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진단서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것.
1. 사망 진단서는 어디에 쓰이나?
사망 진단서 발급의 첫째 목적은 말 그대로 사망을 진단하는 것에 있다. 즉, 자연인의 사망을 증명하는 증명서이다. 사망 진단서는 의사가 발급하므로, 유일하게 의사 만이 사망을 증명할 수 있으며, 의사가 발급한 이 진단서를 근거로 “법률적 사망”이 완성되어 그 자연인에 대한 법적 의무와 권리가 사라진다.간혹, 구조대원 혹은 경찰이 환자를 병원에 이송해 올 때, 무슨 환자냐고 물어보면 "사망했다"고 답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틀린 대답이다. "호흡 정지 혹은 심정지 환자"라고 해야 한다. 사망은 의사가 사망을 선언할 때 비로소 성립된다.
사망 진단서의 중요한 두 번째 목적은 "사망원인 통계"를 작성하기 위함이다. 이 때 사망의 원인, 사망자의 연령, 성별 등이 모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된다.
사망 원인의 양상은 그 시대의 환경 변화와 사회, 경제적 구조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사망원인 통계는 사망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기초자료이며, 보건의료 정책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라고 할 수 있다.
사망원인 통계는 우리나라 통계청에서 자료를 취합, 작성하지만, 이 자료는 OECD, WHO에도 보고되며, 이를 통해 국가간 사망원인을 파악하는 자료로도 활용된다.
국가간 사망원인을 비교하려면, 사망 원인 작성의 Global standard가 있어야 하며, 대부분의 국가들이 WHO가 제시한 사망 원인을 작성 가이드라인을 따른다.
2. 다른 나라의 사망 진단서 양식은?
아래 그림은 WHO가 제시하는 사망 원인의 작성 양식이다.즉, 사망을 초래한 "직접 사인"을 적도록 하고, 직접 사인이 야기된 중간 선행 원인 (원인 질환 혹은 환자의 상태)을 적고, 또 이를 초래하게 된 선행 원인을 적도록 되어 있다.
이와는 별개로, 사망을 초래한 질환과 무관하지만, 사망에 영향을 준 환자 상태나 질환도 적도록 하고 있다.
또 주목할 것은 직접 사인에 "사망의 양상(mode of dying)" 즉 심부전 (심정지), 쇠약 등을 적지 말라고 한 것이다.
아래는 미국 정부가 제시한 사망 진단서 중 사망의 원인에 대한 란이다.
미국 각 주의 사망 진단서는 이를 근거로 정해져 있으며, 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거의 대등소이하다고 할 수 있다.
자료는 사망의 원인을 기입할 때 "DO NOT enter terminal events such as cardiac arrest, respiratory arrest, or ventricular fibrillation without showing the etiology." 라고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다.
즉, 심정지, 호흡정지, 심실세동 사망 직전에 발생하는 상태를 적지 말라고 하고 있다.
다음은 우리나라의 사망 진단서의 사망 원인에 관한 부분이다.
영국 국립통계청이 작성한 사망 진단서 작성 가이드라인에서도 사망 직전의 상태(terminal events), 사망의 양상(mode of dying) 을 적지 말라고 하고 있다.
미국, 영국 뿐 아니라 호주,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WHO가 제시한 사망 진단서 작성 요령에 따라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으며, 직접 사망 원인으로 심정지 등 사망의 양상이나 사망에 따른 현상을 적지 말라고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3. 사망 진단서와 관련한 법률
이처럼 사망 진단서는 "약속"에 따라 작성해야 하며, 그 약속을 지켜야 사망 진단서 작성의 목적 즉, 정확한 사망원인 통계를 만들 수 있다.
의사 개인의 소신이나 신념에 따라 작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망 진단서와 관련한 우리나라 법률은 크게 의료법과 형법이 있는데, 그 중 형법에는 두 개의 조항이 사망 진단서 작성과 관련된다.
제233조(허위진단서등의 작성)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또는 조산사가 진단서, 검안서 또는 생사에 관한 증명서를 허위로 작성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7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31조(사문서등의 위조·변조) 행사할 목적으로 권리·의무 또는 사실증명에 관한 타인의 문서 또는 도화를 위조 또는 변조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233조는 의사가 허위 진단서를 작성할 경우의 처벌 조항이며, 형법 제231조는 진단서를 위조 혹은 변조했을 경우의 처벌 조항이다.
허위 진단서 작성이란, 허위 사실을 진단서에 기록하는 것인데, 사망 진단서의 경우 사망하지 않았음에도 사망한 것으로 진단서를 발부 했다면 당연히 이는 처벌의 대상이지만, 그 뿐 아니라 '사실'의 기재 즉, 사망 일시, 사망 장소, 사망의 종류, 사망의 원인 등을 허위로 기재 했을 경우에도 허위 진단서 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허위 사실 기재라는 것은 의사가 허위임을 알고 기재하여야 죄가 성립된다. 만일 의사가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 알았다"고 주장하면 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백남기 사건의 경우, 백 교수가 "나는 진심으로 병사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면, 실체적 진실이 병사가 아니라도 허위 진단서 작성으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망진단서 뿐 아니라, 의사가 작성하는 일반 진단서, 소견서도 마찬가지이며, 환자, 보호자 등이 의사를 속여, 의사가 오진을 하거나 판단을 잘못하여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그 내용을 기재할 경우 이를 허위 진단서 작성으로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의사가 허위인 줄 알면서 허위로 기재하였다고 하여도 허위 기재 사항이 객관적 사실이라면 이 역시 형법 제233조로 처벌받지 않는다.
사망진단서와 관련한 의료법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17조(진단서 등) ①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檢案)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 또는 「형사소송법」 제222조제1항에 따라 검시(檢屍)를 하는 지방검찰청검사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한다.
②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조산한 의사·한의사 또는 조산사가 아니면 출생·사망 또는 사산 증명서를 내주지 못한다.
③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자신이 진찰하거나 검안한 자에 대한 진단서·검안서 또는 증명서 교부를 요구받은 때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즉, 의료법 제17조는 의사만 사망 진단서를 발부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의사라도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 혹은 검안 했을 경우에만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사망진단서를 요구할 때,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써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법 제17조의 1항, 2항을 어길 경우에는 의료법 제66조에 따라 1년 이하의 면허정치 처분과 함께, 의료법 제89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의료법 제17조의 3항을 어겨 정당한 이유없이 진단서를 교부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의료법 제90조에 따라 3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의사가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을 경우,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면허 정지는 덤이라고 할 수 있다.
4. 병사인가 외인사인가?
미국 법의학은 사망의 종류(Manner of Death)를 다음 5 가지로 분류한다.
- Natural (자연사. 병사)
- Accident (사고사 혹은 외인사)
- Homicide (살해)
- Suicide (자살)
- Undetermined (미상)
이 중 자연사 (병사)는 사망의 원인이 된 외상이나 독극물과 같은 이유 없이, 사망에 이르게 한 질환이 있는 경우만 자연사 혹은 병사로 기재한다.
아틀란타 검시관(Atlanta's Fulton County Deputy Chief Medical Examiner)인 Eric Kiesel 박사는 사망의 종류에 대하여, 아무리 오랜 시간이 경과되었다 하더라도, 사망의 직접적 원인을 초래한 원인이 분명하다면 자연사(병사)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30년 전에 머리에 총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발작이 생겼는데, 30년 후에 발작으로 사망했다면, 이는 자연사(병사)가 아니라 homocide 즉, 살해되었다고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망 원인의 분류(사망의 종류)는 단지 Kiesel 박사만의 시각이 아니라, 대부분의 법의학자들이나 의사들이 갖는 사망 원인의 분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5. 백남기 사건에 대한 견해
이 사건에 납득되지 않는 두 가지는 첫째는 사망진단서의 내용이며, 두번째는 유족들이 부검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물론 망자의 시신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는 바램을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 사망을 눈 앞에 둔 환자를 수술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 1년 가까이 연명하도록 노력한 의사의 낙심천만한 심정을 무시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사망 진단서는 누구의 소신이나 신념에 따라 작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룰과 약속에 따라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물론, 착각할 수 있고, 모를 수도 있다. 몰랐다면, (그 방면의)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수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유족들이 부검을 거부하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인터넷 등에서는 백남기 씨의 부상에 석연치 않은 시각을 갖는 이들이 많다. 이미 주요 언론과 심지어 국회에서도 "빨간 우의"에 대해 거론되었다.
또 이미 백남기 씨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경찰청장 등을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이는 유족들이 망자의 정확한 사인을 밝혀달라는 것과 같다. 정확한 사인을 알아야 누굴 처벌하지 않겠는가.
그럼, 부검은 필수적 사항이라는 것이 상식적인 생각이다.
사실 현재 상황에서 그것이 병사로 기록되었던, 외인사로 기록되었던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또, 직접 사인이 심폐정지로 기록된 것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이 앞으로 수없이 많은 사망 진단서를 작성해야 하는 수 많은 의사들에게 더 이상의 혼란을 가져다 주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6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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