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신이 아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미국 입원 환자 25명 중 1명 꼴로 병원 감염에 걸리고 있으며, 2011년 기준 72만2천명이 병원 원내 감염에 걸렸으며, 최소 7만5천명이 원내 감염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또, 미국내에서 시행되는 외과 수술 중 12.5%에서 수술 후 뱃속에 가위나 솜이 발견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미국은 입원 환자의 2.9%~3.7%에서 의료 사고가 발생하며, 해마다 최소 4만4천명, 최대 9만8천명이 의료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만일 의료 사망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의사를 처벌한다면, 미국 내에서 살아 남을 의사는 없다.

근대 형법 사상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범죄와 형벌"을 쓴 이태리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는 그의 저서에서 형벌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다.

"형벌의 목적은 오직 범죄자가 시민들에게 새로운 해악을 입힐 가능성을 방지하고, 타인들이 유사한 행위를 할 가능성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형벌 이론의 '예방형론' 혹은 상대적 형벌론이라고 한다. 그 대척점에 있는 이론은 "응보형론" 혹은 절대적 형벌론이며, 형벌의 목적은 범죄에 대한 응보에 있다는 주장으로, 칸트가 주장한 것이다.

칸트는 인간은 항상 주체로 취급되어야 하며, 객체로 다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형벌에 대한 예방적 고려를 반대했다.

'구속'은 형벌이 아니라 형사 절차의 과정이지만, 사실상 넓은 의미의 형벌이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집단 사망 사고의 피의자 5명 중 4명에게 구속 영장이 청구되었고, 이 중 3명이 구속되었다. 구속되지 않는 2 명은 신규 간호사와 6년차 간호사로 신생아들에게 주사제를 조제하여 직접 투여한 당사자이다.

경찰은 주사제 조제 중 균에 오염된 간호사들의 손에 의해 주사제가 오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원은 구속된 두 명의 의사와 수간호사에게 감독의 책임이 있다며,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구속했다.

영장 발부 판사는 이들을 구속함으로써 신생아 사망 사고에 대한 댓가를 치루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하거나, 이들을 구속함으로써 잘못된 관행에 대해 경종을 울리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만일 이 판사가 이런 생각으로 영장을 발부했다면, 그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것이다.

이 사건은 사망 사고이기는 하나 살인 사건이 아니며, 의사나 간호사 모두 그들의 행위로 신생아가 사망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며, 오히려 이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선한 의지를 가지고 환아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구속됨으로써 응보를 치뤄야 한다면, 그 당사자는 감독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와 수간호사가 아니라 주사제를 오염시킨 실무 간호사이다. 경찰의 주장대로라면 그들이 주사제를 오염시켰다면 말이다.

판사가 의료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들을 구속했다면 이 역시 착각에 불과하다. 경종은 커녕 의료인들의 허탈감과 분노가 들불처럼 모든 의료 현장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병원은 혼란의 도가니로 바뀔 것이다.

비록 의료법에 간호사에 대한 의사의 지도가 명시되어 있으나 사실상 의사가 간호 업무에 개입할 여지는 없으며, 더 더욱 감독할 방법은 없다.

이번 구속 사태로 간호사의 실수가 의사의 구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김으로써 의사가 지도란 명분으로 간호사의 간호 업무에 개입해야 하는지, 한다면 어디까지 해야 할지, 이에 대한 저항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이다.

나아가 의료 행위는 더욱 위축되고, 방어 진료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며, 그 폐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의료는 본디 선의로 이루어지는 행위이고, 사람은 기계가 아니며, 질병 치료는 타이어 갈듯 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 행위는 환자와 의사의 계약 이상의 행위이다.

의료에서 '정상(normal)'이란 없으며 모든 환자는 각각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질병은 미지의 세계이다. 그나마 가장 많이 정복되었다고 하는 감염병 역시 예외의 상황이 늘 존재하며 이를 예측하고 완벽하게 대비하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다.

의사는 당연히 신이 아니다. 의사에게 타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예측불가능한 행위의 위험 가능성까지 예견하여 감독하라고 하는 건 부당하다.

판사는 지금, 신이 아니었기에 처벌받으라고 강제하는 것이다.

No comments

Theme images by fpm.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