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Ads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지난 2003년 대법원은 '나쁜 사례'를 남겼다.

나쁜 사례가 내려진 사건은 다음과 같다.


Y대학 모 부속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병실에서 현금과 카드가 든 지갑을 도둑 맞았다. 도둑맞은 입원 환자는 도난의 책임이 병원에 있다며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했다.

이 사건 1심은 병원에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으나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고,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경우에 있어서, 병원은 진료 뿐만 아니라 환자에 대한 숙식의 제공을 비롯하여 간호, 보호 등 입원에 따른 포괄적 채무를 진다"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다63275)

병원이 입원 안내문을 통해 귀중품 현금을 지참하지 말라고 하였고, 경비업체를 고용하여 순찰하도록 한 것은 감안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병실에 출입하는 면회객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으며, 경비 인력을 늘리지 않았고, 시정장치가 있는 사물함을 제공하지 않는 이유를 들어, 입원 환자에 대한 포괄적 책임이 있는 병원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례는 실정법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지난 해 말, 부산지방법원은 입원 환자 간의 폭행치사 사건에 대해 마찬가지로 입원 환자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들어 병원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법원은 2003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외에도 수술 6일째인 환자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외상성 경막하출혈이 발생한 사건에서도 병원에 책임을 문 사건이 있었으며, 옷을 걸어달라는 환자의 요구를 받은 간병사가 간이 침대에 올라가 옷을 걸다가 간이 침대가 돌아가 넘어지며 척추 압박골절된 사례에서도 병원에 책임을 물었다.

환자 숙식, 간호, 보호 등 입원에 대해 포괄적 책무를 진다는 건, 결국 입원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불상사가 생기면 병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환자의 주의 의무 따위는 없는 걸까?

서랍에 돈을 넣어두면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주의 의무, 바닥이 젖어 있으면 미끄러질 수 있다는 주의, 바퀴가 달린 간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가 바퀴가 미끄러지면 다칠 수 있다는 주의 따위는 필요 없는 걸까?

그런 주의를 하든 하지 않든 일단 불상사가 생기면 병원이 다 책임이라는 것이 대법원의 판결이고 사회적 시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밀양 병원 화재 사건에서 간호사 등 의료인들을 업무상 과실 치사로 입건할 것이라는 소식이 있다.

그 배경에는 2003년 판결된 병원의 포괄 책임이 있다고 보여진다. 한 마디로 우발적으로 발생한 화재 시에도 환자를 모두 안전하게 구출해 낼 책임이 있다며 그렇지 못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또, 그 책임 범위를 병원이 아니라 근무했던 의료인에게까지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집단 사망 사건의 경우, 전공의와 주치의 교수 등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 사망 사건은 여전히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데, 그 정확한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 대신,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데 급급하다. 특히 간호사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거나 약물을 조제한 바 없는 전공의까지 입건한 건 무리한 수사로 밖에 볼 수 없다.

만일 대법원 판례대로 병원에게 무한의 책임을 지우려면, 이에 맞는 권리도 줘야 한다. 즉, 입원 환자와 방문객 등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권리 말이다.

면회를 통제하고, 입원 환자의 거동과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도 때도 없이 방문객들은 병실 문을 두드리고, 입원 환자는 몰래 나가 돌아다니거나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술을 사가지고 들어와 술을 마시는 경우도 많다. 이를 규제하면 당장 욕설이 쏟아진다.

건강 상에 문제가 생겨 심신이 약해진 6명과 이에 딸린 보호자, 방문객 수십명이 한 공간에서 들락거리면 충돌이 없을 수 없다. TV 채널로 다투고, 밤에 코를 골고 잔다고 서로 다투는 것이 우리나라 다인실 병원의 실태이다.

그래도 그 모든 책임은 병원에서 지라는 것이다.

병원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자들은 전생에 꽤나 큰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현생에서 언제 무슨 사고가 날지 늘 마음 조리며 살아야 하는 저주를 받았을리 없을테니 말이다.

개나 소나 다 지껄이는 반발 짓거리를 참아내야 하고, 슬쩍 슬쩍 엉덩이나 가슴을 만지는 수모를 당해야 하는 간호사들 역시 전생의 죄가 클 것이 분명하다.

처방 하나 냈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마냥 압수수색 받고 범죄자 취급 당하는 의사들도 다를 게 없다.

병원에 있는 자들은 다 죄인이다. 전생의 죄인, 현생의 잠재적 범죄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제발 좀 그만 밟아라.



2018년 2월 6일





Theme images by fpm.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