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주택에는 있지만, 국내 주택에서 보기 어려운 것들 (가전, 설비 편)
우리나라는 GDP 3만불을 바라보는 국가이며, 단위 면적당 주택 가격은 세계적 수준인데, 여전히 주택 시설, 가전, 구조 등 주택문화(?)로 볼 때 선진국과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주택 특히 고급주택일수록 투자해야 할 것에는 투자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에는 지나치게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주택 바닥이나 벽면을 고급 대리석으로 치장하거나, 고가 수입 천정등을 쓰는 것 같은 것이다.
물론 외국 주택을 무조건 따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주택만큼 민족성, 문화, 경제 수준의 영향을 받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유럽과 북미 등에서는 흔히 보지만, 국내 주택 가전이나 설비 등에서는 찾기 어려운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1. 음식물 쓰레기 분쇄기 (Garbage disposal unit)
Garbage disposal unit |
Garbage disposal unit은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물 지꺼기를 분쇄시켜 배출하는 장치를 말한다.
음식폐기물 분쇄기는 주방 싱크와 배수관 사이에 설치하며 강력한 모터가 칼날을 돌려 음식물을 조각내 흘러보낸다. 어지간한 뼈 정도는 쉽게 갈릴 정도로 강력하다.
미국의 경우 주택의 50% 이상이 이 장치를 설치해 사용한다. 영국의 경우 6%, 캐나다는 3%가 설치되었다(2009년 기준)는 통계가 있는데, 지금은 훨씬 더 많이 사용할 것으로 보이며,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은 분쇄기 설치를 적극 권장한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공을 들이는 나라는 드물다. 독일이나 일본 정도에서나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고 (그나마 완벽한 분리 수거도 아니다) 나머지 국가들은 그대로 쓰레기 봉지에 버리거나 땅에 묻어 버린다.
재활용 쓰레기 처리도 우리나라만큼 철저하게 따지는 곳이 드물다. 다만, 독일이나 북미 등의 국가들은 캔이나 병을 가져오면 돈으로 돌려주기도 하는데, 특히 독일은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엄격히 금지시켜 어지간한 음료수 (콜라, 생수 등)는 모두 병을 용기로 쓴다.
분쇄기를 써서 음식물을 갈아버리면 이 때문에 수질이 오염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국내 도시 대부분은 이미 하수와 오수가 별도 처리되지 않으며 한 라인을 타고 오수 종말처리장으로 간다.
주택에서 나오는 배수관에는 하수관, 오수관, 우수관이 있는데, 하수는 욕실 샤워, 세면대, 부엌 싱크 등에서 나오는 폐수를 처리하는 관로이며, 오수관은 변기 등에서 나오는 분변과 폐수를 처리하는 관로이다. 우수관은 빗물이 흘러가는 관로이다.
하수 처리 개념도 |
개발 시대 전에는 이 관로의 구분없이 혼재하여 처리되어 하수와 오수 빗물이 섞여 하천이나 강으로 흘러들어가기도 했다.
이로 인한 오염이 심각해지자, 점차 오수관과 하수관을 별도 설치하였는데, 최근에는 오수와 하수의 구분없이 합병하여 처리한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나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이처럼 생활하수를 구분없이 처리한다.
즉, 음식물 쓰레기를 적당한 크기로 갈아 배출시켜도 변기에서 나오는 분변, 휴지 등과 함께 같은 라인을 타고 종말 처리장으로 가게 되므로, 이 때문에 수질을 오염시킬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이 같은 방식을 권장하는 이유는 생활 하수, 오수의 처리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바이오 가스 생산을 촉진시키기 위함이다.
특히 독일은 오래전부터 하수 폐기물을 이용한 바이오 가스 생산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하수관로 보급율이 77.8%라는 점에 비춰볼 때, 여전히 하수-오수 병합관로가 없는 곳이나 정화조를 설치하고 오수만 정화 처리하는 곳 등에서는 분쇄기를 써서는 안 된다.
2. 식기 세척기 (Dishwasher)
Dishwasher |
식기 세척기는 이미 1960년 식기를 세척하기 전 단계에 한번 씻어주는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70년부터 북미 등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과 독일의 주택 80% 가량에 식기 세척기가 설치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연구에 따르면 같은 용량의 식기를 세척할 경우, 손으로 세척하면 사람에 따라 20~300 리터의 물을 사용하지만, 식기 세척기는 15~22 리터의 물을 쓸 뿐이라고 한다.
또, 사람이 직접 식기 세척을 할 때 0.1~8 kwh의 노동 에너지를 쓰지만, 식기 세척기는 1~2 kwh의 전기 에너지를 쓸 뿐이다.
전기료로 따지면 매일 사용해도 월 5~6천원 가량의 전기를 소비할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식기 세척기 사용이 물의 소비나 에너지 소비에 월등히 유리하며 작은 비용으로 가사 노동을 상당부분 덜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고온, 고압으로 세척하므로 손으로 씻는 것에 비해 월등히 깨끗하게 닦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소독되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과거 수입산 식기 세척기를 사용할 경우 밥그릇 등 오목한 용기의 세척이 충분하지 않아 불만이 있었지만, 최근 국내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이런 단점을 모두 보완했다고 한다.
3. 세탁기와 변기
최근 국내 가정, 오피스텔 등에 드럼 세탁기의 보급이 부쩍 늘었다.
일부는 드럼 세탁기가 차세대 세탁기로 기존의 통돌이 세탁기나 봉 세탁기에 비해 세탁이 잘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사실, 세탁력만 놓고 보자면 통돌이 세탁기가 월등히 낫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통돌이 세탁기는 세탁력이 좋은만큼 옷감의 손상이 더 많고, 특히 물의 사용량이 드럼 세탁기에 비해 많다.
애초 가정용 드럼 세탁기가 개발된 가장 큰 이유는 물의 사용을 줄이려는 목적 때문이다. 실제 같은 양의 빨래를 할 때 드럼 세탁기는 통돌이 세탁기에 비해 1/3~1/2 가량 물을 절약할 수 있다.
또, 사용하는 세제의 양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가정용 드럼 세탁기로 얻는 장점은 빨래를 넣고 꺼내기가 쉽고, 세탁기 상부에 물건을 놓거나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으며, 통돌이 세탁기에 비해 크기가 작아 좁은 공간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대신 가격이 비싸고, 장시간 세탁기를 돌려야 하며, 세척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산업용으로 가면 전혀 얘기가 달라진다. 세탁 공장 등에서는 거의 대부분 드럼 세탁기 형태의 세탁기계를 사용하는데, 드럼 세탁기는 이론적으로 무제한 크게 만들 수 있고, 클수록 세탁력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드럼 세탁기의 세척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세탁 방법 때문인데, 통돌이 세탁기는 수조에 가득 찬 물의 와류에 의해 옷들이 서로 비비지면서 세탁이 되는 반면, 드럼세탁기는 물이 갖는 표면 장력과 옷감이 만들어내는 모세관 현상에 의해 세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세제를 물어 풀어 빨래를 오래 담궈놓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드럼 세탁기 사용으로 만들어지는 유일한 외력은 드럼이 돌때 따라올라간 빨래가 드럼 맨 윗부분에서 떨어지며 생기는 충격 뿐이다. 때문에 작은 크기의 드럼 세탁기일수록 떨어지는 높이가 낮아 세탁력이 떨어진다.
결론적으로, 드럼 세탁기는 물의 사용을 줄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 세탁력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고가의 드럼 세탁기를 차세대 세탁기처럼 생각하고 구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듯, 식기 세척기를 이용하면 물의 사용량이 줄어드는데, 유럽, 미국 등은 물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환경 문제 등으로 물 사용량을 줄이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언급한 드럼 세탁기와 변기이다.
보통 변기의 버튼을 한번 누를 때 소모되는 물의 양은 3.5 갤런(GPF gallon per flush. 약 13.2 리터) 내외인데 (국내 변기의 경우 거의 15리터), 미국 정부는 1992년 물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새로 설치되는 변기를 1.6 GPF(6 리터)로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는 단지 1 GPF나 그 이하의 물만 사용하는 변기도 나와 있다.
이렇게 해서 미국 내에서 2016년 한해에만 사용이 줄어든 물의 양은 760억 갤런이며, 돈으로 환산할 경우 약 6억43백만 달러에 이른다.
우리나라도 2012년 수도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신축 건물에는 절수형 변기 등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였다. 절수형 변기를 사용할 경우 가구당 약 37톤의 물을 절약할 수 있고, 국내 전체 가구의 5%가 절수형으로 교체할 경우 연간 약 3천만 톤의 수돗물을 절약할 수 있다.
4. 빨래 건조기 (Clothes dryer)
빨래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홍콩 구 시가지나 중국 도시의 낡고 오래된 건물에서 도로쪽으로 수 없이 튀어나온 대나무, 쇠파이프 등으로 만든 빨래걸이다.
홍콩, 상하이 등은 무덥고 습한 곳이라 집안에 빨래를 널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베란다 등 별도로 빨래를 널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만의 의식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고 본다.
이들의 낡고 지저분한 아파트도 막상 안에 들어가보면 상당히 깔끔하게 잘 가꾸어 놓은 걸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현대 북미나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 드라마 속에 홍콩처럼 집 밖에 빨래를 걸어두거나 빨래줄을 쳐서 빨래를 너는 장면을 보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건, 북미 가정의 80% 이상이 빨래 건조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북미에서 빨래 건조기는 냉장고 다음으로 찾는 가전이다. 더불어 냉장고, 냉동고 다음으로 가정용 전기를 많이 쓰는 가전이기도 하다.
빨래 건조기는 뜨거운 바람을 만들어 이 바람으로 빨래는 건조시키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도 있다. 뜨건운 바람은 흔히 가스나 전기를 에너지로 만들고, 국내에서 사용되는 빨래 건조기의 대부분이 전기를 사용하는데, 빨래를 건조시킨 뜨거운 바람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을 경우 화재를 야기할 수 있다.
실제 미국의 경우, 2008년에서 2010년 사이, 약 2900건의 빨래건조기 화재가 있었으며, 연간 5명이 이 화재로 사망한다.
북미 주택이나 콘도의 경우 대부분 세탁실이 별도로 있고, 세탁실에는 빨래건조기에서 배출되는 뜨거운 바람을 외부로 빼기 위한 덕트가 설치되어 있으므로 여기에 빨래건조기 덕트를 직접 연결하면 되지만, 국내 주택의 경우 세탁실에 외부로 나가는 관이나 창문이 없을 경우 이 관을 연결할 수가 없다.
빨래 건조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은 빨래에서 배출된 습기가 포함되므로 이 바람이 폐쇄된 공간에 갇히면 상당한 양의 습기가 차게 된다.
그래서 국내에서 생산되는 빨래건조기는 습기가 포함된 뜨거운 바람을 열교환기로 보내 열기를 식히고, 습기를 모아 탱크로 보내는 콘덴서를 갖추기도 한다.
최근 베란다 확장형 아파트가 늘어 빨래 건조시킬 공간이 사라지면서 빨래 건조기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 국내 가전사들도 다양한 기술을 도입한 최첨단(!)의 빨래 건조기를 생산한다.
그런다보니, 수백만원을 훌쩍 넘는 고가 제품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국내 제품 중에는 인버터 히트펌프 방식으로 건조하는 건조기도 있는데, 이는 저열제습 방식으로 빨래는 건조시켜 옷감이 상하는 걸 줄이고 전기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빨래 건조에 충실한 제품을 찾고, 세탁실에 창문이 있거나 건조기에서 나온 뜨거운 바람을 덕트를 통해 외기로 보낼 수 있다면 굳이 고가 제품을 구입할 필요없다.
북미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빨래 건조기의 가격은 50만원 내외이고, 국내에도 이보다 저렴한 단순한 구조의 외국산 제품도 들어와 있다.
2018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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