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결정 논의를 보는 시각


연명의료 결정 논의를 보는 시각



그 명칭이 죽음 선택권이든, 존엄사이든, 연명의료의 결정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이고 영혼이 육체에 깃들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의 격과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외국의 영화나 드라마, 특히 과거에 방영되었던 E.R을 보면 죽음을 선고 받고 마지막 순간을 엄숙하고 아름답게 마치는 환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드라마이고 다소 설정 때문이겠지만, 우리는 병원에서 그 같은 환자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그건, 미국의 드라마이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성, 교육적 종교적 배경 등이 합쳐진 의료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한 국가의 의료라는 것은 매우 복잡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 서로 다른 문화 환경이 있다는 것이다.

즉, 어느 날 갑자기 송두리채 그 문화를 바꿀 수는 없다. 더욱이 법을 제정한다고 문화가 덩달아 바뀌지도 않는다.

이건 오랜 논의와 사회적 합의와 관습의 변화를 통해 서서히 바뀌어야 할 것이며, 수 많은 도전과 실패 속에서 서서히 자리 잡아 가야 할 것이다.

물론, 존엄사, 혹은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논의가 거듭되고 중요한 사회적 아젠다가 된다면, 그 시기는 더 단축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논의 핵심에, 이 논의를 이끌어가는 주도적 역할에 의사라는 직분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면, 이것은 의사 대 환자, 의사 대 국민으로 논의가 전개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 즉, 종교인, 환자 단체, 시민 사회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사 혹은 의료계가 이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순간, 원래의 본질은 훼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사란, 한 인생의 종점을 찍는, 종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저, 최선을 다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여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행위만 하면 된다.

그 행위에, 돈이나, 부족한 병실이나, 인력 낭비 따위가 개입해서는 안되며, 조금이라도 개입하고 있다는 것처럼 비쳐져서도 안 된다.

‘연명 의료의 결정’이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으로 불리던 과거 그 시점에 이미, 그 의미는 훼손되었고 왜곡되었기 때문에 더 더욱 그러하다.

이 논의에서 의사의 역할은 의료 현실에 대한 조언자의 역할에서 그쳐야 한다.

만일 의사들이 주도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이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다면, 그건, 아직은 사회적 합의가 미성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처럼 단일 보험자를 갖는 경우, 보험자는 곧 정부기관이므로, 정부가 이 문제를 선도적으로 나서게 되면, 보험자가 불요불급한 보험료를 지불하지 않으려 한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

정부는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것에 그쳐야 한다.

여전히 다수의 국민들은, 연명의료나 존엄사에 대한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만일 정부 주도하에 이의 법제화가 이루어지고, 만의 하나라도 원래의 목적이 곡해되고 오해될 경우 그 파장은 클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건, 다소 더디게 진전되더라도 사회적 합의라는 순리에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의료계와 정부가 너무 나서는 것 같아 보여 걱정이다.

Sept. 1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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