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천국이 아니며, 의사는 신이 아니다











입을 열고 거울로 목구멍을 들여다보면, 목젖이 보이고 그 좌우에 편도가 보인다. 그 뒤로 깊은 동굴처럼 목구멍이 보인다. 목구멍의 아래는 앞뒤로 갈라지는데, 가슴 앞쪽으로는 기관지로 연결되고, 뒤쪽으로는 식도로 연결된다.

혓바닥을 쭉 내밀어 보자. 혓바닥의 안쪽을 따라 목구멍으로 넘어 내려가면 앞에 있는 기도를 열고 닫는 덮개가 있다. 이를 후두개 (Epiglottis) 라고 한다.

후두개는 음식물이나 물을 삼킬 때, 기도로 이것들이 넘어가지 않게 닫아주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숨을 쉴 때는 후두개가 열려야 한다.

어찌하다 채 후두개가 제대로 닫히지 않은 체 음식물이나 물이 기도로 넘어가면, 기도 점막이 자극되면서 이를 뱉아내기 위해 격렬한 기침이 발생한다.

이 목구멍을 통괄해서 인후라고 부르는데, 후두개가 있는 인후는 후두개는 물론, 성대 등 구조물들이 복잡하게 있어, 상대적으로 좁아, 공기의 흐름 저항이 가장 큰 부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부위에 염증이 생기면 쉽게 호흡곤란이 생기며, 극단적 상황에서는 아예 기도가 막혀 호흡을 할 수 없게 된다.

후두개의 염증은 대개 특정 세균에 의해 생기며, 소아에서 흔하지만, 성인에서는 흔하지 않다.

후두개염은 일반적인 상기도 감염처럼 고열과 고열에 의한 전신통, 인후통을 주 증상으로 내원하는데, 때로는 호흡 곤란과 천명을 보이고, 소아에서는 개 짖는 듯이 컹컹거리는 특이한 기침 소리를 내기도 한다.

모든 후두개염 환자가 호흡 정지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병의 상태나 개개인의 해부학적 특성이 영향을 주며, 가벼운 후두개염은 감기나 일반적인 상기도염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후두개염은 언제든지 호흡 정지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전통적으로 응급 상태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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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런 상식을 가지고 이런 가정을 해보자.

어느 늦은 밤, 지역의 한 중소병원 응급실에 후두염 성인 환자가 왔다.

이 환자는 심한 인후통과 고열을 주 증상으로 내원했을 것이다. 응급실에 머물고 있는 동안 증상이 악화되어 호흡 곤란이 생겼다.

호흡 곤란은 주관적 증상이며, 의사가 객관적으로 호흡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건, 산소포화도 측정이나 동맥혈가스검사이다. 동맥혈가스검사는 말 그대로 동맥에서 피를 빼 기계로 돌려봐야 하므로 검사 자체가 어렵고 환자도 고통스러우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심한 후두개염이 있다고 해도 공기가 들락거릴 구멍이 있으면 쉽게 산소포화도는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산소를 주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남아있는 구멍마져 막혀버리면 그 순간 호흡이 멈춰지고 환자는 심한 불안감과 함께 혈압과 맥박 수가 급증하고, 산소 포화도는 급감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환자의 뇌사에 이르기까지는 불과 4~5 분의 시간 밖에 없다.

즉, 의사는 인후통과 약간의 호흡 곤란, 고열로 내원하는 환자가 단순한 인후염이나 편도염인지 아니면 후두개염인지 감별해야 한다. 후두염은 X-ray 로는 진단이 쉽지 않다. 가장 좋은 진단 방법은 내시경이나 후두경을 통해 후두 부종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중소병원 응급실에서는 확인이 어렵다.

그 다음, 의사는 이 환자의 기도 폐쇄를 예견하고 미리 기도 삽관을 할지 아니면, 약물과 산소를 주며 경과를 지켜볼지 판단해야 한다.

의식이 멀쩡한 환자의 기도 삽관은 쉽지 않다. 우선 환자가 너무 고통스러워 저항할 수 밖에 없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인후와 후두개의 부종으로 기도내 삽관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럼, 기관절개술이나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을 해야 한다. 한 마디로 목을 째고 기관지를 잘라 그 사이로 호스를 넣어 숨을 쉬게 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응급 상황에서 기관절개술이나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을 직접 경험해 본 의사는 그리 많지 않다.

다시 정리해보자.

인후통과 고열로 내원한 성인 환자가 왔다. 그 병원 응급실에는 기관절개술이나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을 해본 경험이 없는 의사가 근무 중이었고, 기관절개술을 할 장비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 병원은 2~30 분 가량 떨어져 있다.

그 환자를 진료한 의사는 환자로부터 쌕쌕거리고 그릉그릉하는 천명이 약하게 들리는 걸 알아차렸다.

그 의사가 해야할 일은 이렇다.

후두개염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이송 앰블러스를 부르고, 그 사이에 부종을 감소시킬 스테로이드와 항생제 등을 재빨리 투여하고, 호흡기 흡입 치료를 하면서, 전원받을 대학병원을 수소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그 때까지 환자의 기도는 안전할까?

다행히 기도가 폐쇄되기 전에 환자를 보내 그 곳에서 적절한 조치를 받게 되었다면, 모두가 해피한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환자에게 집중하는 동안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은 욕을 하며 투덜거리겠지만.

그런데, 만일 단순 감기로 오인하고 돌려 보냈거나, 경과 관찰을 하겠다며 수액을 달고 지켜보다 상황이 악화된다면 이송 전에 기도 폐쇄가 오거나 이송 중 같은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럼, 지금 이 나라 상황에서 그 의사는 과실 치사로 실형을 선고받는 동시에 면허 정지 처분을 받고 무직자가 된다.

게다가 만일 거의 기도가 폐쇄된 상태로 내원하거나 내원 직후 기도 폐쇄가 된다면, 이 환자를 살릴 도리는 없다.

의사는 죽어라고 기도 삽관을 시도하다 환자를 잃을 것이다.

또 이 나라가 돌아가는 판으로는 그 책임도 의사가 져야 한다. 도대체 왜?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그런 실력없는 의사가 응급실에 있으니 생긴 일이라며 억울해하고 화가 날 것이다.

그 따위 의사는 당장 면허를 취소하고 다시는 의사 짓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따위니 큰 병원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럼 큰 병원은 다를까?

단지, 의사의 실력이나 시설, 장비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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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의사 2 명에게 금고형이 선고된 사건이 있었다.

서울성모병원은 상급종합병원이며, 이른바 5대 메이저병원의 하나로 분류되는 초대형 병원이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상기도 감염으로 내원한 환자를 초진한 2년차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즉각 3년차 레지던트에게 보고했다. 3년차는 즉시 담당 과장에게 보고했고, 이 둘은 구두로 보고받은 후 환자에게 달려가 기관 삽관을 시도했지만 실패. 곧바로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환자는 이미 저산소증 뇌사로 7개월 후 사망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병원 중 하나. 그것도 수도 서울 강남에 자리한 병원에서 생긴 일이다.

애초 이 사건은 민사에서 병원에게 5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이들을 벌금형에 처했으나 법원은 정식 재판에 회부해 1~1년6개월의 금고형에 처했다.

판결 이유는 담당 과장과 3년차 레지던트가 차트와 X-ray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앞서 얘기했듯 X-ray 는 후두개염 진단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병인이 무엇이든 호흡, 혈압, 맥박 등 생명징후가 나쁘면 그걸 우선적으로 교정하려고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복통이 있는 환자의 혈압이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하면 CT나 초음파 등 검사가 먼저가 아니라 혈압을 올리기 위해 수액과 피를 주는게 우선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기도 유지는 모든 응급환자의 가장 우선되어야 할 조치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사람이 죽었으니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을 지우려고 하다보니, 고작 죄로 지목한 게, 차트와 X-ray를 보지않아 오진했다는 것이다.

즉,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도 반듯이 있다는 것이 법원의 논리라 할 수 있다. 그 환자를 살리려고 노력했던 의사가 바로 가해자이며, 환자를 죽게한 당사자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인 것이다.

언급했듯, 소아의 후두개염은 종종 응급 상황을 초래할 수 있지만, 성인의 경우는 흔하지 않다. 성인은 상대적으로 기도가 넓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부종이 있어도 쉽게 기도 폐쇄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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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성인이 후두개염으로 사망한 사건은 흔하지 않은데, 최근의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2013년 11월, 47 세 남자 환자가 인후통을 주소로 천안의료원을 방문 후 목감기 진단을 받고 처방받아 귀가했다.

몇 시간 후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119를 통해 자정 경 다시 응급실로 내원했다. 농가 주택이라 119가 집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어 신고 후 30분이 지나 병원에 도착했다.

환자의 산소포화도는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의사 역시 후두개염을 확신하지 못했고, 보호자가 큰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해서, 사설 응급차를 불러 단국대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사설 응급차가 오는데 20 여분이 걸렸고, 결국 119 신고 후 2시간이 지나 단국대 병원에 도착했다.

도착 직후 단국대 병원 의료진은 기관절개술을 시도했고, 약 15 분 가량이 걸렸다. 그러나 그 사이 심장이 멈췄고, 심폐소생술을 통해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으나 뇌사에 빠져 다음 날 사망했다.

도착 당시 단국대병원 간호기록지에는 '안색이 창백하고 숨소리는 좋지 않지만 의식이 명료하고 산소포화도 측정치도 정상'이라고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유족과 천안의료원의 합의로 종결되었다.


2) 2014년 연령 미상의 성인 남자가 오전에 감기 진단을 받고, 감기약을 복용한 후 호흡 곤란으로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저녁 9시 50분 경 같은 병원 응급실로 내원했다.

환자는 천명 증세가 있었다.

해당 병원 응급의학과는 급성인후편도염으로 진단 후 산소를 공급했다. 내원 30 분 후 호흡 증세가 더 나빠지자, 마스크로 바꾸고 산소를 5리터로 증량 후 스테로이드와 항히스타민제를 투여했다.

그러나 약 30분 정도 지나자 산소포화도가 92%, 5분 후 89%로 떨어졌다.

이때 의료진은 기도 삽관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5,6 분 후 산소포화도는 48%까지 떨어지며 심정지가 발생했다.

산소포화도 변이 추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22:49 92%
22:53 89%
22:54 기도 삽관 시도
23:00 48% 심정지
23:06 윤상갑상연골절개술, 산소 공급

23:20 분 ROSC (자발순환) 상태로 돌아와 생명징후는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나 뇌사 상태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민사소송에 들어가 병원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판사의 판결 요지는, 후두개염으로 진단할 수 있었으나 편도염으로 오진해 기도폐쇄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고, 이비인후과에 대한 협진 요청을 하지 않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소포화도가 90% 이상 유지되었을 때 기도 삽관을 감행하기는 쉽지 않다.

심 정지 후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불과 5분안에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을 성공해 산소를 준 건, 의사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3) 유사한 사례도 있다.

이 환자의 경우 턱과 목 부위의 부종으로 후두개염, 심경부감염 등으로 진단 후 기도 확보를 위해 기관절개술을 시행했다. 이후 환자가 가래가 끼었다며 호흡 곤란을 호소해 간호사가 가래 흡인 처치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호흡 상태가 더 나빠지고 의식 저하를 보여 심폐소생술 팀을 콜해 기관내 삽관을 제거하고, 기도 삽관 후 집중 치료를 했으나 환자는 뇌사 상태로 사망했다.

이 사건도 재판에 넘겨졌으며, 1심 재판부는 흡인 처치를 제대로 하지 못해 뇌사에 빠졌다며 배상 판결을 내렸으나 2심에는 흡인 처치로 기도 이물에 제대로 제거되지 않을 수 있으며, 병원 심폐소생술 팀이 응급 처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병원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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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병은 깨진 자동차 범퍼와 같은 것이 아니다.

범퍼를 갈고 페인트 칠을 하면 자동차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지만, 사람은 자동차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특성이 있고, 그 특성에 따라 예후도 갈라지고 때론 치료법도 다르며, 병원을 간다고 자동차 범퍼 갈 듯 모든 병을 다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 결과만 놓고 그 책임을 병원이나 의사에게 묻는다면 살아남을 병원이나 면허를 지킬 수 있는 의사는 존재하기 어렵다.

기소한 모든 피의자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지 않는 검사나 2,3 심에서 번복되는 판결을 내린 1심 판사를 처벌한다고 하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학 입시에 성공하지 못하는 수험생을 가르친 교사를 처벌하거나 국민을 힘들게 하는 법안을 만든 국회의원이나 정책을 만든 공무원을 모두 처벌한다고 하면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치료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 치료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유, 환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를 들어, 설명 의무 위반 등등을 걸어 의사를 처벌하겠다고 하면, 남아 날 의사도 없다.

그런데, 지금 그러고 있다.

최근에는 약화 사고(약물 부작용에 의한 사고)로 의사를 처벌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모든 약물은 부작용이 있으며, 그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적은데, 이 역시 부작용에 대한 설명없이 투약했다는 이유로 의사를 처벌하는 것이다.

또,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의료계가 대응하는 모습에도 문제가 있다. 누가봐도 부당하게 처벌한다면, 그 처벌의 화살은 무작위로 날아갈 수 있으므로 남의 일이 아닌데 다들 외면하고 침묵할 뿐이다. 특히 의협의 무기력은 진저리날 정도이다.

아무튼 병원은 유토피아도 천국도 아니며, 의사는 신이 아니다.

인간에게 신이 되라고 하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다.





2019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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