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사무관이 정책을 좌지우지 한다고?


초짜 사무관이 정책을 좌지우지 한다고?






의료계 입장에서는 정부가 어떤 과정과 방법을 통해 정책을 기획하고 수립하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아래 기사는 이를 환기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긍정적 면이 있지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체, 다분히 작위적인 내용으로 채워진 감이 없지 않다.

첫째, “의정간 신뢰구축과 소통 강화”는 구호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주 만난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기사에서 지적했다시피, 행정부의 부족한 면을 의료계가 채워주고, 행정부는 의료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때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둘째, “모든 의료정책은 사무관 책상에서 시작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아니며, 사실이다. 사무관이 정책 기안, 정책 기획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며, 자연스런 행정 과정이다.

문제는 사무관이 독단적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기안하여 수립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어느 행정부이든, 그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국정과제와 집권자의 통치 이념에 따라 정해지기 마련이고, 이 기조 안에서 새로운 정책을 기획하게 되며, 이는 내부 검토를 거쳐 ‘과’내 과제로 선정되고, 다시 업무 협의를 거쳐 ‘부’내 과제로 숙성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관련 연구소나 연구기관, 학계의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이론적 배경을 만들고, 이 연구를 맡은 연구자는 또 관련 의료계나 의료단체로부터 의견을 조회하는 과정을 거친다.

과내 과제나 부내 과제가 곧 정책으로 자리 잡는 것도 아니다.

어떤 정책이든, 법령, 고시 등을 통해 법이 개정되어야 하므로 법령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관련 단체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과연, 의료계가 행정부에 정확하게 의견을 제대로 전달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고시 출신 공무원, 기사에서 말하는 20대의 초짜 사무관을 이해시키고 설득하여 의료계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도록 진정코 최선의 노력을 다 했느냐 하는 것이다.

의료계의 경우, 지역, 직역, 전문과목 별로 입장 차이가 있고, 이를 통합하여 의견 조율을 해야 할 역할은 의사협회가 진다. 냉정히 가슴에 손을 얹고 의협이 다양한 목소리를 충분히 조율해 내서 하나의 입장을 정해 이를 확실하게 정부에 제시하였던가?

이건 의료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입법은 정부도 발의를 하지만,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정부 입법은 법안을 마련하기 전에는 연구 용역을 받은 연구자가, 또 법안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정부가 직접 각종 위원회를 구성하여 의료계의 입장을 듣거나 또 개별적으로 의견서를 통해 의견 수렴을 할 뿐 아니라, 법안이 마련되어 입법 예고를 하는 동안에도 공식적으로 의견 조회 기간을 두고 있다.

또, 정부가 발의하는 모든 법률은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규제 사항이 있는지 검토 받으며, 차관회의 장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경우도 해당 상임위, 법안심사소위, 법사위 등을 줄줄이 거치고, 매번 입법처의 전문위원 역시 법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필요하면, 의료계 인사를 불러 청문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법이 바뀌어야 정책이 바뀌는데, 비록 그 시작은 사무관의 책상에서 시작하였다 하여도, 여러 단계의 통과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의료계의 전문적 지식, 필드에서 발생하는 의료인이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상황은 얼마든지 전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의료계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의료계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며 또 어떨 때는 상식적으로 납득 되지 않는 정책이나 법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A부터 Z까지 몽땅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럴까?
또 다른 행정부는 어떠할까?

보건의료 분야는 의료 공급자인 의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직역이 있고, 이와는 별개의 의료 기사 단체, 약사 등이 있어 이들 직역간의 갈등이 엄존하고, 더 넓게는 보건의료는 이들 공급자 외에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소비자가 있다.

보건의료는 그 특성상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국방, 교육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사회 안전망에 속하며, 어느 특정 산업, 시장에 치우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정부는 이들의 사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정부를 대변하고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이 기본적인 원리를 잊으면 결코 의료계는 정부와 소통하거나 신뢰를 쌓아갈 수 없다.

의료 공급자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의료의 영역범위는 매우 느슨한 경계로 되어 있고, 애초 모든 의료의 영역은 의사에게 속하였지만, 시대의 흐름과 의학의 진화에 따라 의료 영역은 끊임없이 침범당하고 있어, 의사는 수성하고, 다른 직역을 공격하는 형세를 취하고 있는데다가 날이 갈수록 의료 영역은 갖은 이유로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의사는 피로에 찌들 수 밖에 없다.

이를 지키자는 것이 의권 수호이며, 의사들이 그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 의약분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2월 17일 여의도집회

한국 의료계의 현실은 이를테면 막장에 떨어져있다고 할 수 있다.

이대로 두면, 가장 중요한 사회 안전망은 붕괴되고, 그 피해는 곧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를 복구하고 회복하려면, 정확한 정보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아래 기사는 단편적 사실을 엮은 것에 불과하다.
의료 정책이 엉망이고, 의료계 현실이 이 모양인 이유가 사무관의 의료현실 몰이해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이건 오히려 의료계에 대한 모욕이다.

지피지기하려면 공무원의 의료 현실 몰이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과연 우리는 철저하였는가?


링크 : 

"의료용어도 모르는 초짜 사무관이 정책 좌지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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