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표 의료전달체계 개선안 소회







어제 (4일) 복지부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을 내놓았다.

물론, 조국 사태가 온갖 뉴스를 뒤덮고 있고, 그게 아니라도 정부 발표에 관심 가질 의료계 인사는 별로 없을테니, 별로 관심이 없겠지만.


이 발표에 대한 의협의 반응도 찾아보기 어렵다.

- 복지부 안을 아직 못봤기 때문이라고 핑계대지는 말자. 왜냐면 이 안은 어제 이미 인터넷에 떴고, 그 전에라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을테니까.
- 결국, 전달체계 개선안 따윈 관심없다는 거겠지. 조국 사태처럼 국민들 관심을 끄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건 케케묵은 의료계 요구사항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사실, 겉으로는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하지만, 내심 현재대로 가자고 하는 것도 다름아닌 의료계라 할 수 있다.

현행 의료전달체계를 규정한 법령은 건강보험법의 시행규칙 한 장인데,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공급체계를 두개의 단계로 나누고 ‘2단계를 이용하려면, 1단계를 먼저 이용해라’ 이게 전부이다. 그런데 문제는 2 단계에 속하는 건, 전국 수천개의 병원과 수만의 의원 중 단 40여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40개 병원(이른바 상급종병)을 이용하려면, 나머지 수만개 의료기관 중 아무 곳이나 먼저 이용하면 그만이다.

거의 모든 병원들이 뒤엉켜 구분없이 환자를 받기 위해 경쟁하는 꼴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무법의 정글인 셈이다.

이걸 전달체계라고 부르는 건 부끄럽다.

그러니, 열악하고 소규모인 의원과 의료기관은 당연히 날로 열악해지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너나할 것없이 덩치만 부풀린다. 거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 상태로 수십년이 흐른 것이다.

그런데도 의료계가 이 상태를 고수하고 싶어하는 건 첫째, 의료정책 결정에 대형 병원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며, 대형병원일수록 무법 상태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둘째, 의료계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보수적이란, 좋게 표현한 것이고, 의료계는 제도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제까지 정부가 제도를 바꿀 때 개선된 적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발 날 흔들지마라’ 는 것이 의료계 대부분의 생각이다. 이제 겨우 틀 잡아놓고 간신히 견디고 있는데 이 틀마져 흔들지 말라는 것이다.

세번째는 무조건적인 정부 불신이다.

두번째와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정부를 믿지 못하니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곧이 듣지 않는다. 정부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 손가락질 받는 곳이 의료계이다.

상황이 이러니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건 의협이 사실 최고이다. 그러니 뭘 발표하든 무관심일테지.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나 같은 민초의사야 정부를 불신하고 무관심해도 되지만, 의료계의 대정부 파트너인 의협은 매사에 관심을 가지고 개입해야 옳다.

아무튼, 아무도, 전혀, 결코, 누구도 정부 발표안에 관심이 없을테니 그 안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생략한다.

개인적 소감을 적으면 이렇다. 20 여장에 걸친 발표안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개인적으론 여러 면에서 고무적인 동시에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의료전달체계 혹은 의료이용체계는 사실 뭐라고 포장을 해도, 결론은 의료 이용을 불편하게 하는 제도이다.

이제까지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의료 접근성 강화’ 였다.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77년이래 단 한번도 바뀜이 없었던 정부 정책이 바로 이거다.

오로지 접근성 강화를 위해 나머지 모든 걸 희생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이 결과이다.

즉, 의료비 폭증, 의료소비의 불균형, 공급 과잉과 과대 경쟁, 소비자들의 도덕적 해이, 과잉 이용 등등이 접근성 강화 정책의 부작용이자 부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정책발표는 복지부가 접근성 강화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의료 이용의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실질적 선언을 한 것과 같다.

전달체계 강화는 이용의 제한, 불편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이다.

즉, 복지부가 정책 방향의 핸들을 틀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 실행 방안은 아직 미지수이다. 여러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현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실망하기엔 이르다.

복지부도 이를 의식해, ‘단기 개편안’이라고 방어막을 쳤다. 즉,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 이제 하루가 지났다.

이미 일부 언론은 ‘지방 사람은 수도권 병원을 쓰지 말란 말이야’ 며 비난을 쏟아내며 선동질을 시작했다. 휴우~~ 그게 아니잖아 이 ㅂㅂ들.

의료계도 슬슬 돌려까기 시동을 걸고 있을 것이다.

뭐 좋다. 하던대로 해야지.

하지만, 대안 하나 쯤은 품고 해야하지 않을까?


2019년 9월 5일







의료전달체계 구축하라고 떠들지를 말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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