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급여화 결정에 의료계는 침몰하게 될 것이다.


초음파 급여화 결정에 의료계는 침몰하게 될 것이다.







가령, 인체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자동차 차체에 스크래치가 생겼다고 운행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그러나, 브레이크 시스템이나, 트랜스미션에 고장이 있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치료함에 있어서도, 생명에 직결되는 ‘필수 의료’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선택 의료’가 있다.

필수 의료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만큼 이를 담보로 의료 서비스 공급자들이 지나친 우월적 권리를 남용할 것을 우려하여 이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의료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이므로 이런 가정은 예측 가능하다.

그런데, 만일 그렇다면, 그 규제의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가격 통제”가 가장 큰 규제 수단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수단은 ‘행위 통제’이다.

그런데, 정부가 양손에 들고 있는 이 수단들은 사실,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으며, 실제 그 문제는 곪아 터지며 드러나고 있다.

<가격 통제>를 통해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행위를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의료보험 도입 초기부터 적용되었던 것인데, 애초 의료보험을 도입하면서 낮은 가격, 즉 낮은 의료수가를 정한 이유는 보험료를 낮게 책정하며 보험 가입을 쉽게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소위 저보장, 저수가 정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국민의료보험 의무 가입이 된지 30년을 바라보는 긴 시간 동안 “가격 통제”를 가장 큰 규제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우리나라 의료 수가는 낮은 수준을 유지했을지 모르지만, 의료서비스 공급자들이 버틸 낼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이미 그 부작용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느 나라든 의료보험제도 혹은 사회보장으로써의 의료보장제도는 의료 서비스 공급이 된 이후에 시작되었다.

의료보험제도는 보험사가, 의료보장제도는 통상 국가나 정부 기관이 의료비의 전부 혹은 일부를 지급하게 되는데, 그 이전에는 의료서비스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직거래만 존재했기 때문에 이들 제도가 도입되기 전의 가격 구조 즉, “관행 수가”라는 것이 있었다.

이른바 ‘관행 수가’는 자연스럽게 시장 경제 원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데, 의료보험 도입 시기인 1970년 후반만 해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관행 수가는 비교적 높은 가격에 결정되었고, 가격 통제를 하는 정부는 공급이 늘어나는 미래를 예견(!)하고 미리 낮은 가격으로 보험수가를 고시하였는데, 이런 관성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 국가에서 시장 경제 원리를 무시한 체, 전체주의적 가격 통제를 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가격 결정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사실은 시장 원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될 수 있으며, 이 가격은 공급자와 수요자의 암묵적 사회적 합의에 따르게 됨으로 최선책은 아니어도 차선책은 될 수 있을텐데, 정부의 강력한 개입으로 그 순리가 무너지면서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문제이다.

또 다른 문제는 비록 사회 안전망 유지를 위해, 공급자들이 우월적 권리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가격 통제라는 수단을 쓴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우리나라 의료공급자들의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의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법적 근거는 있다. 그리 법을 만들었으니… 그러나 철학적 경제적, 시장적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왜냐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인들에게 국가가 교육 비용을 부담하였거나,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이들에게 정부가 국고를 지원한 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민간의료기관은 순전히 민간에서 출연한 자금으로 개설되고 운영되고, 경영의 모든 책임 역시 개설자가 지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두고,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그 가격을 따르라고 하는 근거의 원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게다가 이 가격 가격 통제를 따라 생존하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정부가 아닌 개인이 져야 한다.

즉, 생존은 자본주의 원칙에 적용받아야 하고, 규제는 건강보험이라는 사회주의 원칙에서 통제 받고 있는 꼴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 입장에서 가격 통제 외에 사회안전망 유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엄격하게 말하자면, 사회보장이 필요한 자 즉, 극빈층, 고령층, 영유아 등에 대한 사회 보장 지원이다.

다시 말해, 시장원칙에 의해 결정된 가격에서 모자란 만큼을 정부가 보조해 주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지, 가격을 후려쳐서 깍아, 사회보장의 책임을 의료서비스 공급자에게 떠넘겨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적어도 국민소득 2만불이 넘고, 세계 무역 10대 국가인 나라에서…

그러니, 그럴 역량이 안되면 함부로 사회보장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면 안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번 초음파 급여화 결정이다.

이미 오랜동안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된 초음파 수가를 100% 인정하고, 이를 급여화할 경우 건보 재정으로 부담할 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보장성 강화 차원에서 급여화해야 할 것이지, 가격 통제라는 수단으로 가격을 후려쳐서 부담을 의료기관이 지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도 과거지향적인 통제 방법이자, 가격 통제라는 오랜 관성의 후유증이다. 이를 극복 못한 의료계 협상 대표자들에게도 그 책임은 크다.

그나마, 의료 수가 중에 시장 원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비급여 항목이다.
대부분의 비급여는 공급이 늘어나고 경쟁이 과열됨에 따라 사실 대부분 그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비급여 항목의 대표 주자는 바로 초음파이다.

이번 초음파 급여는 이른바 ‘관행 수가’의 50%에서 가격이 결정되었다.

단언코 예언하건대,

이번 초음파 급여화는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다.

지금 상당수 병의원의 경영 마진이 종이 한장 정도로 박(薄)한데, 초음파 급여화로 이를테면 경영 지축이 흔들리게 되었고, 이의 여파로 인해 상당 수의 의료기관이 collateral damage로 무너질 것이다.

“초음파 급여화”가 갖는 상징적, 실질적 의미는 매우 크다.

초음파 검사는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비급여로 남아 있었고, 비급여를 상징하는 대표적 항목이었을 뿐 아니라, CT, MRI. PET과는 달리 비교적 장비 도입 비용이 적어 소규모 병의원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진단 기기이며, 실질적으로 어려운 병의원 경영에 큰 도움을 주던 검사이었다.

정부나 사회시민단체는 그저 비급여 항목 하나가 급여로 바뀐 것에 불과할지 몰라도, 의료계가 받아들이는 심리적, 경제적 충격은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일부는 초음파가 급여화되면 가격이 내려가는 대신 빈도가 올라가게 됨으로, 당신이 주장하는 시장경제 원칙대로 하자면, 결국 총액은 비슷해질것인데, 무슨 불만이 많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야기이다.

비급여가 급여화 된다는 것은, 가격이 바뀐다는 것 외에, “가격 규제”외 정부의 통제 수단인 “행위 규제”가 개입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가격이 싸졌다고, 찍고 싶은대로 초음파을 찍어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가격이 싸졌기 때문에 싼 맛(?)에 불필요한 초음파 검사를 원하는 환자들을 달래고 설득해서, 검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심평원이 적정성 평가를 통해, 초음파 행위를 삭감해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초음파 급여화 결정은, 정부 및 정부기관, 이에 개입한 사회시민단체, 이를 막지 못한 의료계 대표자들 공히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이 3자 모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을지 모르지만, 이번 결정이 몰고 올 파급과, 그 파도에 침몰하게 될 수 많은 의료인, 의료기관의 억울함에 비하자면, 새발의 피가 될 것이다.

두고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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