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공유






왕권은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못한다. 수 많은 역사적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고려 충선왕과 그 아버지 충열왕도 권력을 놓고 다투었다. 광해군과 선조 역시 왕권을 놓고 다투었다.

지난 3월 10일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권력의 실체이다. 그 실체가 낙마하면 일시적인 권력의 진공 상태가 생기게 된다. 황교안 대통령 대행은 그 진공 상태의 부작용을 최대한 막아낸 공로가 있다. 덕분에 국정 공백이 크진 않았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 투쟁은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진보 진영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사파 운동권 출신의 임종석을 비서실장에 앉혔고, 이를 놓고 말이 많다. 임종석이 인사차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을 방문했을 때 추미애는 아프다는 핑계로 회동을 회피했다.

추미애가 임종석과 사이가 멀어진 표면적 이유는 똑같이 386 운동권 출신인 김민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추미애는 김민석을 당 사무총장, 민정수석 등으로 추천했으나 임종석의 방해로 실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추미애의 임종석 회피는 그것에 대한 반감의 표시라고 할 수 있고, 좀 비틀어 말하자면, 권력을 놓고 벌이는 암투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권력의 실체인지도 의문이다. 많은 이들이 대통령은 허수아비이고, 배후에 누군가 실권을 쥐고 있다고 떠들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가 대통령 권력을 공유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출구 조사가 발표된 후, 국회 민주당 개표 상황실에 나와 "이 승리는 간절함의 승리이며, 다음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정부"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더불어 민주당과 대통령의 권력을 나누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추정컨대, 문 대통령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좌경화되어 있으면서, 그에게 이념과 이론적 논리와 통치 철학을 제공하는 정책 지원 조직 (혹은 이념 지원 조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조직이나 인물을 멘토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멘토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문 대통령의 권력은 이 지원 조직과 공유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어쩌면,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은 이 지원 조직에 속하며, 문 대통령의 근거리에서 이념과 이론적 논리, 통치 철학을 제공하는 정책 지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을 허수아비라고 비아냥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권력의 진정한 맛을 보게 되면, 그들로부터 독립하려고 할 것이고, 그 때는 그 지원 조직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왕권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가 없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지금의 진보 세력의 집권 권력이 왕권은 아니다. 진보 세력은 집단 의사 결정 구조를 갖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에게는 그것이 익숙한 것일 수도 있다.

운동권 혹은 진보 진영 안에서만 권력 투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의 대통령 등극 이후, 권부가 요동치고 있다. 오랜 보수 정권, 그 후의 10년 진보 정권, 다시 10년 가까운 보수 정권 후에 또 다시 찾아온 진보 정권 때문이다. 지금 중견 공무원들은 우와 좌를 이미 맛 본바 있다.

그래서 공무원 특히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지금 우에서 좌로 급회전한 권력을 관망 중이다.

보수 대통령이건, 진보 대통령이건, 대통령이나, 그를 옹위하는 가신 그룹의 수명은 단 5년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아니 끝나기 전이라도 레임덕에 빠지면, 대통령의 권력에 누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지만, 사실 권불오년인 셈이다.

그러나 권부 즉, 주요 공무원들의 임기는 이들보다 훨씬 더 길다. 게다가 장차관, 실장과 일부 국장을 제외한 나머지의 인사는 아무리 청와대라고 해도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만일 권력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고위직 공무원 몇 명은 쉽게 날릴 수 있다. 하지만, 국과장, 사무관 기십명을 한번에 날릴 수는 없다. 고위직이 아니라면, 정권이 바뀌었다고 목이 날아가는 일은 없다는 얘기이다.

이들이 줄곧 가지고 온 정책 기조는 관성이 있으므로 단 칼에 잘라 급회전시키기도 어렵다.

그래서 각 부처의 정책 기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차피 좌던 우던 급회전하려는 대통령의 임기만 잘 개기고 있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당분간, 문재인 대통령, 그를 정책 지원하는 실권자들, 더불어 민주당의 당권자들, 기존 공무원 조직의 권부들 간에 치열하고 치밀한 권력 암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이를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조정 기간"이다.

2017년 5월 12일





No comments

Theme images by fpm.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