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 통치와 권력의 공백






1. 한반도 신탁 통치

2차 세계 직후 유엔은 경제력, 정치력의 부재 등으로 스스로 통치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지역이나 나라를 다른 국가에 위임하여 신탁통치하도록 한 바 있다.
신탁통치의 근거 규정은 유엔 헌장 제 12장 ‘국제신탁통치제도’ (75조~85조)이다.
이렇게 신탁통치의 대상이 된 곳은 모두 11 곳이며, 수임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 오스트렐리아, 벨기에, 이태리 등이다.
사실, 한반도 역시 신탁 통치의 대상이었으며, 미국이 수임국이 될 전망이었다.
그러나, 유엔이 신탁통치를 할 경우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정치인들은 좌, 우익을 떠나 일치단결하여 반탁 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유엔이 신탁통치를 할 경우 영구히 식민지를 벗어날 수 없다’며 선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탁은, 그 나라의 독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실제 유엔의 신탁을 받은 11 개 곳 중 독립하지 못한 나라는 없다.
대대적 반탁 운동의 결과, 한반도의 신탁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만일, 이 때 신탁 통치를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의 신탁은 46년부터 5년간 유지될 계획이었으므로, 미국의 통치 하에 있었다면 한국전쟁은 발발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지금과 같은 비극적인 분단을 초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신탁을 받은 11곳 중 미국이 수임받아 통치한 곳은 모래알처럼 뿌려진 태평양 제도의 작은 섬들 뿐이다.
이들 섬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에 의해 폐허가 된 곳들이며, 스스로 식량을 수급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즉, 기본적인 식량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공급해줘야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섬에는 괌, 사이판, 팔라우 등도 포함되는데, 현재 이 섬들의 인프라와 생활 수준은 미국 본토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이게 가능했던 건, 미국이 신탁통치했기 때문이다.

2. 북한의 신탁 통치?

역사를 돌아보면, 해방, 독립, 혁명, 쿠테타 등으로 권력의 진공 상태가 오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혼란이 생긴다. 권력 공백을 빠르게 메우고 차치하기 위한 현상이다.
이때는 온갖 마타도어, 음모, 루머는 물론 납치, 살인도 서슴치 않는다.
최근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었던 국가가 바로 리비아이다.
카다피의 40년 넘는 독재 권력이 무너지자, 권력 진공 상태가 되었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가 극성을 이루었으며,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였지만, 9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국가 출범을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카다파의 독재에서 해방되었다고 기뻐했던 리비아 국민들은 지금은 오히려 독재 권력 시대를 그리워한다.
만일, 북한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게 되면, 마찬가지 현상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이 때 중요한 변수는 이런 것이다.

첫째, 어떻게 북한 정권이 무너지게 되느냐
둘째, 누가 북한 정권을 무너트리느냐
셋째, 누가 북한을 수복하느냐

즉, 미국(누가)의 북폭(어떻게)으로 김정은이 사망하고 정권이 붕괴하고, 미군이 유엔군의 이름으로 진격(수복)할 경우,
북한 군부(누가)의 쿠테타(어떻게)로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유엔군(미군)이 수복할 경우,
권력 공백이 오는 건 같지만, 이 공백을 차지할 자들은 다르다.
변수의 조합에 따라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겠지만 단언컨대, 어떤 형태로든 남한의 일부 인사들 역시 숟가락을 얹으려고 할 것이 분명하며, 이들과 북한 권력과의 결탁과 야합도 있을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작후에는 유엔이 신탁통치란 방식으로 권력 공백을 메꾸었지만, 북한이 붕괴할 경우, 또 다시 유엔이 북한 지역을 신탁통치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면, 유엔 헌장은 신탁통치 지역을 다음 세 가지로 한정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유엔 회원국은 신탁통치 지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한 유엔 회원국이다.
가. 현재 위임통치하에 있는 지역
나.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서 적국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지역
다. 시정에 책임을 지는 국가가 자발적으로 그 제도하에 두는 지역

3. 국민의 수준에 맞는 국가

한국인의 성향, 수준, 능력에 비춰볼 때, 무난히 건국하고 대한민국을 출범시킬 수 있었던 건 기적이고, 혁명을 통해 잡은 권력으로 근대화, 산업화, 공업화를 이루고 경제 강국으로 키워낸 것도 기적이다.
이 기적들은 이승만, 박정희라는 정치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럼 나머지 대통령은?
그냥, 한국인의 성향, 수준, 능력에 걸맞는 지도자들이었다.
역설적으로, 북한이 김일성 일당독재 체제에서 해방된다고 한들, 이승만, 박정희 같은 지도자가 없으니 (혹은 없다면), 북한이 지금의 남한처럼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히려, 각종 시정잡배들과 권력에 눈 먼 이들의 진흙탕 싸움터가 될 것이다.
사실상 신탁통치가 불가능해진 최근에는 국가 권력이 붕괴하여 공백이 생기면, NTC(국가이양위원회 혹은 과도국가위원회 National Transitional Committee)를 구성해 그 공백을 메우는 경우가 많다.
이 위원회에서 룰을 정하고, 그 룰에 따라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제헌의회가 헌법을 만들고, 그 헌법은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되고, 그 헌법에 기초해 다시 총선을 실시하여 의회를 구성하고, 그 의회에서 수상을 결정하거나(의원내각제), 총선을 통해 의회가 구성되면 의석수에 따라 여야가 나뉘고 전당대회를 통해 대선 주자를 뽑고, 또 다시 대선을 통해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다(대통령제).
이 지난한 과정에 복병과 암초와 함정은 헤아릴수 없게 많다.
다들 자기에게 유리하게 헌법과 법을 만들자고 할 것이고 제대로 국가 체계와 치안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각종 불법 행위, 불법 선거운동이 극성을 부릴 것이며, 결탁과 야합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를 민주화의 산통이라고 부르겠지만, 남한의 현재와 과거 역사를 놓고 봤을 때, 민주화, 민주주의에 걸맞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는지 사실 의문이다.
북한은 다를까?

4. 결론?

결론을 내리자는 글이 아니므로, 결론은 없다.
21세기에, 세계 10대 무역국가에서 대통령 부정 선거가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한 자조적인 글일 뿐이다.
이 수준에, 북한이 붕괴된 들, 북한을 제대로 재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권력 공백을 틈타 자기 뱃속을 챙기고, 크고 작은 권력을 서로 잡으려 할 것이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미국이 위성국을 세우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북한 주민들에게 말이다.
물론, 또 과거의 반탁운동과 같은 대대적인 반대 운동이 전개되고, 없던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
지난 열흘간 이 나라에서 벌어진 일만 봐도, 빨리 안 망하는게 희안한 나라이다.
다음 정권은 보수도 좌익도 아닌 관료들이 잡기를 바란다.
관료주의는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적어도 국가의 허리를 맡고 있는, 국가를 운영해 본 이들이 정치적 고려에서 한 발 떨어져 무너진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전 총리가 이들을 진두지휘하며 국가를 대청소하고 규율을 바로 세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2019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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