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의 허상


무상의료의 허상



<현장 1>
대략 20 명의 가정의학과 의사 (주치의)가 있는 메디컬 빌딩의 달랑 하나 있는 검사실.
이 검사실은 혈액과 소변 등의 임상병리검사와 심전도 검사, 단순 X-ray와 초음파 검사 등 방사선 검사도 같이 진행하는 곳이다.
대기실 의자는 10여개로 늘 대기자들이 의자를 전부 채운 체 기다리고 있어 앉아 기다릴 공간도 없다.
임상병리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병행하는 창구의 직원은 단 2명. 모두 임상병리기사이다.
검사를 해야 하는 환자들은 창구 앞에 있는 번호표를 뽑은 체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두 명의 기사는 번갈아 대기 번호를 부르고, 의뢰지를 보고 창구 안쪽 작은 칸막이로 환자를 부른다.
벽면에는 서너통의 기사들을 위한 일회용 글러브가 있으며, 채혈을 하거나 검사를 할 때 매번, 글러브를 갈아 끼어야 하는 것은 '의무'이다.
간이 침대의 시트는 종이이며 환자 순서가 바뀔 때마다 종이 시트는 쓰레기 통으로 들어간다.
보통 한 명의 환자당 소요 시간은 5분 내지 10분. 전혀 친절하진 않으지만, 그렇다고 전혀 서두르지도 않는다.
용무를 마친 임상 기사가 다시 접수 카운터 자기 자리에 앉으면 그제서야 다음 번 번호를 부른다.
혈액 검사를 위해 30분 쯤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현장 2>
“수술량이 많다. 하루에 해결이 안될 만큼 수술을 집어넣는다. (중략) 환자 당겨서 빨리 하고, 또 하고. 그럼 간호사는 엄청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중략) 실제로 환자들 세팅이 길어지면 매우 문제가 된다. (중략) 시간이 안 맞으면 마취해 놓고 그냥 기다리게 한다. 수술시간이 맞지 않은 경우, 환자는 마취해놓고 펠로우(전임의)가 열어 두고 그렇게 기다리는 거다. 환자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


현장 1은 NHS를 시행하는 캐나다의 모습이고, 현장 2는 미디어 오늘에 실린 기사에서 인용한 우리나라 수술 방의 모습입니다.

둘의 차이는 현장 2의 경우 일 (밀려드는 환자)이 업무를 조정하지만, 현장 1은 근무자가 일 (밀려드는 환자)를 조정한다는 차이입니다.

NHS는 국가가 의료비를 부담하는 체계입니다. 영국, 캐나다가 대표적입니다.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미국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의 아내 힐러리 클린턴을 위원장으로 하여 의료개혁위원회를 만들어, 미국의 의료 개혁 방안을 구상해 달라고 하면서, 캐나다 의료시스템을 참고하라고 했답니다.
반 년도 넘게 지나, 힐러리는 미소를 지으며남편 빌에게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달링, 방법이 없어요."

30분 대기 3분 진료란 용어는 사실 만들어진지 20년은 된 용어입니다.
지금도 잘 나가는 대학 병원에 가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캐나다 예를 볼까요?
NHS 하에서는 환자는 자기 주치의를 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는 환자가 주치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치의가 환자를 정합니다.
즉, 환자가 어느 의사가 용하다고 해서, 그 의사를 자기 주치의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러면, 빽을 써야 합니다.

캐나다의 주치의란 가정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을 이야기합니다.

주치의를 만나려면 예약을 해야 하고, 그 예약해서 만나기까지는 통상 2주 정도 걸립니다.
그러니, 감기나 배탈로 주치의를 찾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의사를 만나기 전에 나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는 주치의 외에도 Walk in clinic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통 한국의 의원과 같이 오는 순서대로 진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염없이 기다렸다가 의사를 만날 수 있지만, 감기나 배탈에 처방전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행히 처방전을 받았다면 약은 환자가 자기 부담으로 사야 합니다. 약값은 NHS가 커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꽤 비싼데다가, 한국처럼 친절하게 약 봉지에 서너 알을 넣어 포장해 주지 않으므로 처방받은 약을 빠짐없이 복용하는 편입니다.

한국처럼 약을 보따리로 가져와서 대충 몇 봉지 먹고 쳐박아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런 나라의 주치의를 만나면 30 분 정도 장시간 허물없이 의료 상담과 모든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길어야 대략 10분, 정말 이슈가 있다면 15분 정도? 대개는 한국의 여느 병원 외래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면, 다른 예약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진 즉 새로 주치의를 정하는 환자가 올 경우에는 따로 날을 잡아 full exam. 을 합니다. 이걸 하려면 보통 또 2,3 주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가정의들은 이들은 가벼운 질환을 다루며 처방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의료 코디네이터 (medical coordinator)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낫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거나 further evaluation이 필요하면, 전문의 진료를 받게 하는데, 보통 3,4 개월이 걸립니다. 만일 3 개월 안에 전문의와 약속을 할 수 있다면, 그건 굉장히 운이 좋았거나, 그 전문의가 굉장히 실력이 없는 의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정의가 자기 환자를 정하듯, 가정의가 의뢰한 환자를 전문의가 진료해 줄 것인가 아닌가의 결정도 그 전문의가 합니다. 무슨 어마어마한 훈장처럼 전문의는 가정의에게 팩스를 보내고, 환자는 아무리 멀리 살고 있어도 그 팩스를 수령하기 위해 가정의를 친히 찾아가야 합니다.

왜냐면, 그 팩스에는 나를 진료해주시겠다는 “전문의 님”의 연락처와 주소가 있으며, 팩스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1 주일 안에 다시 전화를 걸어 예약을 확정하지 않으면, 그 예약은 취소되며, 예약을 확정하고 그 날 무슨 일이 생겨 진료를 보러 가지 못하면, 벌금(100불)을 내야하고, 다시 예약을 잡으려면 또 예약비 50불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을 냅니다.
NHS를 시행하는 국가에서,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예약을 어겼다고 돈을 받는 것입니다.

간기능 검사, 일반혈액 검사는 Working day로 최소 5일이 지나야 주치의한테 결과 통보가 가고, MRI를 찍으려면, 통상 3,4 개월, 만일 암의 진단을 받았다면, 수술을 잡는데 또 몇 개월,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는데, 또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리다가 죽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이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는 않겠지만, C"est La Vie 즉, ‘That’s Life’라는 인식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의사 멱살을 잡아 “무조건 살려내!”라며 아우성을 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망할 경우 의사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뭘 잘못해서 미안하다기 보다는, 유족들에게 유감을 표시하는 건데, 한국에서 의사가 환자 가족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바로 소송이 들어올 것입니다. 의사 멱살을 잡고 “무조건 살려내!”라며 아우성을 치는 건 덤이구요.

저는 의료는 '그 나라 교육 수준, 생활 수준, 오랜 역사 등등 속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의 영향을 받기에 의료에 왕도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골백번 죽지 않고 우리나라에 이런 의료문화는 도입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의사에게 불만이 있으면 의자를 집어던지거나 칼로 의사를 찌르는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환자를 <통제>하면 우리나라 의사의 절반은 제명에 죽지 못할 것입니다.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이 돌아가는 이유는 환자들이 기다려주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북미에서 소위 <대체의학>이 발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치료, 자가치료를 하지 못하면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캐나다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그 어떤 근로자도 절대 서두르지 않습니다.
의사도 환자를 가려보고, 임상병리기사도 자기 일이 끝나야 다른 환자를 봐 줍니다.

우리나라 병원 종사자들이 <현장 2.>에서처럼 숨을 헐떡이며 떠밀려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행위>가 돈이기 때문인가요?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서너달 기다려야 겨우 찍을 수 있는 MRI도 환자가 직접 돈을 내겠다고 하면, 당일에도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너달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는 전문의도 진료비를 직접 내겠다고 하면, 언제라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건 불법이 아닙니다.

실제, 많은 캐나다 국민들이 본인이 자비로 의료기관과 시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NHS를 시행하는 나라에서 이런 환자들만 치료하는 소위 말하는 <영리병원>이 따로 세워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무상의료 무상복지를 주장하는 분들은 이런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임의비급여로 간주하고 불법행위로 처벌할 것입니다.
빈부격차 운운, 돈 없으면 기다리다가 죽으란 말이냐! 고 항의와 촛불 집회로 나라가 시끄러워질 일입니다.

좌파들이 주장하는 <주치의 제도>의 실체가 이것입니다.
<무상 의료>란 이런 모습입니다. 캐나다는 <총액 계약제>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의사들이 검사를 잘 해주지 않으려는 건, 그 총액에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중병에 걸리면 입원, 수술을 무료로 해 주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실지 모릅니다.

사실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모든 국민들에게 무료로 활짝 열려있습니다.
결코 안 해 준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늦게 해 줄 뿐입니다.

저는 캐나다 의료시스템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옳다 틀리다도 아니며 그저,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것 입니다.

한 가지는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환자들은 복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도 오래 가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한국 의료 공급이 붕괴되고 있으니까요.
성수대교, 삼풍 백화점만 무너지는 게 아닙니다.

Sept. 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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