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llow water blackout에 대하여
이제 바캉스 시즌이 다가온다.
바캉스가 시작되면 전국 바닷가, 휴양지 부근 병원 응급실은 만원 사태를 이루게 되는데, 물론 가장 흔한 질환은 휴양지 음식을 잘못 먹고 생긴 여름철 장염이나, 에어컨을 틀어놓고 잠이 들어 생긴 여름철 감기와 같은 가벼운 질환이 대부분이지만, 평소 심장 질환이나 심근경색의 소인을 가지고 휴가를 왔다가 객사하는 것 같은 심각한 경우도 드물지 않게 생긴다.
따라서 만일 심근경색의 과거력이 있거나, 고혈압 당뇨를 오래 앓고 있는 노인의 경우, 휴가지 부근의 응급의료센터가 어디에 있는지 미리 알아 두고, 휴가를 가기 전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 니트로글리세린 알약이나 스프레이를 가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하는 경우라면 상비약으로 기내에 지참하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언제 이 약을 사용하고,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대해서도 숙지할 필요가 있다.
한편, 계곡이나 바닷가에서는 여름철 익수 사고가 빈번한데, 우리나라의 익수 사고에 대한 구체적 통계가 없어 국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전세계적으로 해마다 물에 빠져 사망하는 사망자 수는 35만명에 달하며, 미국의 경우 평균 해마다 1만 명 가량이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는데, 이 중의 40% 가량이 사망한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수치는 공식적으로 익수가 확인된 통계이므로, 사실 익수 사고나 익사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이며, 한 국제 단체는 방글라데시의 경우 매일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익수 사고는 자동차 사고 다음으로 빈번한 사고이며, 자동차 사고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를 내는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익수 사고라고 하면, 수영장이나 계곡을 가지 않는 자신과는 무관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역시 미국의 통계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미국의 경우 해마다 약 1,000 명 가량이 욕조에서 익수 사고를 당하는데, 이 중 40%는 사망한다. 미국에서 통계에 잡힌 익수 사고 건수가 평균 년 1만명 수준이므로 전체 익수 사고의 10%가 욕조에서 생긴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의 경우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경우가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욕조 익수 사고 역시 적은 수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또 익수 사고의 90%는 이 같은 욕조, 수영장, 강, 호수, 계곡 등의 민물에서 생기며, 바다에서 생기는 익수 사고는 10%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역시 바다보다는 강이나 계곡에서의 사고가 많은 편인데, 강이나 계곡에는 안전 요원이 없고, 유속이 빠르며 웅덩이와 와류가 있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사태가 더 자주 생기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공공이 사용하는 수영장은 물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수영장의 수도 엄청나게 많으므로 (미국 내에만 공공 수영장 36만개를 포함해 약 1천만개의 수영장이 있다고 함) 수영장 사고가 많아 전체 사고 건수의 60% 가량이 수영장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 수영장 익사 사고의 경우는 사고 건수에 비해 낮아 사망 사고의 17% 가량을 차지한다.
이는 역시 사고 시 이를 대처할 수 있는 안전요원이나 다른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익수 사고의 원인으로 꼭 눈 여겨 봐 두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대개 물에 빠지게 되면, 발버둥을 치면서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구출되게 되는데, 어떤 경우는 언제 물에 빠졌는지도 모르게 물 속에 가라앉아 사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뒤늦게 발견되므로 사망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지게 된다.
이런 경우는 특히 수영장이나 계곡, 강 등에서 자주 생기며, 바다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이런 경우는 대개 반복적으로 잠수를 하던 중 생긴다.
이런 사고를 “Shallow water blackout(SWB. 수면 실신)”이라고 하는데 매우 치명적이다.
SWB는 수영장이나 강, 바다 등에서 여러 번 반복적으로 잠수를 하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게 되는데, 만일 의식을 잃을 당시 다행이 하늘을 쳐다보고 수면에 뜬 상태로 의식을 잃으면 의식을 잃어도 호흡은 가능하므로 살 가능성이 높지만, 엎어진 체로 의식을 잃을 경우 잠시 떠 있다가 그대로 조용히 가라앉으면서 익사하게 된다.
SWB가 더 위험한 건, 이처럼 비교적 ‘조용히’ 익수 하기 때문에 발견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SWB와 같은 현상이 생길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과호흡(hyperventilation)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뇌 속에는 호흡, 심장 박동 등 생명과 관련된 생명 중추가 있는데, 이 생명 중추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호흡을 하게 하거나, 심박수를 조절한다.
호흡 중추는 뇌척수액 속의 산소 농도가 아니라 이산화탄소 농도 (즉 분압)의 영향을 받으며, 이산화탄소 수치가 높아지면 숨이 차다고 느끼게 되면서, 호흡 수를 늘리고, 반대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떨어지면 숨이 찬 것을 느끼지 못하며, 호흡 수를 낮추게 한다.
즉, 사람은 산소가 모자라서 숨을 헐떡이는 것이 아니라, 체내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숨을 헐떡이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잠수를 할 때, 잠수 전에 여러 번 깊은 호흡을 하고 물 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런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체내에는 호흡을 참음으로 산소 농도도 떨어지지만, 빈번한 과호흡 탓에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잠수 전 과호흡을 한다고 체내에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면, 대부분의 경우, 평소에도 이미 산소포화도는 97% 이상이 되기 때문이다.
즉, 잠수 전 과호흡은 호흡을 더 참기 위해, 즉 숨이 차다고 느끼는데 걸리는 시간을 더 연장시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잠수 전 과호흡을 반복할 경우에는, 체내에 산소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이산화탄소 농도 때문에 숨이 차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 만일 수심 5미터 혹은 그 이상으로 잠수를 하게 될 경우, 체내 산소는 수압을 받아 산소 분압이 높아져 세포로의 산소 확산(diffusion)이 용이하게 되지만, 점차 더 산소를 소모한 상태에서 수면으로 상승하게 되면, 체내 산소가 점차 감소된 상태에서 수압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어, 산소 분압 마저 떨어지게 되므로 뇌 속의 산소가 모자라 Blackout 즉, 실신하게 된다.
그래서 대개 이런 경우, 수면에 올라 온 후 실신하기도 하지만, 올라오는 도중에 실신하기도 한다. 이렇게 실신하면 잠수를 위해 의식적으로 호흡을 참고 있던 상태가 해제되면서, 뇌는 호흡을 명령하게 되고, 폐 속에 물이 차 위험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발견했을 때, 응급조치는 보통 익수한 경우와 같은 방법으로 하게 된다.
즉, 호흡과 심장 박동을 확인하고, 호흡이 없고 심장이 정지했다고 판단할 경우 바로 인공호흡과 심장 마사지를 시작하고, 자발 호흡과 심박동이 있다면 자극을 주어 의식을 깨우고 기침을 시켜, 폐에 차 있을지 모르는 물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폐에 물이 차지 않았고, 의식이 돌아오면 안정을 취하면 되지만, 호흡이 멈었다면 응급 처치 후 바로 병원으로 후송해야 하며, 의식과 자발 호흡은 돌아왔지만 폐 속에 물이 찼던 것으로 보이면 역시 병원으로 가서 전문의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
2014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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