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탈레반은 여성을 학대할까?

 




전세계의 테러 집단은 알카에다나 IS 가 전부가 아니다.
유엔이 지정한 국제 테러 집단은 70개 단체가 넘는다.
이들은 필리핀 (ASG, RSM), 인도네시아 (JAT, JI, MIT, JAD), 중국 (ETIM) 등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IIB), 아프리카 나아지리아 (보코하람), 말리 (AAD, JNIM), 모로코 (MICG) 등을 비롯해 수많은 중동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거의 모두가 이슬람과 관련된 집단이다.
왜 이슬람 테러 집단이 성행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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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테러 집단일까?
탈레반은 아프간 탈레반과 파키스탄 탈레반으로 나뉘는데, 현재 UN 이 테러집단으로 지정한 건, 파키스탄 탈레반 Tehrik-i-Taliban Pakistan (TTP. Taliban Movement in Pakistan) 이다. 미국 역시 2020년 9월 TTP 를 테러 집단 리스트에 올렸다. 그러나, 아프간 탈레반은 테러 리스트에 없다.
즉, 현재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공식적으로는 테러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만일 미국 정부가 탈레반을 테러 리스트에 올렸다면, 2020년 2월 미국은 테러 집단과 평화 협정을 맺은 게 된다.
사실 탈레반은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기 전 아프간을 실효 지배한 정치 집단 (정부)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아프간의 탈레반은 여성 인권을 말살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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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운동(movement)' 이 성공을 거두려면, 다음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 분노
- 사상
- 돈

분노는 운동의 동기(drive) 가 된다. 스스로 억압받고 공정하지 못하게 차별받는다는 각성이 생기면, 분노가 끓어오르게 되고, 분노는 전염병처럼 번지게 된다.
그 배경은 외세의 침략, 독재, 가난 등 다양하다.
이때 분노를 폭발시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다.
그러나, 이 단계는 아직까지 분노의 표출일 뿐이다.
이런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고 제 풀에 주저앉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분노와 '운동'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운동 집단이든 그 배후에는 사상적 배경을 만드는 이론가가 있기 마련이다.
공산주의 운동에는 맑스라는 이론가가 있었고, 자본가 계급에 의해 박해받는다고 각성한 노동자 계급이 있었다.
또, 아무리 뚜렷한 명분과 사상적 배경이 있어도 '활동가'가 있어야 운동이 지속될 수 있다. 이 활동가를 만드는 힘은 바로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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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테러 집단은 그 명칭이 무엇이든 이 코스를 그대로 답습한다.
알카에다의 경우, 자신을 배척한 사우디와 서방 특히 미국이 분노의 대상이었다.
(알카에다는 1988년 창설된다. 소련은 79년 아프간을 침공해 89년 철수했으므로, 알카에다는 소련의 철수 직전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알카에다나 IS 등 대부분의 이슬람 테러 집단의 사상적 배경에는 사이드 쿠틉 (Sayyid Quṭb) 이라는 인물이 있다. 알카에다를 만든 빈 라덴에게 무장투쟁론을 주입한 인물은 사이드 쿠틉의 동생 무함마드 쿠틉 교수이다. 그는 사우디의 킹 압둘아지즈 대학 교수였다.
사이드 쿠틉은 1906년 생의 이집트 인이다. 그는 왜소한 체격을 가진 조용한 성품의 책벌레이자 학교 선생이었다. 문학 서적이나 시를 읽고, 토론하는 걸 즐기던 젊은이였고, 서방에 대한 불만이나 반감도 없었다.
이집트 교육부는 쿠틉이 42세이던 1948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주었다. 미국에서 약 2년간 머물던 중, 그는 서구 문화에 대한 강력한 적개심을 갖게 된다.
많은 학자들은 그가 미국에서 경험한 파티와 문화를 통해, 원 나잇을 즐기는 미국인들을 보며 성적 방탕함에 대한 경멸을 느꼈고, 미국에서 심각한 인종 차별을 겪으면서 서방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반면, 일부는 그가 백인 여성에게 접근했다 차이고, 실패한 유학 생활을 합리화하기 위해 주변에 분노 섞인 편지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는 귀국 후 무슬림 형제단에 가입해 그의 특기를 살려 선전부에서 일하며 이슬람 부흥 운동에 참여한다.
무슬림 형제단은 1928년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하산 알바나가 만든 이슬림 운동 단체이다. 당시 이집트는 친 서방 왕정 국가 시대였고, 하산 알바나의 무슬림 형제단이 세속주의를 반대하며 대중 속에 파고 들어가 세력을 확대하자, 위기를 느낀 왕정은 1949년 하산 알바나를 암살한다.
이로써, 무슬림 형제단의 위세가 약화 되었는데, 사이드 쿠틉이 52년 가담하며 다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쿠테타를 일으켜 왕정을 뒤집고 권력을 잡은 나세르 정권과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현재 무슬림 형제단은 가장 큰 무슬림 집단 중 하나이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이 테러 집단과 연계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
1954년 무슬림 형제단원 중 누군가가 나세르 암살을 꾀하다 실패하자, 이집트 정부는 이를 무슬림 형제단의 쿠테타로 보고, 3천명을 체포하고, 무슬림 형제단을 불법 집단으로 규정해 와해시키려 했다.
이 때, 사이드 쿠틉도 같이 체포된다. 교도소에 수용된 쿠틉은 옥 중에서 자신의 반미, 반서구 사상을 정리해 책으로 펴 낸다. 이 책의 제목이 바로 "진리를 향한 이정표 (Ma'alim fi al-Tariq, Milestones)" 이다. 이 위험한 책이 이슬람 전문가인 서 모 교수에 의해 번역되어 국내에도 시판되고 있다.
사이드 쿠틉은 형기 중 석방되었지만, 이 책을 출판하였다는 이유로 국가 반역죄로 다시 체포된 후 사형을 당한다.
과연 이 책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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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쿠틉은 세계는 자힐리야 상태라고 정의한다. 자힐리야 (Jahiliyyah)는 무지의 시대(Age of Ignorance)를 의미하며, 원래 이슬람이 태동되기 이전 시대를 말한다.
그러나 사이드 쿠틉은 지금도 자힐리야 시대이며, 모하메드가 메카에서 추방된 후 메디나에서 무리를 모아 이슬람을 재건했듯, 코란과 샤리아 율법으로 무장해 무지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싸움이 바로 지하드(Jihad) 즉, 성전(聖戰. Holy War)이다. 성전을 위해 싸우는 지하드 전사를 무자히딘 (Mujahideen) 이라고 한다.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 소련에 맞서 싸운 이들이 무자히딘이다.
참고로, 탈레반은 소련의 퇴각 후인 1993년 경 만들어졌다. 그러니 탈레반이 소련과 싸웠다고 하면 그건 틀린 말이다. 물론, 탈레반의 구성원 대부분이 소련과 싸운 무자히딘이다.
즉, 쿠틉은 이슬람과 자힐리야는 양립할 수 없으며, 이슬람은 신의 통치를 받는 반면, 자힐리야는 인간의 통치를 받으며, 이는 배교이라는 것이다.
또, 그는 인간의 주권은 없으며, 오로지 신의 주권만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 대부분의 국가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정의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인류 보편의 원리이자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쿠틉은 이를 인간의 오만이라고 주장한다. 주권은 인간에게 있을 수 없으므로, 대통령, 수상, 왕 등도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로지 알라 만이 주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알라가 주권을 가진 이슬람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상은 인도의 무슬림 알 마우두디 (Abul A`ala Maududi)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알 마우두디는 1903년 남부 인도 명문가에서 출생한 학자로 인도 민족주의에 관심을 가지다 차츰 정치에서 종교로 관심을 옮겨, 이슬람 국가론에 심취한 원리주의 이슬람 학자이다.
마우두디는 Jama’at-iIslami 라는 단체를 결성해 자신의 사상을 펼치며, 이슬람 부흥 운동 (이슬람 세계 정부 건설)을 했는데, 후에 이 단체는 Jama'at-e-Islami Pakistan 와 Jama'at-e-Islami Hind 로 나뉘게 되고, Jama'at-e-Islami Pakistan 은 파키스탄 탈레반 설립에 영향을 준다. 파키스탄 탈레반이 곧 아프간 탈레반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아프간에서 소련이 물러난 후 설립된 정부가 탈레반에 의해 무너지고, 탈레반이 이슬람 국가를 세워 통치 했던 사실을 알고 있다. 빈 라덴은 이 정부만이 올바른 이슬람 국가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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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이슬람은 표면적으로는 지하드는 세속에 물들려는 자신과 싸우라는 것이지, 총칼을 들고 이단과 싸우라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 식민 지배, 빈곤 등이 유발하는 분노는 사이드 쿠틉이나 알 마우두디와 같은 이들이 주장한 자힐리야의 척결, 이슬람 국가 건설이라는 명분과 만나 무기를 들고 지하드를 벌이게 한다. IS 역시 같은 맥락에서 Islam State (이슬람 국가)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 지하드에 참가하는 전사들은 누굴까?
이들 대부분은 분노에 쩌든 인물이거나 이슬람 국가 건설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몽상가들 일수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달리 할 일 없는 무직의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현실 불만에 의해 가담하고, 무기를 들어 자신감을 얻고,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안도감을 얻으며, 돈을 받으며 만족해 한다. 그러면서 사상가들에 의해 세뇌되고 자신이 행동이 알라에게 축복을 받을 길이라 믿으며 자살 테러를 저지르며 감정없이 사람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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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급진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 중의 하나는 와하이즘(Wahhabism) 이다.
와하이즘이란, 사우디 출신 학자인 무함하드 이븐 압둘 와합 (Muhammad ibn Abd al-Wahhab. 1703~1792)이 창시한 사상으로, 원래 이슬람 재건 운동을 목적으로 했다.
당시는 오스만 제국 중심의 이슬람 사회가 기독교 사회에 비해 뒤처지고 있었던 시기였고, 이슬람의 부흥이 필요했다.
와합의 사상의 뿌리는 이븐 타이미야(Ibn Taymiyyah. 1263~1328) 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븐 타이미야는 시리아의 신학자였는데, 당시 아랍권은 몽골 제국의 침략과 십자군 전쟁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이븐 타이미야는 이슬람 침몰의 결과가 묘지 순례, 죽은 자 숭배 등 이슬람 신비주의에 빠진 수피즘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코란과 샤리아 율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슬람 학파를 한발리 파 (아흐마드 빈 한발리가 주창) 라고 한다.
즉, 와하이즘 (와하브 파)의 뿌리는 한발리 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와합은 이븐 타이미야의 원리주의에 더해, 엄격한 종교 생활, 음주 도박 간통 금지, 여성의 외출 및 사회 생활 제재 등등 구체화시켰다.
그러나 수피즘은 와합의 시대에 더 대중적이어서, 와합은 박해를 받았다.
수피즘메블라나 루미(Mevlana Rumî)가 창시한, 한때 이슬람의 주류 종파이었으며, 이슬람이 중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불교와 인도 종교와 접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현재도 모로코, 세네갈, 체첸, 알바니아 등에서는 수피즘을 신봉한다.
수피들의 박해를 받던 와합의 사상을 지지하고 품어 준 건, 현 사우디 왕가의 조상인 사우드 부족장이었다. 와합은 사우드 부족장에 충성을 하는 대신, 사우드 부족은 와합을 보호하며 그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협약을 맺는다.
사우드 부족은 시아파를 공격하며 영토를 넓혀 메카와 메디나도 정복하며 승승장구했고, 와합과의 협약도 지켰다. 그 협약은 현재도 이어진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여전히 와하비즘을 신봉한다. 그 결과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지하드를 위해 수 많은 사우디 젊은이들이 아프간으로 가 무자히딘이 되었고, IS 사태 당시 IS 에 가담한 사우디 청년이 공식적으로만 1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우디는 지하드를 벌이는 IS 등 단체에 자금 지원을 한다.
이를테면, 사이드 쿠틉은 와하이즘에 이슬람 급진주의를 접목하고 자힐리야에 대항해 지하드를 선언하며 순교한 셈이며, 그 순교로 이슬람 무장 세력이 봉기하며 테러를 통해 이슬람 국가를 설립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살라피 지하디즘 (Salafi jihadism) 이라 하며, 이는 초국가적 글로벌 정치 집단 (이슬람 국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사이드 쿠틉을 살라피 지하디즘의 아버지라고 한다.
문제는 이슬람 부흥을 위해 코란과 샤리아 율법으로 돌아가자는 사상이 급진화 되고 비틀어져 현대 사회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의 정욕을 자극시킨다는 이유로 부르카를 입도록 강요하고 (정작 무함마드의 부인 카디자는 히잡도 거부했다), 여성의 교육을 막고, 강제 결혼시키거나 이를 거부하면 명예 살인을 일삼는 이슬람 국가는 비단 아프간 뿐이 아니다.
많은 아랍 국가들은 샤리아 율법을 국법보다 우선 한다. 샤리아는 코란과 하디스 (무함마드의 언행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사실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든 강제 규정이라 봐야 한다.
천년 전의 규율을 현대 사회에 적용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게다가 샤리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인권 탄압의 도구로 쓰고, 범죄를 합리화하고 있다.
탈레반의 여성 탄압에는 이런 역사적, 사상적 배경이 있다.
따라서, 이들의 '온건한 정부' 운운을 믿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이들이 서방과 교류, 협력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미국 정부는 철군의 댓가로 아프간 내 테러 집단 색출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아프간은 테러 집단의 온실이 될 수도 있다. 왜냐면, 언급했듯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살라피 지하디즘 즉, 서방과 싸워 이슬람 국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탈레반의 악행이 거듭되면, 경제 봉쇄를 단행할 것이고, 돈줄이 마르면 탈레반은 지하드 전사를 먹여살리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 분명하다.

그건 곧 자국 국민에 대한 약탈, 마약 판매는 물론 세계를 상대로 하는 인질 테러극이 될 수도 있다.



2021년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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