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것 (2부)
"감기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것 1부"에서 감기에 대한 몇 가지 사항과 감기 바이러스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신체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 언급하였고, 프로스타글란딘이 어떻게 체온을 올리고 통증을 유발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런 감기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어떤 약물을 사용하며 그 약물이 작동하는 기전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8. NSAID
감기 바이러스에 의해 공격받은 후 통증을 느끼고, 열이 나며, 기침을 하고, 콧물이 흐르는 건 인체의 면역 기능이 바이러스 공격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열은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고, 통증은 바이러스 감염을 인체에 알리며, 기침은 바이러스를 체외에 배출시키고, 콧물은 바이러스를 씻어 내리고 점막 세포에 침투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면역 반응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같은 면역 반응을 오히려 불편하게 느낀다.
그래서 감기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약물을 찾는데, 사실 감기 바이러스에 의한 면역 반응을 줄이는 가장 좋은 약물은 스테로이드(정확하게는 스테로이드 중 하나인 글루코코티코이드(glucocorticoid))라고 할 수 있다.
스테로이드는 기본적으로 면역을 억제하는 약물이며, 세포성 면역이나, 체액성 면역 모두에 직접 작용해 면역 기능을 억제한다. 또,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거나 아예 단백질을 쪼개 버리기도 한다.
스테로이드 중 코티졸은 정상적으로 부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지만, 약물의 형태로 먹거나 주사 맞을 수 있다. 덱사메타손 같은 합성 스테로이드는 체내에서 분비되는 코티졸의 약 80배에 이르는 강력한 효과를 가진다.
특히 글루코코티코이드는 면역 억제 기능 뿐 아니라, 강력한 항염 작용도 가지고 있다.
염증, 통증, 발열의 시작은 자극에 의해 세포막의 인지질(Phospholipid)에서 arachidonic acid가 분리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글루코코티코이드는 이때 촉매 작용을 하는 효소 Phospholipase를 억제함으로 항염, 진통 작용을 보인다.
각 약물들의 항염 작용 부위 |
그뿐만 아니라, 아스피린이나 이부프로펜 등이 차단하는 COX-1, COX-2 효소의 합성을 억제하여 강력한 항염 효과를 보인다.
그러나 감기 치료에 스테로이드를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테로이드가 아닌 항염제를 쓰는데, 이를 NSAID(Non-steroid Anti-inflammatory Drug)라고 한다.
NSAID는 1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포막의 인지질(phospholipid)에서 분리된 arachidonic acid가 COX-1, COX-2 효소의 촉매 작용으로 프로스타글란딘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차단하는COX 억제제라고 할 수 있다.
이중 아스피린, 이부프로펜 등은 COX-1 과 COX-2 를 모두 차단하는데, COX-1이 차단될 경우, 위염, 위궤양 등의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주로 염증반응에 관여하는 효소인 COX-2를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NSAID도 개발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약물은 심근경색, 뇌경색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COX-2 선택 차단 NSAID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 외, NSAID로 분류하지는 않으나 해열, 진통을 목적으로 널리 쓰이는 타이레놀이 있다.
타이레놀은 주로 COX-2를 선택적으로 차단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COX-3를 차단하여 해열, 진통 작용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 아스피린
아스피린의 독일 바이엘 사가 만든 약물의 상품명이지만, 지금은 거의 일반명사화된, 오랜 역사를 가진 약물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1918년 상표권을 상실한 바 있다.
아스피린의 역사는 기원전 400년 전 히포크라테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버드나무 잎을 말려 가루로 만든 후 통증과 고열 치료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후에도 버드나무 잎과 줄기에서 나온 진액을 같은 목적으로 사용했는데, 드디어 1763년 영국 옥스퍼드의 학자가 Salicylic acid를 처음으로 추출하였고, 1897년 독일 바이엘 제약의 화학자들이 Salicin을 합성하기에 이른다.
2년 후, 바이엘은 새로운 형태의 약물인 Acetylsalicylic Acid를 아스피린이란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Acetyl Salicylic Acid |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스페인 독감이 대유행하면서, 이때 상당량의 아스피린이 해열, 진통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이 당시 1억 명에 달하는 사망자 중에는 아스피린의 부작용에 의한 사망자가 상당수 이른다는 주장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사실은 아니다.
아스피린의 인기는 1950년대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과 1960년대 이부프로펜(부루펜)이 발표되면서 급감하였다.
이후 아스피린의 항응고 효과가 발견되면서 20세기 말에 이르러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예방적 약물로 다시 한 번 과거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
아스피린은 사용된 역사에 비해서, 약물의 작용 기전이 밝혀진 건 오래되지 않는다. 1971년 영국의 약물학자인 John Robert Vane은 아스피린이 프로스타글란딘(PG)과 Thromboxane의 생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이의 공적으로 1982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1부에서 감기에 의한 통증과 발열의 원인이 프로스타글란딘(PG)에 의한 것임을 설명한 바 있는데, Arachidonic acid가 PG로 변환되기 위해서는 COX-1 과 COX-2 효소가 촉매로 사용되어야 하는데, 아스피린은 COX-1 을 비가역적으로 억제하고, COX-2 기능을 변형시켜 PG 생성을 억제한다.
아스피린의 작용 기전 |
따라서, 아스피린을 투여할 경우, PG에 의한 통증 강화 효과가 감소하고, PGE2가 시상하부의 온도조절 기능을 교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 고열을 방지할 수 있다.
Arachidonic acid는 Thromboxane A synthase 에 의해 thromboxane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Thromboxane A synthase는 혈소판에 있는 효소이며, 이에 의해 만들어지는 thromboxane은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상승시키며, 혈소판 응집을 촉진한다.
아스피린은 이 Thromboxane A synthase를 비가역적으로 차단하여,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 같은 효과는 과거 심근경색이 있었던 환자에서 또다시 심근경색이 발생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긍정적 이점을 가져다준다.
Thromboxane A synthase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적은 용량만 섭취하여도 되기 때문에, 평소 하루 75~81 mg 정도의 아스피린을 투여하여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에게 아스피린을 투여했을 때도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과연 건강한 사람도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아스피린이 항암 예방 효과 등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스피린에 의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아스피린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위 출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혈소판 응집을 억제할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장기간 사용할 때는 장용제 (위에서 녹지 않고 장에서 녹을 수 있도록 약을 코팅한 제형)로 만들어진 아스피린을 복용할 필요가 있다.
위 출혈뿐 아니라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므로 출혈성 경향을 보일 수 있어, 외상이나 수술할 때 지혈을 연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뇌출혈을 유도할 수도 있다.
2005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270mg으로 복용한 경우 1만 명당 12명꼴로 뇌출혈의 가능성을 보였다고 한다. (반면, 1만 명 당 137명이 심근경색을 예방할 수 있었고, 39명에서 뇌경색을 막을 수 있었다)
아스피린의 또 다른 주요 부작용은 라이 증후군(Reye's Syndrome)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 증후군은 드물지만, 매우 심각한 질환으로 구토, 발작, 의식 상실 등의 급성 뇌증과 간 손상을 보이는 질환이다.
소아와 청소년에게 아스피린을 투여할 경우 드물게 라이 증후군이 발생하는데, 라이 증후군의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미국의 경우 1981년부터 1997년까지 16년간 18세 미만에서 1,207건의 라이 증후군이 보고되었고, 이 중 81.9%가 아스피린을 복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라이 증후군과 아스피린의 연관성이 보고된 이후, 소아에 대한 아스피린 투약이 감소하자, 라이 증후군의 발생 역시 감소한 바 있다.
현재 미국은 12세 미만의 소아에게 해열을 목적으로 아스피린 투약을 금하고 있으며, 영국은 16 세 미만에게 주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 밖에 아스피린은 혈중 포타슘 농도를 증가시킬 수 있으며, 신장의 요산 분비를 억제함으로 통풍 환자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편, 지난 2015년 7월, 미국 FDA는 NSAID가 심근경색, 뇌졸중 발생 가능성을 높힐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는데, 아스피린은 이 경고에 해당하지 않는다.
2) 타이레놀
우리가 흔히 타이레놀이라고 부르는 약물의 제품명은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이며, 타이레놀은 미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사용되는 상품명이다.
국제적으로는 Paracetamol이란 제품명이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Paracetamol이 International Nonproprietary Name (INN)이다.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과 파라세타몰(Paracetamol)은 모두 화학명 para-acetylaminophenol 에서 차용한 것이다.
아세트아미노펜 (파라세타몰)은 원칙적으로 NSAID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NSAID와 달리 항염 작용이 거의 없고, 주로 중추신경계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팔, 다리나 관절에 생긴 염증에는 별 효과가 없다는 의미이다.
아세트아미노펜의 초기 형태는 아세트아닐라이드(Acetanilide)라고 할 수 있다. 일설에는 19세기 어느 프랑스 의사가 극약으로 알려졌던 아세트아닐라이드를 잘못 처방하는 바람에 환자가 먹게 되었는데, 해열, 진통 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후, 이의 목적으로 처방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찌 되었든, 아세트아닐라이드는 20세기 초까지 꾸준히 처방되었지만, 청색증, 간 독성 등 부작용이 심했다.
1948년, Bernard Brodie, Julius Axelrod 등은 아세트아닐라이드에서 유도된 para-acetylaminophenol이 더 안전하며 효과적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1950년 파라세타몰과 아스피린, 카페인을 섞어 Triagesic라는 이름으로 출시하였으나, 이 약물이 무과립구증이라는 심각한 혈액 질환을 야기한다는 주장이 있어, 1년 만에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그러나, 7년 뒤에야 혈액 질환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편, 1953년 Sterling-Winthrop, Inc.에 의해 파나돌이란 이름으로 전문의약품 형태로 판매가 시작되었고, 그 외 여러 회사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을 상품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59년에 이르러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되면서 가정상비약이 되었고, 1970년대 이후 아스피린을 제치고 가장 흔히 쓰이는 해열 진통제로 등극하였다.
아세트아미노펜의 효능은 해열, 진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해열 작용의 경우, 소아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을 단독 사용할 경우 해열 효과에 대한 의문이 있으며, 이부프로펜에 비해 덜 효과적이기 때문에, WHO는 소아의 경우 38.5 'C 이상인 경우에서만 사용하라고 권하고 있다.
또 진통 작용은 아스피린이나 이부프로펜과 유사하지만, 항염 작용(anti-inflammatory effect)은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의 작용 기전은 아직 명료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아스피린처럼, Arachidonic acid가 PG로 전환되는데 필요한 효소인 COX (Cyclooxygenase)를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질 뿐이다.
최근 연구는 아세트아미노펜이 COX-2를 더 선택적으로 억제하며, 중추신경계에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COX-3가 있는데, COX-3를 차단하여 통증을 조절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아스피린과는 달리 Thromboxane A synthase 는 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아세트아미노펜은 아스피린처럼 혈소판 응집 억제작용을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아세트아미노펜 역시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데, 간 독성이 바로 그것이다.
임상적으로 보면, 정상적인 간 기능을 가진 경우에도, 권장량을 장기간 사용하거나 과용량을 복용할 경우 많은 경우에서 간 수치가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 FDA는 간독성의 발생 가능성이 높으므로 아세트아미노펜의 과용량 사용을 피하라고 경고하면서, 아세트아미노펜의 과용량 사용으로 1990년대에 해마다 5만6천 명이 응급실을 방문했고, 매년 458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2013년에는 드물기는 하지만, 스티븐 존슨 증후군과 같은 치명적인 피부질환이 생길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세트아미노펜은 아스피린처럼 소아에서 라이 증후군이 생길 가능성은 없으며, 이부프로펜처럼 위장 증상도 보이지 않으며, 소아에서도 비교적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3) 이부프로펜
이부프로펜은 부루펜, 애드빌 등의 상품명을 가지고 있으며, 1950년대 영국 화학자 Stewart Adams가 이끄는 팀에 의해 아스피린보다 안전한 해열 진통제를 찾기 위해 개발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Stewart Adams는 최초 만들어진 이부프로펜을 그의 숙취 제거 목적으로 복용했다고 한다.
이부프로펜은 아스피린이나 아세트아미노펜처럼 COX 효소를 억제하여 arachidonic acid가 PG로 변환되는 것을 막는 약리 기전이 있다. 또 아스피린처럼 비특이적으로 COX-1과 COX-2 를 억제하며, 해열, 진통, 항염 작용을 모두 지닌다.
또, 생리통, 두통 및 류머티스성 관절염에도 효과가 있으며, 미숙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선천성 기형인 동맥관 개존증의 치료에도 사용된다.
부작용으로는 구역, 위산 과다, 설사와 변비 등의 위장 증상이 생길 수 있으며, 다량을 복용할 경우, 심근경색의 가능성이 커지며, 천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임신 초기의 안정성은 확인된 바 없으나, 임신 후기에는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 감기 치료의 원칙
어떤 약물이나 대체 요법, 민간 치료제 등이 감기의 진행을 단축한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감기 치료는 증상에 대한 대증요법일 뿐이다. 충분히 수분을 섭취하고, 잘 먹고, 잘 쉬고 자주 입가심 하는 것이 최고의 보전적 치료라고 할 수 있다.
통증이나 해열을 목적으로 하는 NSAID의 사용은 권장되지만, 기침을 억제할 목적의 기침약(코푸시럽)은 권장하지 않는다. 특히 소아의 경우, 기침약의 효과가 의문시될 뿐 아니라,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어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고, 캐나다의 경우 2009년부터 6세 이하의 소아는 약국에서 기침약을 팔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항히스타민제의 경우 성인에서 초기 하루 이틀가량 사용할 경우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장기간 사용하는 것은 크게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졸림 등의 부작용이 있어 권장하지 않는다. 비충혈에 의한 코막힘으로는 슈도에페드린이 효과적이며 성인에서는 권장된다.
감기 환자에게 수액을 주는 것이 증상을 호전시키거나 호흡기 증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없다.
항생제는 바이러스에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잦은 항생제 사용은 내성을 키울 수 있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으나 여전히 국내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빈번히 항생제 사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감기에서 항생제가 사용되는 이유는 환자가 원하고, 의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여전히 항생제에 의한 합병증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생제뿐 아니라, 감기에 대한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감기에 대한 명확한 치료제 즉, Cure를 위한 치료제가 없고, 감기의 역사가 긴 만큼이나, 다양한 대체 요법이나 민간요법도 많은 편이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모두 다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대체 요법은 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꿀이 좋다는 충분한 근거는 없다.
일각에서는 아연(Zinc)이 감기에 좋다고 하지만, 아연이 좋다는 연구 결과의 틈새가 너무 크고, 아연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연구도 미흡하다.
비타민C에 관한 연구는 광범위하지만, 그 효과나 결과는 실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헬싱키 대학의 2013년 연구에 의하면, 일반인들에게 비타민C를 투여하는 것으로 감기 발생을 줄이지는 못했으며, 육체적으로 과로하는 경우에만 유용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일부는 천연 항생제라고 부르는 Echinacea(에키네시아) 가 감기에 좋다고 하지만 이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 마늘이나 비타민 D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10. 코푸 시럽
감기약으로 흔히 쓰이는 코푸시럽 즉, 기침약처럼 논란이 많은 의약품도 별로 없다.
지난 2015년 식약처는 유럽 의약품청인 EMA의 권고(12세 미만일 때 기침 치료로 코데인의 사용을 금지)를 그대로 인용하여, 12세 미만 소아의 경우 다이하이드로코데인이 포함된 코푸시럽의 처방을 금지하도록 안전성 서한을 배포하고, 다이하이드로코데인이 포함된 28개 해당 품목의 허가를 변경 조치한 바 있다.
그러나 국내 개원가의 항의가 이어지자, 식약처는 EMA에 직접 질의를 하였고, EMA는 다이하이드로코데인은 해당 품목이 아니라는 회신을 하여, 이 해프닝은 수개월 만에 종결되었다.
아무튼, 흔히 사용되는 기침약은 여러 성분의 약이 섞여 있는 복합제인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코푸시럽과 코푸시럽S의 예를 들어 과연 어떤 성분이 들어 있으며,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자.
1) 코푸 시럽 vs 코푸시럽S
코푸시럽과 코푸시럽S에는 모두 메칠에페드린염산염이 있는데, 에페드린은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며, 기관지를 확장하는 작용을 한다. 메칠에페드린염산염은 에페드린의 교감신경 흥분 작용 즉, 두근거림, 흥분, 두통 등의 부작용을 줄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클로르페니라민말레산염은 항히스타민제제로 히스타민의 기능을 억제하여, 콧물이나 기관지 점액의 과다 배출량을 줄이고, 염증을 줄이는 작용을 한다.
염화암모늄은 기관지 분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2) 다이하이드로 코데인(Dihydrocodeine)
다이하이드로코데인은 인체에서 모르핀으로 변환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마약으로 분류되며, 코푸시럽과 같은 복합제인 때에만 한외마약으로 분류한다.
영국에서 다이하이드로코데인은 의약품 오남용 법으로 분류된 Class B 약물로 불법 소지 때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며, 미국에서도 마약법에 따라 금지된 약물이나, 영국이나 미국 모두 아세트아미노펜과 섞인 복합제의 소량은 판매할 수 있다.
다이하이드로코데인은 호흡 중추를 억제하여 기침을 멈추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성인에서 코데인의 효과는 입증되었으나 최근 소아에서의 효과는 플라세보(위약. Placebo)와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3) 덱스트로메트로판 (Dextromethorphan)
덱스트로메트로판은 성인에서는 기침에 효과가 있으나, 소아에서는 벌꿀만큼의 효과도 없었다고 한다. 캐나다 등은 6세 미만의 소아에서는 약국에서 덱스트로메트로판이 포함된 일반 의약품(코푸시럽) 판매를 아예 금지하였다.
그러나, 사실 부작용도 별로 없다.
연구에 따르면, 소아에서 발생한 부작용 대부분은 과용량을 복용했기 때문이며, 부작용 사례 1,716례 중 사망례는 없었으며, 주요 부작용은 운동실조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거나 심계항진 (가슴 두근거림)이었고, 홍조를 보이거나 두드러기가 생기는 정도였다.
즉, 소아의 경우 효과도 없고, 특별한 부작용도 없는 약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11. 보건경제학으로 본 감기
2015년 건강보험 통계를 보면, 2015년 총진료비는 58조 170억 원이었으며, 이 중 입원 진료비는 20조 7,099억 원, 외래진료비 24조 2,121억 원이었고, 약제비는 13조 950억 원이었다.
2015년 다빈도 상병 통계 |
또, 외래 10대 다빈도 상병을 보면, 급성 기관지염에 가장 많았고, 편도염, 비염, 인두염 및 상세불명의 급성 상기도염 등 호흡기 질환이 10대 상병 중 5개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중 감기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편, 2016년 1분기 다빈도 상병을 보면, 급성 비인두염 즉, 감기가 7위에 랭크되면서, 10대 다빈도 상병 중 6개가 호흡기 질환이었다.
2016년 1분기 다빈도 상병 |
어떻게 급성 기관지염 환자가 감기나 편도염이나 인두염보다 훨씬 많을까?
2013년 당시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이원표 회장은 “청구할 때 가장 심각한 것은 심평원의 지나치게 경직되고 세밀한 심사기준”이라며 “이 때문에 업코딩해 청구하거나 실제 상병과 달리 심사기준에 맞춰 청구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업코딩(Up coding)이란 삭감(보험급여비 청구를 기각하고 지급하지 않는 것)될 것을 우려해 좀 더 심각한 질환 코드로 코딩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감기로 코딩하면 되지만, 항생제를 처방했다면, 삭감될 것을 우려해 항생제를 처방해도 삭감되지 않는 급성기관지염으로 코딩한다는 것이다.
물론 상병 코드 입력의 오류의 상당 부분은 임상과 맞지 않는 코드 분류 때문에 코드를 제대로 찾지 못해 익숙한 코드를 입력하는 이유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봐야만 하는 의료현실에 비춰볼 때 정확한 청구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며, 한 개원의사는 "상당수 요양기관들이 적합한 질병코드를 찾지 못하고 환자의 상태에 가까운 질병코드로 청구하거나 ‘상세불명(Unspecified)’ 코드로 청구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오로지 청구만을 위해 상세불명 코드로 청구를 넣으면서 정확하게 청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 바 있다.(라포르시안 기사)
아무튼 진료비 청구 상병 코드로 질환 통계를 내는 것은 신뢰할 수 없으며, 다빈도 상병이 실제 발생한 다빈도 질환이라고 할 수 없다.
또, 생각해 봐야 하는 건, 진료비 내역이다.
2015년 기준 10대 외래 다빈도 상병의 진료비 총액은 4조 1천6백억 원이었는데, 이 중 호흡기 질환 5가지 진료비 총액은 1조4천550억 원이었다. 이 금액은 외래 진료비만 포함된 것이며 약값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약제비를 포함할 때, 감기 등 외래에서 진료 가능한 가벼운 호흡기 질환으로 우리나라 국민이 쓰는 진료비는 2조 원 이상이 되리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2011년 경 수술행위료 총액의 규모가 2천억 원 가량이었으므로, 이 금액 국내에서 시행하는 모든 수술비의 몇 곱절이며, 입원 진료비 총액의 10%를 넘어서는 금액이다.
12. 결론
우리는 "감기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것" 1, 2부를 통해, 감기는 자연 치유되며, 약물치료로는 증상 완화를 위한 NSAID나 항히스타민제 외에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음을 알았다. 그런데 특별히 치료받지 않아도 되는 질병에 너무 많은 의료비를 쓰는 것이 아닐까?
실제 임상 현장에서 보면, 가벼운 감기 증상이 있거나, 혹은 감기가 더 심해질까 봐 우려되어, 외래나 응급실을 찾아 주사와 약물 처방과 수액을 원하는 환자들이 수없이 많다.
주치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캐나다 영국 등은 주치의를 만나기 위해 예약을 해야 하는데, 예약 후 진료까지 최소 1, 2주일이 걸리기 때문에, 진료를 받기 전에 감기가 나아버리기에 십상이다. 물론 응급실 이용은 상상조차 어려우며, Walk in Clinic 같은 곳을 찾을 경우,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한국처럼 여러 종류의 감기약을 처방해 주지 않는다.
감기에 주사나 수액은 상상조차 어렵다.
미국처럼 의료비가 비싸거나, 캐나다, 영국, 유럽처럼 국영 무상의료 시스템을 운영하며 의료 이용을 강력히 통제하는 나라에서는 감기, 편도염, 가벼운 기관지염으로 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OTC)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두고 있거나, 이른바 대체 의학을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가벼운 호흡기 질환으로 쓰이는 재원이 정말 2조 원에 달한다면, 이를 중질환 진료비로 쓰도록 하여 정작 진료비 부담이 큰 질환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임상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접하는 많은 의사가 이와 같은 공통적인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의료계가 그 주장을 강력하게 하지 못하는데에도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조 원에 달하는 호흡기 질환 진료비와 약제비의 상당 부분은 사실, 개원가나 중소병원에 쓰인다고 할 수 있는데, 알다시피 의원급 의료기관이나 규모가 작은 병원일수록 경영 상태가 열악하여서, 가벼운 호흡기 질환 환자라도 없다면 당장 경영 위기가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벼운 질환의 진료비를 줄이고, 중질환의 보장성을 키운다는 의미는, 매출 구조를 대형 병원으로 이동시킨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가벼운 질환일수록 본인 부담을 키우고, 중질환일수록 보장성을 키워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는 건 건강보험 제도의 모순이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의료계도, 병원계도 소리 높여 모순을 바로 잡자고 주장하지 못하는 것 역시 큰 문제이다.
또, 의료 소비자인 환자들의 문제도 적지 않다.
병원에 올 때부터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주사와 수액을 맞을 기대를 하고 오는 환자가 적지 않고, 주사를 맞지 않으면 치료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병원 주사실에서 수액 맞고 쉬는 것을 사우나 수면실에서 한숨 자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소아를 키우는 부모들도 감기나 호흡기 질환의 예방보다는 약간의 열만 있고, 가벼운 기침만 해도 병원 외래나 응급실을 찾아 주사를 맞히고 약을 먹이는 것으로 부모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언급했듯이 소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해열, 진통제는 이부프로펜 정도이며, 감기의 경우, 항생제는 물론 항히스타민제나 코푸시럽 모두 가급적 소아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따라서 집안 습도를 적절히 잘 유지해주고, 소아의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고, 열이 날 경우 옷을 가볍히 입히고, 목욕을 시켜 체온을 내려 줄 필요가있다. 만일 아이들이 늘 감기를 달고 산다면, 그 아이의 면역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보육 환경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우리가 흔히 접하는 감기라는 질환을 통해, 감기의 실체를 알고, 더불어 모순된 건강보험제도의 피해와 문제점을 상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2016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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