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은 한국인"을 위한 변명
양상훈 논설위원의 칼럼은 애초 잘못된
가정으로 시작해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은 기출문제집을 만들 생각을
한 한국인은 ‘머리가 좋으며’, 그런 기출문제집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한 미국인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인데, 이 가정이 틀린 것이다.
또 이번 SAT문제 유출 사고를 기출문제집으로 오인한 것 역시 착각이다.
첫째, 기출문제집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 어느 나라에나 있다. 특히 북미에는 기출문제,
예상문제 등으로 모은 SAT참고서는 말 그대로 산더미처럼 많이 있다. 서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수 많은 사이트들이 SAT 관련 문제를 무료, 유료로 제공한다.
SAT는 문제은행
방식으로 POOLING되어있다기보다는 일종의 문제 유형이 패턴화되어 있어, 굳이 기출문제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예상문제를 풀다 보면 그 패턴을 이해할 수가 있다.
또 바꾸어 말하자면, 외국인이 영어로 된 문제를 풀려면, 영어로 작성된 문제가 요구하는
답을 구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출 문제이건, 예상문제이건 풀어봐야 하는 건 외국 학생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둘째, 이번 SAT문제 유출 사고는 기출문제집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문제가 유출된 사고이다. 이런 사고는 과거에도 있었는데, 연합뉴스에 따르면, 2007년 학원 강사들이 태국에서 SAT시험을 먼저 치르고 그 문제를 한국으로 보내 한국 수험생 900여명의
시험이 취소된 적이 있었으며, 201년에도 같은 사고가 있었고, 이번에도
지난 2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동남아에서 미리 시험을 치르게 하여 문제를 빼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 이런 문제 유출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997년 미국 동부와 서부간의 시차가 있는 것을 이용해 한 곳에서 먼저 시험을 치르고 다른 시간대의 수험생에게
전화로 문제를 알려준 사례가 있었으며,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교장 승진 시험 문제지와 답안지를 빼낸 사건이
있었고, 시민권 자격시험에서 영어를 못하는 이민자들을 시험에 합격시킨 부정합격과 뇌물공여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교장 승진 시험이나 시민권 자격시험은 SAT를 주관하는 ETS가 주관하고 있다.
즉,
양상훈 논설위원이 말하는 치팅이 미국 내에서도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수영을 못하는 뉴질랜드 유학생 아이의 이야기도 황당하다.
양 논설위원은 ‘아이는 자기 혼자 먼저 학원에서 수영을 배우는 것을 치팅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남들보다 더 노력하는 것을 과연 치팅이며 ‘지름길’을 이용하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남들보다 배팅을 수백 번 수천 번
더하고, 남들보다 더 골프채를 더 휘두르고, 아이스 링크에서
남들보다 더 점프 연습을 하면 그게 치팅인가?
조선소 하나 없이 백사장 사진을 찍어
대형 선박을 수주하면, 그것도 치팅인가?
동족을 남의 나라 탄광에 보내고, 남의 나라 전쟁에 보내고, 열사의 사막에 보내 만든 돈을 토대로
산업발전을 일구면, 그것도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이니,
이 또한 치팅인가?
물론 과열된 학업열, 지나친 경쟁 사회,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커닝, 대리시험, 논문
표절은 지나치고 과열한 한국 사회의 모습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비난 받고 법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
범죄행위이다. 이 같은 범죄 행위는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있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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