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가 시작이다.
불안은 통증처럼 스스로에게 경계 신호를 보내는 신체 반응이다.
대부분의 불안은 정상적 신호 체계지만, 지나친 통증이 삶을 불편하게 하는 것처럼 지나친 불안은 오히려 해롭다.
사람은 불안해지면, 본능적으로 무엇이 불안을 유발하는지 찾게되고, 그 불안 유발 요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많은 경우, 이 과정에서 이성을 잃기도 한다. 자기 방어 본능이 강하면 질서를 무시하고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온한 세상을 싫어하는 자들이 있다. 대개 "혁명"을 꾀하는 자들이 그런데, 안정된 사회에서는 자신을 드러낼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불안을 조장한다. 이들이 소리 높여 주장하는 불안 요소들은 사실 실재(實在)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이 경우, 그 요소들이 갖는 위험성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방법을 쓴다.
또 실재하지 않는 거짓 불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럴듯한 음모론을 만들고, 거기에 살을 붙여 슬쩍 내놓으면 이에 쉽게 동화되는 이들은 이를 눈덩이처럼 부풀려 나간다. 불안은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난다.
이렇게 불안을 만들어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은 썩은 고기라면 환장하는 하이에나와 사실 행태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거짓말, 음해, 음모, 공작을 서슴치 않는다.
이를테면, "헬조선"은 불안과 불만을 만들기 위한 신조어이며, "양극화", "청년 실업"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본질과 무관하게 사회 불만을 고조시키는 용도로 사용한다. 이것에 현혹된 이들에게 취업을 못하는 것이나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건, 자기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 기성 세대들의 문제일 뿐이다.
이들에게 세대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희망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이에나 들에게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사회 불안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희망 없는 이들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몸서리 칠 것이며, 혁명 전략을 위한 총알받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대통령을 자기 손을 뽑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모두 다 개 돼지가 되고,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이 민주화 열망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휩쓴 적이 있었다. 결국 1987년 629 선언과 함께 체육관 대통령 시대가 마감됐지만, 그것으로 얼마나 나라가 더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불안을 조성했던 이들은 386, 486을 거쳐 30년이 지난 지금 나라의 핵심이 되어 떵떵거리고 있다. 이들 뿐 아니라 민주화(?)를 이룬 공로로 두 명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들 재임 기간이 군사 정권과 비교해 얼마나 더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었는지도 의문이다.
광우병 사태는 불안을 조성하고 이를 빌미로 정권을 무기력화시킨 대표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갔지만, 미국산 소고기 수입량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재판으로 파면시킨 국정농단 사태 역시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불안 요소를 찾아내고, 이를 가공하고 극대화시켜 전염병처럼 불안과 불만을 퍼뜨린 전형적 사건이다.
반면, 오히려 당연히 불안감을 가져야 할 북핵 위기, 전쟁 발발의 위험성, 요동치는 국제관계, 일본식 장기 경제 침체 가능성, 저출산고령화 위기 등은 무감각할 뿐이다.
왜?
이건 엄존하는 위협 요소이지만, 이것으로 만들어지는 불안은 혁명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유독 우리나라에 이 같은 불안이 자주 발생하고, 폭 넓게 퍼지는 이유는 뭘까?
누구는 우리 민족의 냄비 근성 때문이라고 하고, 어느 정치인은 레밍스에서 국민성을 찾았다가 비난받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 뿐은 아니다. 어느 국가, 어느 집단에도 유사한 현상이 있기 마련이다. 의료계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누군가는 거짓말과 틀린 정보를 흘리며, 과장된 불안을 조성하고, 다수는 이를 비판없이 수용하거나 침묵하며, 누군가 이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 고소, 고발, 유언비어로 자근자근 밟아 버린다.
이런 자들이 원하는 혁명의 결과는 썩은 고기를 오랫동안 공급받는 것일 뿐, 개혁이 아니다.
막연한 불안감에 이성이 마비된 체 좀비처럼 휩쓸려 다녀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과잉 불안을 걷어내고, 이성을 찾고,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정치도, 의료계도 마찬가지이다.
사회는 늘 병들어 있다. 제도는 낡았고, 기득권의 사고는 고루할 뿐이다.
이걸 고치려면 올바른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객관적 시각과 중립적 가치관에서 환자의 호소가 아니라, 징후(sign)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사실을 검증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늘 사실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건 그냥 뇌피셜일 뿐이다.
2018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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