) 작전을 전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새로운 작전 전개를 위해 고고도 드론을 사용하는 것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모든 작전 계획이 매 2년 단위로 개정되며, 5027-16 이전의 작전 계획 중에는 김정일 참수 작전(5027-02), 미사일방어망(MD) 구축(5027-04), 한국에 통보없이 북한 공습(5027-02), 미군 증원군을 69만명으로 전개(5027-00)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전면전 발생시 북괴를 괴멸하는 작전 계획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2015년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외교 실적이라고 하는 이란 핵포기 협상 타결과 함께, 이 협상 타결에 반발하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통해, 지난 94년 1차 북핵 위기로 북미간 타결된 제네바 합의의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2. 이란의 핵포기(?)


2013년 네타냐후 총리는 68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가 홀로 서야 한다면, 홀로 서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위 동영상은 약 30분 간의 연설 장면이며, 시간을 내서 꼭 한번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이란이 현재 핵무기를 개발 중인데, 유엔이 이를 확실히 제재하지 않고, 대화를 통한 해결만 주장할 경우, 이스라엘은 단독으로라도 군사 작전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주장처럼 이란은 핵무기를 만들고 있었을까?

사실, 북한과는 달리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었다. 

호메이니가 사망한 지난 89년 이래 장기 집권하며 이란을 지배하고 있는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란은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라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밝혔고,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에도 “우리는 모든 핵무기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란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그러나 국제 사회와 이스라엘이 의심의 눈초리로 이란을 본 이유는, 계속해서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 이란 반체제 인사들은 이란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음을 폭로한 후 이란은 국제원자력 기구 등 국제 조직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었으며, 유엔은 6번에 걸쳐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라는 결의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란은 핵실험을 한 적도 없고,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한 바도 없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단독이라도 군사 작전을 통해 응징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무려 5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전개하고 있는 북한을 머리에 얹어 놓고 살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은 유엔과 미국을 비난하며, 단독 전쟁을 감행하겠다는 결기를 보이고 있는 반면, 우리는 북한이 무려 5 차례 이어진 핵실험을 하고, ICBM 등 각종 무기를 개발하며, 핵무기를 가지고 있음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으로만 제재와 응징을 떠들고 있다.

대처 방법만 달랐던 것이 아니라, 그 결과에도 차이가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결기에 찬 연설이 허세가 아니라는 걸 안 미국은 이란의 핵문제에 적극 개입하였고 2015년 결국 이란 핵협상을 타결하였다.

이란 핵협상을 놓고 미국 정부와 일부 서방에서 이를 "역사적 합의"라며, 이란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고 환영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Break out time을 늘인 것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있다.

Break out time이란, 핵무기 제조를 결심한 시점에서부터 핵물질을 확보할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핵물질은 원자로에서 사용한 상업용 핵연료봉이나 저농축 우라늄을 원심분리기로 재처리하여 만들어진 농축 우라늄을 말한다.

2015년 이란 핵협상의 주요 합의 사항은 가동 중인 19,000 여 개의 원심분리기 모두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약 70%를 폐기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이란의 핵협상 타결을 놓고, 이스라엘은 물론 영국 등 일부 서방 언론과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부정적 시각과 우려와 반발이 있었다.

BBC, 로이터 등은 이란이 진짜 핵무기 제조를 포기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길 수 있는 '파괴적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주장하며, 사우디는 이 협상 타결로 중동은 더 위태로워졌다고 반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합의로 이란이 결국 핵무기 보유로 가는 길을 인정받은 것”이라면 “핵무기 획득을 막아왔던 많은 제재가 풀리면서 이란은 수천억 달러의 현금을 얻을 수 있는 ‘잭팟’을 터뜨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994년 실패로 돌아간 제네바 합의를 언급했는데, 제네바 합의는 국제 사회와 북한의 합의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40억 달러를 투입하여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 주기로 한 합의를 말한다.

이 합의로 북한은 NPT(핵확산방지조약)에 잔류하고, IAEA의 사찰을 받기로 한 대신, 국제 사회는 경수로를 지어주고, 매년 50만톤의 석유를 제공하며 북한의 에너지, 전력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했으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중단되지 않았고, 결국 2002년 북한이 핵무기 개발 사실을 시인하며 제네바 합의는 폐기되었다.



3. 1차 북핵 위기와 제네바 합의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진 과정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정찰 위성을 통해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2년 최초로 원자로로 보이는 시설이 영변에 건설되고 있음을 알았고, 1988년 북한이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가지고 있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 북미 접촉을 진행하였으나 1992년 IAEA의 사찰을 거부하고, 1993년 북한이 NPT를 탈퇴하면서 북-미간 위기가 고조되면서 "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었다.

1994년 6월 13일, 북한이 IAEA 탈퇴를 선언하고 사찰단 2명을 추방시키자, 클린턴 행정부는 이를 선전포고로 받아 들였다.

6월 14일 미국 정부는 영변 핵시설 및 주요 군사시설에 대한 공격하는 오시라크(Osirak) 옵션을 검토하었다.

오시라크는 프랑스가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에 건설하던 원자로이다.
1981년 이스라엘은 바빌론 작전(Operation Babylon)을 전개하여 8대의 F-16A와 6대의 F-15A를 동원하여 16 발의 마크 84 폭탄을 투하하여 건설 중이던 오시라크 원자로를 파괴하였다.
오시라크 옵션은 이 공습에서 명칭을 인용한 것이다.
오시라크 옵션은 후에 작계 5026(OPLAN 5026)으로 진화하였다. 

북한의 영변 등 핵 재처리 시설만을 폭격할 경우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늦출 수 있으며 (Break out time의 연장), 방사선 누출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북한의 전면전 대응을 피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그러나 오시라크 옵션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있었는데, 바로 한반도에 군사력 증강과 한국 거주 미국 교민들의 철수 즉, "비전투요원 소개작전(NEO. 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이였다.

6월 16일 클린턴 행정부 고위 인사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이미 그 해 5월 검토한 한반도 전쟁 계획 즉 작계 5027에 따라 전력 배치가 결정되었다.

당시 미국은 4개의 항공모함 전대를 비롯해 45만명의 미군을 투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당시 미국 대사였던 제임스 레이니의 부탁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급거 한국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서 일이 꼬이게 되었다.

지미 카터의 방북은 클린턴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했지만, 결국 제네바 협상에 이르게 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의 비전략적 행동이 결국 클린턴 대통령이 가진 '폭격을 통해서라도 북한핵을 제거 할 수밖에 없다'는 계획을 종식시키고, 북한을 연명하게 했으며, 종국에는 북한을 핵보유국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과 클린턴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왜 작계 5027 혹은 오시라크 옵션을 포기했는지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없었다.

다만 2004년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서전을 통해, 폭격을 취소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지로 설명한 바 있다.





1994년 3월 하순 북한의 심각한 핵위기가 시작됐다. 나는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결심했다. (중략) 그런데, 6월 1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 방문 용의를 밝혔다. 나는 앨 고어 부통령 및 국가안보팀과 협의 후 시도해 볼 만하다고 결정했다.

당시 고어 부통령은 카터의 방북에 동의했고, 크리스토퍼  국무장관, 앤서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은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방북을 묵인한 것에 대한 속내를 이렇게 밝힌다.

그에 3주 앞서 (즉, 5월 경) 나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양측이 입을 막대한 피해 규모에 관해 정신이 번쩍 드는 보고를 받았었다

당시 미 행정부는 미국이 병력을 증강하고, 미국인을 한반도에서 소개할 경우, 이것이 공격이 임박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북한의 선제 침공할 것을 가장 우려 했으며, 이 경우 최소 100만명이 희생당할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페리 국방장관은 오시라크 옵션을 실행할 경우, 하루 만에 주요 병력을 증강할 수 있다며, 어느 쪽이든 모두 입맛에 맞는 건 아니지만 결정을 해야 하며, 막심한 피해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아무튼 클린턴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감행할 배짱이 없었고, 지미 카터의 방북을 빌미로 하루 아침에 공습 계획을 취소한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은 지난 99년 10월 19일자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 회견에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북한을 공격하지 말도록 설득했다며 "내가 설득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제네바 협상을 이끈 3 명의 주역들은 "북핵위기의전말: 벼랑끝의북미협상"이라는 저서를 통해 당시 상황을 소상히 밝히며 김영삼 대통령이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온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 3명은 제네바 회담 수석 대표이며, 당시 미국무부 정치군사담당 차관보 겸 북핵전담대사이었던 로버트 갈루치(Robert L. Gallucci), 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간부로 북핵문제를 전담한 대니얼 폰먼(Daniel B Poneman), 미 국무부 15년 근무의 베테랑 외교관이며,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선임연구위원이었으며,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행책임을 졌던 국무부관리 조엘 위트(Joel S. Wit)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이 군사작전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갈루치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민 소개 작전을 세운 것은 맞지만 자국민 철수를 진행한 것이 아니며, 미국 행정부 내에서 군사 작전 전에 한국과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으나, 카터의 방북 이후 군사 작전이 중단 되었기 때문에 한국과 선제 폭격에 대해 협의할 이유도 없었다는 것이다.



4. 선제 타격, 정말 할까?


정부가 선제 타격의 가능성을 발표하기 몇 일전인 지난 16일, 미국외교협회 (CFR)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마이크 멀린(Mike Mullen) 전 미 합참의장은 "만약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에 아주 근접하고 미국을 위협한다면 자위적 측면에서 북한을 선제 타격할 수 있다"며 "북한은 미국을 공격할 수 있을 만큼 핵탄두를 소형화했다. 도발의 수위가 한계를 넘어섰다"고 했다.

마이클 멀린은 지난 2007년 합참의장으로 임명된 후 2011년에 퇴역한 바 있다.





미국은 단지 의혹만으로도 걸프 전을 일으킨 바 있으며, 명백한 증거없이 경제 제재를 통해 이란의 경제를 파탄내기도 했다. 모두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명백하게 핵무기 개발을 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미국이 군사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남한에 미칠 크나큰 피해 때문 임을 오바마 대통령의 입을 통해, 또 여러 경로를 통해  반복해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냥 인내하고 참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미국이 대한민국의 피해를 두려워하여 김정은의 뜻을 이루도록 내버려 둔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로 한국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며, 미국과 일본을 위협하여 한반도 사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재래식 무기로 남침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

물론, 많은 이들의 망상처럼, 그 무기를 남한에 쓰지 않을 수 있다.

핵무기를 쓰지 않고 재래식 무기로 전쟁을 한다고 해도, 남쪽의 피해가 클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북한과 1:1로 전쟁을 벌여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도 할 수 없다.

북핵 문제에 있어, 대단히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는 종속 변수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국제 사회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북한을 공격하겠다고 할 능력도 결기도 없을 뿐 아니라, '설마 북한이 우리에게 핵무기를 쓰겠어?' 내지는, '설마 북한이 전쟁을 하겠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종속변수이기 때문에, 설령 미국이 독자적으로 작계 5026을 발동하여 선별 타격을 한다고 해도 전혀 모를 수 있다. 이미 미국의 작전 계획 중에는 한국에 통보없이 독자적 군사 행동을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미국이 첨예한 군사 정보를 한국과 공유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명백하다. 한국 정부, 한국군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선제타격한다고 한다면, 아마도 타격 직후까지 한국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왜냐면 선제타격은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한국 정부 혹은 한국군과 정보를 공유할 경우, 그 정보가 북한에 전달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시간이 흘러, 친북 성향의 정부가 들어설 경우 이 같은 불신은 더욱 더 커질 것이다.

아무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고착화되고,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왜냐면, 만일 북한이 복수의 숨겨진 핵무기를 실전 배치했을 때, 이를 모두 찾아내 동시에 기습적으로 타격하여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김정은은 위에서 언급한 3단계 억제 전략 따위에 겁을 먹고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는 것을 포기할 리 없다.

결국 언젠가는 북미가 충돌하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만일 북한이 핵을 지렛대 삼아 미국과 협상을 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이었다면, 더 빨리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 목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핵폭탄를 소형화하고 핵무기의 실전 배치하는 것 임에 분명해 보인다.

국제사회가 우려할 더 큰 문제는 설령 한반도에 전쟁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북한은 핵무기를 수출하려고 들 것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김정은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만든 핵무기를 전시장에 진열해 두고 구경만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일각에서는 이란이 공개적으로 핵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에 기술을 전수해 주고, 북한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란, 시리아, IS 등의 테러 집단이 구매할 수만 있다면, 핵무기를 구매하려고 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질주에 대해 우려하는 명백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

구 소련은 이미 1940년대부터 핵무기 개발에 들어가 미국 다음으로 핵무기를 소유하게 되었고, 중국은 1960년대 핵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중국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것을 안 김일성은 기술 이전을 요구했으나 단칼에 거절 당했다. 중국은 북한 '따위'가 핵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고, 거절당한 김일성은 소련에 기술 이전을 요청했지만, 소련 역시 거절하였고, 대신 영변에 핵발전소 4기를 지어 주기로 한다.

대신 그 조건이 NPT의 가입과 국제 사회의 핵 사찰이었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 북한과 같은 완충지대가 있기를 희망하지만, 북한이 전쟁에 휘말리거나 핵무기를 소유하는 것까지 바란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미국이 김정은을 제거하겠다고 하면, 중국은 완충지대를 존속시키는 조건으로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정권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미국이 선제 타격을 할 시점 즉, 북한의 핵무기의 실전 배치가 임박했다고 하는 시점이 될 때, 선제 타격 전에 미국이 해야할 몇 가지 선행 과제가 있다.

첫째는, 명분을 갖추는 일이다. 미국이 타국을 침공했다는 국제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하는 명분이 필수적이다. 그 명분은 김정은이 가져다 주게 될 것이다.

둘째, 비전투 미국인의 소개이다. 이미 주한 미국인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연락망을 가지고 있으며, 연락망을 통해 일사분란하게 한국을 떠나거나 부산 같은 일정 지역에 모이게 될 것이다.

셋째, 전력 증강이다. 미국은 현재 모두 10개 항모전단이 오대양에 배치 되어 있다. 통상 위협적 공세를 취할 때 2개 항모 전단이 한 바다에 집결하고, 3개 항모 전단 이상이 모이면 그 지역에 전쟁이 발발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운영 중인 항모전단은 현재 Nimitz 급 항모 10대(CVN-68부터 CVN-77까지)이며, 모두 핵연료로 가동한다. 또, 2 대의 제널드 포드급 항모가 건조 중이며(CVN-78, 79), 1 대가 더 발주되었고 (CVN-80), 이외에 7대의 제널드 포드급 항모를 더 만들 계획이다.
또, 이외에도 Wasp급 강습상륙함 (LHD. Landing Helicopter and Dock) 8대와 아메리카급 상륙함(LHA. Landing Helicopter Assault) 1 대 등 9대를 운영 중에 있다. 이들은 모두 헬기뿐 아니라, 상륙정, 수직 이착륙기 등을 탑재한 중형급 항모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현재 미국 주도의 전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동시에 수백, 수천 개의 목표점을 타격하기 위해 10개 전단 모두를 집결시킬 수도 있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병법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라고 한 바 있다.

그 누구도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반듯이 전쟁을 해야 한다면,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연을 기대하거나, 혹여나 하는 안일한 자세를 가진다면, 그것은 곧 나뿐 아니라, 내 이웃과 내 가족을 희생시키는 일이 될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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