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 단상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특징은 해외 제도를 차용해 들여올 때 '한국화' 한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한국화'이지 제도를 도입하는 측의 입맛에 맞게 각색하고 덧칠해 아예 제도를 왜곡하고 변질시켜 버리기 일쑤이다.

그 대표적인 게 포괄수가제(DRG)이다.

그 뿐 아니다. 크고 작은 제도가 복지부, 심평원, 공단 등의 이해 관계에 따라 애초의 취지를 망각한 체 명칭만 가져다 쓰고 본래의 취지는 버려진다. 그러면서 '이건 외국에서도 도입한 제도'라고 우긴다.

이들 기관 뿐이 아니다. 의료계도 못지 않다. Hospitalist 제도 도입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서울대가 사실상 PA 를 CPN(Clinical Practice Nurse) 이란 명칭으로 바꿔, 사실상 공식화하겠다고 나섰다. 아무리 명칭을 바꾼들, 이들은 간호사일 뿐이다.

의료법 제 2조에 따라,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하에 진료의 보조 업무 만 할 수 있다. 즉, 간호사는 간호 업무를 제외한 독자적 진료 업무를 할 수 없다. 진료란,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는 제반 행위를 말한다.

오해마시라. PA (Physician Assistant) 제도 도입을 전격 반대하자는 게 아니다. 이 제도 도입의 필요성, 당위성, 파장, 부작용 등을 모두 차치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만일 PA 제도 도입이 세계적 추세이고, 정말 필요하다면 적어도 해외에서 하듯 제대로 해야 한다.

우선,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이 제도를 먼저 도입해 쓰기 시작한 국가들은 간호사를 가르쳐 PA 로 쓰지 않는다.
미국은 4년제 대학 졸업 후 3년, 다른 나라도 최소 2~3 년의 full time 교육을 거친 후 일정 시험에 통과해야 PA 자격을 준다. 즉, master degree 를 취득해야 하는 것이다. 간호대학을 나온 간호사도 이 과정에 응시해 교과 과정을 거친 후 PA가 되는 것이다.

만일 한국에서 이들 나라와 같이 4년제 대학 + 3년 석사 과정을 거쳐야 PA 가 될 수 있다고 하면 과연 얼마나 많은 현직 간호사들이 PA 자격 취득을 위해 사직하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PA 과정을 밟을까?

모르긴 몰라도 현재 PA라고 활동 중인 간호사의 10%도 응모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어찌 아느냐?

전문간호사 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제도는 2004년 교육과정이 시작한 이래 2017년 현재 38개 대학 680명 정원의 과정이 설치 되어 있으나,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전문간호사 제도는 간호사들에게 '신 포도'와 같다.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의료법에 전문간호사 자격 규정은 있지만, 명확한 업무범위나 자격요건에 대한 세부사항이 없어, 전문간호사 제도 활성화를 막는다 보고, 2017년 세부 규정을 담아 의료법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핵심을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전문간호사 제도의 문제점은 진입 장벽이 높고 (간호사 현장 경력은 물론 별도 교과 과정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전문간호사 자격이 오히려 취업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즉, 전문간호사는 병원이 딱히 선호하는 인재 pool이 아니다. 자격 만큼 급여는 더 줘야하지만, 딱히 쓸모(?)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병원의 각종 업무에 전문간호사를 필수 인력으로 지정하도록 법령을 바꾸면 되는데, 그러나 이건 또 병원이 반대할 것이며, 굳이 왜 전문간호사 제도를 활성화해야 하냐는 의문이 남는다.

결국 전문간호사를 PA로 활용하겠다는 일각의 의도는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병원들은 업무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게 기왕의 전문간호사를 새로 교육해야 하고, 이미 PA 역할을 하고 있는 RN 들과 충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애당초 병원이 의사의 업무를 PA 라는 미명 아래 RN 들에게 맡기는 행위는 인건비를 줄여보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물론 병원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낮은 급여비, 보험 수가로 그 업무를 모두 의사에게 주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게 모든 이유는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편법에 편법을 더하다 보니, 수련은 엉망이 되어가고 의료서비스의 질은 악화되고 의사와 간호사, 의사와 의사의 갈등은 깊어만 간다.

다시 말하지만, PA 제도가 절대악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필요악일수도, 필수불가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려면 제대로 해라.

앞서 시행한 외국처럼 별도의 교과 과정을 만들고 이를 이수하도록 하고 시험을 치뤄 자격을 취득한 이들로 한정해야 한다.

그러나 모르긴 몰라도, 그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이 나라의 종특이므로...


2021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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