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신은 없다고?
1. 민주주의, 인권, 평등은 모두 사기이다?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가설(假說)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고대 수렵 채집인들의 삶이 농업인에 비해 월등히 더 나았다는 것이다.
즉, 농업인은 더 많은 노동을 했지만, 더 비참한 삶을 살았으며, 때문에 인류의 농업 혁명은 인류에게 덫에 불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업 혁명을 통해 인류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 지금까지의 통념과는 다른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또한 농업 혁명으로 인류의 개체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수만 혹은 수백만으로 늘어난 인류가 질서를 유지하고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으며, 그 장치가 바로 상상력(상상의 질서)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란 사악한 음모도 무의미한 ㅁ환상도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즉,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평등 따위는 원래 없는 것이지만, 상상력에 의해 마치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으며, 평등, 애국심, 민주주의, 종교 등은 모두 상상력에 의한 것이며, 이런 상상력에 의해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예를 함무라비 법전과 미국의 독립선언문으로 들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바빌로니아인 수십만 명의 협력 매뉴얼 역할을 했으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식 엘리트와 관료 엘리트는 그 경전을 추앙 했고, 심지어 함무라비가 죽고 그의 제국이 영락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도 견습 필경사(筆耕士)들은 계속해서 이것을 베껴 썼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함부라비 법전에 대해 “사피엔스”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바빌론의 사회적 질서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정의의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원칙은 신들이 읊어준 것’이라고 단언한다.
계급제도의 중요성은 엄청나다. 법에 따르면 인간은 두 개의 성별과 세 개의 계급 귀족, 평민, 노예로 나뉜다. 사람은 성별과 계급에 따라 각기 다른 가치를 지닌다. 평민 여성의 목숨 값은 은 30세겔이고, 노예 여성은 20세겔이다. 이에 비해 평민 남성의 눈은 은 60세겔의 가치가 있다.
이 법전은 또한 가족 내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어린이는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부모의 재산이다. 그러므로 어떤 귀족이 다른 귀족의 딸을 죽이면 그 벌로 살해자의 딸이 처형당한다.
우리에게는 살인자는 무사한데 죄 없는 그의 딸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함무라비와 바빌론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정당해 보였다.
이 법전은 만일 왕의 신민 모두가 위계질서 상의 자기 자리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행동하면 제국에 사는 수백만 명 모두가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면 사회는 구성원을 먹이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해서 이를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스스로를 적으로부터 보호하며 더 많은 부와 더 나은 안전을 얻을 수 있도록 영토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776년(정확하게는 기원전 1792년에서 175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함무라비 법전 |
이 법전의 내용은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부당하고 불편한 내용들도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만명이 질서를 유지하도록 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유발 하라리는 재치 있게도 기원 후 1776년 발표된 인류 역사에 중요한 또 다른 문서를 소개하고 있다.
바로 미국 독립선언문이다.
그런데 그는 함부라비 법전에 명시된 내용 즉, 인간을 귀족과 평민으로 구분하는 것이 온당치 않듯이 이 독립선언서에 명시된 내용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 또한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인용한 독립선언서 문구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 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 받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창조’되지 않았으며, 진화했고, 또한 ‘평등’하게 진화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다시 사피엔스에서 그대로 인용해 본다.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창조’되지 않았다. 진화했다. 또한 ‘평등’하게 진화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평등사상은 창조사상과 뗄 수 없게 얽혀 있다.
미국인들은 평등사상을 기독교 신앙에서 얻었다. 모든 사람의 영혼은 신이 창조했으며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신앙 말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신과 창조와 영혼에 관한 기독교 신화를 믿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화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에 기반을 둔다. 모든 사람은 얼마간 차이 나는 유전부호를 가지고 있으며, 날 때부터 각기 다른 환경의 영향에 노출된다. 그래서 각기 다른 특질을 발달시키게 되며, 그에 따라 생존 가능성에 차이가 난다.
따라서 ‘평등한 창조’란 말은 ‘각기 다르도록 진화했다’는 표현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의 책임을 생물학에게 전가하고 있지만,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는 또 이렇게 주장한다.
"또한 생물학에 따르면, 사람은 창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여’하는 ‘창조주’ 같은 것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맹목적인 진화과정 뿐이며, 개인은 어떤 목적도 없는 그 과정에서 탄생한다. ‘창조주에게 부여받았다’는 단순히 ‘태어났다’고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독립선언문의 해당 구절을 생물학 용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본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르게 진화했으며, 이들은 변이가 가능한 모종의 특질을 지니고 태어났고 여기에는 생명과 쾌락의 추구가 포함된다.”
(원문 :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 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 받았다.)
즉,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미국 독립선언문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2. 신은 없다.
유발 하라리는 결코 자신의 입으로 “신은 없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대신 이번에는 볼테르의 입을 빌렸다.
볼테르 (1694~1778) |
“볼테르는 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하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는 마라. 그가 밤에 날 죽일지 모르니까.’ 함무라비는 자신의 위계질서 원리에 대해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고, 토머스 제퍼슨 역시 인권에 대해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하늘이 부여한 권리가 없다. 거미나 하이에나나 침팬지에게 그런 권리가 없듯이.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인에게 하지는 마라. 그가 밤에 우리를 죽일지 모르니까.“
그러나 유발 하라리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신(神)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란 인류가 조화롭게 살기 위해 만들어낸 상상 속의 존재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한들,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그런데 볼테르는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
아무튼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서두에 135억년 전에 빅뱅이 발생하면서 물질과 시공간이 존재하게 되었고, 원자가 만들어졌으며, 38억년 전에 지구에 모종의 분자들이 결합해 복잡한 구조가 만들어졌고, 결국 이것이 생물이 되었으며, 7만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좀 더 정교한 생명체가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또 호모 사피엔스는 고양이과 (치타, 사자, 집고양이), 개과(늑대, 여우)등 다른 동물들처럼 영장류라는 과의 일원이며, 침팬지, 고릴라, 우랑우탄이 우리와 가까운 친척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불과 6백만 년 전 단 한 마리의 암컷 유인원이 딸 둘을 낳았다. 이 중 한 마리는 모든 침팬지의 조상이, 다른 한 마리는 우리 종의 할머니가 되었다.”고 극단적 비유를 써가며 이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그 다른 한 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네안테르탈렌시스, 호모 솔로엔시스 등 고대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론 즉, 어느 원자로부터 생물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진화하여 포유류가 되고, 유인원을 거쳐 결국 인류가 되었다는 주장을 진화론이라고 한다.
진화론은 18세기 카톨릭 교회의 부패에 반기를 든 계몽주의 운동과 더불어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카톨릭 교회에 반기를 든 계몽주의자들은 신의 존재도 부정했으며, 당연히 창조론도 부정했다. 볼테르 역시 그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진화론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 돌연변이설에서 소위 비다윈 진화이론이라고 하는 중립 진화론, 단속평행론 등으로 “진화”되었다.
사실 창조론이 맞느냐 아니면 진화론이 맞느냐 하고 묻는 것은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고 묻는 것과 같다.
왜냐면 창조론과 진화론은 완벽하게 대치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는 신은 없다고 주장하며, 신이 없으므로 신에 의해 생명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어떤 학자나 학설도 신이 없다고 입증한 바 역시 없으며, 서로 상충되기도 하는 다양한 진화 이론들이 존재하는 이유 역시 그것은 여전히 가설일 뿐 명백하게 입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화론이 모두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며, 사실 진화는 지금도 거듭되고 있다. 가장 비근한 예는 항생제에 저항력을 갖는 세균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저항성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진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진화 현상으로 생명 창조나 생명체 출현을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다.
진화론자들은 어떻게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만들어지고, 복잡한 구조의 유기물이 어떻게 생명체로 바뀌었는지, 또 고대 미생물이 결국 어떻게 인간이 되는지 설명을 할 때, 설명되지 않는 모든 것을 단 하나의 장치에 의존해 해석하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시간(時間)이다.
길고 오랜 시간이 마법을 부려 원자와 분자가 결국 오늘 날 인간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시간을 빼고 나면, 진화론자들은 무장해제 된다. 그들에게 시간은 곧 신(神)이고, 창조주인 것이다.
사실, 생명 탄생의 기원을 18세기에서 21세기 사이의 인류가 가진 머리로 풀어보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자연선택적으로 한 속의 동물 중 일부는 멸종하고 다른 일부는 생존할 수 있다. 돌연변이에 의해 약간의 차이가 나는 새로운 생명체가 나올 수도 있다. 또 용불용설 처럼 흔적기관과 퇴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생명 창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6백만 년전의 유인원이 인류의 어머니라는 것도 입증할 수 없다. 시간이 진화의 도구라면, 여전히 아프리카 밀림을 어슬렁거리는 침팬지, 오랑우탄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들은 왜 사피엔스로 진화하지 못한 걸까?
유발 하라리는 꿀벌의 예를 들면서, 벌들에게는 노조도 없으며 따라서 임금 시위도 없고 파업도 없기 때문에 벌들의 사회에는 법률가 벌이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인간은 흔히 시위를 하고 파업도 하는데, 인간과 꿀벌의 이 같은 차이는 꿀벌에게는 이미 DNA에 자신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프로그램 되어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인간의 DNA에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정보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과 관습, 절차와 예절이 필요하며 이를 지탱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치 있는 설명이긴 한데, 그렇다면 왜 그 오랜 시간 동안 집단생활을 해왔던 인간의 DNA에는 그 같은 유전자가 진화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진화론자들은 또 다시 그들의 무기를 들여다 댈 것이다.
“시간이 부족했다”고.
인간의 유전자에 꿀벌처럼 자신의 역할이 프로그램 되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인간이 집단으로 산 게 얼마나 되었느냐고.
그렇다면 지금처럼 60억 명이 넘는 인간들이, 손바닥만한 땅에 수백만, 수천만이 모여 오래 오래 살다 보면, 꿀벌처럼 인간의 유전자에도 역할이 프로그램될까? 그래서 언젠가 우리 사회에는 법이나 변호사 판사가 사라질 날이 올까?
백번 양보해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고 해도, 그것으로 생명 창조를 설명할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물론 밀러의 실험(Miller-Urey experiment)처럼 무기물과 전기로 유기물을 생성할 수는 있다. 이를 화학적 진화라고 부르는데, 유기물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 유기물이 생명체가 될 수 있다는 증거는 없으며 이 역시 생명 창조를 설명할 수 없다.
생명체로 분류 되려면, 독자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자기 증식이 가능해야 하며 독자적 형질이 있어야 한다.
밀러의 실험은 최초 1950년대 초에 이루어졌지만, 60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유기물이 생명체를 만들었거나 이 같은 실험을 통해 생명체가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다.
물론 진화론이 생명체 창조를 설명하지 못하듯, 창조론 역시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가장 대표적 창조론은 이른바 Irreducible Complexity, 즉,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還元不可能複雜性)이라는 것인데, 이는 생물학적 체계는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한 조상, 혹은 덜 복잡한 조상이 자연 선택되거나 일부 진화되는 것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이를테면 인간은 ABS, TCS, AWD 등등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장치가 장착된 최신형 자동차와 같다.
이런 장치들은 상호 보완적이며 자율적이기도 하며 복잡한 기전으로 작동하는데, 현대 의학도 인간의 세포와 조직, 장기의 기능을 절반도 이해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단지 복잡하므로 진화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체의 생리와 기능을 좀더 미시적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그 어떤 진화론으로도 우연히 만들어진 아미노산에서 출발한 원시 세포가 인체로 발전했다는 것을 설명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총, 균, 쇠’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같은 또 다른 진화론자들은 인간과 침팬지, 오랑우탄의 해부학적으로 얼마나 유사한지 예를 들며,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1.6%의 차이만 있을 뿐이므로 그 둘은 서로 사촌간이라고 주장한다.
Jared Mason Diamond |
(그러면서, 고릴라와는 DNA가 2.3% 차이가 나므로 고릴라보다는 침팬지가 더 가까운 친척이라고 주장한다. ’왜 인간의 조상이 침팬지인가’에서.)
인간과 유전자가 유사한 건 침팬지나 고릴라 뿐이 아니다. 시궁창을 기어다니는 쥐(mouse)도 인간과 유전자 동일성이 92%에 달한다. 쥐새끼 뿐 아니라, 고래나 기린, 코끼리 등 대부분의 포유류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 과일 냄새를 맡고 덤벼드는 파리도 44% 유사하며, 효모균과 같은 미생물 역시 26% 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많은 부분에서 유사한 건, 자동차로 치면 동일한 파워트레인(power train)으로 서로 다른 용도와 디자인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쏘나타와 K5는 파워트레인을 공유하지만, 누구도 두 차가 동일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위는 쏘나타, 아래는 K5 |
인간과 박테리아의 유전자와 유사한 건, 기차나 자전거나 모두 쇠덩어리와 다양한 볼트로 만들어진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만일 조물주가 생명체를 만들었다면, 모든 생명체를 서로 완전히 다르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 유사성이 진화론의 배경이 될 수는 없다.
이 글은 창조론을 증명하기 위해 쓰여진 글은 아니다. 언급했듯이 오늘 날의 인류의 머리로 창조를 설명할 수는 없다.
종교적으로 설명하자면,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화론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 생명이 서서히 진화한다는 것은 가정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생명 출현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설에 의지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건, 매우 경솔하고 위험한 생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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