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가 9/11 테러에 연루되었다고 ?





사우디와 관련한 흥미로운 기사가 오늘 자(2016년  4월 22일) 언론에 보도되었다.

조선일보 기사(기사 내용 클릭) 중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9·11 관련 미 상·하원 합동조사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밥 그레이엄 전 상원 정보위원장 등은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유가족과 미국 국민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며, 900쪽짜리 전체 문건 가운데 사우디의 테러 연루 가능성을 시사하는 28쪽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건에는 사우디 정부나 왕실이 알카에다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돈세탁을 돕는 등 테러에 부분적으로 가담한 정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 문건 공개를 반대했던 백악관도 최근 기밀 해제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사우디 정부가 9/11 테러에 가담했다는 것을 사실화하고 있으며, 이를 미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고 확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인용한 내용의 기사가 어떤 정보를 근거로 작성 되었는지는 불분명할 뿐 아니라, 매우 민감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많다.

이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28쪽”이란 이미 지난 2002년부터 계속 논란이 되어왔던 것인데, 당시 9/11 테러 조사를 맡은 9/11 관련 미 상·하원 합동조사위원회(The Joint Congressional Inquiry into the 9/11 attacks) 에서 작성한 보고서 가운데 28 페이지가 기밀 처리되면서 공개되지 못한 것을 말한다.





당시 부시 미 대통령은 이 28쪽이 공개될 경우 미국 정보 조직에 손상을 줄 것이라며 공개를 반대했다.
(관련 자료)

이후 28쪽의 내용에 대한 각가지 루머가 돌았으며, 그 중에는 부시 행정부와 사우디 왕실 간의 은밀한 거래에 대한 내용이라는 루머도 있었고, 누가 9/11 테러에 재정 지원을 했느냐 하는 부분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그 보고서를 읽은 의원들은 “그 안에 국가 안보에 대한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더 구체적으로 “사우디 정부가 9/11 테러를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오히려 이 28쪽을 공개하라고 주장하면서, “이 28페이지가 사우디 정부와 왕실을 모략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며, 사우디 아라비아는 숨길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두 번이나 약속했지만 결국 공개하지 않았으며, 이에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은 “대통령에 의해 진실이 은폐되고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무튼 국내 주요 언론이 루머에 의존해 마치 이 28쪽이 마치 사우디의 테러 연루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공론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언론에 보도되는 외신은 대부분 통신사에서 번역한 후 보도하며, 일간지, 인터넷 언론이 이를 받아 게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통신사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기도 하지만, 자의적으로 해석해 살을 붙여 싣는 경우도 있는데, 이 해석에 오류가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외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건, 그 기사를 처음 게재한 언론 보도를 접하는 것이며, 두번째는 국내 통신사의 최초 보도를 보는 것이다.

“사우디가 9/11 테러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내용의 기사는 최초 영국 텔레그래프가 기사화한 것이다.

텔레그래프의 원문 기사 타이틀(기사 내용 클릭)은 다음과 같다.

Saudi government's possible links to 9/11 plot revealed in new evidence as Barack Obama meets King Salman

즉, “오바마가 사우디 국왕 살만을 만나는 때에 사우디 정부가 9/11 테러와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새로운 증거에 의해 드러났다”는 것이다.

기사의 내용을 정리하면, “여러 증거를 종합할 때, 사우디 고위 관리 (high ranking Saudi officials) 들이 9/11 테러를 미리 알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란, Ghassan al-Sharbi라는 폭탄 제조기술자로부터 나온 증거를 의미하며, 이 자는 9/11 테러 당시 비행기 납치범들과 함께 비행 교육을 받은 자인데, 이 자가 직접 9/11 테러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은닉하기 위해 묻어 놓은 문서 중에 비행 수료증이 있었으며, 이 문서가 사우디 대사관 봉투 안에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FBI 조사에서 이미 밝혀진 바 있으며, 미국 내 한 블로거가 이를 알아낸 후 이 자료를 공개하라고 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사우디 고위 관리가 9/11 테러를 미리 알았을 것”이라는 것과 “사우디 정부나 왕실이 알카에다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돈세탁을 돕는 등 테러에 부분적으로 가담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사실이다.

또, 사우디 정부나 왕실이 알카에다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하더라도 그 시점이 언제인지, 무엇을 목적으로 지원했는지도 분류해 생각해야 한다.

왜냐면, 사실 알카에다는 최초 아프칸을 침공한 구 소련에 의해 아프칸의 무슬림들이 고통받는 것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이며, 그 당시 사우디 정부는 알카에다를 적극 지원한 바 있기 때문이다.

즉, 알카에다는 사우디의 수니파 무슬림들이 지하드를 위해 만든 단체인데, 지하드는 무슬림 들의 의무 사항이며, 사우디 등 이슬람 국가 대부분은 지하드를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걷고 사용하는 것이 관례이다.

사우디 뿐 아니라, 미국 역시 냉전 시대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알카에다를 이용했으며, 물자와 돈을 댔을 뿐 아니라 군사 고문관을 파견해 훈련을 시켰다고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 당시 사우디 정부가 알카에다를 지원한 것과 9/11 테러를 위해 지원한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알카에다가 반미 테러 집단으로 돌아선 건, 소련이 붕괴하고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사우디로 복귀하려고 할 때 사우디 정부가 이를 막았고, 비슷한 시기인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빈 라덴이 알카에다를 동원해 사우디 국경을 지키겠다고 사우디 왕실에 제안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미군을 사우디에 주둔시킨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사우디 왕가가 이들의 복귀를 반대한 것은 전투 경험이 있는 이들에 의해 반란 등 국정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소련 붕괴로 야기된 동유럽의 연이은 민주화 운동이 그 배경이기도 하다)

빈 라덴은 사우디에서 추방당했을 뿐 아니라, 시민권도 말소되었다.

결국 알카에다 조직원들은 자신들이 미국에 이용당하고 사우디 정부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지하드는 곧 테러로 변질되게 된다.

90년 이후 알카에다는 여러 이슬람 국가의 지하드 (사실은 내전)에 개입하였으며 이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수 많은 생명을 잃었으며, 92년 이래 본격적인 테러집단으로 변모하게 되어 2001년 결국 9/11 사태를 야기하게 된다.

이 같은 사실로 볼 때, 사우디 정부나 왕가가 테러 집단화된 알카에다를 직접 지원할 동기나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특히 9/11 테러를 위해 사우디 정부나 왕실이 알카에다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돈세탁을 돕는 등 테러에 가담했을만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반면, 텔레그래프 기사 주장대로, 사우디 정부 관계자 즉 관리 중 일부가 빈 라덴에 의해 포섭되었거나, 그의 반미 사상에 동조하여 9/11 테러에 관여 했거나 도움을 주었을 가능성 마저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랬다고 해도, 그것을 사우디 정부나 왕실의 직접적 개입이라고 봐서는 안 되며, 대표 일간지가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며 그 같은 뉘앙스로 기사를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


201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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