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의한 중국의 민주화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은 4/19 혁명으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인 80년 봄부터 본격화되었고, 전두환 대통령 임기 말기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은 학생들이 앞장 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만 그런 건 아니다.
미국과 일본도 똑같은 반정부 학생 시위 과정을 겪었다. 또 그 학생들에게 이념의 배경을 제공하고 선동하는 배후가 있었다는 것도 같다.
일본은 이미 1960년대에 매우 과격한 학생 시위를 거쳤다. 대표적인 게 전공투가 도쿄대 강당을 점거한 야스다 강당 사건 (1969년)이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의 기원은 역시 서유럽이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년)은 영국 왕이 가졌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빼앗고 의회 민주주의를 이룬 민주화의 시발점이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다.
프랑스는 대혁명(1789년)을 거쳐 공화국으로 변신했다.
서구의 민주화가 단기간 안에 정착된 건 아니다.
영국에서 보통 선거가 치뤄진 건 1928년에 이르러서이며, 프랑스는 1944년, 1776년 독립한 미국도 1920년에 이르러 겨우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에도 공포정치, 쿠테타, 7월 혁명(1830년), 2월 혁명(1848년) 등 수십년에 걸친 질곡의 민주화 과정을 겪어야 했다.
1968년 동유럽 체코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운동이 일었다. 소련은 20만명의 군을 이끌고 체코로 진격해 민주화의 씨앗을 밟아버리며 이 시도는 끝났다.
체코 등 동유럽이 실제 민주화된 건, 89년 독일이 통일하면서이다.
89년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체코, 루마니아 등지에서 민주화 혁명이 시작되었다. 당시 중국 천안문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지만, 중국 공산당의 무차별적인 탄압으로 중국 민주화의 불꽃이 금새 꺼졌다.
91년 소련 연방이 해체 되면서 조지아,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우즈벡 등 11개국이 독립을 선언했고, 92년에는 유고슬라비아가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등으로 쪼개졌다. 체코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붕괴하자, 사회주의를 채택했던 몽고, 이디오피아, 남예맨 등도 사회주의를 폐지했다.
쿠바, 라오스, 베트남 등은 공산당 일당체재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20년 후 민주화의 열풍은 또 한번 지구를 감아돌았다.
이번엔 중동의 민주화였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행상을 하던 젊은이가 부패 경찰의 탄압에 저항하며 분신 자살하면서 열기가 솟구쳐 올랐다.
튀니지 혁명은 알제리, 레바논, 요르단, 수단, 오만, 사우디, 이집트, 예맨, 이라크, 바레인, 리비아, 모로코, 쿠웨이트, 시리아 등 아랍 문화권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 튀니지에서는 장기독재하던 대통령이 축출되었고, 이집트의 군부 독재자 무바라크가 퇴진했으며, 리비아에서는 43년간 독재하던 카다피가 성난 국민들에게 맞아 죽었고, 예맨에서도 살레 대통령이 사임 후 나라를 떠났고, 그 외 국가들에서도 독재를 했던 여러 정치인들이 정치를 포기하거나 출마를 포기했다.
아랍 국가들은 여전히 군주가 있는 국가가 많으며, 부족 국가의 성격이 짙고,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강요와 굴종에 익숙하다는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의 민주화는 어찌보면 서구의 민주화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사우디 등 왕정 국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민주화 열기이다.
아무튼 시시때때로 민주화란 이름으로 국민들이 각성하며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열풍이 불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올해는 그 열풍이 아시아, 특히 중국에 불지 않을까 싶다. 그럴 때도 됐다.
지난 해(2018년) 3월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개최해 국가 주석의 임기를 폐지하는 것으로 중국 헌법을 개정했다.
이로써, 2023년 임기가 끝나는 시진핑에게 무기한 중국을 통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실상 중국 천황이 된 것이다.
홍콩 시민들은 주석 임기제 폐지 이후 중국의 홍콩 간섭이 너무 심하다며 1월 1일부터 수천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실 반환 당시 홍콩의 가치는 막대한 달러 보유지이며 중국의 돈줄이자 투자 유입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홍콩을 '방임'한 측면이 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할 수 있다. 그러면, 조여야지.
홍콩 시민들이 주장하는 건, 홍콩 독립이며, 구체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파견하는 행정장관을 선거로 뽑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만도 예사롭지 않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신년사를 통해 “중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2,300만 대만 국민을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시 주석은 즉각 '중국인은 중국인을 공격하지 않는다'면서도,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부 문제'라며 대만이 분열 공작을 시도할 경우, '흡수 통일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총통의 신년사가 아니었어도, 대만에 대한 시진핑의 계획은 "홍콩식 흡수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홍콩처럼 대만도 제도는 유지하되, 행정장관 (혹은 총독)을 중국 정부가 임명하고, 외교, 국방권을 중국 정부가 가져가는 것이다.
한편, 미국 정부는 지난 12월 31일 아시아 안심법(Asia Reassurance Initiative Act)을 통과시킨 후 대통령이 서명했다.
이 법은 아시아 각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과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대만과 경제, 정치, 안보 관계를 유지하며, 기존의 대만과의 협약, 조약 등을 공고히 하고, 미국 고위 관료들의 대만 여행을 장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슨 법이 공무원들더러 여행가도록 촉구하라고 하나 의문이 들지 모르지만, 미국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이 요구한 One China 정책에 따라 대만과 단교하고, 공무원들의 대만과의 접촉을 금지시킨 바 있다.
그런데 지난 해, 미 하원은 대만여행법을 발의해 미국의 모든 관료가 대만을 여행하고, 대만 공무원들과 접촉하며 대만 공무원들이 미국을 업무차 방문할 수 있도록 입법화하였다. 중국을 긁는 거다.
한편, 아시아 안심법은 "미국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발생하는 현재와 미래의 위협과 비대칭 전략에 대비할 수 있게 대만에 무기를 판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을 현재와 미래의 위협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법은 중국에 대해서,
"중국은 중국 시민 사회와 종교를 날이 갈수록 더 제약하고 있으며,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 간의 규범을 훼손하고 있는 매우 우려스러운 국가이므로, 국제 규범과 룰을 따르고 준수하여 국제 관계에서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시각은 트럼트 대통령의 시각이 아니라, 미 의회의 시각이다. 미 조야가 중국을 어떻게 보는지 명확하다.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이 법은 미국 정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민주화, 인권 강화, 시민 사회 단체 지원, 투명성 강화 등에 매년 2억1천만 달러를 2019년부터 5년간 투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이 예산은 중국 민주화 촉진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으며, 티벳 자치구와 중국 인도 지역의 티벳인들의 비정부기구 활동에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달러를 들여서라도 대만을 지원하고, 티벳 등에 자금을 지원해 중국을 민주화시키겠다는 의미이다.
미국 의회가 이를 법으로 만들었고, 미국 대통령이 승인한 것이다.
아직 아시아 안심법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논평은 없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에게 유예해 준 무역 전쟁 90일 휴전 기간의 1/3이 지났다.
두 달 안에 중국은 미국이 만족할만한 후속안을 만들어와야 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 (만들 가능성, 만들어와봐야 미국이 만족해야하며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사실 미국은 지난 연말 약 1천개 가까운 품목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아들여 고율(25%) 관세를 철회했다. 금액으로 치면, 340억 달러 상당의 수입품에 해당한다. 승자의 여유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화답하듯 중국은 미국산 쌀 수입을 허용했다. 2001년 중국의 쌀 시장 개방 후 미국 쌀 수입 허용은 처음이다. 호의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산 쌀은 동남아 쌀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없어 중국에서 사 들일 가능성은 없어 실효성없는 제스처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에 있는 한 예비역 소장은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사상자 발생'이라며, '미 항모 두 척을 격침시켜 1 만명을 수장하면 두려움에 떠는 미국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망발을 했다. 머리가 나쁜 건지, 철이 없는 건지...
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있었고, 10년 뒤인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있었다. 주기로 보자면 올해는 중국발 금융 위기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다 경기 안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기가 불안하고 요동칠 때 기회가 있다가 생각하는 사람은 경제 위기를 바란다.
중국의 경제 위기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평과 분석이 있지만, 요약하면 중국은 이상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부실대출이 너무 많고, 전체 대출의 40%가 부동산 담보대출인데, 부동산 버블이 형성되어 있고, 버블이 터지는 순간 금융기관은 부실화되고 경제 위기로 빠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상한 경제구조란 중국 주요기업 은행이 모두 국영기업, 국유은행이라는 것이다. 이 중 상당수 부실 기업, 은행은 모두 당과 정부만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중앙당 중앙정부는 이들 부실 기업, 은행을 정리할 수 없다. 왜냐면 이들은 지방 정부나 군이 가진 것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과 정부는 위기가 오더라도 중국 은행의 자산 규모가 크고, 외환 보유고가 충분하며, 채권도 충분하므로 어느 정도 위기에는 견디어 낼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자위하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파편에 맞아 쓰러지는 기업과 중국 국민은 있겠지만 말이다. 중국에는 기업과 국민이 아주 아주 많으니까 그 정도야 뭐... 이런 생각일까?
아무튼 중국의 민주화, 중국 경제 위기, 남중국해의 미중 충돌 모두 우리나라로서는 예삿일이 아니다.
이래저래 중국은 세계의 앓는 이가 되었고, 올해는 또 한번 다이나믹 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Buckle up!
2019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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