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르탄 고혈압 치료제 파동의 전모












지난 7일 식약처는 발사르탄 원료를 사용한 고혈압약 82개 제약사 219개 품목에 대해 판매 중지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이유는 유럽의약품안정청(EMA)이 현지 시각 5일 중국산 발사르탄 제품 회수조치를 발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발사르탄은 ARB 계열로 분류되는 고혈압 치료제 중 하나이다.


흔히 사용되는 고혈압 약은 그 작용 기전에 따라 베타 차단제(BB), 칼슘채널 길항제(CCA),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ACE), 안지오텐신Ⅱ 수용체 차단제(ARB) 등으로 분류하는데, 발사르탄은 ARB에 속하는 약물로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고혈압 치료제 중 하나이다.

의사는 고혈압 환자의 병력과 동반하는 질환, 연령 등을 고려해 위의 여러 기전 약물을 단독 혹은 병용해 처방한다.

발사르탄은 다국적제약회사인 노바티스가 개발해 지난 1997년 디오반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을 선두로 판매되기 시작해 미국내에서만 연간 20억 달러, 전세계적으로는 60억 달러 이상 판매되는 약품이다.

디오반은 2012년 미국 시장에서 신약 특허가 종료되었으며, 이후 여러 제약사들이 발사르탄 원료를 수입해 다양한 복제약(제너릭)을 생산 판매해 왔다.

발사르탄 원료의 일부는 중국에서 제조되어 전세계로 유통되는데, 이번 발사르탄 파동은 그 원료 일부에서 발암 효과를 갖는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이 유럽의약품안정청에서 발표되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식약처의 발표와는 달리, EMA가 7월 5일 발표한 내용은 중국산 발사르탄 사용을 당장 중단하라는 것이 아니다.

EMA가 발표하고 권고한 사항은 “중국산 발사르탄 일부 원료에서 NDMA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사실과 이에 따라 해당 의약품에 대한 리콜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에게 당장 그 약 복용을 중단하라는 조치는 없다. 오히려, 의사나 약사가 연락해 올때까지 환자 임의로 고혈압약을 중단해서는 안된다고 알리고, 처방받은 약을 그대로 복용하면, 다음 처방시 병의원을 방문할 경우 의사가 처방약을 바꾸어줄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EMA가 환자와 의사에게 제시한 권고 내용




NDMA는 플라스틱 제품 제조 등에 사용되었으나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사용금지된 물질이다. 암이 발생가능하다는 의미는 실험실에서 NDMA를 이용해 암을 유발시킨 바 있다는 것이며, 실생활에서 NDMA 통해 암이 발생된 것을 입증한 바는 없다는 것이다. NDMA는 흡연시 흔히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NDMA를 명백한 항암 물질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바 있으므로, 아무리 미량이라도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약물에서 발견되었다면 해당 약물을 회수하는 것은 적당한 절차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ARB에는 발사르탄만 있는 것이 아니며, 매우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약물들이 있으므로, 위험을 감수하고 문제가 된 중국산 발사르탄 원료 의약품을 유통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해당 발사르탄을 사용중지하고 제품 회수 조치를 하는 건 국가가 당연히 내려야할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

첫째, 식약처는 제품 회수 조치를 지난 7일 즉, 토요일에 전격발표했다는 것이다. 식약처의 해명은 EMA가 같은 조치를 선행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지만, 수 백만명의 고혈압 환자들은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이 문제의 약물일지 몰라 당황할 수 밖에 없었고 이를 확인하지 못해 불안해하거나 아예 혈압약 복용을 중단하기도 했다.

둘째, 제품 회수 조치를 발표하면서 82개 제약사 219개 품목의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이 중에는 문제가 된 중국산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도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식약처는 절반에 가까운 104개 품목에 대해서는 판매 중지 및 회수 조치를 철회했다.

이렇게 리스트를 번복하면서 혼란은 더 가중되었다.

이 두 가지 사항 모두 사실 어찌보면 작은 실수에 불과하지만 그 파급은 만만치가 않다. 가장 큰 문제가 가장 신뢰받아야 할 기관이 스스로 신뢰를 잃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마치 당장 약을 바꾸지 않으면 그 즉시 암이라고 생길 것처럼 요란을 떨며, 환자들에게 불안을 가중시키는 건 무척이나 아마추어적 행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2015년 식약처는 유럽 의약품청 EMA의 권고(12세 미만일 때 기침 치료로 코데인 사용을 금지)를 그대로 인용하여, 12세 미만 소아의 경우 디하이드로코데인이 포함된 코푸시럽의 처방을 금지하도록 안전성 서한을 배포하고, 디하이드로코데인이 포함된 28개 해당 품목의 허가를 변경 조치한 바 있다. (코데인은 이미 연령 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국내 개원가는 디하이드로코데인의 경우 이미 매년 수천만건 씩 수억건의 처방이 이루어졌고, 이 중 호흡곤란 등 문제가 생긴 경우는 단 3 건에 불과한데, 현실을 무시한 체 무작정 사용을 중단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결국 식약처는 EMA에 직접 질의를 하였고, EMA는 디하이드로코데인은 애초부터 해당 품목이 아니라는 회신을 하여, 이 해프닝은 수개월 만에 종결되었다.

그러나, 이미 개원가와 엄마들은 혼란에 빠졌고, 디하이드로코데인 복합제제 (코푸 시럽 등)를 생산하는 제약사는 직격탄을 맞은 후였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호들갑을 보고 살아야 하는지 답답하다.



2018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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