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자유시장 신봉주의는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는 믿음만큼이나 순진한 것이다."





전원책 변호사의 주장은 이렇다.

"나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이다. 그러나 빈부 격차에 중앙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을 해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사회민주주의 안에도 눈여겨볼 게 많다.

보수주의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왜곡 돼 있다. 마치 시장 자유만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처럼."

전 변호사의 주장에 상당부분 공감한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자유 시장을 추종하며 시장자유주의를 부르짖는데, 시장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기본 논리가 작동될 때만 선(善)하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기본 논리란 "이윤은 생산에 재투자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사 교수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이 단순한 논리가 아담 스미스 이후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이룬 첫번째 교리라고 주장한다.

그는 한편으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이유는 이윤의 재투자로 고용을 창출하고 공동체 모두 부를 이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런 논리는 너무나 많은 함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이에 대한 단락을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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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에 대한 집단적 숭배


자본과 정치는 서로 깊은 영향을 미치는 탓에, 양자의 관계는 경제학자, 정치학자, 대중 모두에게 뜨거운 토론의 대상이다. 열렬한 자본주의자는 자본이 정치에 자유로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지만 정치가 자본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현명치 못한 투자를 하게 되고 그 결과 경제성장이 느려진다는 것이다. 가령 정부가 기업가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그 돈으로 실업수당을 넉넉하게 지급해서 유권자에게 인기를 끌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업가의 견해에 따르면, 정부는 기업이 돈을 마음대로 쓰게 내버려두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러면 사업가는 공장을 개설하고 실업자를 고용하는 데 그 돈을 사용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가장 현명한 경제정책은 정치를 경제로부터 분리하고, 과세를 줄이고, 정부 규제를 최소화하며, 시장의 힘이 자유롭게 제 갈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적 고려의 방해를 받지 않는 민간 투자자들은 가장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곳에 돈을 투자할 테니, 최대의 경제성장 — 이것은 기업가나 노동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 을 보장하는 방법은 정부가 가능한 한 일을 적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자유시장 교리는 자본주의 교리의 가장 흔하고 영향력 있는 변종에 해당한다. 가장 열렬한 자유시장 지지자들은 국내의 복지정책을 비판할 때만큼이나 열성적으로 해외에서의 군사적 모험을 비판한다.

이들이 정부에게 주는 조언은 선禪 전문가가 입문자에게 하는 조언과 동일하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자유시장 신봉주의는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는 믿음만큼이나 순진한 것이다. 모든 정치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시장 같은 것은 원래 없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원은 미래에 대한 믿음인데, 이 자원은 도둑들과 사기꾼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

시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기, 도둑질,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 속임수를 제재하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집행할 경찰, 법원, 교도소를 설립하고 지원함으로써 신뢰를 보장하는 것은 정치체제가 할 일이다.

왕이 시장을 적절히 규율하는 업무에 실패하면 신뢰의 상실, 신용의 축소,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우리가 1719년 미시시피 버블에서 배운 교훈이 이것이었다. 혹시 잊은 사람이 있었다면 2007년 미국의 주택시장 버블과 그 결과로 일어난 신용 붕괴와 불황이 상기시켜주었을 것이다.

자본주의자의 지옥


시장에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위험한 데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애덤 스미스는 구두공이 자신이 낸 흑자를 더 많은 조수를 고용하는 데 쓸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이기적 탐욕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윤은 생산을 확대하고 사람을 더 많이 고용하는 데 활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구두공이 피고용인들의 월급을 깎고 근로시간은 늘리는 방법으로 이윤을 늘리면 어떻게 될까?

표준답변은 자유시장이 피고용자를 보호해주리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구두공이 월급은 너무 적게 주고 일은 너무 많이 시킨다면, 최고의 일꾼들은 자연히 그를 떠나 경쟁자의 가게로 일하러 갈 것이다. 폭군 같은 구두공에게는 최악의 노동자만 남거나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운영 방식을 바꾸거나 사업을 접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탐욕 때문에 피고용인들을 잘 대해줄 수밖에 없다.

이론상으로는 물 샐 틈 없는 논리 같지만, 현실에서는 물이 너무 쉽게 샌다. 왕이나 사제가 감독하지 않는 완전 자유시장에서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은 독점을 할 수도 있고, 노동자를 탄압하기로 서로 공모할 수도 있다. 만일 국내의 모든 구두 공장을 통제하는 단 하나의 회사가 있거나 모든 공장주가 임금을 동시에 삭감하기로 짬짜미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노동자들은 더 이상 일터를 바꿈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사태는 이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탐욕스러운 사장들은 노동자들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다. 빚을 갚기 위한 노역이나 노예제도를 통해서 말이다. 중세 말 유럽의 가톨릭 지역에는 노예제도가 거의 없었다. 한편 근대 초기 유럽 자본주의의 부흥은 대서양 노예무역의 부흥과 함께 등장했다. 이런 재앙의 책임은 독재적인 왕이나 인종차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고삐 풀린 시장의 힘에 있었다.

- 중략 -

노예무역은 정부나 국가에게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았다. 그것은 순수한 경제사업으로서,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자유시장에 의해 조직되고 자금조달이 이루어졌다. 민간 노예무역 회사들은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 주식거래소에서 주식을 판매했고, 좋은 투자처를 찾는 중산층 유럽인들이 이 주식을 샀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회사는 배를 사고 선원과 군인을 고용한 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서 미국으로 수송했다. 노예는 대형 농장의 주인에게 팔렸고, 그 수익은 다시 설탕, 코코아, 커피, 담배, 면화, 럼주 같은 농장의 산물을 구매하는 데 쓰였다.

이들은 유럽으로 돌아와 설탕과 면화를 비싼 값에 판매한 뒤, 다시 돛을 달고 아프리카로 향하여 같은 영업을 되풀이했다. 주주들은 이런 사업 방식에 매우 만족해했다. 18세기 내내 노예무역 투자에 대한 연간 수익률은 약 6퍼센트였다. 현대의 컨설턴트라면 누구나 재깍 인정할 만한 엄청난 돈벌이였다.

이것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옥에 티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그렇기는커녕, 이윤과 생산량을 늘리려는 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성장이 최고의 선이 되고 다른 윤리적 고려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을 때, 그 성장은 쉽사리 파국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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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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