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성을 강화하는 것은 항상 옳은 것일까?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은 항상 옳은 것일까?
접근성을 강화한다는 것은 의료기관 이용을 보다 더 용이하게 한다는 것인데, 일견 모두가 다 동의하고 좋다할 것 같아 보이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의료소비자냐, 공급자이냐, 보험자 혹은 정부이냐에 따라 각기 다를 지 모르겠습니다.
의료소비자의 경우 접근성이 강화되면 당연히 좋아라 하겠지만, 접근성이 좋아진다는 것은 의료기관 이용의 빈도가 올라간다는 것이고, 결국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개개인은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니 좋지만, 문제는 의료비는 환자 본인만 내는 것이 아니라 실상 건보 재정이 부담하는 부분이 더 큰데, 이용 빈도가 커지만 재정 부담도 덩달아 커지므로 이는 곧 보험료 인상을 의미하게 됩니다.
보험료 인상은 가계 부담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의 경우 회사 부담이 늘어나게 되고, 결국 기업의 채산성은 떨어지고, 국가 경쟁력 또한 떨어져, 일자리는 줄어들고 경제는 더욱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성향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이용 빈도에 크게 차이가 나서, 기침 조금하고 열 좀 난다고 득달같이 병의원을 찾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년에 병원 한번 가지 않는 이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보험료의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의료 공급자의 경우, 환자의 방문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매출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특히나 우리나라 같은 저수가 의료제도 아래에서는 빈도를 높혀야 매출 증가를 꾀할 수 있는데, 빈도가 높아지면 재정 부담을 우려한 보험자의 간섭(규제와 실사, 삼각 등등)이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되고, 업무량이 과중하게 되는 등, 지금 우리나라 의료가 갖는 온갖 폐해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보험자의 경우 접근성을 강화하면 보험의 효용가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이고 보험에 대한 의존성이 커져 보람있고 자랑스럽기는 하겠지만, 실상 재정 악화의 문제로 공급자들과 끊임없는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하니 오히려, 의료기관 이용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고 싶을 지도 모릅니다.
정부도 입장 또한 비슷할 것입니다. 의료의 두 얼굴 중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보자면, 국민들이 의료기관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정책을 펴야 하니 접근성 강화를 꾀할 수 밖에 없겠지만, 접근성 강화는 의료 과소비를 부축혀 재정 통제에 적신호가 들어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 눈여겨 볼 것은 의료보험 이후 정부는 의료 소비를 통제하기 보다는 의료 공급자를 규제하여 소비를 조절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의료량을 조절하는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어찌보면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인지 모릅니다. 5천만 국민에게 원성을 듣는 것보다는 고작 10만 의사를 컨트롤 하는 것이 훨씬 쉬울 테니 말입니다. 이렇게 적확(的確)한 방법이나 어렵고 힘든 방법을 택하기 보다는 게으르고 쉬운 방법을 택함으로, 의정간의 불신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의료가 과소비가 되고 있을까?
대체적으로 그렇다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의료소외지역과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정량적으로 보았을 때, 인구당 병상 수나 CT, MRI 같은 진단 기기가 외국에 비해 월등히 많고, 감기 상기도 감염 같은 경질환으로 소요되는 재정 규모가 큰 것도 그렇고, 약 소비가 큰 것도 그렇습니다.
올바른 의료 정책과 보험제도라면 큰 병이 발생했을 때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도록 하되, 감기, 배탈 같은 가벼운 질환이 발생했을 때는 본인의 부담을 늘려 재정 안정화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어, 의원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적은 반면, 병원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오히려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가장 아이디얼 한 것은 의원의 의사 행위료를 대폭 (적어도 지금의 5 배 이상. 적어도 구매력 기준 global standard에는 맞어야 함)늘리고 이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 역시 늘려, 빈도를 줄이는 한편, 의원 외래 약값 본인 부담금 또한 현행 30%에서 적어도 80% 정도로 늘려 원래 약은 비싸다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약 처방과 소비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사회주의 의료제도를 시행하는 외국의 경우에도 외래 약은 모두 환자가 부담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한편, 처방전이 필요없는 OTC 도 늘려 자가 처방을 할 수 있는 루트를 열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만성질환자 (특히 고혈압, 당뇨)의 경우는 정책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고혈압 당뇨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을 교육하고 안내할 필요가 있고, 고혈압, 당뇨 전단계부터 집중 관리를 통해 질병이 발생하지 않게 하고, 질병이 발생했을 때에는 합병증이 생기지 않게 치밀한 투약과 집중 관리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들에 대한 의료비 부담이나 약값 부담을 대폭 줄이고 대신 의사의 안내에 따라 질병 관리를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입원 혹은 수술을 받을 경우에는 본인 부담을 대폭 줄여주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이에는 또 다른 전제가 필요한데, 그건 확고한 의료전달체계를 갖추는 것입니다.
현행처럼 차별없이 누구나 전문의 진료를 받고, 원하는 병원의 원하는 의사를 찾아 진료를 받는 형태는 일견 매우 좋아보이지만, 의료를 왜곡시키게 되는데, 왜냐면 의원과 병원은 시설, 장비 측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으며, 병원 또한 규모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대형 병원, 대학병원, 3차 병원으로 환자가 쏠리게 되어 의료공급의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하게 되며, 이는 결국 의료 공급의 상당 부분을 고사시키고, 종국에 그 피해는 의료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료 이용은 지금처럼 무제한 풀어놓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식이 아닙니다. 체계를 갖추어 step by step으로 의료를 이용하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방안이 바로 Gate keeper 입니다. 발생하는 모든 환자는 기본적으로 일차의료기관에서 스크리닝하여 다음 step으로 안내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같은 논리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지 못한 이유를 저는 두 가지로 봅니다.
첫째는 정부의 의지 박약이고, 둘째는 병원의 저항입니다.
의료전달체계를 만들려면, 의료공급 생태계에서 각각의 의료기관 (병원, 의원, 종합병원 등)이 어떤 역할을 담당할 것인지 먼저 정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입니다.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은 이미 2011년 끝나 고시되었고, 각각의 기능에 맞게 역할 분담을 하도록 연결 고리를 만들면 되는데,
사실 지금 병원은 제한없이 진공청소기처럼 환자를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필터를 끼운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정부는 전달체계 구축을 통해 의료 이용에 문제가 생길 경우 받아야 할 국민적 저항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저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사회안전망을 책임져야 할 일차의료기관은 붕괴되고 있고, 결국은 다 같이 죽자고 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적정한 제한을 두는 것은 마치 입에 쓴 약과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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