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의 승리







미국의 아프간 철수 이후 탈레반은 아프간 주요 도시를 파죽지세로 점거하고 있다.

수도 카불도 점령되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다시 점령하자, 전 세계는 미국에 대해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태는 지난 해 2월 말, 미국이 탈레반과 평화 협정을 맺고 아프간 철수 결정을 할 때 이미 예견되었다.


과연 미국은 실패한 걸까?

외교의 본질이 국익을 추구하고 국가간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미국의 아프간 철수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국의 경제와 국민 보호이다.

미국이 2001년부터 지난 해까지 아프간 전쟁에 투입한 재정은 무려 2조 달러, 2천4백 조원이다.

전쟁에 참여하여 희생되거나 부상당한 참전용사들에게 지불해야 할 보상금, 치료비는 제외한 금액이다.
게다가 전쟁 비용은 부채로 마련되었는데, 언론에 따르면 2050년까지 이자만 6조5천억달러(약 7천598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다. 미국 참전용사 2만4천명 이상, 미 직원 수천명이 전쟁에서 사망했다 (BBC 보도) . 부상자는 헤아릴 수 없다.

미국 입장에서 왜 이 전쟁을 계속해야 할까?

애초 이 전쟁의 목적은 9/11 테러를 저지른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빈 라덴이 탈레반의 보호 아래 아프간이 숨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빈 라덴은 소련이 이슬람 국가인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 무자헤딘 (성전)을 벌이기 위해 아프간에 가서 알카에다 조직을 만들어 소련과 싸웠던 사우디 부호의 아들이다.

일각에서는 빈 라덴이 미국 정보기관의 배후 아래 아프간 게릴라 등에게 무기 등 전쟁 자원을 조달하고, 동굴을 파는 토목 기술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빈 라덴은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했다.

소련이 철수하자 승리자가 된 빈 라덴은 사우디로 돌아가길 바랬으나 사우디 왕가는 전쟁 경험이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의 입국을 거부했다.

미국과 사우디 양쪽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빈 라덴은 사우디와 유럽에서 연이어 테러를 저질렀고, 결국은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른다. 그게 9/11 테러이다.

9/11 테러를 저지른 19 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빈 라덴은 CIA의 추격 끝에 2011년 5월 파키스탄에서 사살되었다. 이것으로 사실상 아프간 침공의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미국은 아프간의 민주화를 위해 무장 집단으로 변신한 탈레반과의 전쟁을 이어왔다.
미국은 아프간 정부가 국방력을 갖춰 자립적으로 탈레반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소 100 조원 이상의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군은 허수아비와 다름 없었다.

미국이 철수하자 맥없이 무너진 것이 이를 반증한다. 정부군은 피페해진 경제 속에서 월급을 받기 위해 지원한 군인이 다수이다. 실제로는 명단에 이름만 올려 월급을 받아먹거나, 가짜 이름을 올려 급여를 횡령한 간부도 수두룩하다.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자구 노력을 하지 않는 인간, 집단, 민족에는 미래가 없는 법이다.

상황이 이런데, 미국이 자국 젊은이들의 피를 계속 흘리고, 막대한 국부를 이 전쟁에 쏟을 이유가 있을까?

역사 이래 아프간을 침공한 그 어떤 제국도 결말이 좋지 못했다. 심지어 소련은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붕괴되었다. 미국은 늪에 더 깊히 빠지기 전에 발을 빼야 할 필요가 있었다.

탈레반이 다시 아프간을 점령한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2020년 2월 말, 도하에서 미국과 탈레반이 평화 협정을 맺었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할 때인데 그게 탈레반과 주변국이 될 수도 있다"


'이 일' 이란, 미군이 아프간에서 테러리스트를 제거한 일을 말하며, 그 테러리스트란 알카에다를 의미한다.

실제, 미국은 도하 협상에서 탈레반에게 내건 평화 협상의 조건이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 테러 집단이 그들이 통치하는 지역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즉, 아프간의 테러 집단은 앞으로 탈레반이 잡으라는 것이다.

만일 알카에다나 다른 테러리스트 들이 아프간에 은닉해 활동을 한다면? 이때는 미국이 다시 개입하겠다는 건데, 그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 테러 집단이 또 다시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벌인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실제 문제는 아프간에 은닉한 테러 집단이 아니라, 탈레반이다.

탈레반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이며,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구하는데, 이는 코란과 샤리아 율법으로 사회를 통치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21세기 민주주의 가치에 반하는 인권 탄압, 특히 여성의 인권 탄압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변국' 이라는 단어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프간의 주변국으로는 이란,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이 있다.

이란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시아파이고, 탈레반은 수니파이다. 이들은 상극이므로 적대적 관계라고 해도 무방하며, 이란과 아프간이 공조할 가능성은 없다.

탈레반은 아프간 뿐 아니라 파키스탄에도 있으며, 상호 협조적인데, 만일 탈레반과 파키스탄이 밀약을 맺거나 공조할 경우, 가장 타격이 큰 건 인도이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매우 적대적이며, 파키스탄은 핵을 가지고 있다.

만일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탈레반이 인도에 공격적 행위를 하면, 미국은 자연스럽게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 자체는 반미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만일 파키스탄이 아프간 탈레반과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미국이 파키스탄을 압박해 이를 강력 제지할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떨고 있는 나라, 즉 외교적으로 바짝 긴장하는 나라는 바로 중국이다.

중국을 긴장시키는 것이 바로 미군 아프간 철수의 두번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간 지도를 보면 동쪽으로 중국과 닿아 있는 긴 꼬리와 같은 땅이 있다. 이 땅을 와칸 회랑 (Wakhan Corridor) 이라고 부른다. 이 곳은 과거 실크 로드의 한 부분으로 무역로로 사용되던 곳이다.






와칸 회랑은 과거 대영제국이 인도, 파키스탄, 아프간을 점령하며 북진할 때, 러시아 제국과 부딪히며 만든 완충 지대였다. 훗날 영국은 이 완충 지대를 아프간에 넘겨주었고, 결국 아프간 영토가 된다.

문제는 이 회랑의 동쪽 끝이 중국과 닿아 있고, 그곳이 바로 신장 위구르 지역이라는 것이다. 신장 위구르는 이슬람 인들이 사는 곳이며, 동시에 중국이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 곳이다.

중국은 지금도 와칸 회랑과 맞닿은 국경을 폐쇄하며 출입을 통제한다. 이슬람인들의 출입을 허용할 경우, 신장 위구르가 봉기하거나 탈레반 테러 집단이 중국에 테러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아프간 철수를 서두르자, 중국은 재빨리 탈레반 2인자를 불러 유화 제스쳐를 펼쳤다.

어쩌면 중국은 미국이 떠나 무주공산이 된 아프간에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며 영향력을 미치며 일대일로를 펼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희망 회로를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중국 계획대로 될까?

그 가능성보다는 아프간 탈레반이 신장 위구르의 독립 조직을 지원할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는 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미국이 커다란 짐(burden)을 중국에 떠넘겼다는 것을.

앞서, 외교의 본질은 국익을 추구하고 국가간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역설적으로 적대국의 국가간 긴장을 고취시키는 것도 성공한 외교이다.

따라서 미국의 아프간 철수는, 미국 외교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물론 일각에서는 미군 철수로 아프간 주민들의 인권이 몰락하게 되었다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 대부분은 '미국은 세계 경찰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던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2021년 8월 16일




No comments

Theme images by fpm.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