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을 보고 배워라
서해안처럼 물이 탁하고 조류가 센 곳에서 다이빙하면 아무런 위험 요소가 없는 넓은 바다라도 불안해진다.
치앙라이 탐 루엉 동굴은 시계 제로의 진흙탕 물에 조류가 세서 몸이 동굴 벽에 떠밀려 부딪히는 곳도 있고, 게다가 평지을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오르내려야 한다. 그 중에는 폭이 40 cm 이내로 좁은 곳을 통과해야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공기통을 벗고 누군가 공기통을 받아줘야 빠져나올 수 있다.
좁은 동굴이므로 날카로운 바위에 부딪혀 외상을 입을 수도 있고, 머리를 심하게 다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동굴 5km 끝에 아이들이 있었다.
6월 23일 아이들은 동굴 투어를 갔다. 12명의 유소년들과 25세의 젊은 코치.
이들은 동굴 입구에 들어선 후 갑작스런 폭우로 물이 차오르자 동굴 안쪽으로 대피해 들어갔다. 그리고 고립.
부모들은 고립 직전 코치가 페이스북에 올린 동굴 안 선수 사진을 보고 복귀하지 않는 아이들이 실종되었음을 알아차리고 소방서에 신고함으로써 수색이 시작되었다.
이 날이 실종 다음 날인 24일.
태국 당국은 경찰, 군 등 1천명 이상을 동원해 수색에 나섰다. 이 때 동굴 입구에서 아이들의 신발, 자전거 등이 발견되었다. 동굴은 이미 침수되었고, 구난 전문 다이버와 특수부대원이 필요했다.
수일 후 태국 당국의 요청을 받은 미 인도태평양 사령부 구조대원 30명을 비롯해 영국, 호주, 독일, 이스라엘, 벨기에, 스웨덴, 중국, 일본, 미얀마, 라오스 등에서 구조대들이 속속 치앙라이로 집결했다. 이들 모두가 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온 것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다이빙 장비를 챙겨 자비로 온 이들도 있었다.
이제 이들이 할 일은 동굴을 따라 들어가 아이들을 찾는 것이다. 아이들이 동굴 입구에서 1km 떨어진 곳에 있을 지, 10km 떨어진 곳에 있을 지 아무도 모른다. 구조대 대부분은 탐 루엉 동굴 다이빙이 처음이므로 어디에 진입로가 있는 지도 모른다.
시야 제로의 진흙탕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가며 출구를 찾아내야 한다. 게다가 동굴은 하나의 튜브가 아니라 여러 갈래의 구멍과 길이 있을 터이다. 이를 모두 확인해야 한다.
이들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로프를 설치하고, 곳곳에 공기 탱크를 옮겨두었다.
렁(Lung)이라고 부르는 공기 탱크는 수심에 따라 소모되는 양이 다르지만, 얕은 수심에서는 한 시간 정도 사용이 가능하다. 만일 두개의 렁을 쓰면 두 시간 잠수할 수 있지만, 좁은 통로에서 투 렁을 메고 이동하는 건 어렵다.
이렇게 공기 통을 옮기고 로프를 설치하며 5km를 전진하는데 5일이 걸렸다.
선두에 선 영국인 동굴 구조 전문가 존 볼랜던과 리처드 스탠턴은 소방관 출신으로 이미 여러 사고 현장에서 활약한 바 있는 베테랑들이었다. 이 둘은 태국 정부의 요청으로 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잠수로 로프를 설치하며 전진하다가 잠깐 쉬려고 물 밖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작은 진흙 언덕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날은 7월 2일, 고립된 지 열흘만이다. 후에 구조대는 아이들이 있는 위치를 "파타야 비치"라고 명명했다.
아이들은 영국인들을 보고 헬로! 라고 인사했다. 고립된 13명 중 영어를 할 수 있는 아이는 아둘이라는 이름의 소년 한 명 뿐이라고 한다. 아둘은 무국적자 난민으로 난민 보호시설에서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알려진대로 이들 중 아이 3명과 코치는 무국적 난민이었다. 태국 접경 미얀마 등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들 중에는 이렇게 국적이 없는 체 난민 생활을 하는 이들이 30만명 이상 있다.
아이들은 고립된 후, 코치의 지시에 따라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먹으며 열흘을 견뎠다. 다행인 건, 원래 이 동굴 탐험이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래서 약간의 생일축하용 음식이 있었고, 그것으로 견딜 수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코치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자신은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이 와중에 태국 정부와 자원봉사자들은 동굴 수위가 높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 펌프를 가동했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우기가 끝나는 4개월간 견딜 수 있는 식량을 준비해 두었다.
또, 공기통을 옮기는 과정에 전직 태국 네이비 씰 상사가 사망하는 불상사도 있었다. 그는 공기통을 옮겨 놓고 복귀하는 과정에서 산소 부족으로 사망했는데, 이는 밀폐된 동굴 속 공기의 산소가 거의 다 소모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구조대는 서둘러 동굴 안으로 산소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발견되었으니, 이제 이들을 동굴 밖으로 꺼내와야 할 차례이다.
아이들 발견 후 구조대는 파타야 비치에 물과 음식, 담요 등을 옮기고, 전화선을 가설했다. 또, 의사와 간호사, 특수부대원 등도 아이들과 함께 있도록 조치했다.
구조가 시작되자 의견이 분분했다. 아이들이 5~6 시간에 걸쳐 동굴 잠수를 하며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잠수하기에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의료진의 의견도 있었다.
동굴 잠수는 다이빙 분야 중 가장 고난도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시야가 제로이고 좁은 동굴 속에 끼면, 패닉에 빠질 수도 있다.
잠수 중 패닉에 빠지면, 호흡이 가빠져 공기 소모량이 급격히 늘 뿐 아니라, 과호흡으로 혈중 이산화탄소 양이 급감하면서 불안감, 손발 떨림 등의 증상과 함께 심할 경우 실신할 수도 있다.
바다에서 패닉에 빠지면, 무조건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려고 발버둥치거나 자기도 모르게 페이스 마스크를 벗어버리기도 한다. 잠수 중 급상승은 공기색전증을 유발해 잠수병의 원인이 된다.
다른 방법은 우기가 끝나 침수된 동굴의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이들이 적어도 4개월은 더 동굴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동안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결국 발견 1 주일 후 7월 8일 구조대는 구조 작업을 감행한다.
두 명의 다이버가 들어가 한 명의 아이들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동굴 입구에서 전문 동굴 다이버가 파타야 비치까지 가는데는 6 시간이 소요되고, 빠져 나오는데는 5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 시간 내내 잠수를 하는 건 아니지만, 동굴 대기의 산소 농도가 낮은 걸 고려하면 파타야 비치까지 들어갈 때 공기통은 적어도 5개, 나올 때는 적어도 4개가 필요했을 것이다.
즉, 두 명의 다이버가 들어갈 때 8개의 렁이 필요하고, 나올 때는 12개의 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3명 모두를 구조하는데에는 다이버 용까지 거의 300개의 렁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이 많은 공기통을 중간 중간 미리 옮겨둬야 한다. 좁고 시야가 나오지 않는 동굴에서 잠수한 체 공기통을 옮기는 건 보통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결국, 7월 8일 4명의 아이가 구조되었고, 9일에 다시 4명의 아이가 무사히 구조되었다. 10일에는 마지막 5명까지 전원 무사 구조되었다. 먹지 못해 가장 건강 상태가 나빴던 코치는 아이들을 모두 내 보내고 마지막으로 나왔다.
언론을 통해 이 구조 작업을 총괄 지휘한 치앙라잉 주지사 (나롱삭 오솟타나꼰)의 리더십이 주목 받았다. 그는 이미 6월 말 파야오 주 주지사로 발령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구조 작업을 지휘했다. 언론에 따르면 그는 지질학과 엔지니어링 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리더십이 남달라 보이는 건, 다국적 구조팀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이들이 충돌없이 일사분란하게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휘, 보조하고, 실종 아이들 발견 후 구조 방법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때 결단을 내려 신속히 구조해 냈으며, 언론을 적극적으로 통제해서 아이들과 가족들이 상처받지 않게 면밀히 조치한 것 등이다.
어떤 대형 재난 현장이든 국제적 관심사를 받으면 세계 곳곳에서 자발적 자원봉사자, 구조대가 몰려오기 마련이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몰려오면 온갖 혼란이 야기되기 쉽다.
구조 능력의 수준 차가 크고 온갖 말은 많은데다가 불평불만도 많다. 게다가 지휘 본부는 구조 활동을 물론 이들도 돌봐야 한다.
다국적 구조대는 언어 소통의 문제는 물론 지휘체계가 먹히기도 어렵다.
언론 통제도 문제이다. 이번 사고처럼 전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 지역 언론은 물론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모두 현장에 취재 캠프를 차리고 먹이를 노리는 늑대처럼 어슬렁거리며 취재거리를 찾기 마련이다.
마땅한 취재거리가 없으면 주변인을 찾아가 엉뚱한 소문을 양산하기도 한다. 잘못된 언론 보도로 지휘 본부가 공격받으면 구조는 뒷전이고 언론 대응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이번 구조 과정 중 이런 사태는 거의 없었다.
철저한 언론 통제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알 권리'를 들이댔을 것이다.
심지어 3일에 걸쳐 구조된 아이들의 신원도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 나중에 구조되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실망할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모두 병원으로 이송된 후 격리조치되었다. 건강에 크게 문제는 없지만, 장기간 동굴 속에 체류하면서 생길 수 있는 질병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질환은 히스토플라즈마 증(Histoplasmosis)인데, 이는 박쥐 배설물에서 발견되는 곰팡이 균에 의한 호흡기 감염증이다. 히스토플라즈마 증은 감염 초기에 특별한 증상이 없을 수 있으며, 잠복기는 2 주 이상이므로 적어도 2주는 격리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히스토플라즈마 균은 사람 간에는 전염 가능성이 없어, 굳이 가족과 격리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다른 질환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여러 영웅들의 헌신적 노력과 코치와 주지사의 특별한 리더십으로 13명의 "무 빠(멧돼지라는 뜻의 축구 팀 이름)"들이 17일 만에 무사히 가족 품 안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한편, 선실 안에 있으라며 자신들은 몰래 빠져나온 선장과 선원들, 모두 다 구조됐다며 불확실한 정보를 무단히 오보낸 언론, 실력도 수준도 안되면서 페스티발 가듯 몰려가 불평을 늘어놓으며 혼란을 야기한 무책임한 자원봉사자, 듣보잡 다이빙 벨을 들이대며 구조대를 진 빼게한 자, 에어포켓 운운하며 헛된 희망으로 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막은 이들, 잠수함 충돌 설 등 온갖 유언비어를 날조한 이들, 이런 자들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우왕좌왕한 지휘 본부 등등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 내내 비교되며 오버랩된다.
능력도 격도 수준도 한참 미달인 나라. 그게 세계 교역량 10위 권 안에 있다는 이 나라의 현실이다.
태국을 보고 배워야 한다.
2018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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