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do Net 추억
Fido-Net Logo |
1980년대 말에서 90년 대 초, PC 가격이 하락하고, 하드디스크 가격 역시 떨어지면서 PC가 더 많이 보급되고 더 많은 정보들이 저장되기 시작했고, 한편, 2400 BPS 모뎀의 보급으로 한국경제신문의 케텔(ketel. 1989년 말), 한국데이터통신의 PC-Serve(1990년) 등 대중을 위한 상용PC 통신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또, 이들 상용 통신망 외에도 개인이 호스트 시스템을 구축하여 전자게시판(BBS)형태의 통신시스템을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 하늘소 팀이 만든 통신 에뮬레이터인 이야기가 있었고, BBS 호스트 프로그램인 호롱불이 있었기에 훨씬 더 빠르고 쉽게 BBS가 보급될 수 있었다.
이야기 구동 화면 |
우리나라 최초의 BBS는 1988년 시작된 것으로 보여지며, 89년에는 한국데이터통신의 H-mail 이용자들이 떨어져 나와 엠팔(Empal)이라는 멀티노드 BBS를 운영했다.
그러나 BBS의 전성기는 호롱불이 나온 91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들 BBS는 대부분 하나의 전화망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특정 사용자가 이 전화망을 점유하면 다른 이들은 접속할 수 없다는 불편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 호롱불을 만들었던 최오길 씨에게 부탁해 지난 접속 이후 올라온 새 글을 압축하여 일시에 다운받을 수 있는 일명 'L' 기능을 부탁했는데, 이를 통해 새로 올라온 글을 다운 받아 오프라인 상태로 읽고, 오프라인 상태에서 글을 작성해 업로드 할 수 있게 되어, 상대적으로 접속 시간을 줄여 보다 많은 사용자들이 BBS를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화망을 이용하므로, 같은 지역에서는 시내 전화요금으로 접속할 수 있지만, 지역이 다르면 시외전화요금을 물어가며 써야 했는데, 일부는 간혹 외국에서 비싼 국제전화요금을 물어가며 접속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유료 전화망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접속자에 비해 노드가 적다는 것과 함께 BBS의 가장 큰 두 가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Fido Net은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국제적인 시스템이다.
Fido Net은 국내에 PC통신이 보급되기 훨씬 전인 1980년대 중순 이미 만들어진 것인데, 기본 개념은 전세계를 Zone 1에서 Zone 6까지 6 대륙으로 나누고, 각 대륙에 최상위 호스트(Zone Coordinator)가 하나씩 있고, 그 아래에는 지역 코디네이터(Region Coordinator) 역할을 맡는 호스트 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다시 Net Coordinator, Hub 등의 이름이 붙은 하위 호스트들이 있으며, 이에는 최종적으로 node 개념의 BBS가 연결되게 된다.
이런 피라미드 구조를 통해 node (BBS)에서 특정 시간에 시내, 시외전화 등을 통해 Hub로 새로 올라온 글, 메일 등으로 압축하여 전송하면, Hub들은 다시, 상위 개념인 Net Coordinator에게 보내고, 이는 다신 Region Coordinator Server에게, 이는 다시 최종적으로 Zone Coordinator로 보내는데, Zone Coordinator에서는 이를 다른 5개 Zone Coordinator와 데이터를 주고 받아, 이를 다시 하위 BBS로 내려 보낸다는 개념이다.
즉, 모두가 다 시외, 국제 전화를 걸 필요가 없이, 지정된 할인 시간대를 이용해 누군가 데이터를 모아 국제 전화를 걸어 데이터를 주고 받아 다시 배포하면 된다는 개념이다.
한참 잘 나갈 때, Fido NET에 물린 BBS는 전세계적으로 4만개 가량이었으며, 즉 수백만 명이 이를 사용했고, 물론 국내에서도 Fido NET 망을 이용하였다.
인터넷 망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전화망을 이용한 국제간 데이터 교환의 궁여지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정보 통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인데, Fido NET은 비록 공간은 초월하고 시간 역시 극복할 수 있었지만, real time의 개념이 아니므로, 단지 단축시킬 수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Fido NET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사라지게 된다.
Fido NET의 독특한 특징은, 그것의 물리적 특성상 비록 멀리 떨어진 다른 사용자의 글이나 정보를 볼 수는 있지만, 그와 직접 부딪힐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동시에 한 서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real time으로 채팅을 하거나 글을 주고 받을 수 없다.
이 점은 현재 많이 사용되는 블로그나 카페, SNS와 가장 큰 차이이다.
전세계 어디서나 real time 문자 채팅은 물론, 화상 통화까지 가능한 시대에서 이게 무슨 불편인가 싶겠지만, 사실 오늘 불연듯 Fido-NET이 생각난 이유는 그것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블로그와 카페가 인터넷 통신의 주류를 이루었고, 페이스북, 트위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2000년대 중후반, 혹시 이런 개념의 새로운 서비스를 구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다.
즉, 사용자는 각자 자신의 블로그를 가지고, 그 블로그에 글을 쓴다.
블로그에는 여러 개의 디렉터리 (즉, 서로 다른 방)이 있고, 그 중 한 방에 올리는 글은 Fido NET처럼 상위 개념의 호스트로 자동 이동(공유)된다.
상위 개념의 호스트는 이렇게 공유 받은 데이터들을 역시 하나의 방에 넣어, 그 호스트에 접속하는 사용자들이 볼 수 있게 하고, 마찬가지로 이 호스트 접속한 사용자들은 더 상위 개념으로 공유할 자료를 특정 방에 넣는다.
마찬가지로 더 상기에 있는 호스트도 이렇게 정보를 취합하여 정리하고, 마찬가지로 하위 호스트에 정보를 내려 보낼 수 (공유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카페와 다른 건, 카페는 한 호스트 (혹은 사이트)에 다수가 집중하여 동시에(즉, Real time으로) 글을 올리거나 보거나 한다는 것인데,
이 시스템은 자신의 블로그 (혹은 명칭이 뭐든)를 플랫폼으로 하여, 오로지 자신의 블로그에만 글을 쓰되, 유통될 정보만 분류하고 공유해 각각의 사용자들이 서로 다른 플랫폼과 호스트를 사용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어떻게 보면, 타임라인 (플랫폼)과 포스팅 공유 개념을 쓰는 페이스 북과 유사한데, 페이스 북은 '친구'란 개념이 있고, 친구를 늘려나가는 것이 일종의 gamification처럼 사용되는 반면, 이 시스템은 오히려 각 사용자들을 격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근데, 이게 왜 필요하냐구?
필요하다.
왜냐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유통시키기는 원하지만, 사용자들과 직접 contact하여 서로 argue하거나 conflict되는 걸 원치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경우, 구글링하여 다른 이의 블로그나 카페 혹은 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받아 볼 수 있고, 지금처럼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 있지만, 이 경우는 대단히 일방적이기 때문에, 그 보다는 쌍방성을 더 높이되, 의도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용자와 물리적 실시간 충돌을 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필요성을 모르겠다고?
문자는 보내야겠는데, 상대가 그 문자를 보관하기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일정 시간 후 문자가 자폭되는 SNS 시스템도 나와 있고, 대단히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시스템을 만들겠다거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인터넷 소통이 발전할수록 그에 비례해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사고 방식과 매너를 갖는 이들이 늘어나기에 생각했던 것이고, 그 때의 구상이 불연듯 떠올라 하는 말이다.
또, 정보의 유통은 필요한데, 그것의 대부분이 real time을 기본으로 하여, 이로 인해 분쟁이 되거나 상처받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2014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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