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싱 박사와 코티졸


Harvey William Cushing

의학에는 인명이 붙은 세포나 병명, 증후군 등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은 아마도 “쿠싱(Cushing)”이 아닐까 싶다.

예일, 존스 홉킨스, 하바드 대학 등의 신경외과 교수를 지낸 하비 윌리암 쿠싱(Harvey William Cushing)은 현대 신경외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의 이름이 붙은 의학 용어로는 쿠싱 씨 병(Cuhing’s disease), 쿠싱 씨 증후군(Cuhing’s syndrome), 쿠싱 반사(Cushing reflex), 쿠싱 트라이어드(Cushing triad), 쿠싱 씨 궤양(Cushing’s ulcer) 등이 있으며, 심지어 직접 고안한 수술 기구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쿠싱 효과, 쿠싱 반응, 쿠싱 현상, 쿠싱의 법칙 등으로도 불리는 쿠싱 반사(Cushing reflex)는 뇌압이 증가할 경우 쿠싱 트라이어드(Cushing triad)를 초래한다는 것인데, 이 트라이어드는 혈압이 증가하고, 호흡이 불규칙해지며, 맥박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런 현상은 뇌출혈 진단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며, CT, MRI가 널리 사용되는 지금도 뇌출혈 환자의 초기 진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뇌출혈에서 뇌압과 함께 혈압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예로 지주막하 출혈의 경우 뇌압이 높지 않아 혈압이 증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뇌압이 증가한 환자는 위궤양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쿠싱 씨 궤양(Cushing’s ulcer)이라고 부르며, 단지 속이 쓰린 정도가 아니라 위 천공이나 위장 출혈을 보일 정도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쿠싱 박사의 가장 기록할만한 업적은 쿠싱 증후군(Cuhing’s syndrome)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증후군(syndrome)이란 여러 증상의 집합을 말한다.

쿠싱 증후군은 다음과 같은 증상들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즉, 고혈압, 복부 비만과 함께 상대적으로 가늘어진 팔 다리, 달덩이처럼 둥글고 붉은 얼굴, 양 어깨 사이에 튀어나온 살집, 약해진 뼈와 근육, 늘어지고 잘 아물지 않는 피부, 여드름 등이 그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흡사 ET를 연상하면 된다.
Cushing Syndrome



쿠싱 증후군이 생기는 이유는 어떤 이유로든 코티졸 (cortisol)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스테로이드 (Steroid)의 종류


코티졸은 스테로이드의 한 종류이며, 스테로이드는 인체에서 만들어지는 수 많은 호르몬(hormone) 중 하나이다.

호르몬은 인체 장기나 조직에서 만들어져 분비되는 분비물이며, 침, 담즙 등의 분비물과 다른 것은 분비물이 분비되는 관(duct)이 없이 혈관으로 분비되어 혈액에 섞여 이동된다는 것이다.

호르몬은 기본적으로 목표 세포에 특정 신호를 전달하는 기능을 가지며, 인체의 항상성(homeostasis)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르몬에 의해 인체는 성장을 자극받거나 억제되고, 잠이 들거나 깨며, 감정이 바뀌고, 면역 기능이 활성화되거나 억제 되며, 짝짓기를 준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유지된다.

스테로이드는 4개의 링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유기화합물로 사람은 물론, 동물, 식물, 심지어 곰팡이에서도 만들어진다.

인체에서 만들어지는 스테로이드는 크게 성호르몬과 코티코스테로이드로 나눌 수 있는데, 안드로젠, 에스트로젠, 프로게스테론 등의 성호르몬은 난소, 정소, 태반 등에서 만들어지며, 알도스테론, 코티졸 등의 코티코스테로이드는 콩팥 위에 삿갓처럼 놓여져 있는 부신에서 만들어진다.

adrenal gland (부신)의 위치


즉, 코티졸은 부신 피질에서 만들어지는 코티코스테로이드의 한 가지이다.

모든 스테로이드는 콜레스테롤을 재료로 만들어진다.

역설적으로 콜레스테롤이 없다면 스테로이드를 만들 수 없다. 과거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굴을 정력제로 여겨 하루에 50개씩 먹었다고 하는데, 굴에 콜레스테롤이 풍부하고, 그래서 성호르몬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인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콜레스테롤은 프로게스토젠(progestogen)이라는 모든 스테로이드의 전구 물질로 바뀌면서 스테로이드 합성이 시작된다.

steroid synthesis pathway



프로게스토젠은 효소에 의해 수소가 하나 떨어져나가면서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으로 바뀌는데, 이 호르몬은 자궁 내막의 주기적 변화 즉, 생리 주기를 조절하고, 임신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프로게스테론은 다시 효소에 의해 OH 기가 하나 붙게되면서 코티코스테로이드(corticosteroid)로 바뀌게 된다.

프로게스토젠은 남성호르몬인 안드로젠(androgen)으로도 바뀌며 효소의 마법에 의해, 안드로젠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토로젠(estrogen)으로 바뀐다.

즉,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은 모두 화학 구조에 산소와 수소가 하나 더 붙거나 덜 붙는 차이 밖에 없으며, 산소, 수소 한 두개로 엄청난 차이의 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코티졸(cortisol)의 생산과 기능


스테로이드는 각각의 기능이 있는데, 이 중 코티졸 즉, 코티코스테로이드(corticosteroid) 중 하나인 글루코코티코이드(glucocorticoid)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코티졸은 부신, 정확하게는 부신의 껍데기에 속하는 피질(adrenal cortex)에서 생성되는데, 이의 생성은 복잡한 내분비계 기전에 따른다.

우선, 부신 피질의 코티졸 생산은 뇌하수체 전엽(anterior pituitary gland)에서 분비되는 ACTH(Adrenocorticotropic hormone)의 조절을 받는다.

(뇌하수체는 뇌 밑에 땅콩처럼 매달려 있는 작은 장기이다.)


pituitary gland (뇌하수체)의 위치


즉, 뇌하수체 전엽에서 ACTH의 생산이 늘어나면 이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부신 피질에서 코티졸 생산도 증가하며, 반대로 ACTH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코티졸 생산도 중단된다.

쿠싱 씨 병(Cuhing’s disease)은 뇌하수체 전엽에 생긴 종양에 의해 ACTH가 과도하게 만들어지고, 덩달아 부신에서 코티졸의 생산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병이다.

즉, 쿠싱 증후군을 보이는 경우 중에서 뇌하수체 전엽의 종양으로 야기되는 경우를 쿠씽 씨 병이라고 한다. 쿠싱 증후군과 쿠싱 씨 병의 정의는 이렇게 차이가 난다.

뇌하수체의 ACTH 생산은 시상하부 (hypothalamus)의 영향을 받는다. 시상하부는 뇌의 시상(thalamus)과 뇌간(brain stem) 사이에 있는 특정 부위이다.

시상하부에서는 ACTH 생산을 촉진하도록 하는 CRH(Corticotropin-releasing hormone)를 분비되며, 결과적으로 CRH는 ACTH의 생산을 촉진하고, ACTH는 코티졸의 생산을 촉진하게 된다.

코티졸은 제 기능을 다하고 주로 담즙이나 소변으로 배출되는데, 혈중 코티졸의 농도가 떨어지거나, 코티졸이 필요한 경우 CRH-ACTH-Cortisol 의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반대로 코티졸의 농도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CRH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코티졸의 생산도 중단된다.

이를 호르몬의 네가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코티졸은 왜 만들어지고 어디에 쓰일까?

좀 쉽게 이해하자면 코티졸은 인체가 장기적 위기에 대응하도록 하는 호르몬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체가 위험에 부닥쳤을 때 대응하도록 하는 대표적인 호르몬은 사실 에니네프린이다. 아드레날린이라고도 불리는 이 호르몬은 부신과 신경세포에서 만들어지는데 심박출량을 증가시키고, 동공을 확대하며 혈당을 올리고 혈압을 올리며, 기관지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싸우거나 도망칠 수 있도록( fight-or-flight response) 대처하게 한다.


fight-or-flight



아드레날린이 급박한 위험에 대처하도록 한다면, 코티졸은 좀 더 지속적인 위험 특히 스트레스에 대응하도록 한다.

코티졸이 분비되면, 혈당을 올리는데, 우선 간이나 근육 등에 저장되어 있는 글라이코겐(glycogen)을 다시 글루코스(glucose) 즉 포도당으로 바꾸는 방법(glycogenolysis)을 쓰거나, 단백질이나 지방을 재료로 포도당을 만드는 방법(gluconeogenesis)을 쓴다. 글라이코겐은 쓰고 남은 포도당을 저장하기 위한 통조림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포도당이 세포로 전달되는 것을 감소시켜 포도당 사용을 억제하도록 하는 방법도 쓴다.

이 같은 효과는 인슐린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기능을 갖는 것이다. 췌장에서 생산되는 인슐린은 혈중 포도당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도록 세포막을 열어주고 포도당이 글라이코겐으로 저장되도록 한다.

코티졸은 또한 콜라젠과 같은 단백질의 합성을 억제하여 상처 치료를 지연 시키며, 염증을 유발하는 물질을 억제한다.

염증은 말초 혈관을 확장시켜 백혈구의 이동을 촉진하고 조직을 붓게해서 바이러스나 세균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그 결과 통증이 생기고 움직임을 둔화시키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다.

코티졸은 면역 기능 중 B cell이 관여하는 항체 생성을 억제하고, T cell의 증식도 막는 방식으로 면역을 억제하기도 한다.

또 항체 등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거나 체내 단백질을 쪼개기 때문에 근육이나 인대 등이 약화되는 것은 물론 뼈도 약해진다. 콘크리트가 시멘트와 자갈로 만들어진 것처럼 뼈는 시멘트에 해당하는 단백질과 자갈에 해당하는 칼슘 등 미네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단백질이 빠져 나가는 경우를 골다공증(osteoporosis)라는 부르며, 칼슘 등 미네랄이 빠져나가는 경우는 골연화증(osteomalacia)라고 한다.

즉, 코티졸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골다공증이 생길 수 있다.

코티졸이 단백질을 쪼개거나 합성을 억제하고 염증을 줄이고 면역 기능을 억제하는 기능은 매우 중요한 의학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위산 분비를 촉진하고, 아드레날린과 함께 작용해 충격을 받았던 특별한 기억을 만드는 것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역시 미래에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기전으로 생각되어진다.

코티졸은 메이요 클리닉의 Edward Calvin Kendall 박사에 의해 최초 분리되었고 (그는 갑상선 호르몬도 최초 발견했다) 그 공로로 노벨 상을 받았으며, 1949년 최초 합성되어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는 약물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류마치스 관절염과 같은 질환에 합성 코티졸을 투여하면 염증이 가라앉고 통증이 사라진다.

류마치스 관절염은 관절막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 스스로 자기 몸을 공격하는 대표적인 자가면역 질환이다.

그외에도 루푸스(SLE)와 같은 자가면역 질환 치료에 반듯이 필요한 약물이며, 과도한 면역 기능으로 야기되는 질환 특히, 기관지 천식, 알러지, 알러지에 의한 아나필락시스 등에 필수 약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글루코코티코이드를 합성할 경우 코티졸의 4~5 배 강한 효과를 갖는 약물(프레드니솔론)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25~80 배 효과를 갖는 약물(덱사메타손)을 만들 수도 있다.

합성 코티졸은 명약이기는 하지만, 매우 위험한 약이기도 하다.

우선, 코티졸을 오래 사용할 경우 위에서 언급한 쿠싱 증후군이 생긴다.

팔다리 근육은 위축되어 가늘어지고, 식욕 증진과 지방의 재분배로 내장 지방이 늘어나면서 중심 비만이 생기고, 뼈와 근육이 약해지면서 골다공증과 골절이 생기며, 면역 기능의 억제로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이렇게 외부에서 코티졸을 계속 주입하여 생기는 쿠싱 증후군을 의인성 쿠싱 증후군(iatrogenic Cushing syndrome)이라고 한다.

이 경우 심지어는 급사하기에 이른다.

합성 코티졸을 장기 복용할 경우, 뇌하수체는 CRH를 분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덩달아 뇌하수체는 ACTH를 만들지 않으며, 결국 부신은 코티졸을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부신 자체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필요하거나 많이 쓰면 발달하고 (이를 hypertrophy라고 한다), 반대로 쓰지 않거나 쓸모 없게되면 퇴화되는데 (이를 hypotrophy라고 한다) 만일 이 때 외부에서 합성 코티졸을 갑자기 중단할 경우, 스트레스에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에 급사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합성 코티졸을 사용할 경우에는 점진적으로 약 용량을 줄여나가 부신이 서서히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한 때, 명의 혹은 유명 약국이라고 소문난 곳에서 합성 코티졸을 남발하였던 적이 있었다.

특히 관절염 등으로 고생하는 중년 여성, 노인들이 특효약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구입해 장기 복용했다.

이를 복용하면, 우선 식욕이 당기고, 살이 오르고 통증이 가신다. 부기가 가라앉는 것 같고 병이 낫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약국 뿐 아니라 한의원들이 한약에 스테로이드 알약을 갈아 넣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실제, 한약 성분 중 코티졸과 유사한 스테로이드가 함유한 약재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병원에서는 코티졸의 이 같은 부작용을 회피하기 위해 스테로이드의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며 염증을 줄일 목적으로는 이른바 NSAID(Non-steroidal anti- inflammatory drug. 비스테로이드 항염제)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201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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