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DRG 제도의 본질적 문제
- 의료계의 '도그마'들
좌파 시민단체나 야권 입장에서 "의료민영화 반대"는 슬로건이고, 일종의 도그마이다.
마찬가지로 의료계의 도그마는 “원가 이하의 저수가”, “원격의료 반대”, “당연 지정제 반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의료계에 소속된 자가, 원격의료를 찬성한다거나, 당연지정제를 찬성한다고 한다면, 그건 돌 맞아 죽을 일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의료계에서도 언젠가부터 소위 말하는 “의료민영화”에 대한 균형이 깨지면서 차츰 <의료민영화 반대>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면에는 지금은 불명예 퇴진 당한 전임 회장의 영향이 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진주의료원 폐쇄, 의료법인 영리자법인 설립에 대해 반대하였고, 이 반대를 빌미로 좌파 시민단체, 야권 등과 공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야권이 그를 이용한 건지 아니면, 그가 야권을 이용한 건지, 그건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난 의료법인 영리자법인 설립도 찬성이고, 의료민영화도 찬성일 뿐 아니라 의료민영화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료민영화란, 건강보험 독점 구조에서 벗어나 다보험 체제로 전환하고 당연지정제를 철폐하고 건보 국민의무 가입을 폐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원격 의료 도입은 반대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원격 의료를 시행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으며, 실익을 따져 볼 때,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또 무엇보다도, 이 제도를 무작정 도입할 경우, 안 그래도 열악한 의원의 지역 기반이 붕괴되어 1차 의료가 공멸할 가능성이 크며, 정부가 원격의료를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것들은 무리하게 원격의료를 강행하지 않아도, 다른 방식을 통해 얼마든지 획득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격의료를 하려면, 확고한 전달체계 구축과 1차의료의 게이트 키퍼 역할이 확립된 후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그 외에도 위에서 언급한 양측의 도그마 들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오늘 말하고자 하는 건, DRG 즉 포괄수가제이다.
- 진료비 지불 방식의 분류와 종류
다시 말하지만 <포괄수가제 반대>는 의료계의 강력한 도그마이며,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비추어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명확하게 말하자면, DRG (Diagnosis-related group)는 지불제도 그 자체를 의미하기 보다는 질병 분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DRG는 1980년 에일 경영대와 보건대 교수들에 의해 질병 별로 467 그룹으로 분류된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분류는 곧 미국 사회보장제도인 메디케어의 진료비 지불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이로써 DRG는 Prospective Payment System (PPS)의 한 방식으로 널리 사용되게 된다.
진료비 지불 방식은 크게 진료행위 후에, 시행된 행위에 따라 돈을 내는 사후 진료비 결정 방식>이 있고, 진료행위 전에 진단이 내려진 후, 미리 진료비를 정하는 사전 진료비 결정 방식>으로 나눌 수가 있다.
사후 진료비 결정 방식(Retrospective Payment System)이란, 치료나 수술, 검사 후 이에 대한 각 항목별로 진료비를 계산하여 청구하는 방식이며, Fee for Service(FFS) 즉 행위별 수가제가 가장 흔히 쓰이는 방식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방식의 문제점은 각 행위에 따라 모든 행위에 대한 가격을 매겨 청구하므로, 모든 재료, 행위에 대한 가격이 미리 정해져야 하며, 모든 행위 때마다 이를 일일이 찾아 기록해 두었다가 청구해야 하므로 복잡하고, 각 행위가 적정한지,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심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심사와 적정성 평가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하고 있으며, 이는 거대 조직이어서, 이 심사 및 평가를 위해 써야 하는 비용이 상당하다.
즉, 청구 과정이 복잡하고 행정 처리가 많고 행정 처리 비용이 많이 필요한 제도이다.
반면 사전 진료비 결정 방식(Prospective Payment System)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른바 총액계약제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DRG라는 것이다.
사실 원칙적으로 볼 때, 의료서비스도 상품이므로, 각각의 상품을 사용하고 나서, 쓴 만큼 돈을 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의 경우 상품의 선택권이 환자보다 의료진에게 있고, 입원, 간호, 검사, 수술, 투약 등 입원 기간 중 사용하는 상품의 가짓수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이를 일일이 따지는 것이 지나친 소모일수 있다.
DRG나 총액계약제는 모두 이 같은 인식에서 개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병원과 환자 모두 진료비 예측이 가능하도록 하고, 진료비 청구에 필요한 복잡한 기록을 생략하고, 또 이를 심사하고 적정성 평가하는 과정 역시 간소화하여 결과적으로는 행정 절차를 대폭 축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예상 외로 널리 사용되는 PPS 방식과 DRG의 문제점
DRG는 언급했다시피 질병을 분류하고 그 질병에 따른 진료비 가격을 미리 정해 두고, 해당 질환자에게는 같은 가격을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총액계약제는 병원 단위의 일년간 소모 예산 즉, 인건비, 재료비, 경상비 등등을 미리 계획을 세운 뒤 이를 정부, 보험자 등으로부터 미리 받아 그 예산 내에서 경비를 지출하며 병원을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즉, DRG나 총액계약제는 경영적 측면, 보건경제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지불방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행위별 수가제에 익숙한 우리나라 의사들에게는 생소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제도이다.
왜냐면, 행위별 수가제는 행위를 할 때마다 돈을 청구할 수 있고, 새로운 행위는 매출 증대라는 의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오해는 말기 바란다. 그렇다고 의사나 병원이 맘대로 아무 행위나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니까. 병원이 갖는 고유한 자율 시스템은 물론 심평원이 이를 강력하게 감시하고 있으며, 심사와 행위에 대한 적정성 평가를 통해 불필요한 행위이거나 과하다고 <판단>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삭감의 칼을 가져다 대고 있다.
- 심평원과 의사들의 긴 싸움은 이 때문에 생긴다. 심평원 <판단 기준>이 의학적이지 않으며 지나치게 경제 논리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 지루한 논쟁과 다툼은 심평원이 존속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DRG 문제는,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제도 도입 방식과 제도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제도란 DRG 라는 원래의 제도를 의미하며, 변형된 형태인 한국형 DRG즉 KDRG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DRG가 그렇게 악마의 제도이고 저열한 제도라면 미국 대다수 병원에서 DRG를 채택하여 진료비 지불을 정할 리 없으며 미국 뿐 아니라 캐나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 일본, 대만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중동의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 사전 진료비 결정 방식(Prospective Payment System)으로 진료비를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DRG와 유사한, 사전 진료비 결정 방식으로 진료비를 받아왔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보험이 통용되지 않던 시절, 병의원을 방문해 맹장염 진단을 받고 수술을 권유 받으면 (그 당시에는 의원에서도 수술을 하곤 했다.) 누구나 이렇게 물어 볼 것이다.
“그런데, 수술비는 얼마나 할까요?”
이 때,
“입원비는 하루 얼마이고, 수술비는 얼마, 마취비는 얼마이고, 주사 값은 한 대당 얼마인데…. 나중에 맞는 만큼 계산하면 됩니다.”
라고 설명하면 그건 행위별 수가제로 계산하는 것이고, 그냥 “얼마입니다.”하면, 그게 바로 DRG인 것이다.
즉, 그 “얼마입니다”는 수술비, 입원료, 마취료, 주사료, 간호료 등이 모두 포함된 가격인 것이다.
의료보험 전에는 공단에 청구할 필요가 없으므로, 적당히 알아서 받아왔던 것이며, 이 가격은 병의원에 따라 제각각 달랐으니 누군 의사나 병원의 명성을 듣고, 누군 그 가격에 따라 병원을 선택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DRG는 전국 어느 병원이나 같은 가격이다.
왜냐면, 지금은 보험제도가 있고, 그 보험제도는 모든 의사의 의료 수준은 동일하며, 모든 병원의 시설도 같다고 보고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 그러니, 같은 값이라면 큰 병원, 시설 좋은 병원을 찾아가려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문제는 그 인지상정 탓에 의료 공급 체계가 통째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의료 이용체계를 구축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 의료계의 미래는 없다.
미국의 메디케어 제도가 DRG 방식으로 진료비를 지불하는 것은 언급한 대로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진료비 산정 경비를 줄이고, 진료비 지출을 예측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DRG에는 문제가 없을까?
아니다.
이는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한 지불제도이기 때문에 결정적 결함이 있는데, 그건, 하나의 질환에 대해 동일한 가격을 지불하기 때문에, 공급자 즉 병원 입장에서는 가급적 입원 일수를 줄이고, 행위를 줄여 지출을 줄이면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 반대로 환자에게 합병증이 생기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여 입원 기간이 늘거나 행위가 늘어나게 되면 당연히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DRG를 지불제도로 사용하는 외국의 수 많은 병원에서 이 같은 점을 문제삼지 않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DRG 수가가 우리처럼 지나치게 싸거나 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설령 어느 환자로 인해 손해를 보아도, 마찬가지로 또 다른 환자를 통해 이득을 보는 경우도 있어 상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DRG 지불 제도를 채택하여도 병원은 경상 이익을 낼 수 있으며 (즉 손해보지 않으며), 특히 미국의 많은 병원들은 비영리병원이고 기본적으로 병원은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마인드가 깔려있기 때문에 이를 크게 문제 삼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우는 어떨까?
- 우리나라 DRG 제도의 문제
우리나라 DRG 제도는 언급하였듯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책정했다는 문제가 있다.
지나치게 낮다고 한다면,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인가?
우리나라는 일부 질환에서만 DRG를 의무 적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질환 (예를 들어, 맹장 수술이나 백내장 수술, 제왕절개 등)의 경우 환자가 입원해서 수술, 투약 후 퇴원할 때까지 발생할 각 행위를 행위별 수가제로 계산하여 보고, 그 가격과 DRG로 책정된 가격을 비교할 때, 행위별 수가제로 계산할 때보다 오히려 낮거나 낮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낮을 가능성이란 건, 만일 행위별 수가제로 환자를 치료할 경우 예상할 수 있는 비급여 항목이 있는데, DRG의 경우 이 같은 비급여가 완전히 제외되거나 제외될 가능성을 말한다. (질병에 따라 차이가 있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DRG 제도를 도입할 때, 단지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진료비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넘어서 DRG제도를 진료비 통제 수단을 삼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수 많은 나라에서 DRG제도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를 진료비 통제 수단으로 삼고 있는 나라는 없다.
병의원과 의사들이 이 제도에 반감을 갖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DRG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제도 도입의 취지와 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DRG도입을 통해 진료비를 인하하고 통제하려고 하려고 하는 한, 이 제도 시행에 따른 갈등과 반목은 사라질 수 없다.
한국 의사들이 DRG에 반감을 갖는 다른 이유는 이미 장기간 행위별 수가제도와 저수가에 익숙해왔기 때문이다.
저수가 즉 가격이 싼 경우에, 일정 수준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빈도를 올리는 방법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대비 전세계에서 가장 진료비(진찰료)가 싼 나라인데, 그 같은 이유로 단위 시간 당 가장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건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이처럼, 빈도를 올려 겨우 수지를 맞춰 오던 한국 의사나 병원 입장에서는 <빈도>라는 변수를 아예 없애 버리는 제도인 DRG는 말 그대로 멘붕 그 자체 일수 밖에 없다.
그러니 DRG를 좋지 않은, 악마의 제도라고 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DRG 제도를 개선하려면 직설적 화법을 써야.
한편, 의협 등은 DRG의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이 제도는 의료의 질을 떨어트리고 종국에는 환자에게 불이익이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맞는 주장이고, 최소한 한국의 DRG 제도 하에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DRG 제도의 탓이라기 보다는 지나치게 낮은 DRG 수가에 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언급했듯이 이 제도를 도입해 쓰고 있는 수 많은 나라에서 이로 인해 환자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그 어떤 보고도 찾아 보기 힘들다.
DRG가 의료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이야기는 가격이 싸기 때문에, 환자에게 할 수 있는 행위의 제한이 있고, 더욱이 수술에 소모되는 재료의 질이 떨어지거나, 검사에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투약이나 입원 기간, 검사를 줄이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문제 역시, 가격의 문제이지 DRG 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제껏 의사 협회 등에서 DRG 를 거론하며 이슈화 할 때, 왜 직설적으로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주장하지 않고, 변죽만 울렸는지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DRG 제도의 문제의 핵심은 지나치게 낮은 가격과 이 제도를 진료비 통제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이를 개선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DRG 제도 본질에 문제가 있는 양 주장하거나, 그 외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할 경우, 본질은 사라지고 문제 해결은 영원히 미궁으로 숨어 버리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바이다.
.2014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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