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궤의혈(堤潰蟻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첫 방아쇠는 조선일보가 당겼다.
조선일보는 2016년 7월 27일 단독기사로 K 스포츠 재단, 미르 재단 설립에 청와대가 관련되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 기사를 접했을 때, ‘청와대 비서진들이 박대통령 퇴임 후 스스로의 생활 방편을 만들기 위해 이런 재단을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쳐가며, 동시에 ‘바보들! 이 스포츠 재단으로 큰일이 생기겠구나.’ 하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었다.
물론 그 큰일이 대통령 탄핵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상상하지 못했다. 감이 형편없이 떨어진거지.
언론들이 본격적으로 이 두 재단과 청와대 비선을 억지로 연결짓는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건 9월부터이다.
조선일보가 박근혜 정권을 향해 포문을 연 이유는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둘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고, 어쩌면 조선일보는 빨리 정권이 바뀌길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진태 의원은 8월 29일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한 비리 건으로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의 실명을 거론하며 조준 사격했다. 이 날 송 주필은 사직했고 후에 재판에 넘겨졌다.
김진태 의원은 누군가로부터 첩보를 제공받았을 것이다.
이걸 청와대의 반격이라고 하기에도 창피하지만, 청와대-최대 보수 언론은 불과 6개월 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이러고들 있었다.
그 결과, 현직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2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고, 나라는 망해 가고 있다.
지난 얘기말고, 앞으로 얘기를 해 보자.
겨우(?) 천만원 받은 거고, 그마저도 이미 돌려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트집잡고 시끄럽게구니, 미꾸라지라는 표현이 과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깟 6급 쯤이야.
여전히 국민의 절반이 지지하고, 목숨을 나눈 동지들이 성벽을 곤고히 지키고 있으니 별 탈 없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요즘 이런 별것 아닌 시답지 않은 사건들이 자꾸 생긴다고 짜증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것 아닐까?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모금해 만든 재단이 정권을 무너트릴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별것 아닌 재단인데...
뚝은 늘 작은 구멍으로 무너진다.
그걸 제궤의혈(堤潰蟻穴)이라고 한다.
어디선가 바늘 구멍을 뚫는 소리가 들린다.
또 조선일보인가?
2018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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