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에 대한 개인의 대일 청구권은 유효한가?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한일기본조약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몰라서 찾아봤다.


(한일기본조약의 체결로) 한․일 양국 및 양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4조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 (외교부)


한일 양국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대일 청구권에 대해 위와 같이 결론을 내렸다. 한일기본조약과 관련 협정을 맺음으로 일본은 한국에, 한국은 일본에 대한 국가와 국민의 청구권이 소멸된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 문구는 한일기본 조약 체결 과정을 기록한 외교부 자료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 4조는 다음과 같다.

“(a) 이 조항의 (b)의 규정에 따라, 제 2조에 열거된 지역의 일본국 및 일본 국민의 재산의 처분과, 현재 그 지역을 통치하는 당국 및 그 주민(법인을 포함)에 대한 일본국 및 일본 국민의 청구권(채무를 포함)과, 일본국에서의 이들 당국 및 그 주민의 재산, 일본과 일본 국민에 대한 당국과 그 주민의 청구권(채무를 포함)의 처분은, 일본국과 이들 당국 간 특별협정의 주제로 한다.”

즉, 외교부의 문장을 다시 해석하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4조에서 언급한 한국 및 한국민의 일본과 일본 국민에 대한 청구권은 당국간 특별협정 즉, “한일기본조약”과 “재산 및 청구권 협정”에 갈음하여 해결 (즉, 소멸)된 것이라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뭘까?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1951년 일본의 전후 처리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미국이 연합국들을 샌프란시스코에 불러 모아 체결한 조약이다.

사실 이는 일본에 대항해 전쟁을 치룬 국가들의 승전 파티이자 동시에 냉전 시대에 직면한 미국이 일본에 대해 가진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미국의 “일본의 전후 처리” 계획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죄를 빨리 털어주고 재건시키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쓸 계획이었던 것이다. 일본을 미국의 품 안에 두면, 태평양은 자연스레 미국의 앞바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며, 일본이 하와이를 방어하고, 공산주의를 막을 성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참석하지 못했다.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합군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국은 승전국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였고 일본의 동맹국과 다를게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불참하게 되었음으로, 훗날 일각에서는 한국은 ‘전쟁 중 일본에 의해 발생한 피해와 고통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없었다는 지적도 한다. 그러나 한국은 승전한 연합국이 아니었다. 이 배상은 연합국에 해당하는 것이다. (제 14조)

수개월동안 공방을 거듭한 가운데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핵심은 일본 주권의 회복과 면책이었다. 나머지는 사실 겉가지였을 뿐이다.

미국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 도중 만든 철도, 공항, 산업시설 등 일본의 해외 자산을 모두 해당국에 주고 대신 대일청구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해야 했다. 그래서 5/16 혁명 정부가 뒤늦게나마 시작한 것이 한일기본조약 교섭이다.

즉, 우리는 식민지 독립으로 발생하는 재정적, 민사적 채권 채무를 해결해야 했다. 물론, 주일 한국인의 지위 및 신상에 대한 것도 협의를 해야 했다.

일본 입장으론, 한국에 남겨진 일본인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 즉 대한 청구권을 해결해야 했다.

오랜 교섭 결과, 일본은 무상 공여 3억불, 정부 차관 2억불, 민간신용 제공 3억불 이상을 한국에 제공키로 하고 양국과 양국민의 청구권은 해결된 것으로 합의했다.

이로써, 개인에 대한 청구권도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다.


한․일 양국 및 양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4조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


이게 한일회담 합의 사항이었다.

이는 한일 기본조약과 함께 체결된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다.

제2조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 일방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들어오게 된 것.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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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항으로 인해, 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지금까지 일본은 징용, 위안부 등 ‘개인적 피해’에 대해서도 배상을 끝냈다고 주장해 왔으며, 그 같은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이를 부인하여 개인적 피해에 대한 대일 청구권이 유효하다고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겨레는 대법원이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이 유효하다는 한 근거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핵심 쟁점인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한일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는지’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대6 의견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어서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수의견은 “따라서 한일협정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그 이유로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이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권리 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 관계라고 보기 어렵고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면서, 한-일 정부가 일본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 등에 들었다.”

대법원이 옳은 판단을 한 걸까?

나는 잘 납득이 안 된다.

참고로,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한 박정희 정부는 이 조약과 협정을 통해 들어오게 된 자금의 운용과, 민간인의 대일 청구권 보상을 위해 몇 가지 법을 만든 바 있다.

언급한대로, 국가가 민간인을 대신해 민간의 청구권 등을 포함하여 일본에 일괄 청구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민간의 대일청구권에 대응해 보상을 해줘야했기 때문이다.

우선 ‘청구권자금의운용및관리에관한법률’ (1966년) 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들어오는 자금의 운용에 대해 입법한 것인데, 이 법 제 5조는 민간인의 대일청구권 보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5조 (민간인의 대일청구권 보상) ①대한민국국민이 가지고 있는 1945년 8월 15일이전까지의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은 이 법에서 정하는 청구권자금중에서 보상하여야 한다.

즉, 한일기본조약과 관련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자금은 민간인의 개인 청구권에 의한 보상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며, 이를 한국 정부가 받은 이상, 일본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민간인에게 대일청구권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줘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 (1971년), 대일민간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 (1974년) 등을 잇달아 입법했다.

이 과정을 보면, 민간인의 대일청구권은 일본 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에게 요청해야 하며, 이제와서 일본국에 대일 청구권을 발동하고 국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는 것에 대해, 일본은 억울할 수 있다.

자, 이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해결할 수 있을까?

첫째는 국제재판소로 가져가는 것이다. 매우 길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둘째, 힘과 힘의 충돌로 가는 것이다.

한국 대법원이 국내 일본 기업의 재산을 압류하면, 일본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통상 마찰을 통해 압력을 넣는 것이 있다.

만의 하나, 한일무역전쟁이 벌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일본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국 5위이며, 일본은 우리나라가 주요 수입국 7위에 해당한다.

2018년 우리나라는 일본에 281억585억불을 수출하고, 503억283억불을 수입해 약 222억불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수치로만 보면,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수입을 중단해 일본에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대일 무역 적자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50년동안 이어져왔다. 우리가 일본에 무역 적자를 보는 이유는 수입 품목이 소비재가 아니라 부품, 소재, 기계 설비 등 생산재 혹은 중간재이기 때문이다. 만일 일본으로부터 수입이 중단되면, 그 즉시 우리나라 산업 전반이 충격을 받게 된다.

특히 소재, 부품은 대체가 어려울 정도이어서 가격이 얼마이든 계속 수입할 수 밖에 없다.

반면, 우리가 일본에 수출하는 건,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제품이 주종을 이룬다.

만일 일본이 이들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수출에 타격을 받지만, 일본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우리나라 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즉, 통상 마찰로 진행될 경우, 그 결과는 뻔하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 기업에 일하고, 그 노동의 댓가를 받지 못한 체 70년 넘는 시간을 보냈고, 이제 일본 기업을 압류해서라도 그 댓가를 받겠다고 하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 억울함은 이미 일본으로부터 청구권을 행사한, 특히 민간인의 청구권까지 행사한 한국 정부에게 풀어야 한다.

60년에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이 필요해 대일청구권으로 받은 자금을 쓸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 돈을 종자돈으로 경제 부흥을 일으켰다면, 지금이라도 국가가 민간인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는 것이 도리이다.

뻑하면 국가 간의 약속을 휴지조각만도 못하게 만들어서야 되겠나. 한 두번도 아니고 말이다.

이게 상식 아닐까?



2019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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