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쿠르드 족 공격의 책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을까?
미국이 시리아 주둔 미군을 일부 철수시키자, 터키는 기다렸다는듯이 쿠르드 족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여 민간인 8명을 포함해 15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미국이 철수시킨 미군은 50명에 불과했다.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은 9일 트위터를 통해 쿠르드 노동당에 대한 '평화의 샘(Operation Peace Spring)' 작전을 개시한다고 알렸다.
이 때문에, 쿠르드 족 학살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향하고 있다.
그럼, 이 사태의 잘못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을까?
미군의 시리아 철수는 이미 지난 해 말 결정된 사안이다. 2018년 12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미군 철수를 앞두고 터키 대통령과 통화를 통해, ‘미군이 철수해도 시리아에서 IS를 몰아낼 수 있느냐?’ 물었고, ‘쿠르드 족에 손대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미군 철수 계획이 발표되자, 터키는 대놓고 쿠르드 족을 공격할 태세를 취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하게 보복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언론이 터키의 쿠르드 족 공격의 책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는 트위터를 통해 ‘쿠르트 족을 손대면 터키 경제를 휩쓸어버리겠다’고 격분했다.
그러자 또 일부 언론은 이걸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말 바꾸기’라고 비난한다.
미운 털이 박혔으니 뭘 해도 미울 것이다.
터키는 작은 나라가 아니다. 인구 8천만명의 상당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강국이다. 또 동서양을 잇는 지정학적 위치에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요한 나라이다. 미국은 터키에 핵미사일을 배치해 두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은 왜 나라도 없는 소수 민족에 신경을 써야할까?
그건 단지 약자의 배려나 쿠르드 족의 친미적 성향 때문은 아니다. 쿠르드 족은 시리아 내전과 IS퇴치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단지 그에 대한 보상 때문도 아니다.
만일 미국이 대놓고 쿠르드 족을 방치하거나 터키가 쿠르드 족을 공격하는 것을 방관할 경우, 쿠르드 족이 반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쿠르드는 알카에다 이상의 테러 집단이 될 수도 있다.
알카에다의 예를 보자.
과거 소련이 아프칸을 침공하자, 사우디 등 이슬람 국가에서는 같은 무슬림인 아프칸 국민을 도와야 한다며 아프칸으로 몰려가 소련과 싸웠다. 미국 역시 소련의 남하를 막는다는 핑계로 아프칸 저항세력에게 전쟁 물자와 무기를 지원하며 도왔다.
이 저항세력이 바로 소련과 맞서 싸우기 위해 봉기한 무자헤딘이다.
무자헤딘을 지원하기 위해 사우디에서 건너간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사우디에서 건설 유통으로 큰 부를 일궜던 자이다. 오사마 빈 라덴 역시 미국의 사주를 받고 전쟁 물자 등을 아프칸에 유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학 시절 그의 전공을 살려 아프칸 민병대들이 산속에 동굴을 파 소련군을 상대로 한 게릴라 전을 펼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프칸에 모인 무슬림들은 오사마 빈 라덴을 중심으로 알카에다를 구성하고 소련과 싸웠다. 소련의 오랜 아프칸 침공으로 소련의 경제는 급락했고, 결국 스스로 물러난 후 오래지 않아 소련은 붕괴했다.
그러나 승전군이 된 알카에다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사우디 왕가는 실전 경험이 충분한 알카에다가 귀국 후 왕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킬까봐 입국을 거부했고, 이들은 미국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들은 테러 집단으로 변모하여 사우디는 물론 세계 전역을 상대로 테러를 저질렀고, 결국 911 사태를 일으키게 된다.
911 이후 미국의 아프칸 침공, 이라크 침공 등 전쟁과 집요한 추적 끝에 알카에다 세력은 상당히 와해되었지만, 그 불씨마저 사라진 건 아니다.
만일 쿠르드 족이 미국으로부터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았다고 판단할 경우,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건 싸움을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쿠르드 족의 인구는 3500만명에 이르며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터키 인구 중 20%, 이란 인구 중 10%, 이라크 인구 중 17%가 쿠르드 족이다.
또, 대부분이 수니파 이슬람으로 이들이 봉기할 경우,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들을 지원할 것이 분명하다.
이들은 과거로부터 온갖 시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전투력이나 용맹성은 자타가 공인하며, 비록 독립 국가가 없을 뿐 국가의 형태를 구성해 조직력도 뛰어나 이들은 알카에다 같은 사조직과는 비견할 수 없는 파괴력을 지닐 수 있다.
미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을 하찮게 보고, 터키 손을 들어준다? 가당치 않은 일이다.
오히려 터키는 지금 ‘독재국가’화하고 있고,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미국에 미운 털이 잔뜩 박혀 있다. 오죽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를 휩쓸어버리겠다’고 발언할까.
실제, 지난 해 말 터키가 쿠르드 족을 공격하자 터키에게 무역 보복, 관세 보복을 가해 터키 리라화가 급락하고, GDP 1천억불 이상 손해를 보았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대 중동 정책의 기조는 ‘중동 문제는 중동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미국의 기조는 ‘중동 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균형의 유지’이었다.
시리아 사태의 예를 봐도 알 수 있다.
2017년 4월 경만 해도 미국은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듯 보였다. 당시 전 틸러슨 국무장관 니키 헤일리 주 유엔 대사는 모든 외교 라인을 총동원해 러시아와 중동 국가들을 상대로미국과 공조 혹은 시리아 정권 유지 중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당시 미국은 알 아사드 정권을 축출해 시리아 문제를 매듭짓고 전세계 독재 정권에 본보기를 보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을 보이려는 듯 했다.
그러나 2018년 12월 방향을 선회하며 시리아 사태에서 손을 떼고, 미군 철수를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의 정치적 배경은 여러가지이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일 것이다. 알 아사드를 제거할 경우, 러시아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고, 시리아 내 권력 부재 상태를 초래할 경우 더 큰 혼란과 희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에너지 자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과거 기조에 충실한 미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정책에 불만이 많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역시 시리아 미군 철수에 반대하며 결국 사표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은 시리아 사태에 더 개입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은 ‘미국이 경찰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냐’는 비난을 사고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의 비난이 거세다. 그러나 그들은 입만 살아 있지 실제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며 피를 흘릴 생각은 없다.
터키의 쿠르드 족 공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비난은 사실 공허한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지 지구의 대통령이 아니다. 물론 그는 터키의 행태를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다. 그건 미국의 국익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결론은 이거다.
국가 간의 공평, 평등, 정의란 없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뿐이다. 때론 그것이 호혜, 구제, 정의란 이름을 쓰고 있다고 해도, 결국 자국의 이익으로 돌아올 때 뿐이다.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다. 한국 전쟁 당시 16 개국이 파병해 준 건, 한민족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공산주의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제 역할을 다하고, 타국의 이익에 부합할 때 우리도 존중받고 보호받을 수 있을 뿐이다. 막연히 우리가 어렵고 곤경에 처할 때 누군가 달려와 도와줄 거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린 과연 그렇게 하고 있을까?
2019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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