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제도에 대하여

 







대선이 다가오면서 기본소득제도 (Universal basic income)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기본소득제의 원칙은 1) 국가나 지방 정부가 2) 모든 국민 개개인에게 3) 조건없이 규칙적으로 일정 소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즉, 가구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재산이나 소득 격차, 노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한 가지 더 전제하자면, 기본소득제의 실행은 이 제도를 제외한 모든 복지 혜택을 중단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제는 왜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왜 필요한 것일까?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기본소득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건, 2008년 리만 사태가 터지고 몇 년 뒤부터이다. 더 명확하게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전 부터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제에 대한 연구, 시도는 그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대표적 실험은 캐나다에서 있었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캐나다 매니토바 주 Dauphin이란 도시에서 “Mincome program”이라는 이름으로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 실험은 Dauphin 주민 전체에게 기본 소득을 보장해 주는 광범위한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별 다른 결론없이 종결되었고, 한동안 잊혀졌다가 지난 2011년에 이르러 매니토바 대학 경제학 교수들이 보고서를 냈다.

그 결론은 이렇다.


“이 실험 기간 동안 도시 빈곤이 사라졌으며, 의외로 교육을 포기하거나 직장을 구하려는 노력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단서도 붙었다.


"그러나, 이 실험은 매우 제한적이고, 기간도 짧아 이 같은 Basic income을 보장해주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과연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실험은 지금도 여러 곳에서 진행 중이다.

핀란드, 네델란드 등에서는 약 800~900 유로를 기본소득으로 제공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은 고작 수백명에 그친다.

실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지역도 있다.

알라스카 주는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연간 1,600 달러에 그친다.

스위스는 2016년 기본소득제를 시행하려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중단된 바 있다.

COVID-19 사태 이후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재난 지원금'의 형태로 현금을 뿌렸지만, 규칙적 제공이 아니므로, 이를 기본소득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결국 기본소득제의 3 가지 전제 조건, 즉, "국가가 국민 모두에게 규칙적으로 소득을 제공하는 형태"는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제가 거론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본주의의 약점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발달할수록 자본 소득과 근로 소득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절대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이게 소득 양극화를 가져오고, 계층간 갈등을 조장하게 된다.

이를 보완하는 제도가 사회보장 (Social security) 제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근거가 헌법 제 10조, 제 34조에 있다.


헌법 제 10조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 34조 :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이 헌법 조항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련 법령은 160 개가 넘는다.

그 중 기본법인 사회보장기본법은 '사회보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회보장기본법 제 2조 : "사회보장은 모든 국민이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자립을 지원하며, 사회참여·자아실현에 필요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여 사회통합과 행복한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

사회보장기본법 제 3조 : "'사회보장'이란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및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소득·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말한다."


이 같은 사회보장제도는 국가마다 있으며, 그 내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있는 왜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걸까?

두번째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 사회적 발전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 각 분야는 더 빠르게 발전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기업은 효율성, 생산성을 더욱 추구하기 마련이고, 특히 IT 분야의 발전과 전개 속도도 더 빨라진다. 또, 이에 따라 개개인의 사회적 욕구도 더 커진다.

이렇게 사회가 발전하게 되면 순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효율성이란 결국 노동력 필요성의 저하를 의미하게 된다. IT 분야, 특히 AI 의 발전이 거듭되면 역시 일자리는 줄게 된다.

사회에 막 진출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일자리 부족 현상, 바꿔 말해 실업율 증가 현상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 젊은이 25% 이상의 첫 직장이 family business 라는 이야기도 있다. 즉, 부모나 일가가 하고 있는 식당, 옷집, 빵집 등 가게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곳이 없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는 또 다른 위기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 유럽의 경우, 자스민 혁명 이후 아랍과 아프리카에서 대거 유럽으로 이주하는 사태가 생겼다. 이게 이미 10년 전 얘기이다. 유럽 각국의 아랍인 비율은 계속 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잘 정착해 살겠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체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배회하며 소매치기, 도둑질을 하거나 범죄 단체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미 유럽은 마음 편하게 관광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제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제도라는 개념을 처음 고안한 이는 16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률가, 저자이자 가톨릭 교회에서 성자(Saint)라고 불린 Thomas More 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 다음과 같은 얘기를 썼다.


"안트베르펜(벨기에 주도) 광장에서 20 명이 넘는 도둑들이 교수형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도둑을 막기 위해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데, 왜 도둑은 줄지 않을까?
캔터베리 대주교 존 모튼이 이렇게 답했다. '도둑에 대처하는 이 방법(교수형)은 정당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억제책으로도 비효율적이다. 음식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훔치는 것밖에 없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형벌은 없다. 따라서, 이런 끔찍한 처벌을 가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에게 약간의 생계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하다.'"


도둑으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으려면, 혹은 그들이 궁핍으로 인해 도둑이 되어 처형받게 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기본 소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토마스 무어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토마스 무어가 이런 내용을 쓴 책의 이름은 "유토피아(Utopia)" 이다.

유토피아를 우리 말로 번역하면 '이상향'이다. 기본소득제를 시행하면 이상향이 올까?

기본소득제에 가장 접근했던 나라는 리비아이다. 독재자 카다피는 무직 청년들에게 공무원 평균 급여 수준을 무상으로 주었다. 집도 주고, 의료서비스도 무상이었으며, 빵도 거의 공짜로 공급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카다피에게는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석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튀니지에서 촉발한 자스민 혁명은 단지 궁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멀쩡히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가 없었던 젊은이의 죽음으로 시작했다. 그 영향을 받아 카다피는 맞아 죽었다.

자본주의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는 모두에게 소득을 보장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극심한 고령 인구 비율, 제조업 쇠락, 불법 이민자, 일자리 부족 등 우리보다 더 심각한 문제에 시달리는 유럽 국가들이 섣불리 기본소득제를 시행하지 못하는 건, 이 제도의 파장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제는 여전히 논의하고 연구할 가치는 있다. 현재론 이게 답이다.

게다가 재원 마련이 없는 제도는 선전선동에 불과할 뿐이다.


2021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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