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의 미국 대통령 vs 권력 남용 경계선 위의 한국 대통령
누구도 미국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은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존재하는 국가라고 믿는 경우가 흔하다. 이 믿음은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독재란 일인이나 특정 집단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헌법이나 다른 법을 넘나드는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말한다.
이 기준의 잣대로 볼 때, 현 대통령을 포함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과연 누가 진정한 독재자였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민선에 의해 선출되기 시작하면서 각 대통령 후보는 공약을 내걸기 시작했다.
공약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집중해 집행하겠다는 국민적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꾸려지는 인수위는 각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불러모아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 집행될 수 있도록 다듬어 이를 국정과제로 삼는다.
이렇게 결정된 국정과제는 그 어떤 추진 업무보다 우선적으로 시행하려고 한다. 사실 그래야 맞다. 왜냐면 국민들은 공약을 보고 그 후보를 뽑았다고 봐야 하며, 이는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정책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후보들이 내는 대통령 공약의 많은 부분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재정추계없이 내놓는 공약이 태반이고, 재정추계를 하더라도 비현실적이고, 이제까지 각 중앙부처가 추진했던 방향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한데, 직진하던 국가 정책이 급 우향우를 하거나 급 좌회전을 하면 국민들은 멀미가 날 수 밖에 없다.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유권자들이 공약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고, 오로지 정치적 성향, 연고, 지역만 보고 뽑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정책은 지지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공약이 뭔지, 무슨 의미를 갖는지, 국정과제와 어떤 연결 고리를 갖는지를 이해하는 유권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민주화를 외칠 줄만 알았지, 사실상 이 나라 국민의 정치적 민도는 형편없이 낮다는 이야기이다.
또 다른 실제적 문제는 대부분의 공약이 실현되려면 이의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이나 법령 체계에서 공약 즉, 국정과제를 수행할 근거법이 없다면 강행할 수 없다.
만일 근거법 없이 강행하면, 대통령은 법을 넘나드는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며, 이게 바로 독재이다.
즉,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공약을 가지고 있다해도, 국회가 법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국정과제는 좌초하게 된다.
물론 대통령령이 있지만, 이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정력을 발휘하기 위한 시행령일 뿐, 법이 없으면 대통령령을 만들 수도 없고, 법이 있다해도, 그 테두리를 벗어난 대통령령은 만들 수 없다.
또, 정부도 입법 발의를 할 수 있지만, 발의를 할 수 있을 뿐 법을 의결하는 것은 여전히 국회이다.
게다가 현 국회법은 새로운 법을 만들기 매우 까다롭게 개정되어버려, 예민한 민생 법안이 아니라면 여야 합의로 법을 만드는 것도 어렵다.
그러니, 우리나라 대통령은 명색이 대통령일 뿐 자기 소신에 따른 정책을 펼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운 처지임에 분명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정치 제도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는 건 사실 우습다.
우리와 유사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어떨까?
미국 대통령도 공약을 지키려면 의회가 법을 만들어줘야 할까?
그 답을 알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1833년 영국이 전격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자, 미국 내에서도 노예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노예들의 노동력에 의존한 면화 농업을 기반으로 한 남부에서는 노예제도 폐지를 반대하며 남북 갈등이 생겼다.
이 갈등으로 결국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했으며, 전쟁 와중인 1863년 1월 1일, 링컨 대통령을 행정 명령을 공포한다. 바로 노예 해방령이었다.
이로써, 미국 내 거주하던 모든 노예들은 합법적으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남부에 있던 많은 흑인들은 탈출해 북으로 넘어와 북군 병사가 되어 노예주와 싸웠다.
결국 북군이 승리하자 1865년 의회는 수정헌법 제 13조를 통과시켜 헌법에 노예제 폐지를 명문화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의 노예해방은 링컨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노예제나 인종차별을 금하는 미국 대통령들의 행정명령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미군 내 흑백인종차별 금지(해리 트루먼), 흑백인종 통합 학교 운영(아이젠하워), 거주와 취업에서 인종차별 금지(케네디) 등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명령은 모두 대통령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의한 것이며, 미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즉, 미국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스스로 법을 만들고 의회의 간섭없이 즉각 시행할 수 있다.
누가 미국 대통령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을까?
사실 미국 헌법이나 다른 어떤 법률에도 대통령이 행정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법이 없다.
다만, 미 헌법 제 2조 1항에 ‘행정권은 미국 대통령에 귀속된다. (The executive Power shall be vested in a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는 규정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 대통령부터 행정 명령을 내리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미국 대통령들이 내린 행정명령은 무려 1만 3천 건이 넘는다. 워싱턴 대통령이 내린 행정명령은 8건에 그치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은 무려 3천7백 건의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민주당 대통령들의 행정명령도 많아 클린턴은 364건, 오바마 대통령 역시 2백건이 훌쩍 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물론, 의회는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맘에 들지 않으면 제동을 걸 수 있다. 즉, 기존의 법을 개정하거나 행정명령과 반대되는 법을 만들어 방패로 삼거나,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대한 구체적 시행 방안을 제시하거나, 위헌 혹은 권력 남용의 이유로 법원에 소송을 걸거나, 행정 명령을 집행하기 위한 예산을 축소해 행정명령을 무력화할 수 있다.
그러나 여야가 똘똘뭉쳐 반대 법안을 만들거나 예산을 축소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고, 의회가 제시한 시행 방안은 대통령에게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행정명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대법원이 의회나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 준 사례는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사실상 무소 불위의 절대 권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 정도 권력을 휘둘러야 ‘독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급했듯이 누구도 미국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지 않는 건, 그 같은 권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을 견제할 자유 언론, 유권자, 대법원이 있으며, 기본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배신하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또, 대통령에게 행정명령이라는 권력을 줌으로써 생길 수 있는 위험성보다 대통령에게 권력을 줌으로써 얻는 국가의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문서화한 행정명령을 통해 대통령의 명령(지시)를 구체화하고 명문화할 수 있다는 잇점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업무 수행 중인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역대 대통령이 빠짐없이 구속되거나 구설수에 오르는 건 바로 대통령의 지시가 통치 행위이냐, 아니면 권력남용이냐의 경계가 모호하여 퇴임 후 반대 정권과 민심과 언론의 잣대로 재단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들이 이런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떳떳하게 행정명령을 통해 명령하고 이를 문서로 남겼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거죽만 제왕적 대통령제인 나라, 사실은 아무 것도 제 맘대로 못하는 나라, 그래서 정당한 통치 행위와 권력 남용의 경계선을 오가는 대통령을 갖는 나라, 의회 권력이 극대화된 나라, 결국 정치 놀음에 빠져 민생은 뒷전인 나라.
이런 나라가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아닐까 의문이다.
PS : 물론 그렇다고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당장 미국의 행정명령과 같은 권력을 주자는 건 아니다. 왜냐면, 현 대통령은 행정명령 따위가 없어도 이미 권력 행사를 잘 하고 계시고, 당장 그 같은 권력을 주어서 생길 국가적 이득보다 위험성이...... 아, 아니다.
2018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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