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우매한가?
대중은 우매한가?
“대중은 우매하다”라고 주장한 철학자가 있다.
그는 바로 플라톤.
그는 [국가]에서 대중은 우매하므로,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며 철인정치를 주장하였다. 그의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불경죄로 기소되어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사형을 선고 받고 독배를 마신 것도 작용할 것이다.
대중이 우매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또 있다.
그는 고종 19년인 1882년 증광별시에 문과로 급제하며 정부 관리로 출발, 미국으로 건너가 주미 참사관과 영사를 역임하고 학부대신, 외부대신, 농상공부대신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898년 독립협회 회장을 지냈다. 독립협회에 대한 정부의 압력이 거세 많은 이들이 이 모임에서 탈퇴할 때도 그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정부가 그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전라북도 관찰사로 임명하였으나 회장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이완용이다.
대세순응주의자(?)이었던 그는 조선의 백성은 우매하며, 열악하여 제국 열강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므로 미국에, 러시아에, 다시 일본에 나라를 ‘잠시’ 맡기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거슬러 보면, 수 많은 외세의 침략과 국난 중에 어느 날 갑자기 메시아 같은 지도자나 영웅이 나타나 나라를 구했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의병, 학도병, 독립군과 같은 무지렁이 백성들의 자발적 행동이 국난 극복의 배경이 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완용이 매국노인 것은, 대중을 우매하다고 판단하고, 독선적 행동을 한 결과이다.
대한민국이 위대한 것은 영웅을 양산해내는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 개개인이 근면하고 성실하며, 학구열이 높고, 충과 효를 근본으로 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최빈국에서 시작하여 새마을 운동으로 시작하여 산업화를 이루어 세계 10대 무역국이 된 것이나, IMF라는 절대절명의 국난을 극복하고 오히려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국가 지도자가 잘했다기보다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기업들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고,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물론, 방향을 제시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지도자들의 역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딱히 한민족이라서가 아니라, 대중은 결코 우매하지 않다는 가설과 이를 입증할 근거는 많다.
이를 아래 기사에서는 “대중의 지혜”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군중 심리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대중이 모여 군중을 이루면 크게 2 가지 속성을 보이게 되는데, 하나는 동질성의 확인이며 다른 하나는 폭력성이라고 한다.
근래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군중의 폭력성은 <악성 댓글 달기> 이른바 “사이버 불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중의 속성>으로 대중이 우매하다거나, “대중의 지혜”를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더 우려되는 것은 아래 기사에 실린 것처럼, SNS, 인터넷의 보급 확산으로 디지털화되고 정리된 정보의 손쉬운 인용으로 인한, “보편화된 공동의 생각 갖기”나, “일부 인사들의 견해에 대한 무한한 신뢰 갖기” 등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SNS나 인터넷의 보급이 더욱 더 가속화될수록 사회와 학교는 올바른 정보의 취사 선택에 대한 방법과 팩트를 찾아내는 방법, 그 팩트를 통해 자신만의 사고와 견해를 견지하는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진정코 대중의 우매함을 목격하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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